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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遼)나라의 북계[北界 : 북쪽 지경] 땅은?
2022년 07월 26일
○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의 역사해설(歷史解說)에서, 요【遼 : 글란(契丹) : 거란】와 금【(金) : 숙신(肅愼):읍루(挹婁):물길(勿吉):말갈(靺鞨):여진(女眞)】나라의 시원지(始源地)는,
(1)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로, 21세기(世紀) 오늘날의 동북삼성(東北三省) 땅이었다고 말하면서, 많은 종족(種族)과 부족(部族)들이 이곳 땅에서 흥성(興盛)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편(形便)을 보면 : 이곳 땅에서 수천(數千)년 전(前)부터 시원(始源)하며, 흥성(興盛)했었다고 주장(主張)하는 많은 종류(種類)의 종족(種族)과 부족(部族)들의 후예(後裔)나 후손(後孫)들의 발자취 또는 흔적(痕迹)등은 찾을 길이 없다.
(2) 이와는 반대(反對)로, 위의 글 (1)에서 말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1-2 만리(萬里) 멀고 먼 서(西)쪽의 “구라파(歐羅巴), 동구라파(東歐羅巴),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에서 이들의 흔적(痕迹)이 발견되며, 이들 종족(種族), 부족(部族)들은, 지금도 이곳에서 잘 먹고, 잘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웃기는 ‘머저리’들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인가?
➤ 우선 카페(Cafe)〈대륙조선사 연구모임[카페지기 현상태]〉 게시판 “조선사 연구방”의 “카자흐스탄에 대하여” 속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인용(引用)한 글에 대해서 참고로 한 것임을 밝히며, “현상태”님께 “삭방비승(朔方備乘) 33과 34를 볼 수 있도록 해주신 것에 진심(眞心)으로 감사(感謝)를 드립니다. 또 오해(誤解)없기를 바랍니다.
○ 삭방비승(朔方備乘)에 대해서 :
朔方備乘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朔方備乘,清代何秋濤著,是研究中國西北史地學的作品,也是中國近代第一部論述中俄關係的代表巨著.〉 라고 하여, 청(淸) 때의 ‘하추도(何秋濤)’【1824年-1862年 : 字原船,福建光澤人,清朝官員、學者。咸豐九年(1859年)撰寫了《朔方備乘》80卷】가 지은 것이다.
즉(卽) 중국(中國) 서북(西北)【서북(西北) 또는 서(西)와 북(北)쪽】의 역사지리(歷史地理)의 작품(作品)이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즉(卽) 「서북방(西北方) 또는 서(西)쪽과 북방(北方)에 대한 역사(歷史), 지리(地理)에 관한 작품(作品)이다.」라는 이야기다.
【‘삭방비승(朔方備乘) 33, 34’권의 원문(原文) 출처(出處)는, “대륙조선사 연구모임[카페지기 : 현상태]” 게시판(揭示板)에서 보고 필사한 것임을 밝힙니다.】
➤ 서력(西曆 : AD) 1,859년도에 편찬(編纂)된 “삭방비승(朔方備乘)”에서 “요(遼)와 금(金)나라의 북계(北界)에 대해 설명(說明)한 것을 보면 :
〈당록령(唐麓嶺)【당노산(唐努山)】의 북방지대(北方地帶)로부터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동구라파(東歐羅巴) 북방지대(北方地帶)등을 지칭(指稱)하고 있다.〉 이곳은 중국(中國)으로부터 “서북(西北)”쪽의 땅이다.
이러한 원전(原典)에 따르면 : 요(遼)【글란(契丹): 거란 : 키타이[Kitai]】와 금(金)【숙신(肅愼): 읍루(挹婁):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여직(女直)】나라의 시원지(始源地)는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 즉(卽) 북방삼성(北方三省) 땅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오늘날의 “외몽고(外蒙古) 서북방(西北方)으로부터 구라파(歐羅巴) 북방지대(北方地帶)까지에 존재(存在)했다”는 뜻이다.
21세기 오늘날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을 한마디로 표현(表現)하면 : “머저리들의 머저리 역사해설(歷史解說)이다”라고 하면 딱 어울리는 말이 된다.
○ 삭방비승(朔方備乘) 33권 ‘첫머리’에서 말하기를 : 《遼之北陲接壤於轄戛斯乃蠻,金之北陲有克烈部皆今鵝羅斯境》이라는 내용이 있다. 즉(卽),
1.《遼之北陲接壤於轄戛斯乃蠻: 요【遼) :거란(契丹) :Kitai)】나라 북계(北界)는, ‘할알사(轄戛斯), 내만(乃蠻)’의 땅과 접해있다.》라고 하였다.
(1) 할알사(轄戛斯) :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의 내륙국가(內陸國家)로, 길리길사(吉裏吉思) 북변(北邊)은, 합살극(哈薩克)과 상접(相接)하고 있으며, 동(東)쪽으로는 중국(中國)과 이웃하고(鄰) 있는데,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의 옛 나라다. 【中亞的內陸國家。吉爾吉斯北邊與哈薩克相接,西邊則為烏茲別克,西南為塔吉克,東邊緊鄰中國。作為中亞古國】라고 하였으며,
‘길이길사(吉爾吉斯)=길리길사(吉裏吉思)’의 최초(最初)기록(記錄)은 사기(史記)로, 당시(當時)에 “견곤(堅昆)”이라고 하였다. 【吉爾吉斯[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現時有關吉爾吉斯人最早的記錄是史記,當時吉爾吉斯人被稱為堅昆.】
이들에 대해서『鬲昆, 兩漢時稱堅昆,魏晉南北朝至隋代稱結骨,契骨. 紇骨,護骨 : 唐代時根據漢語的音譯通稱為黠戛斯. 五代十國、遼、宋、金時又稱紇里迄斯,蒙古帝國、元代時稱吉利吉思』등으로 불리워졌다고 하였다.
(2) 키르기즈(Kirgiz)는, 『멸망(滅亡)하지 않는 자(者)』라는 뜻으로 민족(民族) 스스로 부르는 명칭(名稱)이다.
역사서(歷史書)에는 「격곤(鬲昆), 격곤(隔昆), 견곤(堅昆), 결골(結骨), 흘골(紇骨), 계골(契骨), 호골(護骨), 흘흘사(紇扢斯), 힐알사(黠戛斯), 할알사(轄戛斯), 힐알사(黠戛司), 길리길자(吉利吉孜), 길리길사(吉里吉斯), 흘아길사(仡兒吉思), 흘리흘사(紇里迄斯)」등으로 기록(記錄)되어 있는데, 키르기스(Kirgiz)족은 ‘견곤(堅昆), 결골(結骨)’로 불리웠다고 한다.
한(漢)나라 때에 이미 ‘견곤(堅昆), 격곤(隔昆)’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민족(民族)이 선조(先祖)일 것으로 추정(推定)되고 있다. 그들은 본래(本來) 유럽[Europe : 歐羅巴]계로 인정(認定)되어 당(唐) 때의 기록(記錄)에도 「적발【赤髮, 금발】과 석면【晳面, 흰 피부(皮膚)】, 녹동【綠瞳, 푸른 눈동자】을 가진 장대(壯大)한 사람들로 묘사(描寫)되어 있다.」
그 뒤에는 ‘결골(結骨), 흘골(紇骨)’이라고도 불렸고, 당나라 때는 '할알사(轄戛斯)'라고도 표기(表記)되었다. 대부분 ‘키르기스[Kyrgyz]’족(族)과 관련(關聯)된 것들이 많다.》고 하였다.
이들 각(各) 부족(部族)의 옛 기록(記錄)을 보면 :〈장안(長安)으로부터 1만4천리(千里), 1만6천9백리〉등으로 기록(記錄)되어 있어, 그들의 삶의 보금자리는 ‘우랄산맥(山脈)’의 ‘서(西)쪽과 동(東)쪽’으로 보아진다. 고전(古典)에서 이들을 찾아보면 :
➊ 通典 邊防傳 / 迴紇 :《迴紇在薛延陀北境,居延婆陵水,去長安萬六千九百里,勝兵五萬人.中略. : 회흘(迴紇)은 설연타(薛延陀) 북쪽지경에 있는데, 파릉수(婆陵水)에 붙어 산다. 장안(長安)에서 1만6천9백리 떨어져 있고, 승병(勝兵)은 5만 인이다. 중략(中略).》라고 하였다.
‘회흘(回紇)’은 곧 철륵(鐵勒)의 한 부락(部落)으로,「격곤(鬲昆), 격곤(隔昆), 견곤(堅昆), 결골(結骨), 흘골(紇骨), 계골(契骨), 호골(護骨), 흘흘사(紇扢斯), 힐알사(黠戛斯), 할알사(轄戛斯), 힐알사(黠戛司), 길리길자(吉利吉孜), 길리길사(吉里吉斯), 흘아길사(仡兒吉思), 흘리흘사(紇里迄斯)」등과 같은 인종(人種)들이다.
➋ 《烏護.紇骨子.其契弊即契苾也.烏護則烏紇也.後為迴鶻.其紇骨即紇扢斯也.由是而言.蓋鐵勒之種.嘗以稱迴鶻矣.其轉為黠戛斯者.蓋夷音有緩急.即傳譯語不同.訪於譯史云.黠戛是黃頭赤面義.蓋迴鶻呼之如此.今使者稱自有此名.未知孰是. : 오호(烏護)는, 흘골자(紇骨子)인데, 그것은 글폐(契弊) 곧 글필(契苾)이다. 오호(烏護)는 곧 오흘(烏紇)이다. 뒤에 회골(迴鶻)이다. 흘골(紇骨)은 곧 흘흘사(紇扢斯)이다. 말로 인한 것인데, 모두 철륵(鐵勒)의 종류이다. 일찍이 회골(迴鶻)이라 불렀는데, 그것이 전(轉)하여 힐알사(黠戞斯)이다. 아마 오랑캐 음의 느림과 빠름이 있어, 곧 전하며 통변하는데 말이 같지 않다. 찾아온 통변(通辯)자가 이르기를, 힐알(黠戞)은 누런 머리와 붉은 얼굴(黃頭赤面)의 뜻이다. 아마 회골(回鶻)을 부르는 것과 같다. 지금 사자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이름인데, 어느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현재의 우랄산맥(山脈) 또는 그 서(西)쪽 지방에 살던 자(者)들은 〈회골(回鶻)=회흘(回紇) 곧 철륵(鐵勒)이며, 이들은 색목인(色目人)이었다. 또 힐알(黠戞)은 누런 머리와 붉은 얼굴(黃頭赤面)의 뜻이다.〉라는 사실(事實)이다.
➌ 해국도지(海國圖志) /〔按:唐時堅昆在西,骨利幹在東,皆今俄羅斯南境,今其人多赤發皙麵,綠瞳,蓋堅昆裔也. : 안(按) : 당(唐)나라 때의 견곤(堅昆)은 서(西)쪽에 있고, 골리간(骨利幹)은 동(東)쪽에 있었는데, 모두 지금 아라사(俄羅斯)의 남(南)쪽지경이며, 그 사람들은 붉은 머리가 많고 뚜렷한 윤곽과 녹색 눈동자(綠瞳)인데, 대개 견곤(堅昆)의 후손(裔)들이다.》
➍ 通典 邊防傳 / 結骨 :《結骨在迴紇西北三千里.勝兵八萬.其國南阻貪漫山.多林木,夏沮洳,冬積雪,往來險阻,有水從迴紇北流踰山經其國. : 결골(結骨)은 회흘(迴紇)의 서북(西北)쪽 3천리(千里)에 있다.【그렇다면 결골(結骨)은, 장안(長安)으로부터 19,900리 떨어져 있게 된다. ‘(회흘(迴紇) : 장안(長安)에서 16,900+회흘(回紇)로부터 3,000 = 19,900 리)’】뛰어난 병사 8만이 있다. 그 나라의 남쪽은 험한 탐만산(貪漫山)인데, 임목(林木)이 많다. 여름에는 물에 잠기고, 겨울에는 눈이 쌓여, 왕래가 험하고 위태롭다. 물은 회흘(回紇) 북쪽을 따라 흘러 넘쳐 그 나라의 산을 지나간다. 人並依山而居,身悉長大,赤色,朱髮綠睛.有黑髮者,以為不祥. : 사람들은 산(山)에 의지하여 사는데, 신체(身體)는 모두 장대(長大)하고, 붉은 빛이고(赤色), 붉은 머리털(朱髮)을 가졌고, 눈동자는 녹색(綠睛)이다. 흑발(黑髮)을 가진 자도 있는데, 이 자들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其人服飾以貂豽,食用手.其俗大率與突厥同.婚姻無財聘.性多淫佚,與外人通者不忌.男女雜處. : 그 사람들의 복식(服飾)은 담비와 놜(짐승이름)의 가죽이고,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그 나라의 풍속(風俗)은 크게 보아 돌궐(突厥)과 같다. 재물(財物)없이 방문하여 혼인한다. 성격은 음란하고 방탕하다(淫佚). 외인과 통하는 것을 꺼리지 않으며, 남녀가 잡거(雜居)한다.》고 하였다.
➎ 唐會要 【송(宋) 왕부(王溥) A. D 961】 結骨國 / 《結骨在迴紇西北三千里.勝兵八萬.口數十萬.南阻貪漫山.有水從迴紇北流.踰山經其國.人並依水而居.身悉長大.皙面綠睛朱髮.有黑髮以為不祥.人皆勁勇.鄰國憚之.其大與突厥同. : 결골국(結骨國) / 결골(結骨)은 회흘(迴紇) 서북(西北) 삼천리(三千里)에 있다. 뛰어난 병사가 8만이며, 수십만(數十萬)의 백성(百姓)들이 있다. 남쪽에 험한 탐만산(貪漫山)이, 회흘(迴紇)의 북쪽으로 흘러가는데, 그 나라의 산을 지나간다. 사람들은 나란히 물에 의지하여 산다. 사람들의 신체(身體)는 모두 장대(長大)하며, 얼굴이 희고 녹안(綠眼)이며 붉은 머리털이다. 검은 머리를 가진 자도 있으나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굳세고 용감하여, 이웃나라가 꺼려한다. 그들은 크게 돌궐(突闕)과 같다.》
➏ 海國圖志 / 俄羅斯國 : 《直回紇西北三千裏,南依貪漫山地,夏沮洳,冬積雪,人皆長大,赤發,皙麵,綠瞳,以黑發為不祥,黑瞳者必曰陵苗裔也.男少女多,俗趫伉,氣多寒,雖大禾亦半,禾稼有禾粟,大小麥,青稷穄. : 곧바로 회흘(回紇) 서북(西北) 삼천(三千)리이며, 남(南)쪽 탐만산(貪漫山)땅에 의지하였는데, 여름(夏)에는 축축하고, 겨울에는 눈이 쌓이며, 사람들은 모두 장대(長大)하고, 붉은 머리에, 윤곽은 확실하고, 초록눈동자(綠瞳)이며, 검정머리털을 가진 자는 자세하지 않은데,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들은 틀림없이 “이능(李陵)”의 후손들이다. 남자는 적고, 여자는 많은데, 재빠르고 굳세며(趫伉), 기후는 추운 곳이 많아, 큰 벼(嘉禾)는 많을 지라도 또 절반정도며, 큰 벼를 심고 큰 조도 있으며, 크고 작은 보리, 청기장과 검은 기장도 있다.》
➐ 騮馬國 : 《堅昆國人皆赤髮綠睛.其有黑髮黑睛者.則李陵之後.故其人稱是都尉苗裔. : 견곤국(堅昆國)사람들은 모두 붉은 머리털에 푸른 눈동자(碧眼 : 綠睛)이다. 그 중에서 검은 머리털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가 있는데, 곧 이릉【李陵 : 전한(前漢)의 기 도위(騎都尉)로 흉노(匈奴)에게 항복(降伏)해, 선우(單于)의 사위가 되어 우현 왕(右賢王)이 되었다.】의 후(後)인데, 고로 이 사람들을 도위(都尉)의 후예(後裔)라고 불렀다.》
➨ 〈해국도지(海國圖志)의 아라사국(鵝羅斯國)과 당회요(唐會要)의 결골국(結骨國)·류마국(騮馬國)과 통전(通典)의 결골(結骨)은 같은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이게 우연(偶然)의 일치(一致)일까? 결코 우연(偶然)의 일치(一致)일 수 없는,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이다.
이들 역시(亦是), 모두 색목인(色目人)들이다. 다만 검은 눈동자를 가진 일부(一部)가 있는데, 「이들은 아마도 이릉(李陵)의 후예(後裔)일 것이다.」라는 이야기다.
➑《오손(烏孫)=견곤(堅昆)=결골(結骨)=골리간(骨利幹)=류마국(騮馬國)=회골(回鶻)=힐알사(黠戛斯)=아라사(鵝羅斯) : 이들의 인종적(人種的) 특색(特色)은, 「身 悉 長 大. 皙 面 綠 睛 朱 髮 : 사람들의 신체(身體)는 모두 장대(長大)하며, 얼굴이 희고 녹안(綠眼)이며 붉은 머리털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堅 昆 國 人 皆 赤 髮 綠 睛 : 견곤국(堅昆國)사람들은 모두 붉은 머리털에 푸른 눈동자(碧眼 : 綠睛)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전형적(典型的)인 현 “러시아. 우크라이나”계 사람들이다.
➤ 이러한 나라들의 남(南)쪽 땅에 “요(遼)”나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當時)의 “요(遼)”나라는 :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동구라파(東歐羅巴) 땅에 있었다.〉는 이야기로, 〈지중해(地中海)+흑해(黑海)+리해(裏海 : 카스피해) 남쪽지대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들은 중국(中國)의 동북방(東北方) 땅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및 구라파(歐羅巴) 나라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 종족(種族), 부족(部族)들은 그곳 땅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다. 그러나 ‘머저리’ 사가(史家)들에 의해 만들어진 땅 동북삼성(東北三省)지대에서는 이들의 흔적(痕迹)을 찾을 길이 없는 것이다. 당연(當然)한 이야기다. 동북방(東北方)과는 전혀 상관(相關)없는 자(者)들이기 때문이다.
2.내만(乃蠻)
➊ 乃蠻 [讀史方輿紀要] : 《乃蠻國,亦在蔥嶺西南。宋嘉定中,蒙古鐵木真擊滅乃蠻諸部,是也。其後復立其種類為乃蠻王。 :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 내만국(乃蠻國)은, 총령(葱嶺)의 서남(西南)에 있다. 송(宋) 가정(嘉定)중에, 몽고(蒙古) 철목진(鐵木眞)이 내만(乃蠻)의 여러 부(部)를 쳐 멸(滅)하였는데, 맞는 말이다. 그 뒤에 그 종류(種類)들이 다시 일어나 내만(乃蠻) 왕(王)을 세웠다. 宋史:景定元年,乃蠻王屈出律襲西遼王直魯古,遼祀始絕。: 송사(宋史) : 경정(景定) 원년(元年)에, 내만(乃蠻) 왕(王) ‘굴출률(屈出律)’이 서 요왕(西 遼王) ‘직노고(直魯古)’를 엄습하니, 요(遼)나라는 비로소 사라졌다.》 이라 하였다.
내만(乃蠻)은, 『총령(葱嶺)의 서남(西南)쪽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重要)한 포인트(Point)다.
또 “요(遼)”나라면 “요(遼)”나라지 무슨 얼어 죽을 “서요(西遼)”란 말일까? “요(遼)”나라는 “요(遼)”나라일 뿐이다. 그 땅이 무슨 움직이는 생물체(生物體)가 아닌 다음에야 이곳저곳으로 이동(移動)하면서 나라를 만들었던 말일까? 이건 아니다.
오늘날 대륙(大陸) 땅의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를 지우기 위해 만들어진 조작품(造作品)일 뿐이다.
➤ “요(遼)”는 본시(本是)부터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에서 시원(始源), 흥성(興盛), 소멸(消滅)된 나라다. 더불어 “금(金)”나라 역시 “요(遼)” 땅을 차지하고 한 때 흥성(興盛)했던 옛 나라였을 뿐이다.
오늘날의 “몽골” 땅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영토(領土)에 속해있었으므로, “요(遼), 금(金), 몽고(蒙古)”든 누구도 이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 20세기(世紀)의 실증사학(實證史學)을 빙자(憑藉)한 사가(史家)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이다.
➤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은, 색목인(色目人)으로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이민족(異民族)이었다는 사실(事實)을 잊어서는 조선사(朝鮮史)를 연구(硏究)할 수 없다. 몽고반점[蒙古斑點 : Mongolian spot]은, 우리들에게만 존재(存在)할 뿐, 색목인(色目人)들에게는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 오늘날의 “몽골” 땅에 살고 있는 ‘약 3백만 명’의 몽고인(蒙古人)들은, 옛 몽고족(蒙古族)이 아닌,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백성(百姓)들로 “조선족(朝鮮族)”이었으나, 20세기(世紀) 초(初) 실증사학(實證史學)을 빙자(憑藉)한 사가(史家)들에 의해 몽고인(蒙古人)으로 둔갑(遁甲)되어 버렸고, 본래(本來)의 옛 몽고족(蒙古族)들은, 지금도 우랄산맥[Ural 山脈] 서(西)쪽 땅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事實)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위의 글 [1+2]를 보면 : 요(遼)나라의 북계(北界)는 오늘날의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리해[裏海 : 카스피해]+흑해(黑海)등의 북방지대(北方地帶)를 지칭(指稱)하고 있으며, 그 남쪽 땅에 “요(遼)”나라가 있었다는 뜻이다.
즉(卽) “요(遼)”란 나라는 중원(中原) 땅과 동북삼성(東北三省) 땅과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서방(西方)의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이게 중요(重要)한 사실(史實)이다.
○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 즉(卽), 오늘날의 동북삼성(東北三省) 땅과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멀리 “서(西)쪽 2 만리(萬里)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었다.”는 이야기다. 이게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 이다.
2022년 07월 26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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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말씀 드리고 싶은 말은 : 원전을 찾아 그 원전 원문의 구절을 인용하실 때는, 필히 또 다른 원전으로 그 인용 구절을 교차 확인해야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 사항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원전 기록이 후대의 일부 사가들에 의해 교열이라는 명목하에 첨삭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 오주연문장전산고( 生1788년-沒?. 19세기 추정)에 [又哈薩克。卽古陽關地] 이라고 하였으나, 교차 확인해보면 : 熙朝新語 卷5권(1859년) 속에는 [又哈薩克郎,古陽關地]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두 저서의 저자가 아주 비슷한 동 시대의 사람이라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것이 옳은지 여부보다는, 오주연문장전산고는 필사본만이 전해진다고 할 뿐이기 때문에, 많은 첨삭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더구나 일제시대의 행태를 보면, 쉽게 미뤄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참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양관(陽關)과 합살극(哈薩克)의 땅을 비교해보면, 오주연문장전산고 기록이 일제에 의해 첨삭을 가한 것이 아닐까 의심해 봅니다.
물론 이건 사견을 전제로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고전번역원의 것은,
최남선 선생의 필사본이 전해진 것이라고 하는데....... 즉 육당(六堂) 소장 필사본을 전사(轉寫)한 고전간행회본(규장각 소장 : 동국문화사 간행)이라고 합니다. 필사본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베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죠.
얼마든지 첨삭이 가능합니다. 일제에 의한 고서간행회에서 간행한 것이라는 말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럼에도,
시간을 뛰어넘어, 2022년! 오늘에도 대한민국 땅에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들 모두를 슬프게 합니다.
왜 우리 국민들은 이래야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불가한 민족입니다.
"대륙조선사 연구모임 카페지기 현상태"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삭방비승 33, 34권, 정말 유익하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다시한번 선생님 카페글 정독하고 있습니다
현중국 국경이 조선이라는 생각이 어리석은 생각이였다는걸 느끼네요ㅎㅎ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하세요.
"레시아"님!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77,000,000 명의 반도 국민들 가운데에서 단 0.01% 의 극소수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중단할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에 보답하고자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겠습니다.
감사드리며, 무더운 날씨에 댁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유럽이 원래 만주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그렇다면 오직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르만이 거란이 아니었을까라는 의심이 갑니다.
진실이 점점더 가까와지니 조선사가 그만큼 넓어지네요
안녕하세요! "러브 선'님!
조선사 영역의 진실은 이미 50% 이상 밝혀졌다고 보아집니다. 다만 그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문제는 한반도에 실재하는,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오직 한반도 조선왕조만을 신봉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약 77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반도 조선민족중에서 과연 몇 % 정도가 "조선사의 진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극소수인들입니다. 99% 이상의 한반도 국민들은 "조선사의 진실" 탐구를 "코메디정도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조선왕조의 진실탐구는 정당한 역시적 사실을 탐구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역대정권은 오직 한반도만을 추구했고, 헌법전문에 까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만을 영역으로 표시 해 놓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무식하고, 무지한 자들이 바로 우리들의 선배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방법이 없습니다.
'국가의 대들보, 기본 골격'이라는 '헌법에까지 한반도만을 영역으로 표시한 이 어리석은 선배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식의 극치를 봅니다.
설령 옛 조선왕조의 영역이 밝혀진들,
무슨 재주로 수많은 세계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국가의 헌법전문에 까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명기를 해 놓고 있는데 말입니다. 올가미로 우리들의 목에 스스로 밧줄을 걸어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진짜 궁금한 것이 "대한민국 헌법을 처음 제정할 때, 그 영토를 한반도에 국한시킨 '한반도와 부속도서'라는 문구를 삽입한 자가 누구일까? 입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이 자가 누구일까 말입니다.
정말 답답한 시절입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댁내 평안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