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구조견의 상징 세인트 버나드
1960년대까지 구조활동 펼친 명견 글·사진 허긍열
 |
◇ 설원으로 내려가는 스키어들. |
 |
◇ 장 피에르 뷔넬씨 부부가 운영하는 세인트 버나드 사육장. 일년에 약 25,000명이 다녀가며 총 수입액은 약 1억원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
 |
◇ 만년설의 급사면에 형성된 몽블랑의 빙벽. 이곳은 알파인 믹스 등반을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알프스하면 아름다운 초원과 침봉들을 비롯한 치즈, 호른, 샤렛, 야생화 등 각가지 영상들이 떠오를 것이다.
특히 내 어릴 적 기억으론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 파트라슈를 잊을 수 없다. 우유통을 실은 작은 수레를 끄는 송아지 만한 덩치의 파트라슈는 귀여운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처럼 기억 저편에 늘 아름답게 아로새겨져 있다. 살다 보면 가끔은 동화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에서 확인하고픈 욕망이 일 때가 있다. 파트라슈는 이미 이 세상에 없겠지만 그의 친구들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어느 날, 해가 서산으로 막 기울 무렵에 <한국인의 집> 조문행 사장과 발머 계곡을 빠져나갔다.
계곡 아래쪽, 즉 제네바 쪽이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샤모니 아래 마을 우쉬(Houshes)를 지나 협곡 중턱을 가로지르는 급경사의 차도를 내려서자마자 세르보즈(Servoz)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여기서 우리의 목적지 세인트 버나드(St. Bernard) 사육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가끔 제네바나 큰 슈퍼마켓에 갈 때 차도에선 쉽게 눈에 띄었지만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사육장의 진입로는 좀체 보이지 않았다. 두 번이나 큰길로 나오고서야 작은 나무간판을 발견하고서 세인트 버나드 사육장을 찾았다. 이미 어둑할 무렵이었다.
매표소 입구를 지나 큰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울려퍼지는 버나드의 육중한 소리는 위협을 느낄 정도로 우람했다. 관람객은 우리뿐이었다. 곧이어 이곳 관리인 부부 장 피에르 뷔넬씨 부부(남편 64세·부인 58세)가 나왔다. 한 놈의 잘 생긴 버나드와 함께. 그동안 세인트 버나드에 관해 궁금했던 점들을 평생 세인트 버나드와 함께 한 이 두 노부부에게 들어보았다.
관찰력·기억력·판단력이 뛰어난 구조견
세인트 버나드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다.
2,600년 전 티베트에서 로마로 전파된 이래 유럽 전역에 퍼졌는데, 주로 알프스 지역에서 널리 기르게 되었다. 13~14세기의 가구 조각품에 남아 있는 내용들을 보면 귀족들이 자기 집이나 땅을 지키기 위해 이 개를 널리 사육하였다. 순종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 사육장에서 주로 기르는 털이 짧은 놈이 순종이다. 그만큼 눈밭에서의 활동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855년에 떼르느브 종자(털이 긴 종자)와 섞이면서 긴 털 세인트 버나드가 널리 유행하여 이것이 오히려 오늘날의 세인트 버나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인트 버나드는 그냥 구조견의 상징으로만 남아 있을 뿐 현재 구조현장에선 잘 쓰이고 있진 않다.
요즘은 헬리콥터 구조 체계가 잘 되어 있는데다가 오히려 셰퍼드나 라브라도르 같은 개들이 구조활동에 많이 참가하고 있다. 세인트 버나드가 마지막으로 구조활동에 참가한 것은 1960년대까지다. 요즘은 주로 시각 장애인을 위한 맹도견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세인트 버나드는 관찰력과 기억력이 뛰어나며 위험에 대한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다.
알프스 일대에서 매년 300~400 마리 정도 태어나는데, 순종 유지를 위해 출산을 규제한다. 생후 5개월이면 40kg이나 될 정도로 덩치가 커진다. 현재 이 사육장엔 32마리가 있다. 목에 건 나무통은 구조활동시 뜨거운 알코올(포도주)를 넣던 음료통이다. 이곳 사육장은 1977년에 만들어졌다. 스위스와 프랑스 알프스를 통틀어 가장 큰 사육장이다.
리용 지방에 있는 사육장엔 긴 털 세인트 버나드가 주종을 이루지만 이곳엔 짧은 털의 순종을 많이 기르고 있다. 양쪽 지방은 서로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엔 시각장애인 맹도견으로 널리 이용
이곳에선 일년에 두 마리 정도만 태어나는데 수시로 수의사가 와서 순종보존을 위해 점검을 한다.
14~15개월이 되면 성견이 된다.
순종보존을 위해 필요한 숫자(약 30마리) 외엔 판매도 하는데 분양 조건이 까다롭다. 버나드를 잘 기를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한테만 분양하는데, 한 마리에 약 130~150만원 정도다. 하지만 이 사육장의 주 수입원은 관람료이다.
일년에 약 25,000명이 다녀가며 총 수입액은 약 1억원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장 피에르 뷔넬씨 부부는 버나드를 사랑하지 않으면 버나드 사육은 아주 힘든 일이라 말한다. 아침마다 4~5마리씩 데리고 산책을 나가고 매끼 신경 써서 식사를 챙겨주어야 하는데, 하루 두번씩 챙겨주는 버나드의 주식은 쌀과 야채, 고기다. 이들 부부는 사육장 구석구석을 안내하면서 30여 마리 버나드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반점이 있는 버나드보다 흰색이 많은 놈이 순종에 가깝다고 한다. 그리고 짧은 털, 긴 다리 그리고 허리가 좁아야 순종에 가깝다. 순종일수록 눈밭에서 활동하기 편한 체형이다. 털 또한 한쪽 방향으로 나있어야 눈이나 비가 스며들지 않아 추위에 강하다고 한다. 세인트 버나드는 원래 공격적인 기질을 지닌 개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플란다스의 개 파트라슈를 보더라도 얼마나 순하게 생겼는가.
옛날 로마 사람들은 세인트 버나드를 식용으로 길렀지만 알프스에서는 인간 생활의 친밀한 동반자가 되면서 온순해졌다고 한다. 힘이 좋은 세인트 버나드는 옛날엔 작은 수레도 끌었지만 요새는 장애인의 동행용 외에도 애견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실제로 샤모니의 유명 관광지 메르데 빙하의 얼음 동굴엔 긴 털의 세인트 버나드가 관광객을 위한 촬영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보통 암놈은 2~3마리를 임신하는데, 6~7세가 되면 중절을 시킨다. 최고 많이 출산한 게 16마리였으며, 지난해 봄엔 11마리를 낳기도 했다. 몇 년 전엔 산에서 다친 사람의 재활을 내용으로 한 일본 CF에 출연하기도 했다. 근 두 시간이나 추운 사육장을 오가며 세인트 버나드에 대한 이야길 듣다보니 이내 어둠이 내려 있었다.
메모하는 손가락이 곱았고, 양 볼이 시렸지만 즐거웠다. 알프스의 눈밭을 헤쳐가며 구조활동을 하는 세인트 버나드를 알프스의 설원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사육장에서 보게 되었지만 우람한 덩치의 세인트 버나드, 아니 파트라슈는 아직도 우리들 곁에 가까이 있는 듯했다.
내가 즐겨 찾는 대상지
믹스와 거벽등반의 최적 훈련지, 몽블랑 뒤 따귈 삼각 북벽
3842미터의 에귀 뒤 미디 전망대에선 몽블랑 산군의 웬만한 곳은 다 조망할 수 있다.
이 확 트인 전망대의 동남쪽 발 아래에 드넓게 펼쳐진 설원이 발레 브랑쉬 설원이다. 이 설원 남쪽 건너편에 늘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삼각형 모양의 북벽이 바로 몽블랑 뒤 따귈 삼각 북벽이다. 필자는 간혹 알파인 지대가 그리울 때면 설원을 가로질러 북벽에 닿아 하단부 빙벽을 오르곤 한다.
이곳의 빙벽은 한국의 폭포 빙벽과는 달리 만년설의 급사면에 형성되어 난이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드넓은 하단부의 사면만을 오르내리더라도 충분한 등반이 된다. 물론 한두 시간 등반 후엔 발레 브랑쉬 설원을 스키로 내려와 메르데 빙하를 거쳐 몽땅베르 기차역을 거쳐 샤모니로 내려온다. 이 삼각 북벽엔 현재 약 10여 개의 등반루트가 나 있다. 등반 표고는 350미터, 평균 경사도가 55~75도 정도다.
우측의 체르(Chere) 꿀르와르 루트처럼 완전히 빙벽루트인 곳도 있는 반면 지난해 여름, 필자가 민경원씨와 함께 등반한 콩따민(Contamine) 루트 같은 즐거운 믹스 루트들이 대부분이다. 등반 소요 시간은 대략 3~5시간 정도. 난이도는 AD~D급 정도로서 믹스등반은 설악산 토왕폭 좌벽 정도되며, 빙벽은 토왕폭 하단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루트다. 하지만 등반 표고는 좀더 높다. 이처럼 멋진 빙벽과 믹스 등반 대상지인 몽블랑 뒤 따귈 삼각 북벽은 에귀 뒤 미디 전망대에서 약 30분이면 접근할 수 있다.
등반 중에 즐길 수 있는 주변의 전망 또한 뛰어나다. 그리고 하산 또한 수월해 큰 부담 없이 등반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작은 알파인 등반대상지는 여름 뿐만 아니라 겨울 시즌에도 많은 알피니스트들이 찾고 있다. 표고차 350미터의 삼각 북벽을 다 오르고서 북능을 따라 한 시간을 더 오르면 몽블랑 뒤 따귈 정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등반자들은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오른편의 긴 설사면을 횡단하여 노멀 루트를 따라 설원으로 하산한다. 하지만 눈사태의 위험이 있는 겨울 시즌엔 등반 후 자일하강을 주로 한다. 등반 후 샤모니로 돌아오는 방법은 스키를 타고 발레 브랑쉬 설원을 내려오거나, 다시 에귀디 미디 전망대로 걸어 올라가는 방법이다.
두 방법 모두 겨울 시즌엔 막차 시간(4시 30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에귀 디 미디 전망대로 올라갈 경우 내려올 때와는 달리 약 한 시간 더 시간적인 여유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겨울엔 코스믹 리지 시작 부분에 동계용 무인산장이 개방되어 있어 이를 이용할 수 있으며, 여름엔 설원에 텐트를 치고 며칠간 지내며 등반할 수도 있다. 이처럼 몽블랑 뒤 따귈 삼각 북벽은 우리 산악인들이 알프스의 알파인 믹스등반을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자 알파인 거벽 등반의 훌륭한 훈련 대상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