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일을 잘 감당하려면(느헤미야 3:1-6)24.05.05.주일낮설교
1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야생 들풀을 연구한 고려대 강병화교수가 있습니다. 17 년 동안 무려 4500여종의 잡초, 들풀의 씨앗을 모았습니다. 연구의 결론이 ♪이름 모를 잡초야 ~ 이런 것 없더라. 이름이 다 있더라. ♪이것 저것 아무 것도 없는 잡초라네 ~ 그런 것 없더라.
그 안에 생명이 있고 의미가 있고 향기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멋이 있더라.
17년의 결론이 “하나님이 만든 풀 가운데 잡초는 없었다.
하나님이 기르시더라. 밀밭에 잡초가 심겨지니 잡초가 된 것 뿐이다. 들풀 가운데 밀이 돋아나면 밀이 잡초가 된다.
콩밭에 보리가 나면 보리가 잡초가 된다.
모든 풀 속에 이름이 있고 생명이 있고 나름 의 멋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꺾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다 쓸모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무너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느헤미야 3장은 예루살렘 성벽 중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중수’라는 말이 무려 39번 나옵니다.
느헤미야 전체의 주제가 ‘중수’입니다. 중수라는 단어는 ‘보수하다“라는 뜻입니다. 허물어진 곳을 세우고, 망가진 곳을 다시 고치고, 뚫린 곳을 막으면서, 벽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중수입니다.
그런데 말이 중수이지 실제는 재건축 수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부터 32절까지의 전체를 보면 느헤미야를 도왔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와 함께 주의 일을 감당한 자들 이었습니다.
주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첫째, 먼저 하나님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에 성문이란 성문은 다 불타고 없어졌습니다. 성이란 성은 다 무너져 내리고 없어졌습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알지를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동서남북 사방팔방 모두 다 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분문이 나옵니다. 이 분문은 분뇨처리장 쉽게 얘기하면 똥문입니다. 샘문이 나옵니다. 옛문, 어문, 풀무망대, 동문, 마 문, 수문... 수 없는 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3장 1절에 보면 "제사장들과 함께 양문을 제일먼저 수축했다" 했습니다. 양문은 양을 잡는 문입니다.
제사하는 문입니다. 예배하는 문입니다.
여기에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성문을 만들었는데 제일 먼저 예배하는 문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E.M. 그레이라고 하는 교수가 쓴 "성공의 공통분모"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성공한 사람들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성공비결에 공통점이 무엇일까를 연구해서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공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성공이 없습니다. 열정을 다하여 열심히 일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인간의 힘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복주셔야 성공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같이 인간관계가 좋았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하고 원수지고, 누구를 비방하지 않고 모든 사람과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레이 교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세 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 부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합니다.
실제로 우리 모두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고생하지 않습니까?
의식주 문제로 평생을 염려하다가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전에 아주 가난하게 살 때는 굶주릴까봐, 헐벗을까봐 동동거리며 살았습니다.
이제는 그때보다 훨씬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염려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합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할까봐 염려합니다. 그런데 예전보다도 더 많이 염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이방인 즉 비신자들이나 염려하고 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십니다. 먹을 것, 입을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의식주는 하나님께서 다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주시느냐하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먼저 할 일 먼저 하는 자세가 될 때 다른 것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순서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그 순서가 바로 될 때 우선순위가 바로 될 때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십니다.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하려고 고집하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이루고야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선순위를 최우선으로 먼저 해야 합니다.
주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첫째, 먼저 하나님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둘째, 협력하여 은사 대로해야 합니다.
본문에는 75명 이상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직업에 따라서 분류하면 직업은 15가지 이상이나 됩니다.
1절에는 대제사장이 등장합니다. 8절에는 금장색,
즉 대장장이와 향품 장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사람들,
즉 정치인들이 등장합니다.
31절에는 상인들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에 있어서 성경이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잡다하게 나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일에는 모든 사람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에 맞는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했습니다. 이것이 은사의 원리입니다.
즉, 이 성은 한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들이 갖가지 분야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이 크고 엄청난 일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거민들은 저마다 자기가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자발적으로,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본문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는 "그 다음은"입니다.
이 "그 다음에"라는 말은 3장, 32절 중에 22구절에 걸쳐서 29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질서 있게 조화를 이루면서 협력하여 이 위해한 역사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12-15절 이하를 보면 '다스리는 자'도 아들과 딸도 여자도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단일체를 형성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거대한 과제를 아름답게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꼭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즉, 그들이 100% 하나가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는 위대한 작업, 하나님의 일을 방관하고 동참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귀족들 이었습니다.
주의 일에는 언제나 이런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100%의 협조를 받지 않았을 지라도 그들의 일을 비웃고 비판하는 무리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일을 성취해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은사대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은사란 교회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찬양이 은사이면 열심히 찬양해서 그 찬양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밥을 잘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것도 은사입니다. 사실 부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 맡겨진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은사대로 봉사하는 사람은 절대로 원망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불평하지 않습니다. 피곤하지가 않습니다.
엘리야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해서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엘리야에 대해서 [열심이 특심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열심이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일이라면 발 벗고 일을 했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아합과 이사벨에게 쫓겨서 호렙산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도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했는데 왜 이렇게 저에게 고통을 주십니까?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습니까? 그런데 나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지 않습니까? 제가 누굽니까? 갈멜산 위에서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을 해서 승리한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저에게 남은 것은 아합과 이세벨의 칼 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이제 저 하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죽으면 이제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합니까?] 하고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위로하시면서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분명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느헤미야 3장에 기록한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적절한 곳에 은사대로 협력하여 일을 해야 합니다. 남을 인정하고 칭찬해야 합니다.
또한 시작한 일은 끝까지 완성해야 합니다.
주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첫째, 먼저 하나님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둘째, 협력하여 은사 대로해야 합니다.
셋째, 주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을 주님이 다 기억하십니다.
느헤미야 3장을 기록할 때 “성벽을 재건하는데 모든 거민들이 참여해서 건설했다.” 라고 한 줄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의 이름을 지루할 정도로 기록했습니다.
3장은 히브리 이름이 열거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하시고 칭찬하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이 너무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후손들이 그들의 이름을 볼 때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반면에 드고아 귀족의 자손들은 자기의 조상들이 성벽 재건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빠진 것을 보면서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주님은 여러분들이 주님의 교회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을 다 보고 계시고 칭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협력하여 은사대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칭찬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