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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향전>의 개념과 가치
넓은 의미의 춘향전은 판소리극을 비롯하여 소설, 창극 등의 다양한 예술양식으로 표현된 총체적 춘향전 작품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거대한 작품군을 이루는 춘향전은 판소리극이 주축이 되어 전승되면서도, 한시, 소설, 잡가, 단가, 창극, 대중가용, 신극, 마당극, 영화, 오페라, 뮤지칼, 신무용, 시조, 가곡, 희곡, 시나리오, 만화, 라디오 드라마, 텔레비젼 드라마, 공연녹화, 레코드, CD 등의 다양한 예술양식과 전달매체를 통해 재현을 거듭하고 있다.
문학, 그 중에서 소설로 한정해서 보더라도, 춘향전은 200년이 넘는 기간을 통해서 재창작되며 끊임없는 변모와 성숙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텍스트도 100여종이나 된다. 그러므로 학술용어로서의 ‘춘향전’은 구체적인 개별 텍스트로서의 ‘개별적 춘향전’과 여러 시대를 거치며 재창작되어온 전체 춘향전을 포괄하는 ‘총체적 춘향전’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따라 ‘총체적 춘향전’은 표제나 내용상의 변이를 보이는 창작적 변이 작품까지를 포함시킨, 춘향을 소재나 주제로 삼은 총체적 예술작품을 뜻하게 되낟. 그러므로 광의의 춘향전은 단순한 판소리극의 한 바탕, 고전소설의 한 작품이라는 의미보다는 우리 민족이 생산한 전통 문화예술의 한 전형으로서의 춘향전이란 뜻을 지니게 된다. 또 양식에 따른 작품의 명칭으로는 판소리극은 ‘춘향가’로, 소설은 ‘춘향전’으로 구분하여 사용함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춘향전>의 가치는 우선 조선조에 창작된 이후 가장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최고인기소설이라는 데에 있다. 물론 판본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영웅소설 <유충렬전>이나 <조웅전>만큼의 인기는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인쇄물로서만 아니라 판소리로서 저자거리에서 민중들의 사랑을 담뿍 받았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춘향전>은 계급사회가 가져오는 모순과 부패상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식을 보여줌으로써 중세에 대한 질타를 통해 사회의 변혁을 모색하는 인간성해방의 문학이라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중세를 타파하고 평등사회인 근대를 지향하는 의식을 보여주는 점에서 우리 문학사의 횃불역할을 떠맡았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계급을 초월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려냄으로써 애정소설의 한 전형을 창조해낸 점도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 <춘향전>의 이본
<춘향전>의 이본은 무수하게 많다. 하지만 설성경의 연구에 의하면 그 이본군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그것은 춘향전의 중심화소인 불망기, 삽화, 신물 삽화, 과거시제, 암행어사 시를 축으로 하여 그 계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계통인 남원고사 계통 1830년경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계통은 판소리 사설이 지닌 구성원리를 유지하면서 본격적 소설화가 이루어진 작품군이다. 이 계열의 작품들은 서두가 “텬하 명산 오악지즁의 형산이 놉고 놉다. 당 시졀의 졀문 즁이 경문이 능통하므로 뇽궁의 봉명하고 셕교상....”과 유사한 행문이거나,아니면 이런 형태의 긴 허두가 있다. 그 다음에 “이 셰상의 뫼오 이상하고 신통하고 거록하고 긔특하고 푀려하고 맹낭하고 희한한 일이 잇것다. 젼라도 남원부사 니등사또 도임시의....” 등으로 이어지는 본화가 시작된다. 이러한 남원고사 계통의 첫 이본은 창작의식이 뚜렷한 작가에 의해 창작된 소설이다. 이 작가가 고급문예인 한문학과 대중문예인 국문문학,구 비문학의 폭넓은 지식을 갖춘 인물로 추정된다. 이러한 창작의식은 광대들에 의하여 불리워지던 전통 판소리의 사설과 달리 일관성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서사구조상 대립의 원리가 보다 분명히 드러나 전반부는 기녀의 행동이, 후반에는 열녀의 행동이 각기 주축을 이루어 연결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사랑의 문제도 전반부에서는 뜨거운 육체적 사랑이, 후반부에서는 순수한 정신적 사랑으로 변이되고 발전된다. 이런 방법으로 사랑의 두 가지 속성을 결합한 높은 차원의 사랑의 본질을 구체화시키게 된다. 여기에 속하는 초기 필사본으로는 파리의 동양어학교본 남원고사,동경의 동양문고본 춘향전,이재수본 춘향전 등이 있다. 이들의 축약본으로 추정되는 경판 35장본 춘향전,경판 30장본 춘향전,경판 17장본 춘향전,경판 16장본 춘향전,안성판 20장본 춘향전 등이 목판으로 인쇄된 것들이다. 또 20세기에 와서도 1913년 신문관에서 최남선의 개작인 고본 춘향전이 나왔고,1936년에는 신명균의 춘향전,1943년에는 신태정의 신역춘향전, 1953년에는 신태화의 춘향전이 출판되었는데 모두 이 계통에 속하는 이본들이다. 이들 중에서 경판 춘향전은 19세기 서울 경기 지역의 독자들에게 대량 보급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두 번째 계통인 별춘향전계 춘향전은 판소리 사설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계통으로서,1840년경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계통은 서울의 독자를 중심으로 보급된 친소설적 남원고사와 쌍벽을 이루며, 전라도를 비롯한 지방 독자를 중심으로 보급된 친판소리적 춘향전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이전의 필사본은 절대 다수가 이 계통에 속하지만, 그 정착 시기를 알 수 없기에 선후 문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 계통을 대표하는 신학균본 별춘향전의 서두는 “슉죵대왕 즉위쵸의 셰화연풍하고 국태민안호데 츙신은 만됴졍이요 열읍의 열여로다. 요지일월이요 슌지건곤이라 태평쳔지 이 인가가”의 허두가 있고,“있떄 셔울 삼청동 니할림을.....”의 본화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이 계통의 이본들은 서두가 이와 유사하게 시작되고 있다. 이 계통에 속하는 대표적 이본으로는 방종현본 춘향전 2종,이고본 춘향전,김동욱본 렬여춘향수졀가,국립도서관본 열녀춘향수졀가,고담성춘향가를 비롯한 필사본과 완판 30장본 별춘향전,온판33장본 열녀춘향수절가,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가 있다. 이들 중에서 완판본은 30장본 별춘향전이 확장되어 33장본과 84장본으로 나타났다. 가람의 소장본이었던 30장본 별춘향전은 마지막 장에 “광대목도 쉬니 쿵쿵쿵쿵”이란 대목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이 판본은 남아 있지 않다.
33장본에서 84장본으로의 변이에는 장면 이행은 없으나,장면의 확장에 의한 생성적 삽입이 많다. 또 84장본은 전반적인 성격이 춘향 중심으로 되어 있기에 월매의 기능이 강조된다. 즉 33장본에서는 방자가 도령에게 춘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최초로 월매의 이름이 나타나지만 84장본에서는 월매를 중심으로한 춘향,향단의 관계를 중심으로 춘향집안에 관한 내용이 골격이 된다. 33장본에서 84장본으로의 확장이 보여주는 질적인 변화는 84장본이 목판본 춘향전의 최대,최고의 작품으로 정착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특히 84장본은 순조,헌종,고종이란 3대에 걸친 유명 광대들에 의하여 다듬어진 판소리 사설을 효과적으로 수용하여 근대판 춘향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 계통인 옥중화계 춘향전은 개화기의 활자본 춘향전으로서 1910년대 이후의 춘향전에 새 길을 열어주었다. 이 계통은 별춘향전계의 최후 작품인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를 극복하면서 나타난 최후의 계통본이 되어 서울의 독자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보급되어 갔다. 판소리 춘향가의 사설본인 명창 박기홍의 춘향전을 바탕으로 신소설 작가인 이해조가 개작하여 매일신보에 연재한 신문연재소설이 옥중화다.이 판소리 산정으로서의 옥중화가 신문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1912년 보급서관에서 활자본으로 인쇄된 후,1913년에는 동미서시에서 선한문춘향전,증수춘향전을 내놓았다. 그후에도 1814년,增像演藝獄中佳人을 비롯하여 1942년에 國語對譯演訂春香歌 등의 계통본이 나올 정도로 수많은 판본이 나왔다. 이 옥중화 계열의 내용상 특징은 결미에서 월매의 청으로 암행어사가 변부사를 용서하는 점이다.
3. <춘향전>의 형성과정
<춘향전>은 적층문학적 성격을 지님에 따라 어떤 한 가지 설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민중간에 흘러 다니는 잡가, 민요, 가곡, 가사 등 다양한 장르의 시가문학까지 섭렵한 것으로 보아 가히 종합예술적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춘향전>연구의 대가인 나손의 견해에 따르면, <춘향전>은 ‘근원설화 ->판소리 ->소설’의 패턴에 따라 스토리가 확장되고 뼈대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춘향전>의 근원설화는 열녀설화, 암행어사설화, 신원설화, 염정설화의 네 가지가 주축을 이루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열녀설화에는 지리산녀설화, 도미설화, 열녀기생담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또 열녀기생담에는 관청의 기생제도, 김만중의 열녀 기생시(단천절부시), 옥계 노진의 열녀 기생담, 김우항에 얽힌 열녀 기생담 등이 있다. 암행어사설화에는 박문수설화가 유명하다. 그외 앞서 거론한 노진이나 김우항과 관계된 이야기도 암행어사설화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노진의 이야기는 담양, 진주부사, 이조참의 등을 거쳐 56세에 호서어사를 지내고 이조판서까지 지낸 노진과 동기와의 사이에 얽힌 이야기이다. <남원>에 사는 옥계 노진이 고아로 크고 집안이 가난하여 혼수를 마련할 길이 없어 선천군수로 있는 당숙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길에서 어린 기생을 만나 그의 환대로 그의 집에 하숙처를 구하고 그녀와 동침을 한다. 그 기생은 거지행색의 노진의 기골과 형상을 보고 “크게 현달할 모습이다”라고 말하면서 냉대하는 선천부사를 만나지 말고 은 오백냥을 줄테니 바로 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라고 충고하면서 말 한필에 은보자기를 싣고 길 떠나기를 재촉한다. 그리고 십년 남짓 지나면 귀한 몸이 될 것이니 몸을 깨끗이 하여 기다리겠다고 자신의 뜻을 밝힌다. 집에 돌아온 노진은 그 은으로 산업을 일으켜 의식문제를 해결하고 과거공부에 몰두하여 4 - 5년 뒤에 과거에 급제하고 임금의 신임을 얻어 얼마되지 않아 수의사또로 관서지방을 시찰하게 되었다. 노진은 곧 기생의 집을 찾았으나 그 어미만 있고 기생은 길을 떠났다는 전갈만 전해듣는다. 수소문 끝에 선천 경내의 산사를 뒤진 노진은 천길 벼랑위의 암자에 기거하면서 예불만을 일삼는 낭자를 찾아 해후를 하고는 가마와 말을 빌려 선천부에 보내 그 어미와 상봉하게 하고는 일을 마친 후 임끔에게 보고한 후 사람과 말을 보내 그녀를 데려와 종신토록 애지중지하면서 함께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계서야담에 수록되어 있다. 노진의 이야기는 기록문학으로 정착하기 전에 구비전승하는 과정에서 춘향가의 암행어사 소재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숙종때 박문수 설화도 암행어사설화로 춘향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조초 진주 촉석루근처를 지나던 박문수어사는 童妓와 친하게 지낸다. 그리고 그는 추녀인 汲水婢를 만나 통간을 하게 된다. 10년후에 어사가 되어 내려간 박문수는 걸인행색으로 동기집을 찾아가지만 푸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급수비집을 찾아가 환대를 받는다. 본부 부사의 壽宴날 박문수는 부사의 愛妓가 되어있는 童妓에게 술을 따를 것을 요구하나 외면당하고 御史出道후 坐起하고는 判決을 내리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명이나 신의를 지키는 인물이 기생이 아니라 급수비라는 점, 晋州妓가 府使의 愛妓가 된다는 플롯이 나오는 점 등에서 <춘향전>과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촉석루가 남원 廣寒樓와 비슷한 점, 월매와 비슷하게 진주기의 노모의 형상이 그려진 점, 兵使와 부사와의 宴席上의 酬酌이 雲峰營將과 부사와의 위치와 비슷한 점 등에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신원설화로는 남원 민속설화, 박색터설화, 阿娘閣설화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4. 삽입시 ‘十杖歌’의 본질
판소리로서의 춘향가는 춘향 이야기가 창자에 의하여 창과 아니리의 교체로 연장되지만,전체적으로는 창 부분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이 이야기속에는 민요,단가,가사,한시,한문구 등이 섞여 있다. 그래서 춘향가의 사설은 설화에서 유래한 서사적 요소와 가요에서 유래한 서정적 요소와 서정적 서사요소라 할 중간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로 인하여 소설 춘향전에도 서정적 요소의 핵심이 되는 사랑가,십장가,어사시가 서술구조상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 이 중 십장가는 춘향전의 서술상 중간에 위치하면서 춘향의 수난과 그 수난을 통해 열녀로의 의미를 지양시키는 전환적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춘향이 사또의 명에 따라 동헌에 대령하니 사또는 춘향에게 대상에 오르라 한다.(완판 33장 열녀춘향수절가) 사또는 낭청 앞에서 춘향을 추켜 세우고는 수청을 들라고 한다. 춘향은 “충불사이군이요,열불경이부절”을 내세워 죽더라도 정절을 지키겠다고 한다. 다시 사또가 수청을 들라고 하자 춘향은 사또에게 세상이 변하면 두 무릎을 꿇어 두 임금을 섬기겠느냐고 따진다. 이에 사또는 분노하며 형장을 치게 한다. 이 때 매를 맞으면서 춘향은 십장가를 부른다.
춘향이 사또로부터 받는 육체적 고난의 절정을 이루는 십장가는 杖과 歌라는 극단적 대립 상황을 결합시킨 이름이다. 장형이란 형벌이 주는 육체적 고통을 견디어 내는 인고의 정신과 장형을 당하는 자가 자기의 지조를 노래로 표현한다는 열녀의 의지는 첨예화된 대립의 평면적 결합이란 의미 보다는 상위 차원으로의 지향적 해소란 의미가 더웅 강조되고 있다. 그 결과 십장가의 대립과 극복의 방법은 관념 논리의 당위적 결합과 현실논리의 과장된 형상이란 양면성을 지닌다. 또 십장가는 가의 형식을 빌린 포악의 말,읍소의 말이란 이면적 의미를 지닌 십원가요,십읍가요,십곡가로서의 적층적 의미를 지니다. 그러므로 십장가는 이러한 비원가로서의 사실추구의 의미망과 수절가로서의 관념추구의 의미망이 갈등과 화합을 보이며, 그 의미의 폭을 확장시킴으로써 열녀춘향수절가의 주제가로 부상되고 있다.
또 십장가는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작품의 주역인 춘향의 절박한 상황과 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춘향의 상황을 이념화하고 희화하는 광대들의 예술적 의식의 결정체다. 이는 십장가의 구성이 杖刑의 수에 맞추어 부르는 일, 이 삼자로 이어지는 정형서두형식의 기교가라는 점에서 더욱 강조된다. 춘향의 급박한 고통의 상황과 광대나 작강의 희화의 상황이 지닌 여유가 대립을 이루는 판소리 문예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러한 대립적 통합의 정신은 춘향과 사또의 관계에서도,춘향의 행위는 가학자에 대한 항거와 함꼐 피학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학과 방어의 두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음에서도 찾아진다.
5. 춘향가전승에 미친 신재효의 힘
19세기로 접어들면서 판소리극은 그 향유층의 기반을 민중속에 두면서도 상층 양반들까지 포용하는 탈계층적 민족예술로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서사극적인 형식에 담은 사설의 주제성은 점차 근대지향적 요소를 강화하는 쪽으로 형식에 담은 사설의 주제성은 점차 근대 지향적 요소를 강화하는 쪽으로 변모되어 갔고, 음악적으로는 소리제의 분화와 동편제, 서편제 등의 유파별 개성을 더해가며 그 감동력을 높였다. 이로 인하여 판소리극의 인기는 더욱 확산되었으며, 그 여파로 소설 춘향전도 목판본으로의 출간이 대폭 증가했고, 동시에 필사본 또한 급격히 많아졌다.
이런 추세속에서 신재효라는 고창지역의 지도자가 나타나 독특한 판소리극 혹산운동을 펼쳐 우리 문화의 주체성 제고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판소리극과 단가를 통한 민족 문화 자각화와 의식개혁 운동은 연구시각에 따라 기존의 민중기반의 판소리극을 양반의 취향으로 개작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그는 분명 판소리극을 비롯한 우리 대중 문화예술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예로 그는 주체적 예술관을 가지고 자신의 돈을 들여 최초의 판소리극 음악당을 설치하여 남녀 명창을 배출하였으며, 근면 절약 등의 내용을 담은 생활개혁을 일깨우는 단가를 창작 보급하였고, 새로운 운동으로 일어나던 동학에 동조하는 단가까지 지어 종교운동을 도왔다. 이외에도 판소리극을 민중지향의 내용으로 재해석하고, 반외세, 반봉건 의식을 작품속에 투영하여 창우와 청중들에게 그 의식을 보급하고 감화시킨 것과 같은 판소리극을 통한 민족문화운동 및 의식화운동에 기여하였다.
또 신재효는 감정의 촉발을 통한 민중의 분노를 효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는 판소리극을 개작하면서 춘향가에는 특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동창 춘향가』, ⌈남창 춘향가』와 단가 ⌈오섬가⌋ 속의 춘향삽화 등을 통해 다양한 춘향전을 창작해내었다. ⌈동창 춘향가⌋는 문체나 구성 등을 통한 전반적 분위기에서는 전통 춘향가를 이어받게 하면서도 이별 대목이후를 제거헸기 때문에 불행한 결말을 지닌 개성있는 춘향전으로 나타났다. ⌈남창 춘향가⌋는 춘향을 전형적 민중상으로, 이도령을 고통받는 민중의 구원자로 형상화하여 민중을 구원하는 기능을 강화시키려 하였다.
또 신재효는 자신이 개발한 판소리극 이론을 통해 ⌈광대가⌋에서 사체, 곧 판소리극의 기본요소로서 너름새, 득음, 인물, 사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송흥록, 모흥갑, 권삼득, 신만엽, 황해천, 고수관, 김계철, 송광록, 주덕기의 소리를 익숙히 알고, 그 소리를 심미적 입장에서 평가하였다.
아울러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이론적 토대 위에서 춘향가를 ⌈동창 춘향가⌋와 ⌈남창 춘향가⌋의 두 종류로 나누어 개작하고 창작하였다. 그가 보여준 춘향전의 판의 분화는 그가 춘향가에서 지향하려 했던 개성의 다양성과 탄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재효의 사설의 특징은 일상구어체로 구현될 만한 부분도 꽉 짜여진 율격으로 짜맞추어 놓은 데 있다. 이는 ⌈동창 춘향가⌋에서도 나타나지만 ⌈남창 춘향가⌋에서 더욱 강화된다. 신재효사설은 단형 다른 사설에 비하여 대화문의 빈도수는 훨씬 높은 편이고, 그에 따른 非律文化 경향도 다소 높은 편이다. 방자와 이도령, 춘향과 방자, 이도령과 춘향, 이사또와 통인, 방자와 월매, 월매와 이도령 등등 사이의 짧은 대화부분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신재효 사설은 다른 판소리극에 비해 관념적인 표현이 강화되고 경험적인 표현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동창 춘향가⌋에서는 ‘사또 자제 도령님이 연광이 십륙센데 얼굴은 반악이요 풍채는 두목지요 이태백의 문장이요 왕우군의 명필이며 외도 알고 손수 있어 풍류 기남자라’라 기술하고 ‘춘향의 설부화용 남방의 유명하여 설도의 문장이요 탁문군의 음률이며 침선 재질 열행 정절 조선의 제일이요 당세에 무쌍이라’라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춘향전의 중심인물은 춘향이와 이몽룡이니, 관념적 표현을 하자면 이들에게 짐중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기에서 보이는 예는 그런 기대를 완전히 어긋나게 한다. 남창처럼 꿈에 무엇을 보아서 어떤 태교를 거쳐서 어떻게 낳았다는 자왕한 묘사는 보이지 않고, 직접 인물묘사를 하는 대목조차도 무척이나 미약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동창이 다른 사설이나 텍스트에 비해 볼 때 이처럼 인물의 품성이나 상투적인 표현을 늘어노흔ᄂ 데는 인색하지만 반대로 구체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에는 훨씬 앞서가는 경향이 있다.
신재효 춘향가가 지닌 특성의 하나로 등장인물의 세속화 현상이 현저히 나타나는 것을 들 수 있다. ‘춘향가’의 주인공은 확실히 춘향이라 하겠지만 이것이 어차피 연애담인 이상 사실상의주인공은 남녀 한 쌍이 된다. 결국 이 이야기 역시 이도령과 춘향이가 그 중심에 놓이는 인물이다. 이도령부터 살펴보자면, 우선 양쪽에 다 16세의 사또 자제로 나온다는 면에서 같다. 그러나 ⌈동창 춘향가⌋에서는 그저 사춘기 정도의 어린아이로 사랑을 보채는 데에나 힘쓰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어서 ⌈남창 춘향가⌋의 장부형 인물과는 구별된다. 또 남녀간의 사랑을 갈구하는 쪽으로 서술된 점은 전체 분량의 배분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 ⌈동창 춘향가⌋의 경우는 오리정 이별대목까지 약 14200자 정도로 늘어지지만 남창의 경우는 똑같은 데까지가 8200자에 그치고 만다. 이는 상대적으로 살펴볼 때 ⌈동창 춘향가⌋가 전반부의 사랑대목에 중점을 두었다면 ⌈남창 춘향가⌋에서는 후반부에 더 큰 비중을 둔 결과라고 파악된다.
또 다른 하나의 특성으로는 인물설정과 미완결형 구성이라는 점이다. ⌈동창 춘향가⌋와 ⌈남창 춘향가⌋의 작품 전체 구성에서 두드러진 차이는 전자가 이별 대목에서 끝나는 데 비해서 후자는 이별 후의 이야기까지 다 담아내는 데에 있다. 물론 신재효 ⌈동창 춘향가⌋ 이외에 이처럼 이별 대목에서 끝난 춘향전은 신재효 이전의 판소리극 사설에서는 없었다.
다음으로 신재효의 판소리극 사설은 다채로운 표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첫째, 의성어와 의태어의 사용이 확대된다. ‘좌르르 피어’, ‘지르르르르르르르 끌며’, ‘어칠 비칠 툭툭거려’, ⌋와당땅 때려서‘ 등의 표현에서 드러나고 있다. 둘째, 지방언어의 사용이 다채롭고 빈번하다. 지역주민의 정감이 무르녹는 향토성이 깊은 지방언어를 인물들이 사용함으로써 생동감과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를테면 ’상초머리‘는 ’헝클어진 머리‘를 뜻하고, ’시알려‘는 ’헤아려‘의 방언이고 ’동동이‘는 열명씩 열명씩의 뜻이다. 셋째, 수식적 표현의 개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종지리새 열씨 까듯 쇠양쥐 씨나리 까듯 똑똑 까 바쳤구나 ‘에서 알 수 있듯이 극적인 상황 묘사를 위해 다채로운 수사법들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행위와 동작 표현어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는 움직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셔부렁 섭적 걸어‘라든지, ’두루두루 거닐며‘, ’바드드득 들어서‘ 등에서 보듯이 의성어, 의태어를 다양한 표현으로 사용하여 행동을 실감있게 드러냄으로써 극적인 분위기를 높여준다. 다섯째, 감각적 표현을 드러내려는 표현이 많다. ’춘향이 부끄러워 옷고름을 꽉 잡으니 도령님이 개유하여 얘 이게 웬 일이냐‘에서 낭만적 방법으로 생동감을 자아내게 해준다.
이처럼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신재효의 ⌈남창 춘향가⌋와 ⌈동창 춘향가⌋의 사설은 중인층에 속하는 개작자의 개인의식이 크게 개입된 사설이다. 이 사설은 이러한 생성 배경의 특성에 의하여 상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어인 한문투의 표현이 다른 춘향가에 비하여 크게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설에는 이와 상반되는 민중의 언어인 구어체의 생활언어가 다채롭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6. <춘향전>의 주제
<춘향전>의 주제에 대한 선행연구의 결론은 <춘향전>의 주제를 단일한 주제로 보려는 견해와 이원적 주제로 보려는 견해로 구분된다. 전자는 애정이나 烈의 윤리를 내세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히 애정의 문제는 순수한 사랑,신분상승의 의도를 지닌 세속적 애정,세속적 애정에서 순수한 사랑으로의 변모 등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후자는 다원적 주제를 추구하는 경우로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로의 이원화와 다층적 의미의 주제로 이해함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조동일에 의한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로의 인식방법은 표면적 주제로서의 열녀와 이면적 주제로서의 인간적 해방이 공존함으로 보고,신분적 제약과 인간적 해방의 갈등이 신분적 제약을 벗어나 인간적 해방을 이룰 것을 고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설성경은 이원적 주제설을 제기하였는데 춘향전의 주제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춘향전이 제시하는 보편적 주제와 구체적인 異類本이나 그 하위의 이본인 異種本의 개별성에 의한 개별적 주제란 다원적 인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춘향전>의 보편적 주제는 거시적 입장에서 보면 판소리계 소설의 보편적 주제에 대한 춘향전이란 하위 작품으로서의 개별적 주제란 위치에 놓이게 된다. 판소리계 소설의 보편적 주제는 인간이 지닌 상승의 요구요 성장의식이다. 이 상승욕구는 천상적 힘에 의해 진행되는 윤리적 의미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이 된다. 이 보편적 주제의 바탕은 사랑과 열이란 윤리의식과 한의 승화로 이어지는 고난의 보상에 의한 상승의 욕구와 불의에 거역하고 탈계층을 지향하는 사회성의 추구란 복합적 의미로 결합된 독특한 구조물이다. <춘향전>의 개별적 주제는 개별 이종본이 추구하는 보편적 주제에 덮씌워지는 생성적인 의미다. 이는 시대적 상황과 작가의 개인의식과 독자들의 문학적 요구에 의한 복합적 산물이다. 이러한 요구에 의한 새로운 의미의 형상은 전체의 작품구조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개별적 기능요소에 의하여 나타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그 실례로 춘향의 신분을 두고 논의해 볼 수 있다. 춘향의 신분은 이종본에 따라 맹인의 벗인 하천한 인물의 딸로 나타나기도 하고,지방관리인 성천총의 서녀로 나타나기도 하고,양반인 성참판의 서녀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신분의 변이는 춘향이 지닌 사회적 계층의 변화에 호응되는 행위의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작품의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춘향전의 갈등이 기생인 춘향과 기생 아닌 춘향의 갈등이 중심이 되고,여기에서 춘향전의 주제가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로 형상된다면 이러한 신분의 구체적 실상은 더욱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이 보다는 더 피상적 변화이지만,춘향전의 제목이 춘향전,별춘향전,열녀춘향수절가,옥중화,대춘향전,방자전,탈선춘향전,박색춘향전 등으로 변이되고,춘향의 성도 성을 알 수 없는 춘향으로부터 김춘향,성춘향,서춘향 등으로 변이됨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해 주는 구체적 증거가 된다. 이처럼 춘향전의 개별적 주제는 보편적 주제와 상보적 관계에 있으면서,보편적 주제를 이루는 사랑,상승욕구,탈계층의식 등의 제 요소간의 관계구조를 변형시킴으로써 어떤 작품은 사랑이 중심구조를 이루고,또 어떤 작품은 상승욕구나 계층의식이 중심구조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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