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명
김소형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빈 병이 혼자 운다
잘록한 허리로 책상 끄트머리에 서서
지잉지잉
무엇이 들어가 너를 울게 할까 생각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흘렀고 꽃이 시들었고
너는 전화를 끊었고 문이 닫혔다
우리는 서로 다른 주파수로 울었을 뿐이다
닿지 않는 소리들이 문밖에서 살다가 쓸쓸히 죽기도 하고
먼 데 있는 것이 푸르르 날아와 몸을 울게도 하는데
키 작은 소리들이
애써 닿으려 주파수를 높이고 있다
달의 뒷모습도 모르면서 계수나무가 있다고만 믿어
밤마다 물을 준 사람처럼
종이 뎅뎅 울린다
비어야 울 수도 있다지
아무도 듣지 못한 소리가
내 몸속에서 한 세상을 살다 간다
----애지문학회 사화집 {북극 항로}에서
공명共鳴이란 무엇일까? 공명이란 진동계의 진폭이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현상을 말하지만,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외부에서 진동계의 고유 진동수와 같은 힘을 주기적으로 받을 때 일어나는 것을 말하고, 두 번째는 남의 생각이나 사상 등에 깊이 있게 감동할 때 일어나는 심리적인 현상을 말한다. 아무도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빈 병이 혼자 운다”라는 시구는 바람이든, 그 무슨 소리이든지간에, 첫 번째의 자연의 현상에 맞닿아 있고, “우리는 서로 다른 주파수로 울었을 뿐이다”라는 시구는 두 번째의 저마다 외롭고 쓸쓸한 우리 인간들의 심리적인 현상에 맞닿아 있다.
참기름병이나 포도주병이 꽉 차있다면 그 병들이 울 리가 없고, 너와 내가 만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만끽하고 있다면 우리가 서로 다른 주파수로 울 리가 없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빈 병이 혼자” 울고, 너와 내가 전화를 끊고 서로 다른 주파수로 울었다는 것은 빈 병과 우리는 존재의 결핍 때문에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울음은 존재의 결핍----가난, 생존경쟁, 외로움, 쓸쓸함 등----의 소산이며, 그 어떠한 대책이나 반격의 힘을 가지지 못한 자의 절망적인 비명 소리라고 할 수가 있다. 울음에는 참기름의 고소한 맛도 없고, 울음에는 포도주의 달콤한 맛도 없다. 너와 내가 만나 즐겁고 기쁘게 노래할 이유도 없고, 그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함께 해야할 동기부여나 그 가능성조차도 없다. 김소형 시인의 [공명]은 자연적인 울음과 심리적인 울음이 상호 겹쳐져 있는 ‘공명의 현상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자본주의는 악마의 선물이며, 이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끝끝내는 ‘인간 소외’를 앓다가 죽게 될 것이다. 컴퓨터, 스마트폰, TV,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수많은 통신기기와 함께 다양한 대화의 출구가 열려 있지만, 서로가 서로의 이기주의의 발톱만을 드러내게 된 결과, 그 어느 누구와도 함께 살지 못하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빈 병처럼 혼자서 울다가 죽어가게 되는 것이다. 김소형 시인의 [공명]은 혼자 우는 울음이고, 이 혼자 우는 울음은 우리로서 “서로 다른 주파수로” 울고 있는 불협화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너는 전화를 끊었고, 우리는 서로 다른 주파수로 울었다. “닿지 않는 소리들이 문밖에서 살다가 쓸쓸히 죽기도 하고”, “먼 데 있는 것이 푸르르 날아와 몸을 울게도” 한다. “키 작은 소리들이/ 애써 닿으려 주파수를 높이고” 있는 울음도 있고, 이러한 울음과 울음들 속에서 “달의 뒷모습도 모르면서 계수나무가 있다고만 믿어/ 밤마다 물을 준 사람처럼” 더없이 외롭고 쓸쓸한 세상을 살다가 가게 된다.
김소형 시인의 [공명]은 울음을 우는 자와 울음소리를 듣는 자의 물리적이고도 심리적인 관계의 산물이면서도 그 상호 이질적인 불협화음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울음에도 기쁘고 행복한 울음이 있고, 울음에도 슬프고 불행한 울음이 있다. 기쁘고 행복한 울음은 그 울음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는 울음이지만, 슬프고 불행한 울음은 그 울음을 함께 하고 들어줄 사람이 없는 울음이라고 할 수가 있다. “종이 뎅뎅 울린다”는 것은 인간과 지구촌의 조종弔鐘 소리와도 같고, “비어야 울 수도 있다지/ 아무도 듣지 못한 소리가/ 내 몸속에서 한 세상을 살다 간다”라는 시구는 수많은 인간들 속에서 모두가 다같이 ‘소외라는 병’을 앓다가 죽어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컴퓨터는 악마의 수호신이고, 돈은 악마의 꽃이고, 탐욕은 악마의 정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컴퓨터와 돈과 탐욕이며, 이 ‘삼대 화근’에 의해서 우리 인간들의 삶과 그 모든 사상들이 갈갈이 다 찢겨져 나간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돈꽃이 피면, 상호간의 증오와 질투가 양념처럼 배어들고, 끝끝내는 그토록 사납고 추악한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서로간에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소송전을 벌이게 된다. 부모형제도 없고, 친구도 없고, 원군도 없다. 오직 있는 것이라고는 탐욕과 돈뿐이며, 지옥으로 가는 고속열차표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이 그리워서 울고, 혼자가 두려워서 운다. 너무나도 쓸쓸하고 비참해서 울고, 끊임없이 자살을 생각하며 울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만나면 사생결단식의 싸움만을 하게 된다.
종이 뎅뎅 울린다. 인간과 지구촌의 조종弔鐘 소리가 들려와도, ‘돈은 주인이 아니고, 우리들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든 악마’라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종이 뎅뎅 울린다. 아무도 듣지 못한 소리가 우리 인간들의 몸속에서 한 세상을 살다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