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고기 끊은 두 형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운례(프랑스통신원)
영화 한 편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을까? 두 청년 니콜라와 엉뚜완에게는 그런 것 같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사람이 바뀌더니 하더니 급기야 몇 달 만에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첩첩산중에 위치한 농장으로 자원봉사를 나섰다. 연말에 집에 잠시 들르더니 이번에는 아예 동생과 같이 길을 떠난다. 무엇이 두 형제를 그렇게 변하게 했을까? 식구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잠시 집에 들른 니콜라(21살)와 형을 따라 같이 집을 떠날 엉뚜완(18살)을 만나보았다.
사진 : 엉뚜완(좌)과 형 니콜라(우).
파리 인근에 사는 니콜라는 벽시계 고치는 걸 좋아했다. 렌느(Rennes)에서 2년 유학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벽시계 장인의 아틀리에서 두 달간 연수를 받은 뒤, 아버지의 재정 지원으로 집 위층에 작업실을 차려놓고 벽시계를 주문받아 고치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넉 달이 지난 어느 날, 수리에 필요한 도구를 사려고 파리에서 450km 떨어진 오베르뉴(Auvergne)에 내려갔는데, 거기서 만난 벽시계 수리공이 그에게 ‘내일’이라는 영화를 봤느냐고 물었다. 영화 얘기를 아주 잠깐 5초 정도 했을까. 지구가 직면한 환경적,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영화를 파리에 돌아오자마자 봤다. 현재 우리가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데서 눈이 번쩍 뜨였다. 엄마를 데리고 가서 또 보고, 동생을 데리고 가서 또 봤다. 그렇게 해서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세 번이나 봤다.
핸드폰이든 음식이든 내가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서 환경을 오염시키지는 않았고 않는지, 노동착취는 없었는지 등을 곰곰히 따져보니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더는 장을 볼 수가 없었다. 먼 나라에서 온 과일, 비닐에 포장되서 팔리는 야채, 제철이 아닌 먹거리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소를 사육하는 과정에서 환경적 피해가 엄청나고, 전 세계 곡류 생산량의 70%가 가축 사육에 소비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알게 되니 고기도 손에서 자연히 멀어졌다. 공장화된 사육시설에서 동물들이 무참하게 고통받는 걸 보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육식을 조금 줄여볼까, 하고 시작한 게 어느덧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은 사흘동안 열렸던 ‘제로 웨이스트 축제(Zero Waste Festival)’에 가서 배워왔다. 예를 들면 장을 볼 때, 비닐 포장이 없는 걸 사고, 장 볼 때 담아오는 종이봉투는 버리지 않고 쓰고 또 쓰기로 했다. 장을 보러 갈 때는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간다.
사진 : 늘 머물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지라 밥상에 놓인 접시와 수저도 많다.
그러고 나서 프랑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이 만든 다큐 영화 세 편 ‘Home’ ‘Terra’ ‘Planet Ocean’을 인터넷에서 찾아 이틀동안 연달아 봤다. 아름다운 지구를 보존하고 싶다, 쓸모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지금껏 걸어온 것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하고, 타인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삶을 거부하기로 했다. 자립하는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사람이 물건 취급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러기엔 작업실에서 벽시계를 고치는 일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작업실 설비치를 갚기로 약속하고 프랑스 남쪽으로 우핑을 떠났다. 햇볕 좋은 남쪽으로 가려고 했던 거냐고 물으니 그게 아니라 ‘우핑’ ‘자립’ ‘퍼머컬쳐’란 단어로 검색하면 1300개의 농장이 나오는데, 그중에 가축 사육하는 농장을 뻬면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고 한다.
라호야 계곡에 있는 농장에 도착하니 어디를 둘러봐도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산중에 떨어진 밤을 줏어 연신 밤잼 만드는 일을 도왔다. 거기서 농장 일만 거들 줄 알았던 니콜라는 그때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농장이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와서 수단이나 에리트레아에서 온 불법 이민자들이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넘어오는데, 농장 주인 알랭과 카미유는 2년 전부터 그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이 일을 찾아 다른 데로 갈 때까지 머무는데, 니콜라가 있는 동안에 우퍼는 자기 하나였고 최대 열다섯 명까지 함께 생활했었다. 불법 이민자라는 불안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저 사람들 가운데 함께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뻐했다.
≪ 우리는 갖고 싶은 걸 다 갖고 있고, 이러한 풍요 속에서도 행복을 못 느끼는 데 그들은 아주 단순한 데서 행복을 느끼는 거에요 ! ≫
열다섯이 복닥대며 사는 알랭과 카미유의 집엔 값나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누구에게도 열려있는 그들의 집과 삶은 대신 풍요로 가득했다. 파리 인근에서 니콜라가 살던 집은 큰 정원이 딸려있고 방도 여러 개여서 자기 방을 같고 있었는데, 열다섯 명이나 되는 불법 이민자들과 한 지붕 밑에서 부대끼며 살다보니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풍요롭게 살고 있었는 지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5주간의 우핑에서 돌아온 뒤, 무소유의 행복, 소유의 덧없음을 터득한 것이었을까 니콜라는 다락방 가득히 쌓여있던, 어린 시절에 놀고 읽던 장난감과 책을 전부 다 재활용품점에 갔다 주었다. 차에 가득 실어 두 번 왕복할 정도였다.
니콜라는 내게 프랑스법 상 불법 이민자들에게 숙식은 제공해도 되지만 차에 태워주면 처벌을 받으니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이라고 했다. 불법 이민자라 해도 미성년자라면 보호해줘야 하는데 불법 미성년 이민자를 가차 없이 본국으로 호송하는 것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저질러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니콜라는 그들의 불평등한 삶에 귀 기울여 줄 것을 호소했다.
사진 : 사방을 둘러봐도 산 밖에 보이지 않는 이 첩첩산중에 라호야 농장이 위치해있다.
무술과 명상에 관심이 많은 동생 엉뚜완은 2016년 여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형이 ‘내일’을 보여줬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 후로 소비습관을 바꾸기로 했다. 아마존이나 슈퍼마켓 등 기업화된 상점에서 사지 않기로 했다. 책은 동네 서점에서 사고, 왠만하면 중고 시장에서 사기로 했다. 살 게 정 필요하다면 말이다. 평소에도 동물을 좋아했는데,육식이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걸 알고부터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채식은 식탁에서 고기만 빠져나가는 게 아니었다. 채식을 먼저 시작한 형이 고기 대신 콩류, 견과류, 곡류를 정기적으로 다양하게 섭취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는 2016년 9월에 입학한 고등기술 대학교(IUT : Institut universitaire de technologie)에 휴학계를 내고 2017년 1월 중순에 형과 함께 우핑을 떠나기로 했다.
대를 이어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우핑을 떠난다는 결심에 - 그것도 두 형제가 다- 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했다. 화를 내시지는 않았을까? 앞으로 학비를 안 대주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드라마같은 일은 없었다. 절대 큰소리 한번 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형이 우핑을 떠난다고 했을 때처럼 놀라셨지만 평소처럼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주셨고, 기차표를 끊어주셨다. 대학에 진학한 후, 둘째 아들이 점점 우울해 하고 안으로 닫혀가는 걸 보았던 어머니는 그의 새로운 선택에 오히려 매우 기뻐하셨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좋은 기회다, 그다음에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며 아들을 독려하셨다. 지금은 이혼해서 따로 사시지만 두 분 다 인자하고 이해심이 많은 부모라고 평했다.
환경문제, 먹거리, 유기농 등 몇 년 동안 아무리 말해도 안 듣더니 영화를 한 편 보고 ‘우리 애가 변했다’고 신이 나서 내게 말한 건 사실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지역 쓰레기 처리장에서 사무직을 보시는데, 지금은 자기보다 더 환경가로 변신한 아들이 자랑스러워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을 아끼지 않으신다. 반면에 니콜라의 아버지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정유회사 토탈(Total)에서 근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환경오염의 주범인 기업 중 하나기 때문에 아버지도 그 영화를 보기 두려워하시는 것 같고, 니콜라도 권하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두 형제 다 먹거리와 주거를 자기 손으로 자족하고, 더불어 남을 돕고 싶다고 대답했다. 엉뚜완은 한때는 군인이 되고 싶어했다.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어서. 그런데 군인은 사람을 지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 그 꿈을 접었다.
그들의 집을 나오면서 체 게바라가 떠올랐다. 게바라가 의대생이었을 때,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 하나로 남미를 여행한다. 체는 여행 도중 첫사랑도 경험하지만 그때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극빈곤층을 접하고, 노동력이 착취당하는 부당한 상황을 목격한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게바라는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의대를 졸업하지만 더이상 지난 날의 에르네스토가 아니었다. 그가 남미를 여행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하는 걸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면, 느꼈다 하더라도 사회 불평등에 맞써 싸우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저 평범한 쿠바 의사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간디 왈,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이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타인이 아닌 나의 변화로부터 시작한다. 심장이 뛰는 일을 향해 돛을 펼치는 두 형제의 모험에 순풍이 함께 하길 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레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