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 라일락 향기
녹음이 우거지고 라일락 향기가 그윽히 퍼지는 설악산을 상상해보라.
그때가 여름이 막 시작된 6월 중순이라고 했다.
나는 그 광경만 생각해도 마음이 설레였다.
한계령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동부시외버스터미널로 아침 일찍 출발했다. 메르스 영향으로 버스에는
승객이 반도 안 찼다. 우리들 여섯 명(김종국 부부, 김성진, 박승훈, 김준호, 감풍오)은 속초로 가는 금강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버스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인제였다.
버스는 원통을 거쳐 목적지인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하니 9시 반을 조금 지났다. 우리들은 식당에 들어가
황태해장국을 시켰다. 일곱 시간의 강행군에 대비하여야 한다. 소청대피소에 오후 5시에는 도착할 예정이다.
한계령은 해발 920m이다. 따라서 고도로는 700m 정도 올라가면 된다. 성진, 승훈이와 종국 부부는 앞서
가기 시작했고 준호와 나는 후발로 출발했다. 식사를 바로 해서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곧 이어 준호는 등산용 샌달을 벗고 맨발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고가는 등산객들이 찬탄의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대단하다고 한마디씩 하였다. 북한산을 맨발로 다니던 그인지라 설악산에서도 거칠 것이 없다.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오장육부의 신경과 연결되어 있어 이를 자극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준호가 그렇게 건강한 것은 아마도 맨발로 산을 다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오솔길 같이 생긴 등산길은 정감이 갔다. 싱그러운 녹음과 상쾌한 공기는 우리들을 유쾌하게 해주었다.
양옆으로 보이는 설악산의 아름다운 경관은 메르스로 인해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싹 날라가는 느낌이다.
얼마를 가니 뭔가가 코끝을 간질였다. 향기의 주인공은 라일락이었다. 탐스럽게 핀 연한 자주색과 흰색의
라일락꽃은 진한 향기를 마음껏 발산하며 힘들게 오르는 등산객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제공해 준다.
돌이 많은 약간 너덜길 같은 지역을 지날 때는 다리에 힘을 줘서 그런지 쥐가 났다. 성진이가 준 마그네슘액을
먹고 승훈이가 뿌리는 파스를 바르고 하여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다시 쥐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다 보니
속도는 떨어졌다. 소청휴게소에서 자고 오는 길이라는 시니어 등산팀을 만났다. 그들은 삼거리에는 한 시까지는
가야한다고 말하였다. 삼거리에 도착하니 12시 반이었다. 거기에는 시간을 체크하는 두 명의 국립공원직원이
지키고 있었다. 왼쪽으로 가면 대승령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대청봉으로 가는 서북능선이 전개되는
곳이다. 우리는 저 만치 보이는 끝청봉을 뒤로하고 서북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능선을 타면서 좌우로 펼쳐져 있는 설악산의 수려한 경관은 연신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설악산에는 칠천 개의 봉우리가 있다는데 각각의 봉우리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빼어난 산세와 조화로운 계곡들 그리고 기암절벽은 거대한 한 폭의
산수화다.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을 우리나라 제일의 여행지로 생각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번 산행에 같이 온 다른 친구들은 설악산을 아마도 두 자리 숫자로 왔지만 나는 서북능선이
처음이어서 그 느낌이 사뭇 다를 것이다. 걷다가 잊을 만하면 라일락 향기는 부드러운 미풍에
실려와 후각을 자극한다. 하이킹의 동반자 같이 느껴진다. 단아한 모습의 기품 있게 보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상나무도 우리들의 눈길을 끈다. 어쩌다 보이는 고사목이 기품 있게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구상나무는 죽어서도 그 절개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다섯 시가 넘어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대청봉을 가니마니하다가 시간상 소청대피소로
직행하기로 하였다. 또 다시 전개되는 새로운 모습의 절경이 눈앞에 전개된다. 저 멀리 나한봉,
마등령등 높은 산봉우리가 흰구름에 둘러싸여 있다.굉장히 높은 산같이 보이고 신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울산바위는 햇빛이 부분적으로 비춰지면서 환상적인 모습으로 눈앞에
전개되었다. 준호와 승훈이는 사진 찍기에 바쁘다.
마치 絶世佳人을 앞에 두고 가기 싫은 것처럼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30여분을 더 가니
우리들의 목적지인 소청대피소에 도착하였다. 7시간이 넘는 행군을 마치고 6시 가까이 되었다.
한 시간 가량 앞서 도착한 친구들이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절세가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절세가인은
傾國之色이었다. 소청대피소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경관은 너무나 아름다워 황홀하기까지 하다.
봉우리들이 석양의 빛을 받아 신비스러움을 불러일으키고 불타는 노을과 구름이 엮여져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이런 경치를 감상하면서 우리들은 산중의 호텔 같은 대피소 앞에 마련된 식탁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성진이가 준비해 온 소고기와 김치에 맥주와 발렌타인으로 성찬을 즐겼으니 가히
신선놀음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은 젊었을 때 앞에 보이는 그 어렵다는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을 한 번에 다 탔다고 자랑을 하였다. 나의 라이벌인 성민이가 등산 얘기만 나오면
나에게 공룡능선 타 봤냐고 쫑코를 주는 통에 나는 꼬리를 슬쩍 내리곤 한다. 마음 같으면 내일이라도
공룡을 가고 싶은데 9시간은 걸린다는 말에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와 다른 또 하나의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어제의 석양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설악산의 풍경이다. 봉우리와 능선에 걸쳐 하얀색 구름이 깔려 있는 것이 몽환적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雲海가 만들어 내는 풍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대피소 매점에서 산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먹고 하산길에 나섰다.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하니 우리와 같이 소청에서 잠을 잔 일행을 만났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탈진하여 쓰러져 있었고 119에 신고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와 비슷한
연배인 것 같은데 무리한 일정을 잡은 것 같았다.
희운각 옆으로 흐르는 개울이 있는데 철철 흐르던 시냇물이 아예 말라버려 물의 흔적조차 없다.
80년만의 가뭄이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희운각을 내려 오면서 천당폭포, 양폭,
오련폭포등을 보았는데 물이 적어 예전의 감흥은 일어나지 않았다. 양폭대피소에 왔을 때 승훈이가
휴대폰을 희운각에 놓고 온 것을 알았다. 다행히 그 일행이 하산하면서 가져와 되찾을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을 잊지 않도록 하게 만드는 해프닝이었다.
천개의 바위가 잘 다듬어진 부처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천불동 계곡을 지나면서 이틀 동안 수고한 발에게
감사의 표시로 족욕을 하는 것으로 설악산 등산을 마무리하였다. 속초의 수산물시장에서 싱싱한 회로
뒷풀이를 겸한 점심 식사는 꿀맛이었다. 면역력이 높으면 메르스를 비롯한 어떤 전염병도 안 걸린다.
그 면역력의 근원은 허벅지 근육에서 나온다는 우리들의 믿음이 있다. 등산을 하는 입산회 회원들은
메르스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귀경을 서둘렀다.
이번 산행을 기획하고 준비해 준 종국 부부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넉넉하게 준비해 가져온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첫댓글 전문 사진사들의 멋진 사진에
똑딱이로 찍은 내 사진을 실을 기회가 없었는데
풍오의 멋진 글을 앞 세워 슬그머니 사진을 올려 봅니다.
산장의 바뀐 점 몇가지
1) 성수기엔 해약시 3일 전엔 50% 2일 전부턴 80%의 엄청난 해약금을 제합니다.
아마도 산악회의 횡포를 줄이려는 듯
2) 산장에 미리 예약하고 가지 않으면 가차없이 쫓아 냅니다.
3) 입실시에도 예약 본인과 다른 참가자들의 명단도 증명서로 확인한답니다.
4) 코스마다 계절별로 마지막 통과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산장을 예약했어도 시간이 초과 되면 돌려 보낸답니다.
원칙을 지켜야 메르스도 잡는답니다.
다음의 설악산행시 참고 부탁 드립니다.
위의 사항은
원칙적으로 산림청 자연 휴양림도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한 달전 중국 태항산 대협곡의 웅장함에 놀랐다. 그러나 이번 산행을 통하여 우리산하의 아름다움에 다시금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시도하고 절경을 맛볼 겁나다.
총무의 각오가 우리를 모두 움직이게 할것같읍니다.
다음에는 공룡을 타고 내려옵시다.
아직 젊을때 해야지요.
9월이나 11월을 기대합니다
공룡팀 참가 신청 합니다~♡
대단한, 풍운거사의 라알락 향기가 묻어나는 산행기는
가슴을 뛰게하고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게하는
마력이 있네요.
덕분에, 모처럼의 설악산 산행에 동참 할 수 있었습니다.
공룡능선...
설악 최대의 암능,
천하 제일 절경,
가히 유격훈련 코스라 할만한 최고 능선길,
나는 바라만 보아도 좋은데, 굳이 ....!!!! ㅎㅎㅎ
나도 꼭 가고 싶었는데!!!! 풍오의 생생한 글 솜씨와 잘 찍은 사진을 보니까
간것이나 진배 없네!! 축하하고 감사하고.... 부여횟집 안 간것은 잘 한일이요!!
설악산의 라이락 향기가 물씬하는 우성이산의 산행기를 보니 코 끝이 간질간질하는게 예전 경희 동산에서
놀던 생각이 나네, ㅎ ㅎ
언제 같이 공룡에 도전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