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장 15-18절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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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나의 선택입니다. 선택은 결과를 낳습니다. 짜장면을 주문하면 짜장면이 나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아이스 아메리카가 나옵니다. 신앙생활이 이럴수만 있다면 정말 편할겁니다. 말씀을 선택할 때 곧바로 축복이 따른다면 모두가 말씀을 선택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결과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결과를 알아서 믿는 게 아니라 믿으면 알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을 다 알아서 믿는 게 아니라 믿으니 알게 되는 이치입니다.
교회 안에는 구원이 흔들리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 숫자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하지만 2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한 분, 직분이 권사 장로인 분들도 구원 받았냐는 질문에 죽어봐야 안다고 답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겁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이 없는걸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복음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겁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게 됩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 받음을 믿는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착한 행실로 구원받으려는 사람은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은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천국의 사람, 구원받은 사람임을 인정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룻은 왜 나오미를 떠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한 경우와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은혜이고 두 번째는 고백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했다고 구원을 스스로 이룬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앙적 고백을 할 뿐입니다. 룻은 첫째 며느리였습니다. 오르바는 둘째 며느리입니다. 둘다 시어머니를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길이 달라집니다. 오르바의 길은 15절에 기록됩니다.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은 자기가 믿던 신에게 갔다는 겁니다. 오르바가 믿던 신은 모압의 신입니다.
하지만 룻은 하나님께 가길 원했습니다. 16절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믿음은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보면 압니다. 결국 선택이 자신의 신앙입니다. 믿음은 기간과 직분으로 판단해선 안 됩니다. 그의 일상을 보아야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의 수준은 일상에 드러납니다. 오르바는 자기 신을 따랐고 룻은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 갈림길에 무엇이 있었는지 보십시오. 자신의 유익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가면 더 이상 인생의 유익이 없겠다는 판단을 한 오르바는 자신에게 더 유익한 길을 선택합니다.
앞길이 캄캄해도 하나님을 선택한 룻의 결과를 보십시오. 그는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릅니다. 말이 많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게 아니더군요. 말은 짧을수록 좋고, 삶은 밝을수록 좋고, 믿음은 강할수록 좋습니다. 룻의 말을 들은 나오미의 반응을 보십시오. 18절입니다.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룻의 결심은 나오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저는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진심과 사심은 눈빛이 다릅니다. 진심은 분명하고 사심은 난잡합니다. 진심과 사심은 일상이 증명합니다. 나오미가 룻의 이 말을 듣고 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룻의 일상을 알기 때문입니다. 룻은 한번 말한 것은 지키는 며느리였을겁니다. 말과 삶이 같은 며느리였을겁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난다고 해도 한 번 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꼭 예수님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배고픔, 매 맞음, 죽음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예수님의 삶 전체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누군가에게 신뢰를 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닮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십시오. 믿음은 예수 닮음입니다. 견고한 믿음으로 영향력을 주는 믿음이 되십시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무엇일까요? 지금 하나님께 삶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일상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