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라]-오아시스에서 피어나는 문화 향기
우즈베키스탄 전통예술 진수 보여주는 '오아시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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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의 화려한 영광을 상징하는 세 개의 복합 건축물. 왼쪽부터 미르 아랍 마드라사(1536년 건립), 칼란 미나렛(1127년), 칼란 모스크(1127년)의 모습. |
- 여행 구심점 라비 하우즈 광장 출발해
- '갱 속의 모스크'서 지역예술 만끽
- 사바도 시장에서 '우즈벡의 맛' 본 뒤
- 부하라의 번창 상징하는 아르크성 구경
- 밤 되면 나디르 디반 베기 마드라사에선
- 세계문화유산 샤쉬마콤 전통예술 공연
"사람들이 현자에게 묻기를, 지고한 신이 드높고 울창하게 창조한 온갖 이름난 나무들 가운데 열매도 맺지 않는 삼나무를 빼놓고는 그 어느 나무도 '자유의 나무'라고 부르지 않으니 그게 어찌된 영문이나이까?
현자가 대답하기를, 나무란 저 나름의 과일과 저마다의 철을 가지고 있어 제철에는 싱싱하고 꽃을 피우나 철이 지나면 마르고 시드는도다.
삼나무는 어느 상태에도 속하지 않고 항상 싱싱하느니라.
자유로운 자들, 즉 종교적으로 독립된 자들은 바로 이런 천성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러니 그대들도 덧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칼리프들이 망한 다음에도 티그리스 강은 바그다드를 뚫고 길이 흐르리라.
그대가 가진 것이 많거든 대추야자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라.
그러나 가진 것이 없거든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될지어다."
가진 게 없고 나누어 줄 것도 없는 배낭여행자도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될 수 있겠냐는 물음을
떠올릴 순간도 없이 기차가 부하라 역에 멈추어 섰다.
승객들이 웅성거리며 하차하자 사마르칸트 역에서 서너 시간을 달려온 기차는
여행자들에게 '장미의 정원' 책장을 덮고 서두르라고 기적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그 기적 소리는 마치 그 책의 저자 사아디가 13세기 몽골이 페르시아를 침략하자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30여 년을 떠돈 것처럼, 배낭여행자들에게
이제 부하라에서 떠돌아다니라고 재촉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 라비 하우즈 광장으로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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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 하우즈 부근 골목길에 있는 우즈벡 전통 인형극장의 무대. |
부하라 역 앞에서 호객을 하는 택시기사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요금이 얼마인지도 전혀 물어보지도 않고 여행자들을 태우고
라비 하우즈 광장으로 간다.
그 광장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옛 시가지의 출발점이며 배낭여행자 거리의 중심지이다.
부하라에서의 여정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은 라비 하우즈이다.
라비 하우즈를 이정표로 하면 배낭여행자들 대부분은
거의 같은 일정을 함께 한다.
그 일정은 라비 하우즈에서 출발해 '갱 속의 모스크' 혹은 '깊은 모스크'라는 뜻을 가진
마고기 아타리 모스크를 거친다.
여행자들은 모스크에 이어서 부하라 칸 국을 건국해 샤이바니 왕조시대를 연 샤이바니 칸이 건립한
타키 사라폰 바자르도 그냥 지나치면서 칼란 미나렛을 남쪽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칼란 모스크와
미르 아랍 마드라사에서 멈추어 선다.
칼란 미나렛은, 그 뜻이 웅장한(칼란) 등대(미나렛)이므로 예배시간을 알려주는 원래의 역할을 하다가
전시에는 망루로, 평화시에는 횃불을 밝혀 길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이 미나렛을 사이에 두고 이슬람 사원 칼란 모스크와 신학교 미르 아랍 마드라사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부하라의 과거를 상징하는 세 건축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 현재를 보여주는 사바도 시장이 있다.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시장 입구를 지나면 한쪽에는 실크카페 시장과 그 반대편에는 금은 시장이 있다.
여행자들은 입구 음식점에서 우즈벡 전통음식들, 샤슬릭(꼬치구이), 플롭(볶음밥), 만띄(만두), 솜사(군만두),
라그만(볶음짬뽕), 슈르파(고기 감자 양배추 양파 당근 등을 넣어 끓인 국)을 맛보고 시장으로 들어가면
실크카페들과 금은 등이 가득 널린 진열대 사이를 다니면서 살아있는 삶의 현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을 나오면 여행자들이 스스로 집결하는 곳이 아르크 성이다.
■ 도시 탄생 전설 깃든 아르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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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이슬람 신학자로서 해학으로 종교적 진리와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해준 나스레딘 호자의 동상이다. |
아르크 성은 부하라의 화려한 번창을 상징하는 곳으로
부하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성은 그 창조자인 시야부샤 전설에서 시작된다.
젊고 매력적인 시야부샤는 그 지역 통치자 아프롭시압의 딸과
사랑에 빠져 결혼 허가를 받으려고 한다.
통치자는 시야부샤에게 황소 가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
궁전을 건립하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명을 내린다.
시야부샤는 그의 계모에게 몰래 숨겨 놓은 오아시스의 둘레를
황소 가죽을 엮어서 에워싸고 궁전을 짓고 결혼을 허락받는다.
그 궁전이 아르크 성이며, 그 오아시스가 부하라라고 한다.
이 전설을 바탕으로 부하라의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르크 성이다.
아르크 성을 둘러본 여행자들은 더러는 그 전설을 따라
코란에 나오는 욥이 부하라를 방문해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을 위하여 지팡이로 땅을 내리치자 샘물이 솟아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차슈마 아유브(욥의 샘물)로 가고, 더러는 라비 하우즈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여행자들은 되돌아가면서 이정표로 삼은 라비 하우즈 근처 곳곳에 문화예술의 향기가 숨어 있음을
알고는 놀란다.
라비 하우즈 광장은 인공 연못을 가운데에 두고 그 둘레에 낙타 상, 거리 음식가게들, 한쪽 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레스토랑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이슬람 신학자 나스레딘 호자가 당나귀를 타고 한 손을 가슴에 얹고 다른 손을 높이 든 채
익살스러운 웃음을 짓는 동상이 눈에 띈다.
2007년 번역된 '나스레딘 호자의 행복한 이야기'에서 그와 당나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에는 그가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있다.
그 이유는 책의 버전에 따라서 다르게 되어 있다.
그가 가고 싶은 방향과 당나귀가 갈려는 방향이 서로 달라서 협의하여 거꾸로 탔다, 그가 바로 탔는데
당나귀가 외발잡이여서 거꾸로 타게 되었다,
처음에는 바로 탔는데 당나귀가 거꾸로 가서 되돌아 앉자 목적지를 바라만 보게 되었다 등등.
■ 오케스트라·합창 들으며 부하라의 밤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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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께 조성돼 부하라 여행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라비 하우즈의 야경. |
나디르 디반 베기 마드라사(1622년 건축)가 그 동상 바로 옆에 있다.
마드라사는 부하라 칸 국의 두 번째 아스트라한 왕조시대
이맘 퀼리 칸에 의해 건축됐다.
그 입구에 2마리 불사조와 태양의 얼굴을 한 사람을 새겨 놓을 정도로
이맘 퀼리 칸은 17세기 중반 전성기를 통치한 왕이었다.
그 화려한 입구를 들어가면 과거 영광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몇 개의 작은 공예품 가게들만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마드리사의 진가가 드러난다.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샤쉬마콤의 공연이 열린다.
샤쉬마콤은 현악기, 타악기, 목관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함께 이뤄지는 공연이다.
그 공연을 보면서 여행자들은 우즈벡 전통 공연예술을 접할 기회를 얻는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마고기 아타리 모스크(갱 속의 모스크)의 입구로 들어가면 부하라 출신이나
그 지역 사진작가들의 전시관도 있고, 인근에 우즈벡 전통 인형극장도 있다.
그 극장은 전통 인형극의 워크숍을 하거나 제작과정을 체험하게 하고 공연도 함께 보여준다.
물론 부하라 지역 전통예술이나 공연을 전문적으로 하는 레스토랑 또한 라비 하우즈 근처에 몇 군데 더 있다.
여행자들은 대체로 이슬람 유적을 둘러보고 떠나지만, 오아시스의 도시 부하라에는 그 유적들보다도
우즈베키스탄 전통 문화예술과 공연이 넘쳐난다.
# 좁은 골목길 속의 人情
■ 숙소 잡기와 이슬람 국가에서의 음주
여행자들은 라비 하우즈 광장이 보이는 곳에 숙소를 정하기가 어렵다.
그런 숙소들은 대부분 이미 예약돼 있거나 가격도 만만치 않다.
배낭여행자들은 광장 건너편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서 숙소를 잡는다.
어떤 골목이라도 미로이지만 그 입구와 출구는 광장이므로 배낭여행자들이 숙소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미로 속을 헤맬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면 가장 밝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된다.
그 길이 아무리 밝다 하더라도, 얼마 못 가서 어두운 골목길들이 뒤섞여 있다.
이슬람 국가라 음주를 금지하지만, 의자가 서너 개 놓인 골목길 가게에서는 대체로 간단한 먹을거리와
맥주를 시켜놓고 마실 수 있다.
골목길 가게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곳으로, 외국인 여행자에게 친절하다.
그 친절이 이슬람교와 타 종교를 갈라놓지는 않는다.
금주 국가에서 그 국민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배낭여행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부산대 민병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