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18. 3. 29. 목요일.
오늘 성남시청 청사에서는 성남실버 텃밭지기에 대한 교육이 있다면서 분당 사는 친구는 교육장에 간다고 했다.
나보고는 오늘이 모란시장 5일장(매 4일, 9일)이니 구경 나오라고 권했는데도 나는 미세먼지를 탓하며 바깥으로 나서지 않고는 종일 아파트 안에서 머물고 있다.
핸드폰 벨 소리가 들리기에 받아보니 잠실농협지점에서 전화 왔다.
내일 만기예금 정리하란다.
'나한테도 그런 것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가방을 열어 확인하니 통장이 있기는 있다.
소액.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퇴직한 지가 벌써 10년.
그간 딸 둘 혼사 치루었고, 큰아들 장가 보냈고, 아흔여섯 살 엄니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켰고, 아흔일곱 살 막 시작된 엄니 장례 치루고 재산 상속세를 냈더니만 내 통장은 빈털이.
20대 청년시절에 가입했던 농협조합원 지위까지 탈퇴하면서 조합에 투자했던 것조차 인출했고, 논과 아파트를 저당잡혀서, 빚 얻어서 위 비용을 충당했다.
쉽게 말하면 빈 껍질로만 남은 나한테 통장 만기되었다고 알려준 여직원.
쥐꼬리보다 조금 더 긴 금액을 보고는 갑자기 서글퍼져서 눈시울을 살짝 적시었다.
결혼시켜야 할 막내아들이 또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겠지,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지금껏 살아왔다.
남들처럼 권력과 비리를 저지를 수도 있는 그런 직장도 아니었다. 살벌한 직장에서 30년도 더 넘게 다니다가 퇴직했다. 연금수령자. 그게 위안일까? 이것마저도 아내가 알아서 관리한다. 직장 다닐 때부터 나하고는 하등 상관이 없는 봉급이었고, 오래 전에는 통장으로 입금되며, 아내가 관리한다. 퇴직한 뒤에도 마찬가지이고.
디헹이다. 빚은 없다.
2016년 고향 앞산과 앞뜰이 일반산업단지 부지로 들어가면서 산말랭이가 토지수용되었다.
용케도 자식과 엄니한테 들어간 빚을 청산하였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또 배웠다.
이십여 년 전, 아버지 재산상속 때도 그랬다. 서해안고속도로 부지로 산이 편입되면서 보상비가 나왔고, 나는 동전 한 푼 만져보지도 못한 채 상속세를 냈다. 그때에도 은행에서 빚을 냈는데 연 18% 이자.
IMF 때에도 용케 버텼다.
그때에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늘 어떤 노인카페에 보이피싱 당할 뻔했다는 내용이 떴다.
보이피싱 전화가 올 수준이면 나한테는 그 할머니는 무척이나 부러운 사람이다.
진짜로 부러운 사람이 있다.
문학카페에서 어떤 시를 읽었다.
'달님'이라는 단어를 쓴 시였다.
내 나이 일흔한 살. 내가 밤하늘에 뜬 달과 별을 보고서는 '달님', '별님' 이라고 글 쓸까?
전혀 아니다. 그럴 만한 심적 여유가 없는 촌 늙은이다.
나는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산다. 높은 아파트가 빽빽히 들어찼기에 아파트 벽 사이로 멀리 내다보기는 해도 밤이 없는 생활이다. 밤중에 바깥으로 나가면 혹시 밤하늘에 달과 별이 있는지는 몰라도 아파트에서만 머무는 나한테는 달과 별을 보지 못한다.
서울에도 달과 별이 있었던가?
달과 별은 시골에만 있는 게 아녀?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문학 글에서 '달님', '별님' 하는 단어를 보면 나는 고개를 가우뚱하게 마련이다.
그곳에도 달이 뜨고 별도 보이는 거여?
서해안 시골 우리 마을에만 있는 게 아니고?
나한테도 이제 40여 개월째인 손녀가 있고, 25개월째인 손자가 있다.
이 어린 것들이나 달님 별님하면서 이야기해주면 딱 어울리는 단어이지 나처럼 등이 자꾸만 굽어가고 눈에 생기가 사라지는 늙은이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들은 시어(詩語)라고 말하지만 나한테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맹랑한 단어들이다.
2.
오늘 베란다 화분 가생이에 기어나온 작은 민달팽이를 보았다. 화장지로 감싼 뒤 으깨어 죽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고추장을 담았던 빈 플라스틱 그릇에 손가락 마디만큼이나 짧게 자른 미나리를 물에 담가서 키우고 있다. 이 물속에 민달팽이를 넣었고, 나중에 보니 민달팽이가 어디론지 사라졌다. 화분 속에 숨었겠지.
민달팽이가 조금은 징그럽지만... 그래도 살려주었다는 뜻도 되겠다. 그들도 살아가야 할 생명이기에.
이 글 쓰다 보니 기분이 되살아났다.
글로써 치유되었다는 뜻도 되겠다.
첫댓글 저도 인생을 살면서
금전관계로 난처할 때(아들 대학교 4학년 때 통장은 바닥나고, 아내는 허리 수술하고 누워있을 때)가 있긴 했지만
동기간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지요.
건강상(군대서 병원에서 전역했다고) 정규직 직장 한 번 못 갖고
비정규직으로 일생을 살다보니
그 고마움은 항상 잊지 않고
지금도 동기간끼리 깊은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은혜를 져버리거나
웬수로 갚는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지요.
예.. 글 쓰고 있는데도 댓글 달아주셨군요.
저만큼 성질 급하세요?
저는요. 불. 불이어요.
지금은 많이 누구러졌지만 휘발유 불..
좀 더 밝게 글 써서 마무리 할 게요.
박 시인님.
저도 많은 글을 읽는데 오늘은 조금 글을 쓰는데 있어
위안 보다는 무엇인가 괜히 찜찜한 글도 있었어요
문단에 등단에 관한 문제 였는데
글이 좋아서 글을 쓰지만 꼭 유명한 문예지에 글이 올라야 된다는
강박 관념때문에 기분이 그렇기도 합니다
유명문단이라는 게 있기는 있나요?
하기사 지방의 문단이 훨씬 실속이 있는 것도 있대요.
남한인구 5,100만 명.
문인 숫자는? 자기의 생각보다 10배 곱하면 맞겠지요.
좋은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글을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목이 부러운 사람들' 인데 최선생님이야말로 남들이 부러워 할 대상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글자를 알아서 신문과 책을 읽을 수 있고, 내 생각을 글로 써서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는 것만으로 부러운 사람이지요. 저도요.
아직은 남한테 크게 빚 지지 않았고, 궁색하게 구걸하지 않고도 살고 있지요.
조금씩 내가 부러운 사람으로 변신해야겠습니다.
그래도 가진 게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