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판소리 열녀가
김 귀 선
꼭 이맘때의 일이렸것다.
애간장을 녹이는 손곡댁의 탄식이 또 서갓골을 울렁울렁 울리었는디. 그러니까 칠십여 년 전 동짓달 그날, 해가 서산 자락에서 낭창거릴 즈음였었지라.
“가죽 잠바 둘이가요 저~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니더.”
일곱살배기 계산댁 막내 아들내미가 자빠질 듯 헐떡이며 언덕배기를 기어올라 닥가마 골짜기를 향해 내질렀것다. 화들짝 놀란 아낙들, 양팔을 끝대로 벌려가며 껍질 벗기던 닥나무를 털썩 던지고는 궁둥이를 실룩이며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가는디, 머릿수건을 휙 벗어 쥔 손곡댁도 검은 티가 붙은 몸뻬 바지를 팍팍 털어가며 집을 향해 바람걸음으로 오솔길을 걸었것다. 발보다 반걸음은 앞선 상체 모양이 흡사 개에게 쫓기는 암탉 꼴이라.
몰래 만들어 먹는 술이 밀주요 밀주 해 먹다 걸리면 운수에 따라 철창행이라. 가죽잠바란 다름 아닌 그 단속반이렷다.
허겁지겁 손곡댁이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서는디 가죽잠바 소리만 들어도 안짱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통에, 우왕좌왕 헛걸음질이구나. 삐딱한 골방문을 펄럭 여니 훅 덮치는 술 냄새라. 펄썩 주저앉으며
“우짤꺼나 우짤꺼나 이 일을 우짤꺼나. 작년에 잡혔기로 앞을 막고 뒤 가리고 옆을 막느라 빚진 돈이 말 반지기 논값인데. 돌봐줄 이 없는 이 몸 보나마나 철창행이라. 숨 막히고 심장 터지니 이 신세를 우짤꺼나. 열아홉에 시집와서 스물둘에 과부 되니 이늠의 사나운 팔자에 무얼 더 보태잔 말인고.
어화 세상 사람들요, 이내 말 좀 들어보소. 여편네 혼자 살림 헐렁한 산대미라. 천수답이 말라가도 쟁기질을 누가 허이며 땔나무 흔하다 해도 지고 와야 내 것이제. 팔자좋은 여편네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건만 오늘 같은 추운 날에 닥껍질을 벗기자니 어린 것은 칭얼대고 이래저래 멍든 가슴 ‘차딱 차딱’ 닥나무 속대 쌓으며 어르고 달랬건만, 그 늠의 가죽잠바는 왜 또 와서 이 작당인고. 태산 같은 나무볏가리 언제 한 번 쟁여보고 연분홍 치마저고리 입고 어느 세월에 꽃놀이 가볼꼬.
서방 없는 이내 몸을 지게마저 얕보는지 밭둑에서 엎지르고 논둑에다 자빨치고 피가 나고 멍이 드니 이내 가슴은 어떠할꼬. 지붕이라도 이으려면 놉 아니 허고 어찌할까. 놉이라도 할랴면은 술 없이 될 성턴가. 제 집일 다 끝나야 남의일 돌아보니 지붕도 이고 담장 치고 땔나무도 해야는디 태산 같은 이 일을 어찌하란 말인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숨통을 죄는구나.
하소연을 할라치면 재가 하란 말만 하니 저세상 간 우리서방 날 기다리고 있을 건디 파고드는 그 얼굴을 어찌 내가 잊을쏜가. 이러구러 살자 하니 이 신세가 처량하구나.”
정신을 차린 손곡댁이 싱둥겅둥 뒷담을 돌아 뒷집 나무볏가리 사이로 술독을 밀어 넣다가 ‘부시럭’ 소리에 정신이 아뜩해 그만 술독 속에 처박힐 뻔했는디 퍼뜩 그 자리를 빠져나가니 실밥 터진 희끄무레한 고무신 한 짝이 나뭇단에 걸려 괘종 불알마냥 흔들흔들하는구나. 놀라기는 뒷집 양동댁도 마찬가진디 마침 가마니에 넣은 누룩을 낑낑 들고 담벼락 옆의 짚볏가리 속에 감추고 있었것다.
손곡댁이 앞밭 콩깍지 무더기에 몸을 디밀고 숨었는디 ‘엄마 엄마’ 어린것이 눈치 없이 불러대니, 힐끔거리는 눈으로 오금을 박는데 그 눈빛이 칼끝 같았어라.
그때야 희멀건 얼굴의 가죽잠바 둘이가 끄떡끄떡 고샅길을 치고 올라오는디 폼 한번 끝내주는구나. 빗어 넘긴 머리는 포마드로 촉촉하고 일제표 가죽잠바 가죽장갑 가죽구두 온통 가죽으로 번지르르하니 미끄덩 나자빠질세라 파리도 얼씬하지 않을세라. 크척크척 돌부리에 채이는 구두 소리가 골목을 울리는디 아무래도 불안한 손곡댁이 엉겁결에 앞집 대밭으로 쏜살같이 파고들었것다. 대사리에 훌치고 대창에 걸려 엎어지니 비녀는 어데로 흘렀는지 넋 잃은 채 앉은 형상이 대밭 귀신이 따로 없었어라.
산골동네에 생기가 돈 것은 이튿날였것다.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눈치만 보는디 전혀 다른 소문이 돌고 있었으니.
“뭐시기? 술 추러 온 게 아이고 이번엔 구장집에 오소리 고기 먹으러 온 기라꼬?”
동짓달 그날, 손곡댁의 한 고비가 또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것다.
몸 고생 마음고생 많이 했구먼. 참말로……. 수시로 팔자를 원망했어도 차마 스물셋의 그 남편을 못 잊었제. 꼭 만날 것을 믿었으니 지금 이렇게 오붓하게 살고 있구만이라.
푸석한 서까래만 얼기설기 엉켜있는 집의 마당, 동짓달 찬바람을 맞으며 마른 잡초 속에 서 있자니 팔십육세까지 홀로 지낸 생전의 작은어머니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담장은 허물어져 돌무더기 같고 뒤꼍을 돌아 흐르던 맑은 도랑물은 흔적조차 없어 허전한데 저승에서 흘러오는 열녀가인가. 문득 걸출한 판소리 한 가락이 너울너울 귓전으로 울려온다.
첫댓글 60년대 70년대 초반까지는 밀 술 담궈 먹는 집어 어디 한 두집이었습니까마는 술 뒤비러 오고 소깝 뒤비러 오늘 시절이었습니다. 울 아부지는 자손을 40대 되어서 보셨으니 오빠와 나는 초등학교 다니면서 산에 나무하러 가고~~ 어느 날 청솔가지 몇가지 지게에 지고 왔는데 산간수가 우리 집에 들이닥처 벌금 매겼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충격 받은 우리 오빠 제일 무서운게 산간수 였어요. 그래서 평생 산간수(산림계)로 지내다 퇴직하고~~ 김귀선 선생님 글 보며 옛 추억 마구 딸려 나옵니다.
그곳은 산간수라고 했나 봐요
우리는 그냥 술 추러온다 했는데 그런 날은 온 동네가 비상 걸리고 난리가 났지요~~~
다 지난 얘기입니다~~~^^
좋은 작품입니다.
마무리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