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은 사군자(四君子) 중 하나로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꽃이다. 일제강점기의 지식인 문일평은 그의 책 <화하만필(花下漫筆·꽃밭 속의 생각)>에서 "난은 그 꽃의 자태가 고아할 뿐 아니라 꽃대와 잎이 청초하고 향기가 그윽하게 멀리까지 퍼진다"며 "기품이 우아하고 운치가 풍부한 점이 풀꽃 중에 뛰어나다"고 했다.
난(蘭) 또는 난초(蘭草)는 난초과 식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난초라는 식물은 따로 없다. 난초과 식물들은 잎이 나란히 맥이고, 꽃이 좌우는 대칭이지만 상하는 다른 공통점이 있다. 꽃 가운데 아래쪽에는 입술 꽃잎이, 뒷면에는 길쭉한 꽃주머니가 있는 것도 같다. 이런 기본 구성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가진 종(種)들이 있는데, 편의상 동양란과 서양란, 자생 난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동양란은 가는 잎과 은은한 향기, 수수한 꽃 모양을 가졌고, 서양란은 호접란같이 색깔과 모양이 화려하다.
동양란은 흔히 '춘란(春蘭)'이라고 부르는 보춘화(報春花),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한란(寒蘭) 등이 있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보내는 동양란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보세란(報歲蘭)으로 대부분 푸젠·광둥성 등 중국 남부와 대만에서 생산해 국내로 들여온 것이다. '보세'는 '새해를 알린다'는 뜻으로, 1-2월에 집중적으로 꽃이 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서양란은 대부분 동남아 등 열대·아열대 지방의 난초를 유럽에서 인위적으로 개량한 것들이다.
난초는 식물 중에서 가장 진화한 그룹이다. 난초과는 식물군(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학계에 알려진 것만 3만여종에 이른다. 자생 난초는 꽃 모양에 따라 갈매기·해오라비·제비·잠자리·새우·감자·지네발·타래·복주머니 등 다양한 이름이 붙어 있다. 난초들을 무분별하게 몰래 캐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풍란·광릉요강꽃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난초도 많다. 반대로 자란처럼 희귀종이었다가 증식을 통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난도 있다.
난초는 가장 진화한 식물답게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교묘한 속임수를 쓰는 종이 많다. 색깔이나 향기, 생김새 등에서 난초의 위장술은 식물학자들도 놀랄 정도다. 생김새와 냄새를 암벌과 비슷하게 위장해 수벌을 유혹하는 난초도 있다. 난초 종류의 3분의 1 정도는 어떤 보답도 없이 꽃가루 매개자들을 속이는 것으로 학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고 다른 식물의 영양분에 의지하는 난초 종류도 적지 않다. 선비들이 고고하다고 예찬한 보춘화 등 동양란들도 기본적으로 씨앗이 너무 작기 때문에 균류에 기대 싹을 틔울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치 사람 사는 세상의 이중인격자를 보는 듯하다. '오키드(orchid)'라는 난초의 영어 이름은 고환(睾丸)을 뜻하는 그리스어(orchis)에서 나온 것이다. 몇몇 종류의 덩이뿌리가 고환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註: 조선일보 2014.12.09 기사를 정리 전재함.
첫댓글 성품과 언행이 大人다운 사람이 알고보니 小人다울때,정숙한 여인의 뒷모습이 그러하지 않을때 사람들은 실망하게 된다. 그렇지만 난과 같은 풀꽃의 속임수를 어디 사람살이 이야기에 비유할수 있겠는가.
동양의 지식인들은 난을 그 사람의 학문적 성취에 비유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학문적으로 성취하였다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자랑하지 아니해도 주변이 알아보고 모이게 된다는 뜻으로 香聞千里外(난초향기는 천리밖에서도 맡을 수 있는 것이다)라 하였는데, 이는 有麝自然香(사향이 있으면 자연이 향기가 나는 것이다)이라, 何必當風立(하필이면 바람 부는 쪽을 바라보고 서 있어야 할 것인가)라고 부연설명하곤 하였다. 즉, 지난 날 우리 스승들은 이러한 자연현상을 예시하여 제자들에게 지나친 자아과시욕의 표출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각종 언론매채등을 통한 광고없이는 제품 하나도 팔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