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39절 – 44절
복음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주시는 말씀으로 전통적으로 권위가 인정된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에 기초한 것들은 거짓복음이란 말조차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즉 십자가의 도 바로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할 때 늑대와 같은 자들이 교회안에 들어와 사도들이 전하지 않는 또 다른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 복음은 특별히 예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도바울의 사도권을 문제삼고 사도바울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사람들에게 파급력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앞에 세우면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런 그들의 자세를 질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쁘게 여겼습니다.
이 거짓복음은 복음이 아닌데 이런 거짓복음에 기초한 신앙은 거짓신앙체계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거짓신앙체게를 대변하는 것이 바리새인들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영생은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바로 친밀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관계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성경이 영생을 주지는 못합니다. 단지 성경은 너무나도 중요한 우리신앙의 척도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이 가르키는 방향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즉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서 손가락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닌까 끝내 달을 보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을 알게 되지 못하닌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왜 그럽니까? 그들은 성경을 보지만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이 아닌 다른 메시아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를 기다리며 어떤 사람이 자신이 그 메시아라고 하면 그를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후 135년 유대가 멸망할 때 그들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을 메시아라고 앞세우고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이 거짓신앙체계에 빠진 자들은 항상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받는 영광을 바랍니다. 목회자들도 이런 잘못을 범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이 거짓신앙체계에 빠진 결정적인 이유를 그들속에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신앙의 본질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영광을 바라고 성경을 읽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런 자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는 자는 거짓신앙체계를 대적합니다. 거짓복음을 미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