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에 주차된 차가 ‘막는’ 존재
만개한 장미의 향이 짙다. 하늘도 예쁘고 살랑대는 바람도 적당하다. 기분 좋은 주일, 성당에 다녀오는 마음이 가볍다. 다음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 인도 위에 주차된 커다란 차가 앞을 막았다. 큰 교회 앞. 예배하러 온 신자의 차량이리라. 비장애인 행인들은 차들 사이 좁은 길로 지나갈 수 있지만,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는 지나갈 수가 없다. 사람을 부르러 교회 안으로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마냥 기다리는 방법뿐.
빛은 따가워지고 10분, 20분 시간은 흐른다. 약속 시간에 늦겠다는 조급함도 생긴다. 슬슬 화도 나기 시작한다. 제발 인내의 한계점에 닿기 전에 교회에서 누구라도 나오기를. 성당에서 착하게 살겠다고 금방 다짐하고 왔는데. 더 이상 성질부리지 않고 오늘만큼은 우아한 날이 되고 싶었는데.
물론 인도가 아닌 차도로 내려가서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교회 관련자들에게 이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도대체 말로 설명해서는 알아듣지를 못하기 때문에. 인도 위를 지나가는 행인 중에 나와 같은 장애인도 있다는 것,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을 막으면 시각장애인도 지나갈 수 없다는 것, 또한 비장애인들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넓이와 나 같은 장애인이 지나갈 수 있는 넓이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지 않고서는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야 남자들이 교회에서 나왔다. 크게 한숨 쉬면서 치밀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얼굴은 웃으며, 모두 들으란 듯이 목소리는 크게 당장 차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거듭 사과하면서 차를 빼주었다. 나는 그 길을 지나오면서 ‘나에게는 다른 길이 없다’고 힘주어 생각했다. 나는 아마 주일마다 이 교회 앞을 지나다닐 것이다. 이 교회 신자들이 (장애인이 다니기 때문에) 인도 위에 차를 주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할 때까지. 이번 경험으로 이 교회 신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똑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나의 우아한 주일은 물론이고 평화로운 하루도 깨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주일을 소망하는 일은 어렵다.
청각장애인 인권침해 다룬 영화 〈도가니〉, 장애인들은 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과 법안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이다. 제1조에는 법의 목적이 적혀있다. “이 법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이들이 사회활동 참여와 복지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조항에 따라 국가와 사회가 법이 잘 이행되도록 노력하리라고, 결국 장애인은 어느 곳에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21년을 살아가는 장애인이 처한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기본적인 자유를 제한당한 채 살고 있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제한된 생활이 1년 넘게 지속되어, 못 견디는 전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하다고 야단이다. 평생 자유가 제한된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의 입장은 어떨까.
장애인은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영화 한 편 보겠다고 나서려 해도 온갖 제한점들이 따라온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문자가 나오는 영화를 고르다 보면, 한국 영화는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다. 한글 자막이 나오는 외화 중에서 고르고 골라야 한다.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보겠다고 하면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보겠다고 하는 것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장면을 설명해주는 화면해설 영화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야 하는데도, 아직 우리 현실은 영화를 보겠다는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이상하게 보는 현실이다. 지체장애인은 영화 한 편 보기가 쉬운가. 장애인 좌석을 마련해둔 영화관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그조차도 맨 앞자리 혹은 맨 뒷자리이다. 장애인이 관람하기 좋은 자리가 아니라, ‘다른 관람객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위치이기 때문에 관람이 편하지 않다. 또 맨 앞자리에 장애인 좌석이 있으면 목이 아파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50대 청각장애인 정 씨는 평생 영화관에 한 번 가본 적 없고 영화 한 편 본 적 없다고 한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2000년부터 5년 동안 청각장애인 교육시설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과 인권침해 사건을 다뤘다. 영화는 청각장애인 인권침해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으며, 인화학교 폐쇄와 가해자 처벌,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잇따랐다. 이처럼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청각장애인들은 이 영화를 볼 수 없었다. 한국 영화였지만 문자 지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도 영화를 보고 싶다며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 때 기습 시위도 벌였다. 장애인에게는 이렇게 생활에서부터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으니 문화 향유도 그냥 말뿐이다. ‘장애인 영화 관람권’을 위해 공익변호사들과 함께 법적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나 영화업계 관계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장애인을 영화 소비자로 보지 않고 ‘왜 장애인 영화 관람권을 보장해야 하느냐?’ 하는 태도뿐이다.
사실 접근성 문제는 영화 관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1층이 있는 삶’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등편의법 개정 운동도 이 활동의 연장이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면 메뉴를 먼저 결정할 수 없다. 하늘의 별만큼 많은 식당과 온갖 맛집은 그림의 떡이다. 계단과 높은 문턱이 넘을 수 없는 성벽처럼 버티고 있으면 주린 배를 움켜쥐고 돌아서야 한다. 전동휠체어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내게 ‘뭘 먹고 싶어?’라고 누가 물어오면 나는 ‘글쎄…’라고 대답한다. 나의 ‘글쎄’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곧 마주할 현실을 앞두고서, 먹고 싶은 음식을 찾기보다 식사할 수 있는 곳이라면 괜찮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 ‘글쎄’라는 사실을 상대는 모른다. 나는 잘 모르는 동네에서 수많은 카페 간판을 보면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말 한마디를 못 한다. 어렵지 않은 한마디, ‘커피 한잔하고 갈까?’라는 말. 접근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내 입으로 할 수 있는 말과 삶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1984년 서울에 살던 장애인 김순석
나보다 먼저, 접근성 때문에 장애인은 언어만이 아니라 삶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사람이 있다. 1984년 서울에서 살던 장애인 김순석 씨다. 함께 행복한 꿈을 꾸는 아내와 여섯 살 아들이 있는 가장이었다. 그는 가내공업으로 반지와 목걸이를 만들어 남대문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하며 살았다. 휠체어를 사용하던 그는 물건을 가지고 거리로 나서면 그때부터 사방의 높은 벽과 마주해야 했다. 신호를 건너려고 하면 횡단보도가 온통 턱이었고, 건너편 인도로 가려고 하면 육교가 서있거나 계단뿐인 지하도로였다. 계단 앞에서, 턱 앞에서 행인들 허리를 붙들고 ‘도와달라’고 해야만 했다. 어떤 이는 친절하게 도와주었지만, 따가운 시선을 던지거나 동냥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피해갔다. 때로는 ‘걸리적거리게 왜 길에 나와있느냐’고 면박을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차도를 무단 횡단해야 했고 경찰에게 걸려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하루 벌이까지 벌금으로 내고 나와야 했다. 한여름 땡볕에 목이 말랐지만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턱과 계단 때문에 물을 사 먹을 수 없었다. 역시 배가 고파도 원하는 식당에 들어갈 수 없었다. 김순석 씨는 그렇게 매 순간 좌절을 느껴야만 했다.
결국, 1984년 그날도 무단 횡단으로 경찰서에서 밤을 지내고 돌아온 김순석 씨는 ‘서울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내용을 담은 기나긴 유서를 서울시장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이 제한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어쩔 수 없다고 썼다. 이 소식이 〈조선일보〉 기사로 실리면서 장애인들은 ‘김순석 씨의 죽음이 모든 장애인의 죽음’이라며 추모 장례식을 열었다. 장애인 운동사에는 이분의 죽음이 기록되고, 장애인들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구성되는 도시를 향해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해왔다.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의 배경
유엔(UN) 장애인권리협약도 장애인의 접근할 권리를 중요하게 다룬다. 장애인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본적 권리인 평등권을 보장해야 한다. 장애인이 평등하게 사회에 참여하려면 어떤 전제가 필요할까? 접근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처럼, 각 장애 유형과 장애 특성과 장애 정도에 맞는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었을 때 장애인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고 평등한 존재가 된다.
이를 위해 장애인등편의법이 1997년에 제정되었다. 문제는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13여 년이 지나면서 장애인의 권리의식은 높아졌는데, 장애인등편의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더 적극적으로 바꿔서 그 변화를 장애인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의 취지이다.
외국의 법들을 검토해보면, 한국의 장애인등편의법은 한계가 뚜렷하다. 장애인 접근권을 위한 법이 면적 제한을 두고 있지 않은 해외 법과 달리, 한국은 소상공인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바닥면적이 300㎡(90평) 미만인 슈퍼마켓·소매점, 500㎡(150평) 미만인 미용원·목욕장 등은 장애인 편의시설 보장 의무에서 면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이면, 의무에서 제외되는 건물이 거의 대부분이라 장애인은 소비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을 통해 면적 기준을 폐지하고자 한다. 소상공인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주려는 것은 아니고 대안적인 방안을 만들 계획이다. 장애인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장애인등편의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정류장·버스 내 전광판을 만든 장애인 권리 운동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몇 번 버스 기다리세요?” “기다리시는 버스는 언제 오나요?” 사람들이 머리 위 전광판을 쳐다본다. 340번을 기다리는데 5분 후에 도착할 것이고, 놓치면 다음은 저상버스 370번을 타면 되는데 몇 분 더 지나면 올 것 같단다. 나는 잠시 후 도착한 저상버스를 올라탄 후에 승객들에게 물어본다. “버스 안 전광판에 다음 역이 어디라고 나오네요. 저 전광판은 어떻게 만들어진 줄 아세요?” 모른다고 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버스 회사에서 고객을 위해 만든 친절한 안내 전광판인 줄 알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의 일이다. 청각장애인들이 이동 중에 버스 탑승 시 안내가 음성 방송으로만 나와서 버스가 언제 오가는지, 버스 안에서는 현재 어디를 지나는 것인지, 다음 역이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으로 진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정권고를 내렸고, 버스와 정류장에 지금처럼 안내 전광판이 대대적으로 설치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해 한 일이 비장애인에게도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장애인 접근 환경과 비장애인 접근 환경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접근할 권리를 이야기하면, 이를 장애인만의 문제로 인식한다.
2007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교통약자 이동권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이동수단과 환경 등의 정보를 교류하는 자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동권을 말하면 사용자를 장애인으로 상정한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저상버스와 특수차량, 엘리베이터만을 떠올린다. 그런데 몬트리올의 컨퍼런스에서는 장애인이 아닌 고령화 시민들을 사용자로 생각하며 노인들을 위한 마을버스 및 이동 안전성도 큰 주제로 다룬다. 한국 사회는 복지카드를 소지한 사람만 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제는 사회적 불편을 겪는 사람이 장애인이라는 개념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신체적 손상이 아닌 사회 시스템이 장애를 만든다고 생각할 때 생활 편의시설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편의시설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시스템이다. 자유를 박탈하는 제한성은 한 사람의 삶과 존재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에게 접근권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사회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고, ‘배리어프리’(barrier free)한 편의시설이 확충되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이곳은 김순석이 살아있을 수 있는 곳인가.
박김영희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며 매일을 사는 장애여성이자 장애인 인권 활동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앉은 높이에서도 훤히 보이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되었다. 모든 사람 각각의 시선이 인정되는 사회를 꿈꾼다.
첫댓글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듯이..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어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평등한 존재가 되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