내겐 몽블랑 만년필이 네 자루 있다. 몽블랑 마이스터스틱149·146, 모차르트와 아가사크리스티가 있다.
149에는 우리 시대 작가 두 사람의 지문이 찍혀 있다. 한 번은 '칼의 노래' 김훈에게서 서명을 받을 때 찍혔고, 다른 한 번은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최인호에게서 서명을 받았으니 내 만년필은 작가 두 명에게 혼내림을 받은 셈이다.
평범한 만년필에도 이렇게 작가의 손자국 하나만으로 의미가 새롭거늘 하물며 '혼불' 작가에게 있어서 몽블랑임에야. 몽블랑 만년필 하면 나는 '혼불' 작가 최명희가 생각난다.
'혼불'을 펼치면 바로 앞표지 날개에서 작가 최명희는 하염없이 글을 쓰며 앉아 있다. 그가 쥐고 있는 만년필은 몽블랑 마이스터스틱149이다. 걸작품이란 뜻을 가진 몽블랑의 대표적 만년필이다.
그 만년필은 작가가 혼불을 쓰는 동안 많은 시간, 불면의 밤을 함께 하며 한 줄 글을 찾아 울었을 것이다. 작가의 서가에 있는 필통에는 많은 만년필이 꽂혀 있었다.
'몽블랑' 하면 작가 최명희, 죽음에 맞서서 한 뜸 한 뜸 글을 쓰는 장인이 떠오른다. 몽블랑 만년필을 손톱 삼아 바위에 글을 새기듯 썼던 혼불 작가 최명희를 생각한다.
성공한 세 작가 김훈, 최명희, 최인호로서 그들은 같은 또래이다. 김훈이나 최인호는 살아서 출세를 했고 베스트셀러로 돈도 벌었을 것이나 최명희는 그 일생의 혼불 하나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세 사람 모두 작가 정신이 치열한 사람이다. 김훈은 연필로 글쓰기 소문났고, 최인호는 필력이 왕성하여 만년필과 컴퓨터를 동시에 쓰는지는 궁금하다.
몽블랑은 1906년에 첫 탄생의 조짐이 보인다. 미국 만년필의 역사에 비하면 아기 걸음이지만. 미국이 발동을 걸어서 뒤따라가던 그 때 독일 함부르크의 한 문방구 상인이 자신의 만년필을 만들 궁리를 했다. 그는 베를린에 있는 은행가와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만년필 뚜껑과 만년필 몸통을 만들고 촉은 미제를 썼다.
이것을 몽블랑의 창시로 볼 수는 없고, 1908년에 C. J. 보스가 심플로 만년필 회사를 창립하고 다음해 C. W 라우센과 W. D 지암보가 공동 투자를 해서 공동 지분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를 몽블랑의 원년으로 본다. 몽블랑에는 귀족 냄새가 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스페인 소피아 여왕이 몽블랑을 아끼고 즐겨 썼다는 것만으로도.
1910년에는 런던의 무디 엔드 손스회사와 파리의 제이 엠 팔라를 통해 만년필을 팔았다. 심플로라는 이름으로 장사가 될 때였고 사람들의 호기심도 구식 펜에서 새로운 발명품인 만년필로 옮겨갈 때이기도 했다.
이 때 만년필 디자인은 만년필 뚜껑 부분을 회전시키면 촉이 몸통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갔다하는 구조였다. 그 이후는 안전 만년필이라 해서 뚜껑 있는 만년필이 나오게 된다. 아마도 만년필 뚜껑이 없이 알 촉이 나오니 안전상에 문제가 있었던지, 잉크가 흘러 내려 좋은 옷들도 버리기도 했었을 것이다. 당시에 만년필은 상당한 수준의 사람만 쓰던 귀한 물건이었으니까.
1911년에 몽블랑으로 회사의 상표가 바꾸었다. 심벌은 흰 별 모양으로 바꾸었다. 만년필 뚜껑 머리부분에 있는 6각형 별이다. 그 별은 몽블랑 봉우리에 가득한 만년설이 옮겨온 것이다. 만년필 촉을 잘 보자. 거기 찍힌 숫자 4810은 몽블랑 봉우리 높이 4810m를 뜻한다.
몽블랑의 펜촉을 보자. 18k와 14k 금으로 만든다. 펜촉의 끝은 특수 합금 이리듐이 붙었다. 산화로 부식되거나 쉽게 닳지 않는 그야 말로 만년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장수만세를 보장한다.
펜은 모두 손작업 152번을 거쳐 철저하게 다듬어진다. 펜촉의 종류는 동근 펜촉, 넓은 사각 펜촉, 곧은 촉 등 3가지로 나누며 이것은 다시 굵기에 따라 8가지로 나뉜다. 둥근 펜촉은 M(1.00mm), EF(0.5mm), F(0.8mm)가 있으며, 글쓰는 버릇 따라 붓을 쥐듯 곧게 쥐고 쓰는 사람에게 알맞은 곧은 펜촉은 B(1.2mm), BB(1.5mm), 좀 삐딱하게 틀고 쓰는 사람에게는 사각 펜촉으로 OM(1.0mm), OB(1.2mm), OBB(1.5mm)가 있다. 보통 우리가 쓸 때는 EF, F가 쓰기에 무난하다.
몽블랑은 전 세계 만년필 업계를 주름 잡지 못하고 한때는 독일 만년필업계만을 리드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좋은 펜과 멋진 디자인은 계속 개발하였다. 마스터피스의 피스톤식 잉크 방은 몽블랑 만년필의 기술 혁신의 절정이었다.
몽블랑은 2차 대전의 철저한 파괴 속에서 살아남았고, 1970년대 만년필의 사망을 말하던 위기를 이겼다. 몽블랑은 이제 전 세계 상류층을 겨냥한다. 몽블랑은 지금 사용자들에게 동경을 가지고 온다.
낡은 몽블랑은 쓰는 재미와 함께 장인 정신을 느낀다. 장인정신 강한 작가 최명희가 신명을 다하는 자세를 늘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 만년필을 쓰는 보너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