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1:1-18
<요약>
사도들과 성도들이
이방인도 말씀을 받았음을 듣고,
베드로를 비난했다.
베드로는 환상을 전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
사람들이 찾아왔고,
성령은 주저 말고 가라 하셨다.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다.
베드로는 말했다.
“내가 어찌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방인에게도 회개를 주셨다.”
<묵상>
이방인에게 세례가 베풀어졌을 때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오히려 비난했다.
아무리 구약이라 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는데
그들이 이방인을 부정하는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본문만 보면
할례, 음식법, 제사 같은
외적 규범 때문인 듯하지만
단순한 반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인간적인 요소들이 스며 있었다.
이방인에게 당한 역사적 상처,
과도한 민족적 자부심,
종교 지도자들의 왜곡된 가르침,
집단의식과 심리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어리석음.
이것들이 뒤섞여
하나님의 뜻인 듯 포장되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내거는 과감성으로
위험한 행동으로 변질되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형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이지만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교회 출석, 직분, 봉사, 헌금, 구제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설 수 없다.
집단의식의 오염을 경계하고
때로는 소수의견을 존중하며
타자를 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깊은 사귐이다.
외적 압력과 유혹은 강력하다.
하나님의 깨우침 없이는
누구도 끝까지 그분의 뜻을 지킬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우리를 붙든다.
그럴 때에야
집단의식에 휩쓸리지 않고
복음적 사랑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기준으로
세상의 현상과 이슈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다.
<기도>
“하나님,
이틀 동안의 강의를 은혜 가운데
잘 마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정성과 성실함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습니다.
하나님과 깊이 사귀며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믿음이 강한 사도들조차
편견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보게 됩니다.
저로 하여금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결정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카페 게시글
매일 묵상(Q.T.)
25.10.1. 깊은 사귐만이 편견을 이긴다.
Hyun
추천 0
조회 25
25.10.01 13:02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