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있나요?
내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방명록에 올렸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내 나름대로 여기에 참고자료를 올립니다.
질문:
“교직논술을 공부하다가 교육의 수월성이라는 말을 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수월성 교육이 영재교육과 비슷한 의미라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수행평가의 필요성 측면에서 교육의 수월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나와있더라구요. 이것이 교육의 질적 제고의 방법이라구요. 교육의 수월성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요, 교육의 ‘수월성’이라고 하면 먼저 ‘영재교육’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그런데 수행평가가 ‘단지’ ‘영재교육’을 위해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무슨 뜻인지 살펴보아야겠지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나도 이책 저책에서 ‘수월성’, ‘수행평가’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보기로 합니다.
1.
“[...] 각국은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이라는 상호 배치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어려움도 안고 있다. 교육의 수월성(exellence)은 탁월한 수준이나 우수한 상태, 곧 우수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질 높은 교육을 뜻한다. 이에 비해 교육의 평등성은 모두에게 혜택이 고루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교육이다. 한편, 글로벌 경제체제 아래 자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정책은 국가 간에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소지가 많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한편, 글로벌 경제체제 아래 자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정책은 국가 간에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소지가 많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이에 여러 국제기구들은 교육을 통해 신뢰와 협력 관계 등 사회통합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책을 구안하고 있다. 곧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각국의 시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용, 세계인의 자질 탐색과 그 육성 등을 추구하고 있다.”(김병욱(2007). 교육사회학. 학지사, 17쪽)
위의 문장에서 보면, ‘교육의 수월성’이라는 용어가 ‘우수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질 높은 교육’로, ‘평등성’과 ‘상호 배치’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
문민 정부가 1995년 5월 31일에 발표한 개혁안, 일명 ‘5·31 교육개혁안:
“5·31 교육정책의 기본 특징은
①학습자 중심의 교육, ②교육의 다양화, ③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학교교육의 운영, ④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교육, ⑤교육의 정보화, ⑥질 높은 교육을 들 수 있다.
5·31 교육정책의 기본 방향은 ①암기 위주의 획일적 교육에서 타고난 소질과 창의력 배양 및 인성 함양 위주의 ‘다양화 교육’으로, ②‘교육 공급자 편의 위주 교육’에서 ‘소비자 선택의 교육’으로, ③‘규제 위주 교육’에서 ‘자율성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교육’으로, ④교육제도와 운영에서 ‘수월성’과 ‘보편성’의 조화, ⑤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학습환경의 조성으로 나타나고 있다.”(강창동(2009). 교육사회학의 이해. 학지사, 259-260쪽)
여기에서 [‘수월성’과 ‘보편성’의 조화]라는 것을 보면 두 용어를 배치되는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수행평가 도입의 필요성
(1)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하여
(2)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3) 수업과 평가의 긴밀한 연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4) 보다 의미 있는 평가결과를 제공하기 위하여
(5) 새로운 지식관과 학습관에 부응하기 위하여”(길형석, 손충기(2007). 교육과정과 교육평가. 동문사, 326-327쪽)
위의 다섯 가지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 (2)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비정상성은 ‘교육목표-교육방법-교육평가’간의 연계가 부족한 데서 기인한 바가 크다. 그 동안 교육은 고등정신 능력, 바람직한 태도 및 정서 함양 등 전인적 인간 양성을 교육목표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교육방법과 평가는 이러한 능력이나 품성 함양을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수행평가는 교육부가 ‘교육비전 2002: 새학교 문화 창조’실천 운동에서 지향하고 있는 학생평가방식으로서, 전인적 인간 양성이라는 교육목표의 달성여부를 평가하는 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길형석, 송충기(2007). 교육과정과 교육평가. 동문사, 326쪽)
교육평가의 기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교육의 질, 또는 수업의 질 개선에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목표-교육방법-교육평가’는 서로 유기적인 것으로서, 이 셋이 일관되지 않다면 교육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교육목표가 지식의 전달이라면 그 목표에 맞는 방식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며, 인지적 영역의 평가라면 또한 그에 맞는 방식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설정된 교육목표가 “고등정신 능력, 바람직한 태도 및 정서 함양 등 전인적 인간 양성”인데, 교육평가 방식이 여전히 ‘고등정신 능력’을 평가하지 못하고 ‘전인적 인간 양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영역’의 교육을 평가하는 데 치중된다면, 교육 또는 수업은 ‘평가’를 위하여 이루어지게 되고, 따라서 평가가 교육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평가를 위하여 이루어지는 목적과 수단의 ‘전도(顚倒)’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교육목표에 적합하지 않은 평가방식으로는 ‘교육의 효율성’을 이룰 수가 없게 되겠지요.
그런데 교육부가 수행평가를 도입하면서,
수행평가의 필요성 측면에서 ‘교육의 수월성 도모’, ‘교육의 질적 제고의 방법’이라고 했다면,
첫째, ‘수업과 평가’를 연계하여 교육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의미에서, 즉 ‘교육의 질적 제고’라는 말과 교육의‘수월성’이라는 말을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째,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하여’ 인재를 기른다는 의미를 강조한다면, ‘평등성’과 배치되는 의미에서의 ‘수월성’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고등정신능력’을 반드시 ‘인재’ 또는 ‘영재’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력 등의 능력이라고 본다면, 반드시 소수의 학습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습자가 대상이 되는 것이겠지요. 이 경우에는 ‘교육의 수월성’이‘평등성’과 반드시 배치되지는 않는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내 나름대로 설명해 보았지만, ‘수월성’이라는 용어를 교육부가 어느 의미로 사용했다고 명시하지 않는 이상, 어떤 설명도 부두 자르듯이 분명한 설명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설명한 세 가지 의미 중에서 한 가지를 뽑을 수도 없을 것이구요.
4.
이 기회에 ‘평등성’과 ‘수월성’과 관련하여 내 손님들이 참고할 만한 자료를 하나 소개합니다. 위의 내용과 관련이 있기도 하구요.
“평등성과 수월성의 동시 추구 방안
평등성과 수월성에 관한 주장은 각각 그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서로 대립하고 있다. 교육의 기회 균등을 강조하면서 교육의 질과 수월성이 낮아진다고 주장하거나, 교육의 수월성을 강조하면서 교육적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경우, 더 큰 문제는 각자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합리적 근거를 들여다보지 않고 감정적으로 비판만 한다는 데 있다. 각자의 주장을 존중하면서 ‘지금-여기에서는 이 방식이 더 좋다.’라는 주장을 펴야 하는데, 여전히 ‘이 방식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에서의 평등성과 수월성의 문제는 동시에 추구할 성질의 것이지 우선순위를 정해 추구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교육적 평등을 논의할 때는 교육적 평등을 교육적 불평등과 대립시켜 논의해야지 수월성과 대립시켜 논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다양성과 그 잠재력을 최대화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며, 교육을 통해 평등을 증진시키는 일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를 가장 잘 성취할 것인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육에서의 평등성과 수월성은 좋은 사회를 이룩하는 데 선결되어야 할 중요한 기준이지, 양자 선택의 대립 이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등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고려한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드너(Gardner)는, 다수결로 평범한 다수가 소우의 엘리트를 규제할 수도 있다는 주장으로 미루어 수월성에 더 기울어져 있기는 하나, 1961년에 이미 교육의 평등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중요하게 다룬 바 있다. 당시 평등 실현을 위해 코넌트(Conant)가 내놓은 종합고등학교와 과목별 우열반 편성 방안을 가드너가 옹호한 점을 보면 그렇다. 또 다른 예로는 ‘모두를 위한 교육’과 ‘수월성을 위한 교육’이 합해진 ‘만인의 수월성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s excellence)’이라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교육정책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평등성과 수월성에 관한 패커(Packer, 2001)의 해석적 연구와 그 주장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수월성을 강조하는 경제 위주의 교육개혁 때문에 아이들이 시달리고 전인교육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그는 수월성을 부르짖기보다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발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인지능력 제고를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전인적 성장을 위한 학교교육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맥락과 상호작용 속에서 인간 발달과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만약 평등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고려하고자 한다면, 먼저 다양한 가치 생성의 교육을 지향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교육을 실시하며,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과 합리와 감정의 교류를 위한 교육 등을 병행해야만 한다.”(김병욱(2012). 교육사회학. 학지사, 138-140쪽)
김민선!
임용고사 날짜가 다가와서 내가 간단명료하게 답해 주기를 원했을 수도 있지만, 뭔가 분명하지도 않고 또 길어졌네요. 내가 수업에서도 간단하게 설명 못하고 늘 길게 설명하잖아요.
그래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내 블로그에 질문 올려주어서 고맙고, 나도 덕분에 공부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건강에 유의하고, 시간 잘 활용하고, 소기의 성과 올리기 바랍니다.
내 학생들에게도 안부 전해 주세요!
김명신교수 글 옮김
(근래 접한 좋은 글 중에서!)
(새삶나눔터님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