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리나라 대표 지성인이라 불리우는 이어령 박사님이 굿나잇 키스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뜨셨지요.
그 책에서 자신의 상처를 설명했습니다.
딸에 대한 참회록이고 애틋한 내용입니다.
한마디로‘딸아 아빠가 잘못했다.’입니다.
밤이 되면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어서도 따님이 아빠 방을 열어요. 그리고 ‘아빠 굿 나잇’, 인사를 해요.
그러면 아빠인 이어령 박사는 글을 쓰느라고, 바쁘다고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손 흔들며 ‘잘 자’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 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이쁜 따님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 버렸어요. 그리고 이제야 가슴을 쳐요.
“왜, 아빠 굿나잇 할 때,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마주치며 그래 아빠도 굿 나잇 하지 못했을까?”
거기 이어령 박사님의 친필이 실려 있어요.
“네 생각이 난다. 해일처럼 밀려온다. 그 높은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나는 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사랑은 지금 당장 표현해야 한다고, 나중으로 미루는 게 아니라고. 나중으로 미루면 나처럼 후회한다고. 사랑의 표현은 지금이라고.
그 책을 팔고 얻은 돈으로 따님인 이민아 목사님이 사역했던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에 다락방 도서관을 만들어 기증했어요. 이름도 ‘민아의 방’이라고 지었어요.
이어령 박사님은 문학 평론가여서 저도 지면을 통해서 좀 알거든요. 저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어령 박사님은 예수 안 믿을 줄 알았어요. 40대 젊은 시절에 지독한 무신론자였으니까요. 하나님이 어디 있어? 큰 소리쳤는데,
그런데 따님인 이민아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 앞에 그는 무너져 버렸어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그의 지성이 무릎을 꿇고 말았어요.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지요. 따님의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대로 그가 예수를 믿었어요.
그의 친구들이 비웃고 조롱해도 상관하지 않아요.
나는 크리스챤이다,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고백합니다. “우리에겐 다음이 있다.”
우리에게 다음이란 하늘나라이겠지요. 이 박사님의 다음이란 하늘나라에서 따님 만나는 그 날이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그 다음이 있어요.
슬픔도 그 다음이 있어서 기뻐할 수 있고 절망도 그 다음이 있어서 소망을 노래할 수 있지요.
이 세상도 다음이 있어서 수고하고 희생할 수 있어요.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이유도 다음 때문이지요.
(2)그녀는 아빠와 서먹한 사이였습니다.
그저 용돈이 필요하면 아빠를 찾았고 아빠는 성적에 문제가 생기면 딸을 찾았습니다.
‘요즘 공부를 하는 거니 안하는 거니?’
하시면서 꾸중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묘한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중 3때의 일입니다.
느닷없이 아빠가 그녀의 방에 들어오시더니 설명도 없이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기분이 상했지만 아빠의 성격을 아는 터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더구나 딸의 일기장을 꺼내서 읽었지만 노래 가사나 시를 예쁘게 옮겨 적어 놓은 것이 고작이어서 별 신경 쓸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일기장을 들추던 아빠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가셨습니다.
‘왜 우셨을까? 공부는 안하고 쓸데없는 노래 가사 끄적인다고 속상해하신 것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읽던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떨어진 눈물방울이 몇 군데 얼룩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엔 ‘아버지와 나’라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그 글을 보고 우신 것 같았습니다.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 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우리의 아버지는 아직도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오늘 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아빠는 그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으셨는지 친구분들에게 딸 자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나?
그것은 그녀가 쓴 글이 아니었습니다. 가수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라는 노래 가사를 옮겨 적은 글인데,
그러나 그 날 이후 아빠와 딸은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친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의 마음이 서서히 그녀에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이무석 장로님의 책에 의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친밀감이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서로 마음을 주고 마음을 받아서 친밀감이 더 깊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로 친해지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