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역자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대부분 하나님의 사랑을 물리적으로 느꼈던 경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기름이 머리부터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든지, 하나님의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느낌이었다든지...
앤드류 워맥 목사님도 1년간 간절히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열심히 구했는데 어느 철야기도 시간에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고 그것이 4개월 반 이상 지속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감정적 경험이 사라진 뒤에는 그 이전보다 더 비참한 상황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뒤로 오직 말씀만 믿기로 선택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지금까지 가르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내 쪽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데 경험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아주 매우 드뭅니다. 이러한 경험은 대부분 말씀과 기도 등으로 하나님께 매달릴 때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 문제는 내가 하나님께 매달린다고 해서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경험은 어느 정도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는 얘기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물리적, 감정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인데 평생 저를 괴롭히던 인간관계의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날이었습니다. 타인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진리를 처절하게 깨닫게 된 날이었죠. 그날 그 문제로부터 도망치듯이 교회에 갔는데 찬양시간에 일어서서 찬양하던 제가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제 가슴 팍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물리적으로 느껴져서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 문제로 인해 제가 느꼈던 절망은 그 당시까지 경험했던 것 중에 최악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물리적, 감정적 경험이 없었다면 제가 오직 믿음으로 그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예배가 끝나고 제 옆에서 찬양하던 친구가 자신이 본 저에 대한 환상을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마치 꽃병처럼 서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꽃병에 물을 채우듯이 저에게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답니다. 물이 다 채워지자 하나님께서 그만 멈추실 거라 예상했는데 물이 흘러넘치도록 계속 부으시더랍니다. 그리곤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흘러 주변을 모두 적셨다고 합니다. 그 얘길 듣고 있는데 ‘밀려오는 파도에 주저앉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구나.’하고 깨달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이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확신하게 해 주었는가? 아닙니다!!! 그러한 경험에 믿음을 두었다면 항상 그런 경험을 쫓아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분명 그 당시 저는 평생 그 어느때 보다 하나님의 위로와 개입하심이 필요했고 그러한 경험과 친구의 환상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경험이 저의 믿음을 완성시켜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된 것은 오직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제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침내 깨닫게 된 사건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아마 실망하실 수도 있고 큰 계시를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역시 유학시절 어느 날, 저는 그 사랑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믿기로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과(갈 2:20), 아가서의 모든 사랑고백이 저를 위한 것이라고 '믿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부터 그 사랑을 묵상하며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가 흔들려도 그것을 주님의 사랑 고백으로 봤고, 비가와도 주님의 사랑이 나에게 내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이 나오면 나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여겼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보다 더 힘든 일을 나를 위해 먼저 겪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더 집중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아버지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게 된 계기는? 딱히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것이전부입니다. 물론 그때까지 배웠던 바른 교리가 이 결심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제가 감정을 믿음의 근거로 삼지 않고, 보통 “초자연적”이라고 하는 그러한 물리적인 경험을 추구하지 않는 이유는 저에게 그러한 경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런 경험들을 소홀히 여겨서도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그러한 경험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성도들을 핍박하러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처럼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다가도 이러한 경험을 (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할 수도 있겠지요. 반면 기도원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며 구한다 해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꼭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런 경험 없이 믿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요 20:29).
여러분들께도 경험이나 감정이 아닌 영원하신 반석,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선택하는 이 방법을 자신 있게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