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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서해산악회
 
 
 
카페 게시글
00 * 개인산행사진 및 영상 스크랩 3.1절 특별산행 독립종주
아부다비(성백연) 추천 0 조회 87 17.03.15 13:1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3 · 1 운동

3 · 1 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일본의 식민 통치에 맞서 일어난 온 겨레의 항일 민족 독립 운동이다. 기미 독립 운동이라고도 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무력으로 우리 나라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 정책을 펴 우리 민족이 온갖 굴욕과 고통을 받게 되자 온 민족이 들고 일어선 독립 운동이다.

1. 배경

1910년에 일본은 강압적으로 우리 나라의 주권을 빼앗고 무단 정치를 실시하여 온갖 탄압과 착취를 일삼았다. 일본의 탄압이 날로 심해지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 운동을 하였고, 국내에서는 지식인과 종교인을 비롯해 학생 · 농민 ·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반일 감정이 더해 가고 있었다. 마침 그 무렵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 자결 원칙'을 발표하였다. 이 민족 자결 원칙은 항일 독립 투사들에게 크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게다가 1919년 1월에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그것이 일본인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온 국민의 분노는 극도에 달했다.

2. 전개

온 국민의 항일 감정이 극도에 이르렀을 즈음, 일본에 유학 중이던 유학생들이 1919년 2월 8일에 독립 선언서와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국내에서도 3월 1일에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 모여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였고, 같은 시간에 탑골 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들어갔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 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중국 동북 지방과 하와이 등지로까지 퍼졌다. 그러나 일본 총독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투옥시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이다.

3. 의의

3 · 1 운동은 일본의 비인도적인 진압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의 가혹한 무단 통치 아래서도 꺾이지 않는 자주민의 저력을 국내외에 떨쳤고, 세계 여러 나라에게 우리 나라의 국권 회복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보다 조직적인 독립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중국의 상하이에 대한 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어 독립 운동의 중추 기관으로 활약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일본으로 하여금 식민 통치 방법을 무단 통치에서 문화 정치로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로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민들 모습


탑골 공원. 1919년에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고종 황제의 장례 행렬. 1919년 3월 3일 서울 종로


3 · 1 운동 때 배포된 독립 선언서


태극기 목각판. 3 · 1 운동 때 만세 시위에 쓸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 내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독립기념관 제4전시관에 있는 '3 · 1 정신상'


각주



  3.1절 특별산행 독립종주

  언제,       2017년 3월1일 삼일절

  산행지,,   독립기념관 ,성거산,태조봉,흑성산,독립기념관,원점,,,

  누구랑,,    감마로드 충남지부회원, 그리고,보령박팀,

  날씨,       화창한 봄날씨.

  거리,      오록스 도상거리 28km


  

장거리를 좋아하는 보령박팀 안나푸르나님의 공지가 떳다

매년 3.1절이면 감마로드 충청팀은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 충남 천안에 자리잡고 있는

독립기념관 을 둘러싸고 있는 성거산과 흙성산을 장거리로 한바퀴 산행한후 독립기념관 위령탑에서

 묵념을 하고  3.1운동 의미를 되돌아 본다고 한다,


마음은 지리산을 가고 싶은데

나도 애국자는 아니지만 국민의 한 사람인지라 지리를 뒤로하고 이번 산행에 동참을 한다


 무단 침입해 우리나라를 통치한 일본에게

목숨을 바치면서 나라를 ?기위한 3.1운동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그분들어 넋을 기리고져... 


▲ 3.1절 산행트랙



▲ 감마로드 충청팀 회원들과 빙둘러 자기 소개를 하고서 준비운동후 산행을 시작한다



▲  독립기념관안의 겨레의 탑





△ 산행 4키로 진행후 더워서 웃옷을 탈착하고...




▲ 오늘 산행하는 감마로드 시그널.

   작년에 붙여 놓은듯....



▲ 15키로 지점의 성거산 정상

이곳에서 모두 모여서 오뎅 탕에 점심을 먹는다

내가 오늘 등에지고 와야할 할당은 주류였다

맥주 피티병으로 大자한병 캔맥주7곱개 그다음 배낭에 든것은 비상식 뿐이다

나는 배낭이 가벼워 선두로 달려왔는데 후미가 와야만 점심밥을 먹을수가 있다

뱃가죽이 등살에 붙어 빵두개.사과 하나 그리고 자유시간 한개를 허겁지겁 먹어 버리는 바람에

점심상으로 준비한 오뎅탕과 다른 음식은 그림에 떡이된다~~






▲ 성거산 정상석 보다도 더 이 바위가 높은데 위치하고 있는데

   정상석을 옮겨야 하는걸까.

 정상은 군부대 시설이 있는곳이 사실상 정상인데 민간인을 출입할수 없으니.....



▲  20키로 지점 태조봉 정자에 감마로드 여성동지께서 엊저녁 야등으로 맥주와 막걸리등

한보따리를 땅에 숨겨 놨다가 ?아서 오늘 산행중에 먹는다

대단한 여성산꾼이다...









▲ 30키로 여정중 마지막 관문인 흑성산이다

이곳은 각 방송사의 중계탑이 있다 다섯개가 세위져 있는듯 하다

많아도 너무 많아

그간 산행중 이런곳은 보기 드물엇다


해발 519 정상석 인증하고...




▲ 오늘 난 이분과 두번째 산행을 했다

   삼년전 사비천도길 56km 했엇고 오늘이 두번째 인데

한동안 산을 타지안아서 산행 초반에는 버벅대더니만 후반으로 들어서는 저력이 나온다.

하긴 200키로도 잠을자지 않고서 연속으로 산행을 하는데

여자라고 깐 보면 큰일나지 ㅋㅋ 

흑성산 오를때 앞에서 끌어줘서 고맙수다~~^*^




▲ 장거리 여전사,,

대단하다 나는 이들에 발뒤끔치도 못따라간닷 ~

벽소령님,

대단하다 나는 이들에 발뒤끔치도 못따라간닷 ~



▲  흑성산 아래 독립기념관이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최고의 경치~~

   뭐 눈에는 뭐 밖에 안보인다 하더니 난 비박을 꿈꾼다 이곳에서....



▲ 데크에서 독립기념관 전경!!



▲ 독립기념관에 하산을 했다

   이분의 시진이 전시되어 있다



▲ 오늘의 산행 목적은 여기에 있었다.

   한계단 한계단 저 위로 오른다.

먼저 도착한 일행은 저위에서 날 기다리고 있엇다




▲ 독립기념관 맨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헌화하는 추모의 자리이다

   우린 이곳에서 잠시 묵념을 한다




▲ 추모하는 보령박팀 일행들.....





통로 위는 태극기로 ~~



▲ 젊은 한쌍의 여인,,, 겨례의탑에 사진을 찍는다

참 마음이 아릅답다

3.1절에 이곳에 온다는 마음도 아름답고

젊음이 너무 아름답다.

그래서 부럽다~~^^




▲ 오늘 후반내내 함께 걸음을맞춘 벽소령님과 한컷,,

언제쯤 장거리산행을 이분과 발 맞출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일은 없을꺼야~~

난 자꾸만 장거리 산행을 멀리 하니까~~

장거리 체력이 안되니 뭐  지리산이나 살방살방 댕겨야지~~

의미있는 3.1운동 독립종주를 끝냈다

내년에 또 한단다

그땐 또 와야 한다는 마음이 있지만 체력이 허락을 할지,

지리에서 체력을 단련하면 또 올수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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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3.15 15:32

    첫댓글 애국자시네요 ㅎㅎ 잘봤슴당~

  • 17.03.30 12:43

    굿 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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