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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광의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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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작품 소개 스크랩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초현실주의
호산 추천 0 조회 9,959 14.11.04 14: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Rene Magritte

(1898-1967,벨기에)

 

                               1916 ~   브뤼셀의 미술학교 입학

1926 ~ 1930  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 운동에 참가,파리에 체류

                               1940 ~  신선하고 시적인 이미지 창조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벨기에화가이다.

1898년 11월 21일벨기에에서 태어나 1967년 8월 15일사망하였다.

1916년 브뤼셀서 미술공부를 시작했고, 1920년 중반까지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작품을 그렸다.

그러나 그 이후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초현실주의적이지만 자신만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주로 우리의 주변에 있는 대상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요소들을 작품안에 배치하는 방식인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사용하였다.

 

1950년대에는 그 전까지 했었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인상주의시기의 르누아르 영향을 받은 작품들과 바슈(vache)시기의 야수파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신비한 분위기와 고정관념을 깨는 소재와 구조, 발상의 전환 등의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특징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에서의 팝아트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고,

대중매체의 많은 영역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는 《겨울비(Golconde)》(1953)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고,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피레네의 성(Le chateau des Pyrenees)》(1959)과

《올마이어의 성(Almayer's Folly)》(1951)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겨울비(Golconde)

1953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The Treason of images)(1929)

천상적 완전성(1930)

집단발명(Collective invention)(1934)

헤라클리투스의 다리(1935)

천리안(1936)

투시, 통찰력(Clair Vayance)(1936)

해방자(1947)

세헤라자데(Scheherazade)(1948)

과대망상증(1949)

빛의 제국(1954)

교사(1955)

피레네 산맥의 성곽(1959)

심금(The Heartstring)(1960)

결혼한 성직자(1961)

대가족(1963)

진실의 추구(The search for truth)(1963)

대전쟁(1964)

신뢰(Good faith)(1964~1965)

백지수표(Carte Blanche)(1965)

살아있는 예술(1967)

최후의 장면(1967)

 

 


 

실내와 실외

 

마그리트의 많은 그림들에서 보여지는 시각적 내용의 주제는

중재역할을 맡은 문 또는 창문과 다른 대상, 즉 전환적 요소를 통하여 나타나는 실내와 실외 사이의 관계이다.  

이런 기초 위에서 마그리트는 전이와 변형의 효과로서 그림을 제작하였다.  

 

열려진 문을 통하여 구름이 방 안으로 스며들기도 하며 화

병이 창문 안에서 풍경으로 변화되고,

창문 앞에 있는 그림이 창문밖에 보이는 정경의 부분으로 그림 안에 재현되어 대치되기도 한다.  

 

앞의 세 방법 중 마지막 방법으로 캔버스가 감추고 있는 풍경과 같은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 속의 그림 방법은

 마그리트의 가장 유명한 몇몇의 작품에서 사용되었다.  

이것은 거울같은 은유와 무한 대까지 연장될 수 있는 회화와 시각의 본성에 대한 끝을 알 수 없는 사색을 다루고 있다.  

실제로 창문의 개념으로서의 회화론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서구 회화의 기원으로 존재하였다. 

 마그리트는 이 은유의 개념적 가능성을 정제하고 더 나아가 그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그려진 그림속에 존재하는 대상들은

"동시에 방 안에서, 그림의 안과 밖에서, 실제의 풍경 안에서 그려진 풍경으로서 계속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대상들은 과거와 현재에 동시에 존재하는 대상들과 비슷하다."

 

 여름,  1939

문에 의한 공간적 중재는 구름을 지나가게 할 뿐만 아니라

바다의 이미지와 색깔로 전염되면서 하늘을 분밖에 슬쩍 보이게 하는 시적 중재로 전환되고 있다.

 

 

 구름,  1939

그림 그 자체가 마치 창문처럼 이해되는 이 그림에서

산이 많은 풍경 밖으로 나와 있는 구름은 이젤이 있는 실내 공간에까지 확산되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그림과 감상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서 사용되었다.

 

 

인간의 조건,  1934

창문 앞에 이젤이 있는 그림 중 초기 작품의 예이다.  

그림 속에 포함된 풍경 부분과 창을 통하여 보이는 풍경 사이의 가벼운 부조화는 - 창문 턱에서 특히 잘 보인다 -

<빛의 제국>에서의 밤과 낮의 부드러운 융합에서 얻어지는 경종을 울리는 듯한 당혹감과 비견할 만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가슴,  1961

이 그림은 일련의 복잡한 변화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무질서하게 쌓여진 벽돌 모양의 거대한 건축용 사각석은 그 기능과 관련하여 집들로 변형되었다.  동시에 같은 모양의 규칙적인 집들의 배열은 산더미처럼 산적된 집들의 임의성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행의 기억,  1955

벽에 걸려있는 그림 속에 보이는 갈라지고 불가사의한 탑은 마치 <우상>이나 <피레네 산맥의 성>과 같은 작품에서처럼

그 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화면 전반에 전염시키고 있다.

 

 

유클리드의 산책,  1955

창문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정경을 이젤 위의 그림으로 대치하는 효과는 이미 잘 알려진 방법이다.  

이 작품에서는 원추형의 탑과 이름 모를 두 사람이 산책하고 있는 원근법으로 표현된

곧게 뻗은 도로의 표현에 의해 시각적인 모호함을 집약하고 있다.

 

 

가면이 벗겨진 우주,  1932

의미의 질서가 가장 잘 도치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하늘은 구조물적인 기하학적 질서를 수용하고 있으며 이구조물에 있어서 자연의 자의성은 파괴로 변하고 있다.

 

 

기적의 나라,  1960

위 두 화분들은 식물체로서의 특성과 함께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두 화분을 통하여 나무가 있는 풍경이 보인다.  

이 두 작품은 시각적 평면 위에 은유에 의한 전이가 이루어진 명백한 예가 되고 있다.

 

 

 표절,  1960

 

확대경,  1963

이 작품은 마그리트가 대상에 의문을 가지고 문제화시킴으로 해서 알 게 된 것들을 다루고 있는 명확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보충적이고 다른 두 공간 사이에 위치한 창문의 중재적인 조건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이된 오브제들

 

"결코 우리가 찾을 수 없는 대상들을 나의 그림에 위치시키는 것."  

마그리트는 이렇게 그의 그림에 가해진 때이른 질책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며 동

시에 일상성 안에서 시적 효과를 해방시키기 위한 주요 메커니즘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절규하고 있는 친숙한 대상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상들의 일상적인 관계의 질서를 바꾸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그 자신은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집과 우리들의 얼굴 안에 보이는 거리감은 하늘 아래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잘 세공된 나무탁자의 다리가 갑자기 큰 힘을 지닌 숲과 닮아 보일 때,

그것에게 주어지던 순수한 존재의 의미는 상실된다."  이런 전이는 대부분 막스 에른스트의 초기 콜라주 자가업을 관조하면서 떠오른 것으로, 마치 2차적 은유 안에서처럼, 중재자를 통하여 연상된 대상들 사이에 중재의 유사성이 존재할 때 개념적으로 그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다.  화가는 어떻게 1936년 밤 실제로 잠자고 있는 새를 다루고 있는 그림에서 새장 속에 갖혀있는 새의 알을 보았다고 생각했는지 말하고 있다.  "거기서 나는 새롭고 놀라운 시적 비밀을 발견하였다.  비록 이 충격은 정확히 새장과 새의 알의 유사성을 유발시키는 데 불과하지만 이전에는 이 충격은 나에게 낯선 대상들 사이의 만남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불안한 날씨,  1931~193

구름을 밀쳐내고 하늘에 떠 있는 방해물들인 세 가지 오브제의 부조화스러운 결합은 이 그림을 푸는 열쇠가 된다.

 

 

 바람의 소리,  1931

공기중에 떠 있는 거대한 종들은 20년대 말기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앞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 사물의 음향적 속성을 이용하여 시적으로 바람의 속삭임을 표현하고 있다.

 

 

 예고,  1930

둥근 공을 연상시키는 선반으로 가공된 난간 또는 탁자용 다리는 마그리트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어 그림 속에 전이된 오브제이다.  

대체로 <길잃은 경마기수> 또는 <비밀스러운 경기자>와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숲과 비슷하다.

 

 

 여행자,  1937

분명한 연관관계가 없는 오브제의 결합이 구형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그림 속에 제시됨으로써 복잡한 상상력을 유발시키고 있다.

 

 

 푸른색의 항해자,  1948

 

 

 젖빛 유리들,  1951

전이된 오브제를 사용한 위 두 작품은 그림속에서 전이된 사물들이 다른 사물의 질감을 가지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황금빛의 전설,  1958

이 작품은 명백하게 시각적 은유가 나타난 작품이다.  

바케트 빵은 하늘의 구름과 직접적으로 대치되어 있다.

 

 

 악마의 미소,  1966

 

 

마지막 절규,  1967

일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서로 연관된 오브제의 중복은 감

추어진 비밀의 급박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드러내는 직유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피레네 산맥에 있는 성,  1959

바다와 거대한 헬멧형태의 바위는 <딱딱함/유연함>, <정적/동적>, <무거움/가벼움>의 대립을 통해긴장을 야기시킨다.  

마그리트는 그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사용하기 위하여 두 대립 요소들을 그림안에서 부각시킨다.

 

 

아름다운 세계,  1960

마그리트는 이 작품과 같은 해에 제작한 '라 지오콘다'와 매우 유사한 방법으로 화면 위에 덧붙여진 드스한 장면을 그림 속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세 개의 연속된 커튼 중 하나는 구름낀 하늘을 반사하고 있는데, 풍경을 경계지우면서 깊이감을 나타내고 있다.  풍경의 내용과 커튼 주위를 둘러싼 창문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혼돈된 채 이 그림에 나타난다.

 

 

좋은 관계,  1967

세 개의 전이된 요소들은 하늘에 감추어진 미묘한 우주의 자취인 듯,

우의적인 새로운 의미로 융합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얼굴과 잘 맞지 않는 기구라는 사물은 안구라는 새로운 대상의의미로 용해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의 사물이 다른 이름으로 대치되는 마그리트의 창작 원칙 중 하나이다.

  

 


 

갈등속의 이미지들

 

마그리트에 의하면 그림의 주요한 기능은 인식의 도구로서,

"일상적인 방식과 다른 방법"으로 보도록 강요함으로 인해 시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림을 구성하는 일상적인 대상들이 초현실적인 성질을 획득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기 위한 여러 과정들 중 하나는, 일상과 초현실 사이의 갈등 속에 숨어 있는 초혼적이고 시적인 힘을 더욱 활동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사물 사이에서 충돌적인 연상작용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성취하기 위한 메커니즘은 위쪽에 있어야 할 사물의 위치를 아래쪽으로 위치시키거나 그 반대로 하여 변화시키는 것에서부터, 그 대상을 포함하고 있는 공간과 대상 사이의 비례의 관가ㅖ를 변화시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조작의 목작은 모든 것이 항상 고정되어 나타나는 곳에 교환할 수 있는 대체물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시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상형문자를 풀이하듯이 우리 내면의 깊숙한 곳에 맥박치는 관습적인 질서를 복원하는 이성적인 설명으로는

이 선적이고 나무랄 때 없는 수수께끼의 암호를 풀 수 없다.

 

감상적인 대화(웅변가들),  1937

그림의 제목이 암시하듯, 달빛 아래서 사랑스럽고 신비스럽게 진행되는 대화를 표현한 듯 보이나

대포와 선반 작업으로 만들어진 손잡이 모양으로 단순화되어진 두 형상은 싸움을 하고 있는 두 인물을 암시하고 있다.

 

 

자연적인 만남,  1945

오른쪽의 형상이 손에 들고 있는 나뭇잎은 또 다시 1929년의 <단어와 이미지>와 같은 맥락을 담고 있다.  

<단어와 이미지>에서는 대상을 위한 대안적 이름으로써 나뭇잎을 대포라고 이름지었다.  

창문들과 두 인물이 있는 자연은 불확실한 관계를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억,  1938

마그리트가 이런 주제로 그린 초기 작품들 중 하나이다.

관자놀이를 다친 고전적 조각상의 머리는 조르지오 데 카리코의 <사랑의 노래>를 참조하였으며

부차적으로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도 참조하였다.  

그가 참조한 이 두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신비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이다.

   

 

 야간 보초병의 방,  1959

대상을 내포한 공간과 대상과의 비례의 교체가 가장 명확하게 표현된 작품들 중 한 예이다.

 이런 모순된 조작은 열려진 공간인 실외의 사과와 주위 환경에서부터 고립되어

인위적인 방 안의 닫혀진 공간 안에 있는 사과의 본성 사이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아름다운 현실,  1964

이 그림에서 사과와 테이블 사이의 관계는 비례나 그 상대적인 위치,

바다 또는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공기중에 떠 있는 듯한 장소 설정등에서 완전히 도치되어 나타난다.  

식탁 위에 먹을 수 있는 과일로서의 사과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은

위와 같은 그림의 표현을 통하여 엉뚱하고 파괴적인 역전을 이하게 된다.

 

 

 사람의 아들,  1964

마그리트는 두 개의 다른 대상들, 그러나 형태적으로 비슷한 대상 사이에 있는 상호 교체성의 관념을 암시하고 있다.  

그림의 시적 영역에서 머리와 사과는 서로 비숫한 대안물로서 중첩되어 표현되었다.  

<관념> 또는 <삶의 예술>과 같은 다른 여러 그림에서 이 상호교체의 기법이 완성되었는데

그 그림에서는 사과와 태양의 표면이 그림 안에서 머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위험한 관계

마그리트 그림에서 거울은 자주 사용되지 않는 모티브이다.  

거울이라는 회화적 장치는 재현되는 풍경에 혼돈을 일으키게 하는 창문 앞에서 그려진 그림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반사된 이미지가 거울 뒤에 숨겨진 이미지를 완성시킴과 동시에 모순되게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분명히 갈등에 놓인 이미지의 효과를 가장 명확하게 나타내는 작품들 중 하나이다.

 

 

 personal values

개인적 가치,  1952

쓸모없는 기계와 오브제로 야기되는 당혹성은

파카비아나 뒤샹과 같은 다다와 초현실주의와 연관된 화가들이 선호하는 주제들 중 하나이다.  

대상 표현에 있어 비레의 교체는 그 대상의 적절한 사용 가능성의 힘을 상실케 하고

그것이 가지는 현실 속에서의 전복의 힘을 촉진시키고 있다.  

대립의 놀이는 마그리트의 특징적 요서인 그름낀 하늘로 방을 형성하는 벽의 변형을 통하여 절정을 이룬다.

 

 

진리의 탐구,  1966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전경의 종과 물고기의 신비로운 대립과 병행하여

빛과 어두움에 의한 실내와 실외의 대립이 이 작품속에 나타나고 있다.

 

 

결혼한 사제,  1961

마그리트는 적어도 이 작품이 제작되기 10년 전부터 이 작품과 같은 주제의 다른 변형된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바비 다우레빌리에 의해 쓰여진 이야기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는 결혼한 사제와 그의 딸이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가면은 사과를 의인화시키고 있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사과가 두 개로 표현되어 있다.

 이 사과의 제시는 제목을 암시하면서 은연중에 불온한 성격을 시사하고 있다.

 


 

오브제의 변형

 

가장 힘들게 처리되는 전이의 방법들 중 하나는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서로 다른 두 갈래길의 중가나에서, 혼성의 인간과 대상을 실험하고 변이의 현상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사물은 기능적으로 관련된 다른 사물 - 사람의 발과 사람의 형태를 가진 옷과 신발들 - 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또는 형태적 유사성에 의해 혼동을 일으키는 전이 - 담배로 변화하는 물고기 - 는 언어가 기초하고 있는

인습의 유악한 성질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 주제는 마그리트의 모든 작품에 뿌리 깊게 존재한다.  

그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이미지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써 놓은 작품에서,

우리들은 재현된 대상 앞에 있는 것이지 대상 그 자체 앞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가장 순수한 외적 형태 안에서 신비로움의 필요성에 대한 숙고로 옮겨가고 있다.  

1929년 "지금 쓰고 있는 단어보다 더 좋은 단어를 찾을 수 없는 그러한 대상의 이름은

대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라고 명백히 쓰고 있다.

 

 

 오브제에 대한 은유(재털이를 위한 습작),  1933

오브제의 기능에서 의미적인 전염에 의해 전이된 오브제의 경우를 나타내는 작품으로,

이 작품에서 전이된 오브제는 파이프이다.  파이프는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자주 사용되는 상징들 중의 하나이다.

 

 

 공동의 창작,  1935

 

 

 예외,  1963

위 두 그림 사이에 나타난 대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변형 방법의 카테고리는 각각 다르다.  

첫 번째 작품의 효과는 인어와 같이 성스럽게 변이된 이미지 도치의 범주에 들며,

두 번째 작품에서의 변형은 완전히 다른 대상의 형태적 공통성에 기초하고 있다.

 

 

 보물섬,  1942

 

 

 자연의 은총,  1962

마그리트의 그림에서는 새, 나무, 그리고 나뭇잎들이 항상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새들은 나뭇잎으로 변형되었고 넓은 대양에 떠 있는 상상의 섬과 가지가 무성한 나뭇잎에 신비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내면의 응시,  1942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변형이 완성에 도달될 수 있다는 복합적 의미를 나타내는 좋은 예이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새의 잎막과의 유사성은 나무, 가지, 나뭇잎과 같은 대상들의자연스러운 과나계 속에서 창출된다.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나뭇잎으로 표현되어 더욱 호소력 있는데 새들과 나뭇잎,

그리고 실내 상황의 비례관계로 인해 화면에 모호함을 더 증가시키고 있다.

 

 

 장롱 속의 철학,  1947

감추어져야 할 어떤 신체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는 장롱 속의 옷이란 주제는

이미 10년 전에 제작 되었던 <마크 세네트의 기억>이라는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마그리트는 발과 신발의 결합에 대해서 "괴물같은 관습적인 힘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물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괴기스럽고 해학적인 괴물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결코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위협스럽지는 않다.

 

 

the domain of arnheim

 아른하임의 영토,  1962

 

이 작품에 대하여 마그리트는 "에드가 알란 포우가 무척 좋아할 예술까적 상상력을 현실화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마그리트의 말에 의하면, 산은 "두날개를 펼친 새의 형태 안에서 정확한 형태를 발견하고 있다."  

전경에 보이는 충문 난간 위에 있는 새둥지와 그안의 알들과의 관게에서 산의 변이가 분명해진다.

 감상자로 하여금 마치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환상적인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림들은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보이는 주제이다.

 

 

 

우상,  1965

새는 해변가의 바위와 같은 석화된 성질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새는 비행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벼움과는 모순되는 세계로 잠입하고 있다.

  

 


 

 부재와 존재

 

 목욕하는 사람,  1923

초기작품에 나타나는 선과 기하학적 요소에 의한 평면적 양식화는 들로네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나타내는데, 이

것은 초현실주의의 도래와 함께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사라진다.

 

 

 즉흥적인 대답,  1933

이 그림은 "아파트 실내의 닫혀진 문 위에 뚫려있는 모양이 갖추어지지 않은 구멍을 통하여저녁을 나타낸다."

라고 작가 자신이 말하고 있다.

 

 

 사랑스런 원근법,  1935

중재적 특성을 지닌 문과 그 특성을 잃어 버리게 한 구멍과의 문제를 다시 한번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외부 공간은 나무이자 동시에 나뭇잎인 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다정한 진실,  1966

이미 그려진 그림 위에 또 다시 그림을 표현하고 있는 다른 방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굳어진 시각의 성격에 대한 계속되는 작가의 고찰을 반영한다.

 

 

 들판3,  1927

이 그림에 표현된 몇 그루의 이상한 나무들은 천천히 타오르는 불에 의해 사라지고 있는데

아직까지 막스 에른스트의 초기 콜라주 흔적을 보이고 있다.

 

 

 위대한 가족,  1947

"넓은 하늘 안에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고 있는 새"라고 시인 양리 미쇼는 이 그림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는 실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사이의 상호 경게선을 표현한 좋은 예들 중 하나이다.

 

 

 불의 계단,  1939

마그리트는 이 이미지 않에서 신비한 암시를 담고 최초로 불을 발견했을 때의 감정을 재창조하고 있다.  

마그리트는 그림이 "작은 구개의 돌조각을 충돌시켜 불을 만들어낸 선인류가 가졌을 동일한 감정을

경험해볼 수 있는 특권을 나에게 수여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이런 시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화가는 종이와 타지 않는 대상들을 화염 속에 제시하고 있다.

 

 

 완성된 정의,  1958

고대 호미관 의상으르 입은 인물은 해리 토르치너이다.  

그는 변호사이자 마그리트의 친구였고 마그리트 작품의 연구자이자 소장가였다.  

머리 위에 있는 기구는 이 인물이 여행하고 있음으로 암시하고 있다.

 

 

 signature in blank

백지 위임장,  1965

이 작품의 제작방법은 창문 앞에 놓여진 그림을 표현한 작업들의 또 다른 변이 형태의 작업이다.  

두 나무기둥 사이의 나뭇잎들의 부분은 뜻하지 않게 나무의 기둥과 말을 나타내는데

말의 궁둥이와 왼쪽 다리는 또한 말이 지나가고 있는 나무들과 공간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르누아르 시기

 

 마그리트는 마치 막대기로 조용히 고여있는 잔잔한 저수지의 물을 휘젖는 사람처럼

동요의 징후를 도입함으로써 기법에 있어서 두 번의 방향전환을 감행하였다.  

 

그 첫 번째 경우는 1943년으로, 르누아르의 말기 작품에서 보이는 자유롭고 질감있는 붓질로 그려진

밝은 색상의 이미지가 검붉고, 중성적이고 객관적인 트그징으로 대치되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서의 수사학적 장치는 이전과 같았으나 바뀐 것이 있다면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이미지에 대한 인식 기준이다. 

 명랑하고 삶에 대한 찬미로 가득찬 모티브를 주제로 선택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으로 어두운 현실과 대조적으로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여야만 한다.  

이것은 화가가 이러한 종류의 작업을 통해서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역전된 내용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어떤 힘의 실험에 그의 작품을 위임하고 있다.  

마그리트는 바세 시대라고 불리어지는 1948년도의 작품 이후 잠시 포기해 버린, 그의 습관적인 회화 제작의 과정으로 복귀하였다.

 

 미소,  1944

어린시절의 마그리트는 여름 햇빛이 한창일 때 친구와 함께 묘지 앞에 있는 어두운 납골당을 자주 방문하였는데

이 작품은 화가의 어린 시절의 몽상 속에서 형성된 인상을 다시 창조한 듯 보인다.

 

 

첫날,  1943

 아마 이 작품은 르누아르가 레 콜레트에서 그의 말년에 그렸던 그림들에 가장 접근하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기쁨으로 충만한 인상은 예전의 작품 <영원한 봄>에서 시도되었던 바이올리니스트의 다리 사이에 위치해 있는

발레리나의 시적 효과에 의해 계속되며 전체적으로 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빛의제국

 

1948년부터 마그리트는 같은 주제의 변형으로 이루어진 10개 이상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마감하였다.  모든 작품은 <빛의 제국>이라는 공통의 제목이 붙여져 있다.  

작품에 보이는 것은 창문 안에서 발산되는 빛이나 실외에 있는 하나나 또는 여러개의 가로등이 발산하는

빛에 의해 조명되는 잎이 풍성한 나무와 그 사이에 있는 집과 밀집된 건물뿐이다.  

이상한 것은 하늘인데, 밝고 부드러운 구름으로 덮힌 대낮의 푸르른 하늘이 그림의 화면을 덮고 있다.  

전기불빛이 주의를 끌고 있는 밤의 풍경과 양립할 수 없는 푸른 대낮의 풍경은 감상자가 주의깊게 살필 때에만 인지된다.  이

러한 연작은 모두, 회화는 사고를 나타내며 일상적인 삶의 경험에서 확실성을 갖지 못한 현실의 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한,

마그리트의 예술적 이상을 그린 선언적인 작품이다.

 

 빛의 제국2,  1950

그림의 부분 묘사에서 보이는 세밀함은 화면의현실적인 불가능성을 은폐시키고

그림을 역설적으로 더 불안정하게 나타낼 목적을 가진 회화적 전략이다.

 

 

 빛의 제국,  1954

마그리트가 이 제목으로 그린 여러 작품들 중 몇몇 작품들에서는 그림에 표현된 장면이 호수 주변에 위치되어 있어

 물 속에 반사된 가로등 불빛이 전체 화면의 평범한 효과를 더욱 강화시킨다.

 

 

 빛의 제국,  1948

이 주제로 작업한 초기 작품들 중의하나로 그림 안에서 밤의 풍경과 낮의 풍경이 각각 화면의 반을 차지하며 되치되고 있다.  

화가는 빛을 발산하는 창문을 뒷 건물에 배치하여 숨어있는 듯이 보이게 했다.

 

 

  빛의 제국,  1967

마그리트는 그가 죽을 때까지 이 연작에 완전히 사로잡혀 몰두하였다.  

그렇게 때문에 이 작업을 완전히 끝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죽기 얼마 전에 완성한 것으로 후시 작품의 한 예이다.

 

 

  빛의 제국,  1953

 

전경에 묘사된 대상들이 매우 멀리 있으므로 새부 묘사는 보이지 않게 된다.  

대낮의 밝은 하늘 빛과 아랫부분의 저녁 그림자와의 대비는 화면 전체의 수수께끼와 같은 속성을 더욱 명백히 나타낸다. 

 


 

 

the poetic world II

1939

 

 perspective the balcony by manet 

1949

 

 recollection of travels III

 1951

 

1957

september 

 

1960

the tomb of the wrestlers

 

 

1962

wasted effort

 

1967

the art of living

 

 

Rene Magritte는 벨기에의 작은 마을 레시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가족이 여러번 이사하였기 때문에  그의 어린 시절을 여러 다른 장소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양복점을 경영하였고, 결혼 전에 양장점과 제모점을 경영하였던 어머니는 1912년 샤틀레의 샹부르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영향은 20년대 후반의 몇몇 그림에서 느껴지는데 - 중심의 역사(1927), 사랑하는 사람들(1928) - 이 그림들에 나타나는 천으로 덮혀진 인물들의 머리는 강으로 인양되었을 때 셔츠로 얼굴이 덮혀 있었던 어머니 시신의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의 가족은 다음해 샤를르루와로 이주하였으며  그 도시에서 조제트 베르제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1920년까지 만나지 못하다가 1922년 다시 만나 결혼한 후에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마그리트는 여름 햇빛이 한창일 때 친구들과 함께 공동묘지에 붙어 있는 어두운 납골당을 자주 가곤 했다고 회상한다.

 납골당 출구 가까이에 있는 포플러 나무에 투영된 화가의 이미지는 막연하게나마 회화의 계시적인 힘을 가진 마술적 요소와 같다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로서의 출발은 1916년에 들어간 브뤼셀의 미술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어러마 후 이탈리아 미래파 화가들의 작품, 특히 키리코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지배적으로 받게 되나 그 시대의 다른 여러 화가들처럼 처음에는 인상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화가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20년대 초반 마그리트는 피터스 라크로와 가(家)를 위해 색종이 디자인을 하고 광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이어 나갔다.  동시에 그와 함께 벨기에 초현실주의를 현성하게 되는 여러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도 가지게 된다.  피에르 브르조아, E.L.T. 메젠느, 카미유 괴망스, 마르셀 르콩트, 폴 누제, 앙드레 수리 등이 그들이다.

 

20년대 중반 그는 대상의 외향을 아무 꾸밈없이 차갑게 재현하기 위해서 전통회화기법과 색상의 대비를 미련없이 포기하였다.  

원칙적인 시각효과로서 대상들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는 앞으로 제작될 그의 작품에서 기본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의 전 창작 시기동안 계속하여 나타났다.  1927년 브뤼셀의 엘 센타우르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때 이미 이러한 그의 작품관이 정립되어 그림에 나타난다.  마그리트와 그의 부인은 3년 동안 파리 근교의 페로 쉬르 마른느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여기에서 파리에 화랑을 연 괴망스의 중재로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화가드르과 접촉을 시작하였다.  마그리트는 이들과 함께 - 막스 에른스트, 장아프로, 미로, 달리 - 1928년 그의 친구이자 가까운 유대관계를 지속해 온 괴망스의 화랑에서 주최된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그는 초현실주의의 모든 활동에 가담하였고 "초현실주의 혁명"의 출간에도 힘썼으며, 이 잡지의 마지막 호에 자신의 회화적 이상을 확실하게 선언한 '단어와 이미지'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비록 뜨겁지도 소원하지도 않은 관계였지만 마그리트는 죽을 때까지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그리트는 자신의 회화관에 충실하여 그의 회화적 독자성을 지켜갔다.  회화적 일관성이 너무나 독보적이어서 그의 작품을 통해 시대 구분이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1930년에는 다시 브뤼셀에 정착하였으나 파리의 그룹과는 계속적으로 접촉하여 1934년 "초현실주의는 무엇인가"라는 브르통의 책 표지에 '폭력'이라는 작품을 실었으며, 또 1937년 '미나타우로' 10호의 타이틀 표지에 작품을 실었다.  또한 여러 다른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에도 참여하여 뉴욕에서 그의 첫 전시를 개최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상승일로의 화가에게 잃어 버린 시간과 같았다.  전쟁이 끝날 부렵 그는 벨기에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30년대에 두 번이나 이 단체에 참가하였으나 예술적 문제에 있어서의 반동적인 입장은 그로 하여금 곧 탈당하게 만들었다.  그는 계속하여 벨기에의 옛 초현실주의 동료인, 노지 스쿠테네르와 마리엔과 같이 공동 작업하여 현실 참여적인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회복하였다.

 

   1943년과 1948년에 그의 작품에 있어서 기존 작품과는 단절을 보이는 두 시기를 맞게 된다.  

그 하나는 르누아르 시기이며 또 하나는 바세 또는 투박한 사대라 불리우는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에는 르누아르의 마지막 시기에 그려진 여성 누드의 양식에 가까운 회화적이고 붓자국이 잘 드러나는 양식의 몇 작품을 완성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매끄럽고 차가운 관습적인 특성을 무시하면서 큰 붓질로써 기본적인 형태를 그린 25점의 작품이 이 시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되지 않고, 20년대 후반부터 발표되었던 그만의 양식으로 곧 되돌아온다.

 

1950년대에는 브뤼셀의 왕립 극장 회랑의 천장이나 - 1952년 파울 델보와 함께 그의 그림을 전시한 장소이기도 하다 - 크노케 르 쥬트의 카지노 응접실을 장식하는 등 여러 벽화와 장식 제작이 눈에 띈다.  1954년 브뤼셀의 "미술 궁전"에서의 대회고전은 그를 벨기에 최고의 현대미술가로 만들어 주었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잡지 제작에도 협력하였고 1957년부터 조제트와 그의 친구들이 출연하는 몇몇 단편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1967년 사망 직전까지 뉴욕의 현대 미술관의 대회고전을 포함한 많은 국제적인 전시를 개최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반복되는 이미지는 모든 현대 미술의 뛰어난 특징들 사이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그리트와 초현실주의

파리의 초현실ㅈ의자들의 대열에 참여한지 2년 후인 1929년 12월에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자들의 기관지로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가능케 해주었던 "초현실주의 혁명"에 초현실주의에 대한 그의 주요 공헌이라 할 만한 글을 발표하였다.  이 잡지에 발표한 "단어와 이미지"라는 글에서는 18개의 작은 컷으로 이루어진 경구적인 짧은 내용을 언급한 네모난 구획의 작품을 다루었다.  여기에서 "대상은 그 이름이나 이미지가 가지는 똑같은 기능을 결코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馬)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말과 똑같이 닮은 모습이 그림 안에 그려져 있고 한 사람이 '말(馬)'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다.  "대상으로서의 말은 그 이름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물을 잘 납득시킬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말 그림에 이어 나뭇잎의 그림에 '대포'라는 단어가 연속되고 있다.  '태양'이라고 말하고 있는 한 여자 그림 아래 "단어는 현실에서 그 대상이 대체될 수 있다"라는 문장의 주해가 달려있다.

 

 이런 간력한 선언은 르네 마그리트의 모든 작품의 특성에 대하여 정확한 개념을 부여하고 있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확실하게 믿고 있는 대상들과 그것들의 이름과 의미와 기능에 있어서, 그 관계는 시리제로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미약하다는 인식 위에 기초하고 있다.  마그리트가 그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본질적인 가치를 가진 현실의 여러 다른 조직체를 시적인 은유의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색, 질감, 또는 그림자와 빛의 대비와 같은 것이 본질적인 가치로 인식되던 전통회화와는 구별되는 개념적 회화이다.  

 마그리트의 목적은 정신의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현실의 신성하고 체계 잡힌 질서를 반박하는 계시적이고 비평적인 예술 창작에 있다. 비록 다른 초현실주이 작가들의 시도와는 뚜렸이 구별되는 차이점이 있으나 초현실주의 운동과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그리트는 1927년 파리에서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기 이전부터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활동을 하였다.  이 벨기에 화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작품들은 20년대 초에 알게 된 키리코의 작품이었다.  파리 초현실주의 예술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문필가인 브르통, 아라공, 에르와르, 아르쿠르에 의하여 구성되어졌고 그 중심적 내용은 꿈과 욕망의 세계를 해방시킴으로써 예술과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채택하였다.  초현실주의 회화는 시인들에 의해서 여러 실험을 통하여 개척된 길을 따라갔다.  가장 힘든 것은 자동기술법적 과정들이 조형 예술가들에게는 가능성의 한계로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화가들이 이 과정을 포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화가들은 그들의 회화작업의 중요한 원천으로서 프로이드적 무의식의 세계를 충실히 반영하였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는 달리 꿈과 욕망이 그의 회화의 기원이 아니었으며 일상 현실에 대한 내용의 역전을 통해 낯설은 현실을 지성적으로 모색했다.  아마 이 때문에 그와 브르통 - 다시 말해서 교조적인 초현실주의 - 과의 관계는 항상 미약했으며 거리감을 두었으나 한번도 완전한 결별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친숙한 대상들과 재현된 대상들 사이에 비정상적인 관계를 이룩하면서, 객관적인 방법에 의한 세부 묘사에 따라 재현된다.  이런 선회는 단순한 탈문맥성에서 출발 가능한 다양한 메커니즘으로부터(공 모양, 또는 나무 손잡이로 형성된 숲, 하늘을 날아다니는 종) 갈등적인 연상방법으로(가슴은 눈으로, 성기는 입으로 형성된 얼굴이자 동시에 누드 토르소), 또는 모순적인 방법에 의해(열려진 문 위에 걸려 있는 구름, 재현된 실제 풍경과 그려진 풍경과의 혼돈) 창출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그리트는 마치 광고언어처럼인접성과 유사성에 의해 대상들 사이에 세워진 연상작용에서 모든 가능한 조자가을 뽑아 내어 이개념적 조작을 점점 더 조탁하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근접성에 의하거나 또는 대립에 의한 사물들이 가지는 관계성을 지속하면서, 사과나 태양과 같은 둥근 모양으로 사람의 머리를 대신하게 하거나, 나뭇가지처럼 나뭇잎의 잎맥 위에 새들을 앉힌다든지 하여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엉뚱한 결합을 통해 다른 사물로 대상들을 변형시킨다.

 

 마그리트의 이미지는 마치 은유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이은유는 시적인 본성을 지진다.  이미지들은 가끔 불안정하지만 달리, 에른스트와 다른 초현실주의자의 이미지처럼 무섭게 소름끼치는 것은 아니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어떠한 비극적 파토스도 현실과 신비 사이의 경계 없는 연속에 의해 와해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그가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 제작한 광고 그림에서처럼 방관자로서 느끼는 중성적인 형태로 재현되어져 그림 속에 그려진 대상의 조형적인 표현력의 부재와 관련된다.  이러한 선택은 마그리트 회화의 개념적 특성을 더욱 강화시키며 그림에 나타나는 대상에 대한 무관심성은 마르셀 뒤샹의 레디 메이드와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보이는 명백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의 성격을 근접시키고 있다.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차가운 회색조의 단조로움 안에는 사물들과 우리 사이의 연게성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모든 암시의 힘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이는 20세기 예술에 있어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회화적 사조보다 개념적 사조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지성적인 전략 가운데 하나이다.

 

 

 

 

이루마-Because I Love You (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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