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노예들의 과거의 노래
태안장로교회 원로목사
사회복지사
글:-남제현목사
태안신문사 칼럼니스트
여호와께서 마음을 감동하게 하시여 여호와께서 고레스를 일으켜 예루살렘 성전은 중건케 허리라는 약속의 말씀에 고레스의 이 같은 마음의 변화는 바벨론 포로들의 회복 정책과 지역 종교의 융화 정책으로 나타난다. '감동시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이르'는 '일어난다', '들어 올리다', '분발시키다'라는 뜻의 '우르에서 온 말이다. 그러기에 이것은 단순히 '움직이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을 '돋우는 것을 가리킨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포로 생활 70년 후에 다시 본국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에 대해서 세 가지로 추측 설명하고 있다. (1) 역대기와 에스라가 본래 한권의 책이었는데 책이 분리될 때 우연히 이 구문이 양쪽에 다 남아 있게 되었거나, (2) 이 두 책이 본래 한 권의 책이었음을 보여 주기 위한 증거로서 의도적으로 양쪽에 사 기록되었거나, (3) 역대 기서의 부록으로 이 책의 독자들 즉, 포로 생활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욱 희망적인 결론을 보여 주기 위해 역대기 저자가 추가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타당성이 있는 것은 (3)의 견해인 듯하다.
왜냐하면, 역대기 저자의 의도는 유다의 포로를 땅의 안식과 관련하여 더욱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열왕기 저자도 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나와 존귀하게 된 사실을 기록하여 본서 저자의 의도와 비슷하게 희망적인 결론을 맺고 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찌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유대인들의 귀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는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뒤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했고 심지어 성전 재건비용도 지원했다. 마영삼 전 주이스라엘대사는 유나이티드문화재단이 주최한 음악회를 다녀왔다.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지휘자는 섬세한 해설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날은 단연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이었다. 오케스트라와 오페라합창단이 빚어낸 웅장한 화음은 노예들의 슬픔과 고향에 대해 그리움을 처연하면서도 장엄하게 그려냈다.
기원전 586년, 유다왕국은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고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다. 수많은 유대인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며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워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바로 그들의 절망과 귀향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노래다. 그러나 역사는 예상치 못한 반전은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는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뒤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했고 심지어 성전 재건비용도 지원했다. 이처럼 유대 민족과 페르시아 민족은 2600년 전부터 서로를 돕고 존중하는 특별한 인연을 가졌었다.
그 우호 관계는 현대에도 상당 기간 지속 되였다. 특히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안보·정보·경제·농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여 오다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이들의 관계는 파탄 나 버렸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앞잡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양국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어 양국은 서로를 도에서 지워야 할 존재로 규정하며 적대의 수위를 높여갔다.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을 아우르는 저항의 축을 구축했고, 이스라엘은 이를 국가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며 군사적 대응으로 맞섰다.
도대체 무엇이 오랜 우정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바꾸어 놓았을까? 과거 두 민족은 종교,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인간성을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이 만든 이념과 정치색이 인간성보다 짙게 깔렸다. 상대를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국제정치는 다시 ‘정글의 법칙’이 지배했다. 인간성과 관용을 회복할 길은 없을까?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미래를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스라엘과 아랍권 청소년들이 함께 연주하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음악을 통한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설립한 ‘페레스 평화센터 역시 교육과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양측의 신뢰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유나이티드문화재단이 창단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중국과 베트남 공연, 중국 조선족 청소년 음악회, 국내 외국인을 위한 공연 등을 통해 관용과 문화교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이스라엘 수교 64주년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면서 양국 국민의 접점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국제정치는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역사를 바꾸는 힘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됐다. 전쟁은 국경을 바꿀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까지는 지배하지 못한다. 2600년 전 바빌론의 노예들이 불렀던 자유의 노래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인간성을 잃은 평화는 과연 진정한 평화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