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 나이자랑
실로 오랜만에 직장에서 연을 맺은 선후배 전 현직 몇이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전직들이 몸담았던 시기에도 어려움은 있었지만 무난히 극복했고 세계에 우뚝한 초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한 공기업 한전이었다. 그 바람에 한때는 자타가 부러워하면서도 다소 비아녕적인 ‘신의 직장’이란 찬사를 받기도 했었다. 북과 손잡은 집단이 정권을 잡아 그쪽에다 원전을 지어주겠다고 무리수를 두면서 국내 원전을 내려앉혔다. 그 여파로 지금은 신의 직장이 아니라 이직을 고민하는 후배들까지 생겨났다는 말을 듣곤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오랜만의 선후배간 만남이라 지난 세월 속 서로 공유한 옛 추억을 더듬으며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행과 헤어져 혼자서 드넓은 백사장을 들어섰다. 해수욕 시즌에 비하면 백사장은 텅 빈 느낌이지만 적은 탐방객 숫자에도 외국인 비율은 높았다. 해운대 주민들로 보이는 남녀노소가 가끔씩 맨발로 해변을 거닐며 파도에 발을 적시기도 했다. 난 외국인 중년 부부와 젊은 연인들이 찍는 사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폰카메라를 건네받아 좀 더 멋진 배경과 포즈로 바꾸어 셔터를 눌러주기 시작했다. “원더풀!”이란 찬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지에서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건지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해운대 백사장을 찾을 때마다 혹시 책을 읽는 사람이 있나하고 버릇처럼 살피게 된다. 오래 전, 하와이 와이키키 백사장에서 책을 읽는 노인들을 만난 이후 생긴 버릇이다. 그곳 남녀불문 노인들이 수영복이나 비키니에 타월 하나만 어깨에 걸치고는 아예 의자에 편하게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진 모습들이 얼마나 좋아보였던지 모른다. 코로나 이전 해운대 백사장을 대규모로 넓힌 직후 그 중앙에다 ‘해변도서관’을 앉힌 적이 있었다. 책을 기부 받는다는 광고를 접하곤 나의 에세이집을 몇 권 그곳 서가에 꽂았는데 2~3년을 못 버티고 도서관은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 백사장엔 소설을 읽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피부를 햇살에 노출하여 건강을 증진하고 싶었는지 여자는 심한 노출을 보이고 있어 접근하여 책 제목을 물어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해운대를 찾은 내외국인들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배불뚝이 초로의 사내가 청바지 차림에 반팔 티셔츠를 걸치고 고양이에게 운동을 시키러 백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난 혹시 고양이가 백사장에서 먹이활동하는 비둘기나 갈매기를 해칠까봐 지켜봤다. 고양이는 자신이 디디는 발자국이 푹푹 빠지니 죽을맛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주변이 너무도 황량하여 천적이라도 나타날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4~5미터 높이 담장도 거뜬히 뛰어오르는 실력인데 이 녀석은 겁을 잔뜩 먹은 채 살금살금 걷는데 발이 자꾸만 깊이 빠지니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전철에 오르면 해운대에서 10번째가 대연역이다. 그곳 차문이 열리자 단구의 노파가 승차하여 노약자석으로 접근해왔다. 한손에 지팡이를 잡고 있어 좌석에 앉았던 노파가 자리를 양보했다. 좌석에 앉은 게 고마웠든지 지팡이노파는 묻지도 않은 나이를 꺼냈다. 91세라고 했지만 주름살이 별로 없는 네모난 얼굴은 표정이 밝은 때문인지 일흔 중반쯤으로 보였다. 나와 노파 사이 일흔 중반쯤 노파가 오히려 언니 같았다. 지팡이 노파는 중간 중간 91세 나이를 몇 번 더 들먹였다. 2남2여 자식이 있지만 따로 산다고 했다. 교수로 정년을 맞은 아들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떨어졌고, 의사인 아들은 지금도 병원을 경영한다고 했다.
그런 노파가 오늘 다녀오는 곳은 일본노래교실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11살 때 광복을 맞았으니 초등학교에서 일본말로 공부하면서 노래도 배웠을 것이다. 일본 홍보대사처럼 왜놈들의 인사성과 예절바름도 자랑했다. 옆의 노파가 그렇게 노예처럼 식민지 백성으로 시달리고도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해도 막무가내로 자기주장만 폈다. 내가 히로시마에서 44년도에 태어났다고 하자 그는 34년에 오사카 태생이라 했다. 그럼 노파 나이는 아흔이었다.
내가 노파의 손등을 잡고는 젊은 사람처럼 어찌 이리도 고우냐면서 특별히 비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 물음엔 답하질 않고 날 노래교실에 오라고 했다. 일본 노래는 나도 몇 곡 안다고 하자 잘됐다며 1주에 화수토 3일이니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매혹의 저음가수 후랑크나가이가 재일교포라는 사실과 그가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타이틀매치 경기장에서 우리 애국가를 부른 일화까지도 노파는 꿰고 있었다. 개금역에서 아파트까진 택시를 탄다며 하차하는 노파의 허리는 직각으로 굽어 몸무게를 실은 지팡이가 그를 승강기로 이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