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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순종하는 온전한 믿음으로 성숙하는 달☜
온전(穩全)하게 행(行)하는자가 의인(義人)이라. 그의 후손(後孫)에게 복(福)이 있느니라잠26:1-28절) 미련한 자의 교훈
사람들에게는 두 종류의 지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을 살려주고 이익을 주면서 자기도 이익을 보는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으면서 이익을 보는 악한 정권과 토개공같은 지혜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을 죽이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으면, 더 빨리 부자(富者)가 될 것 같고, 반대로 남을 살리고 남에게 유익을 주면서 이익을 얻는 것은 오래 걸리든지, 효과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을 죽이고 남을 망하게 하면서 성공한 사람은 더 이상 망하게 할 대상이 없으면, 자기가 망하게 됩니다.
옛날에 바벨론 같은 나라는 침략과 정복을 통해서 빠른 시일 내에 강대국이 되고, 부자(富者)나라가 되었으나, 더 이상 정복할 나라가 없을 때에는 갑자기 망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월가를 차지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사실 금융기관이 주택 부실 대출을 하면서 시작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금융위기로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느라고 많은 직원들을 해고하고, 직장을 얻지 못한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몇 개의 파트타임이나, 혹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시간당 몇 달러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정작 금융기관 임원이나, 직원들은 당장 자기들 손에 돈이 있다고 해서 수만 달러 씩 보너스를 챙기니까 화가 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융기관의 이런 돈 잔치를 보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남을 망하게 하면서 자기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잘살게 하면서 자기도 성공하는 지혜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미련한 자*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에서 12절까지 거의 모든 절에 *미련한 자*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성경에서 미련한 자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 곳이 다른 데는 없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미련한자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시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거나, 혹은 쉽게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축복이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결코 그 축복이 오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아서 부자(富者)라 하더라도 한번 망하기 시작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망하게 되는데, 옛날에 잘살았던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미련하고 게으르고 악(惡)한 자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는 것은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이런 미련한자를 통해서 반면교사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원래는 좋은 선생님을 통해서 유익한 것을 많이 배워야 하는데, 어떤 때에는 너무나도 나쁜 사람을 통해서 저런 것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도 좋은 교훈입니다.
즉 아버지가 매일 술에 취해서 엄마를 때리고, 주사(酒邪)를 늘어놓는 것을 보고 똑똑한 아들은 나중에 결혼해서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아내에게 끔찍하게 잘해주는가 하면, 미련한 아들은 아버지가 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자기도 술을 마시고, 부인에게 손찌검을 하면서 못된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쁜 것을 보고 교훈을 얻으려고 하면, 단순히 입으로 욕을 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내 안에 있는 체질(體質)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나쁜 것에 대하여 철저하게 반성을 해야만, 참으로 선(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Ⅰ.미련한 자의 영예
26:1절)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우리는 보통 *미련한 자*라고 하면, 앞뒤가 꽉 막혀서 다른 사람이 하는 옳은 이야기는 일체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는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미련한 사람은 고집스러운 것이 특징인데, 사교적(社交的)이지 못하고, 남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미련한 자 중에도 일은 잘해서 큰 돈을 벌거나 혹은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줄 모르기 때문에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미련한 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지혜나 판단만 믿고, 밀어붙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미련한 자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전혀 이해심이 없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믿고, 밀어붙이는 사람도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해서 큰 사업가가 될 수 있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보는 것은 바로 여기까지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후까지 보고 계십니다. 이렇게 미련한 자가 성공해서 영예(榮譽)를 얻는 것은 *여름에 눈이 오는 것이나, 추수 때가 오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여름에 눈이 오는 것은 식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됩니다.
즉 여름에는 여러 과일들이 태양 빛을 받아서 익어야 하는데, 갑자기 눈이 오면, 모두 얼어 죽고 맙니다. 그리고 추수 때, 비가 오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추수할 때, 비가 오는 것을 너무나 싫어합니다. 벼가 물에 다 젖어서 또 다시 말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수원을 하는 사람들은 여름이나 가을에 눈이나 서리가 오면, 그동안 농사지은 것이 모두 다 절단나게 되어서 싫어합니다. 미련한 자가 성공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망하게 하고 남에게 몇 배의 고생을 하게 하면서 자기 자신만 덕 보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현실에서 보게 되는 것은 사업을 하거나, 출세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럽다 하더라도 자기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사람들의 욕망이 조절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때, 사회 전체는 몰락(沒落)하게 되는 것입니다.
26:2절)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이 세상의 미련한 자들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에 대하여 기뻐하고, 축복 하는 것이 아니라, 배 아파하고, 뒤에서 약점(弱點)을 캐내어서 떨어트리는 일을 합니다.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고 하면, 일제히 그 사람의 약점(弱點)을 찾아내어 결국 그 사람을 떨어트려야 직성이 풀리는 것입니다.
물론 까닭 없는 저주(咀呪)는 성취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누구든지 털면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실제로 까닭 없는 저주가 사람을 망하게 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로 이 까닭 없는 저주(咀呪)에 걸려드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에 대하여 얼마나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을 우선 차지하고 봅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재산이나 과거 행적을 조사해보면, 결국 높은 자리에 있을 만한 그릇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이 되어서 실격 당하게 됩니다.
이때 미련한 자들은 옛날의 작은 이익에 집착했던 것을 두고,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이미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자는 굳이 불법(不法)을 해가면서 돈을 불릴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부(富)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난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만 붙들면 되는 것이지, 굳이 시시하게 불법을 저질러가면서 돈을 불리거나, 자식을 교육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붙드는 자는 나중에 누군가가 까닭 없이 비난을 하고 약점(弱點)을 찾아서 떠들어대어도 참새 한두 마리가 짹짹거리다가 날아가 버리는 것같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당장은 큰 이익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나중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큰 이익을 보호해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똥배만 채우는 사람은 나중에 오히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별 것 아닌 비리(非理)들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에게 망신당하고 큰 이익을 놓치게 됩니다.
26:3절)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말(馬)을 달리게 하려면, 채찍으로 때려야 합니다. 또 자기 멋대로 가려고 하는 나귀를 제대로 가게 하려면,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미련한 자를 움직이게 하려면, 등을 막대기로 때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와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는 자는 어떤 일을 하는 동기가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는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고, 그것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동기(動機)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감당을 해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가치를 따라가는 사람은 다른 동기(動機)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 일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거나, 혹은 여론(餘論)의 힘에 떠밀려서 할 때가 많습니다. 즉 세상 가치를 따라가는 자는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련한 자를 움직이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여론(餘論)의 막대기를 통해서 미련한 자를 움직이게 하시고, 때로는 그들이 옳은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몰고 가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악(惡)한 자가 움직이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이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알아서 자기 일을 착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막대기로 때려야 하고, 소리를 질러야하고, 야단을 쳐야 움직입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이상주의(理想主義)는 실현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미련한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미련한 자들이기 때문에 모두 어느 정도 제재(制裁)나 책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제재(制裁)나 책망을 달게 받을 때, 우리는 지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재(制裁)나 책망을 들어야 움직인다면, 그것은 미련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장점(長點)은 자기 스스로를 먼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굳이 하나님의 채찍이나 막대기에 맞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막대기는 우리를 인도하는 막대기가 될 것이며, 위기에서 우리를 건져주는 지팡이가 될 것입니다.
26:4절)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상대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대개 하나님의 지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머리를 믿기 때문에 이미 머릿속에 결론이 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회의(會議)를 하거나, 의논(議論)을 할 때, 즉각적인 답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뜻에 따르지 않을 때에는 그 자리에서 비난을 하거나 화를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 무슨 말을 들었을 때, 당장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때부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하는데, 주위의 상황은 당장 답을 요구하거나, 행동할 것을 요구합니다.
대개 이 사람들의 요구에 따르게 되면, 실컷 이용을 당하면서 쓸데없는 짓만 하게 되고,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화를 내고 비난을 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지혜*를 따르는 사람과 *하나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은 생각하는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잠언의 지혜자는 미련한 자의 말을 무조건 따라가지 말고, 그의 말대로 했을 때, 일어나는 모순점을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6:5절)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고 하는 것은 그의 주장대로 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을 이야기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엄청나게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중에 우리가 많이 성숙했을 때는 그것이 가능하겠지만, 처음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는 자가 실제로는 굉장히 미련하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자는 다른 사람이 내놓는 것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고, 계획도 없고, 판단도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물어보고, 기도도 하고, 생각도 해야 하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즉각적인 답을 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의 말만 듣고, 너무나 좋다고 생각해서 선뜻 약속을 해버리면, 나중에 실컷 이용만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련한 자들의 어리석은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좀 차단시켜야 하는데, 그것만 되어도 굉장히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 우리는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될 것입니다. 그 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그 말속에 들어 있는 오류를 알 수 있습니다.
26:6절)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를 하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언제나 의사소통에 왜곡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일수록 오해가 생기기 쉬운데, 미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대개 두 사람 사이를 왜곡(歪曲)시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뉘앙스(nuance)에 따라서 상당한 오해를 하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다 예민한 사람들이고, 아주 사소한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 전체를 추론(追論)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오해가 큰 판단착오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사람을 통해서 말을 전달하거나, 혹은 그런 사람과 의논(議論)을 하게 되면, 자기 발을 베어 버리게 됩니다. 사람이 발(足)을 베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일부러 오해를 시키고, 관계를 악화시키면,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는 별 수 없이 잘린 다리로 걸어서 가더라도 직접 그 오해를 풀어서 해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해하는 것을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모두 다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을 만나서 직접 말을 들어보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완전히 믿을 순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대개 심각한 편이기 때문에 단순히 얼굴만 보면, 늘 굳어 있는 것 같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보면, 상냥하고, 겸손하며, 얼마나 마음이 깨끗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26:7절)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아마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은 기분이 좋지 않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리를 저는 자도 달리기는 하지만, 억지로 마지못해서 달릴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이분들은 달리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미련한 자도 때로는 바른 말도 하고, 유익을 끼치는 일도 하지만, 그것이 본심(本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몰고 가셔서 그럴 때가 많은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미련한 자가 지금까지 한 것이 본심(本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하신 것이며, 이 사람이 다음에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때, 처음에 만났을 때에는 너무나도 친절하고, 좋던 분이 두 번째 만났을 때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심술궂고, 못되게 말을 하는 것은 그의 본심(本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친절하거나, 잘해주는 것만 보고, 그 사람을 너무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하는 말은 듣되, 그들이 하는 행동은 따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그것이 본심(本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런 미련한 사람을 너무나 믿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엄청난 불행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26:8절)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미련한 자에게 영예(榮譽)를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지 않고, 남을 배려하지도 않는 자가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인데, 이는 물매에 돌(石)을 매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많은 고통을 주게 됩니다.
왜냐하면 미련한 자는 반드시 자기 뜻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리기에 자기 뜻대로 따라 하지 않는 자는 물매로 공격을 해서 머리를 깨트려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매에 그냥 끈만 있는 것과 거기에 실제로 돌(石)을 매어놓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높은 자리를 이용해서 하루 한 건 이상씩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계획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26:9절)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술에 만취한 사람이 손에 가시나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때려서 상처를 입게 할 것입니다. 하물며 남을 배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가치를 모르는 자가 잠언을 가르친다고 설교를 하면, 그 설교로 다른 사람에게 저주(咀呪)나 퍼붓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를 세울 때에는 정말 겸손하고, 하나님 생명의 말씀의 가치에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세워야 잠언을 가르친다면서 미친 행패를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상(以上)의 내용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데, 일시적으로 성공하고, 일시적으로는 좋은 말도 하고, 좋은 일도 하지만, 그 본심(本心)에는 야망(野望)과 욕심이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런 사람과 끝까지 같이 갈 순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련한 자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근본적인 생각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미련한 자의 말이나,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반대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미련한 자의 말을 거부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미련한 자가 말하는 것 중에서 옳은 것을 골라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일 중에서 하나님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을 결코 끝까지 믿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믿다가는 결국 자기 발(足)을 자르게 될 것입니다.
Ⅱ.게으른 자의 특징
보통 게으르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꼭 해야 할 일조차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조차 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자기가 태어난 몫은 해야 합니다.
사람이 최소한도의 자신의 몫도 해내지 못할 때, 그것은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몫이 되기에, 다른 사람은 자기 일도 해야 할 뿐 아니라, 게으른 자의 일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몇 배의 부담이 됩니다.
성경적으로 게으른 자라고 할 때는 반드시 가시적으로 게으른 자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적으로 게으른 자가 세상적으로는 부지런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으로 게으르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福)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눈에 보이는 세상 복(福)만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26:10절)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어떤 주인이 아주 물건을 잘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직원(職員)을 잘못 고용했습니다. 직원(職員)이 미련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아마 주인은 이 직원(職員)에게 자기 사업 전체를 맡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원(職員)은 충성(忠誠)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에 성공을 하려면, 반드시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예(例)를 들어서 학생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공부를 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이 귀찮다고 해서 매일 게임이나 하고, 연애만 한다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학생들은 미래를 향해서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사랑하는 것도 좋고, 노는 것도 좋지만, 반드시 미래를 준비하며, 공부를 한다든지, 다른 무슨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래를 향해서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속을 채우는 것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배(船)에서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온 후, 광야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제쳐놓고, 열심히 주위를 돌았습니다. 즉 40년 동안 제자리에 맴돌고 있었던 셈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것이 바로 게으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부지런히 돌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앞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재산(財産)과 기업(企業)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식이 너무나도 게으르고, 무능(無能)해서 부모가 준 재산(財産)을 모두 다 들어먹고, 사업(事業)을 망칠 경우도 있습니다.
그 아들이 부모의 부(富)를 물려받을 줄만 알았지, 자기 스스로 기업경영(企業經營)이나, 물건을 만드는 기술 같은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재벌(財閥) 2세나, 3세들은 대개 부모로부터 대기업을 물려받았습니다.
부모 세대는 어떻게 해서든지, 물건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려고 했지만, 자식들은 주가조작이나, 기업합병(企業合竝)같은 것을 통해서 쉽게 돈을 벌려고 하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를 고용한다면, 다른 것으로도 어려움을 주겠지만, 특히 이런 미련한 자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면, 그 사업(事業)은 완전히 거덜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무책임(無責任)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길 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기업체를 맡기는 것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사실 어떤 사업(事業)에서 후임자(後任者)를 잘 세우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책임 있는 사람을 찾으려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헌신된 자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도 헌신되고, 실력도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려운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딸을 사위에게 맡길 때, 아마 비슷한 심정일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내 딸을 누구에게 맡겨야 행복할 수 있을까? 만일 부모가 보기에 사위가 게으르고, 무능하며, 성격(性格)까지 포학(暴虐)하다면, 말할 수 없이 참담(慘憺)하고 속상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위에게 뭐라고 하면, 더 딸을 괴롭힐 것이니까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敎會)도 어떤 사람을 후임자(後任者)로 세우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이때 외모(外貌)를 보지 말아야 하고, 욕심(慾心)을 부리지 말아야 하며, 사람의 진실한 마음속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미련한 사람의 두 번째 문제는 잘못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6:11절)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이 말씀은 신약 성경에서도 인용(認容)되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벧후2:22절)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개(犬)는 위생 관념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먹다가 토했던 것을 뒤에 얼마든지 다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또 돼지(豚)는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주어도 금방 도로 더러운 오물 위에 드러누워서 시원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고, 가치 있는 미래로 나아가려고 하면, 지금 나를 잡아매고 있는 더러운 죄(罪)의 올무들을 끊어버려야 하는데, 게으른 자는 그것이 귀찮고, 싫어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게으른 자는 한평생 토(吐)한 것을 먹어야 하고, 더러운 곳에서 뒹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멧돼지들이 진흙탕에 뒹구는 것은 머드팩(mud pack)처럼 온 몸에 진흙을 발라서 피부를 보호하기도 하고, 또 쇠파리나, 모기에게 물리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히 좋지 못한 습관(習慣)을 버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즉 나쁜 습관(習慣)을 버리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기꺼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될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것을 왜 두려워할까? 그들이 예수를 믿으면 자기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더러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새로운 인생 항해(航海)를 떠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일단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고 도공(陶工)의 손에 붙들린 진흙과 같아서 가장 멋진 도자기(陶瓷器)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26:12절)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어느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암기력(暗記力)이나 공부하는 실력이 뛰어난 것이지, 인간성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아(自我)도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구제불능이 많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죄(罪)를 이기는 것이며, 유혹(誘惑)을 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공부를 많이 한 똑똑한 사람들이 이성(異性)의 유혹(誘惑)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가 미련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罪)의 추악(醜惡)함을 잘 알고, 죄(罪)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줄 알기 때문에 유혹(誘惑)에 심한 거부감을 가집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이지, 공부를 조금 잘하고, 자아도취(自我陶醉)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바보 보다 못한 큰 멍청이인 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이미 바보이고, 유혹(誘惑)에 넘어갔거나, 넘어가려고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게으른 자에 대한 교훈이 나오고 있습니다.
26:13절)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게으른 자가 거리에 나가서 일하지 않는 이유는 사자(獅子)가 있어서 사람을 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능성은 없지만, 사자(獅子)가 길에 있을 수 있고, 강도(强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그런 위험을 뚫고, 나가서 일을 해야 먹고 사는 것이지, 모든 위험 가능성을 다 미리 생각해서 머뭇거리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면, 사자(獅子)가 길에서 사람을 물 수도 있고, 미친 사람이 운전해서 차에 치일 수도 있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자(獅子)에게서 사람을 피하도록 하셨고, 또 믿는 자를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장 안전하고 편한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전만을 찾아서 애굽에 있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홍해도 건너고, 광야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활의 안정(安定)입니다. 그래서 안정(安定)된 직장(直腸)을 최고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광야로 들어갈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도 통과하고, 불도 통과하고, 광야(廣野)도 통과했을 때, 비로소 그들은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군사(軍士)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의 안정(安定)보다는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26:14절)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문짝은 절대로 문(門)에서 떨어지지 않고, 고정된 돌쩌귀를 중심으로 돕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부부(夫婦)관계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 현실과 이렇게 딱 붙어 있으면, 전혀 발전이 없습니다. 즉 우리는 이 세상 현실에서 떨어져야만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때로는 산(山)에 오르기도 하고, 여행(旅行)을 해서 현실에서 떠나보는 것은 객관적인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많은 일에 묻혀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생각할 때, 이 현실에서 벗어나서 나 자신을 분명히 보고,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묵상(默想)하는 것이 부지런한 것입니다.
만일 여인(女人)이 전혀 화장도 하지 않고, 얼굴도 씻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으면, 어느 남자(男子)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귀찮아도 긴 시간 정성을 다해 화장을 해서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할 때, 남자들이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도 듣지 않고, 일만 하려고 하는 것은 씻지도 않고, 머리도 감지 않은 더러운 사람과 같습니다.
26:I5절)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사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만큼 부지런해야 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집에 재료(材料)가 많이 있다고 해서 음식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훌륭한 요리사일수록 음식을 아주 정성껏 만들어서 식구들이나 손님을 행복하게 하려고 합니다.
가장 게으른 음식(飮食)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넣어서 끓이는 부대찌개인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너무나 좋아해서 아린이 비만(肥滿)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음식을 입에 넣기 싫어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엄청나게 비만(肥滿)한 사람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살이 쪄서 모양이 흉하게 됩니다. 이것은 더 이상 자기 힘으로는 안 되고, 치료가 필요한 단계입니다.
사람이 자기 욕망(慾望)대로 살면, 몹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되는데, 그것은 자기 책임입니다.
26:16절)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게으른 것만 해도 참으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거기에다가 자기가 다른 지혜로운 사람 일곱 보다 더 지혜가 있다고 착각한다면, 아마 절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미련한 자는 자기 자리를 끝까지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Ⅲ.악을 행하는 자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남에게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과 남을 괴롭게 하려는 심술궂은 마음이 함께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그때 기분에 따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실제로는 악(惡)한 짓을 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악(惡)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해로운 존재들이고, 조심을 해야 하는 대상들입니다.
26:17절)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다투고 있으면, 대개 간섭을 해서 다툼을 말리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속담에 *싸움은 말려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주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고, 가야 할 일이 너무나 급한데, 주위에 사소한 다툼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을 무시하고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은 아주 긴급한 것입니다. 자신의 길을 가면서 앞에 있는 사람의 어려움이나, 답답한 것을 도와줄 수 있지만, 내가 가는 길을 포기하기까지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시면서 그렇게 많은 능력을 가지고도 모든 병자들을 고치거나, 모든 어려운 자들을 다 도와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다른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일에 만사를 제쳐놓고, 덤벼드는 이유는 이 세상 자체가 목적이고, 더 나아갈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남의 생명의 말씀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준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개(犬)의 귀를 당기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개(犬)는 들개입니다.
우리는 귀를 당기는데, 가만히 있을 들개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악(惡)을 없애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하신 일만 묵묵히 끝까지 하면 되는 것입니다.
26:18절)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횃불은 어둠을 밝히라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사람에게 던져서 불에 데게 하고, 심지어 화(禍)가 난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화살을 쏘아서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광기(狂氣)가 있어서 사람을 때리거나, 간음(姦淫)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합니다. 이런 미친짓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慾望)과 분노(忿怒)에 스스로를 맡긴 사람으로서 맹수(猛獸)와 같기 때문에 언젠가는 범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범죄(犯罪)하는 것은 이미 그 마음이 황폐(荒弊)하여서 들짐승 같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이 술인데, 사람들은 아직도 술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26:19절)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어떤 사람이 이웃을 속이고, 엄청나게 골탕을 먹인 후에 하는 말이 *장난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악(惡)한 말을 쏟아낸 후에 *농담(弄談)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 센 사람이 장난치는 것이 약(弱)한 자에게는 죽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악(惡)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괴롭히면서 자신을 즐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소중한 인격을 가지고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26:20-21절)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분쟁(分爭)을 일으키는 사람은 스스로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한 명 있으면, 얼마든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얼마나 골치 아프게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그런 일을 통해서 스스로 즐기며,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긁어서 엄청나게 부풀게 합니다.그렇게 해야 자기가 똑똑하고, 모든 것을 쉽게 넘어가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 나타난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무리 완벽하게 만들어 놓아도 결국 모래성을 쌓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큰 파도가 오면, 모두 다 없어져버리고, 그 사람이 한 행적도 남아 잊지 않게 됩니다.
결국 이 세상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성(城)을 만드는 방법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영적(靈的)인 부흥이 오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오게 해야 합니다.
26:22절)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사람은 남의 험담(險談)을 할 때, 너무나도 맛이 있어서 피곤한 줄 모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나쁜 본성(本性)이 있어서 악(惡)한 것이 우리 습성(習性)과 딱 맞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험담(險談)을 아무리 많이 해도 나 자신에게는 한 치의 유익도 없습니다. 완전히 시간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내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의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26:23-25절)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사람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거짓말하는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가 하면,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주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남을 속일 수 있는 것은 머리가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사랑한다*고 말해서 상대방을 믿게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또 거짓에 속지 않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부드럽게 사랑을 말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싸구려 토기(吐器)에 은(銀)을 입힌 가짜인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에는 일곱 가지 악(惡)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곱 가지라고 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감정을 그대로 믿으면, 거짓에 속게 됩니다.
이런 거짓에 속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따라서 스스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결국 거짓에 속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속는 것입니다. 자기 분수에 만족하고, 욕심을 내지 않으면, 이런 싸구려 사랑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26:27-28절)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결국 이 두 구절의 말씀이 미련한 자와 게으른 자와 남에게 악(惡)을 끼치는 자의 결론(決論)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축복(祝福)을 뿌리는 자는 자기 자신이 복(福)을 받고, 남을 해치고, 빼앗아서 자기 똥배를 불리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이 그 방법으로 망하게 됩니다.
함정(陷穽)을 파서 남을 빠트린 자는 남도 함정(陷穽)을 팔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자기가 남을 망하게 한 방법으로 자기도 망하는 것입니다. 또 산(山)에서 돌(石)을 굴려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한 자는 다른 사람도 자기와 똑같은 악(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악(惡)한 자의 손에 망하게 됩니다.
거짓말 하는 자는 결국 상대방을 망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자기에게 또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만 나쁜 짓을 하면, 되는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악(惡)을 행해서 덕(德)을 보게 된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되어 결국 자기 자신이 당하게 됩니다. 칼(劍)이 위에서 떨어지게 하는 사형(死刑)방식을 생각했던 사람인 프랑스의 기요틴은 자기 자신도 그 방식으로 죽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장은 손해를 보고, 무시를 당한다 해도 선(善)을 행하면,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선(善)한 마음이 생기게 되어서 결국 우리 자신이 복(福)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선(善)을 심으면, 나도 모르는 새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삼는 성도들이 모두 다 되시길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 알 림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교갱원은 1단계 묵상, 생명의 양식과 필수과목(26과). 2단계 생명의 양식과 선택과목 전도학교(13과).3단계 생명의 양식과 청지기 대학(17과)으로 정예부대가 됩니다. 누구든지 전화신청받습니다(유료 : 각 교재 1과당=1만원, 방법 : 교갱원 설립 때까지 임시 카톡영상으로) 보물을 하늘에 쌓을 創立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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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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