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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韜光養晦)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의미로, 1980년대 중국의 대외 정책을 일컫는 용어이다.
韜 : 감출 도(韋/10)
光 : 빛 광(儿/4)
養 : 기를 양(食/5)
晦 : 그믐 회(日/7)
(유의어)
도광(韜光)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 도광(韜光)이라고도 한다. 약자가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 힘을 갈고 닦음 또는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1980년대 중국의 대외 정책을 일컫는 용어이다.
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 남기 위해 일부러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여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었던 계책이다. 또 제갈량(諸葛亮)이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써서 유비로 하여금 촉(蜀)을 취한 다음 힘을 기르도록 하여 위(魏), 오(吳)나라와 균형을 꾀하게 한 전략 역시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이다.
그러나 도광양회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이러한 고사 때문이 아니라, 1980년대부터 중국이 취한 대외 정책 때문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중국은 기미정책(羈縻政策)을 대외 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기미(羈縻)란 굴레를 씌워 얽맨다는 뜻으로, 주변국을 중국의 세력 범위 안에 묶어두고 통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중국은 그동안 초강대국인 미국의 그늘에 가려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대 개혁, 개방 정책을 취하면서 도광양회를 기미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대외정책의 뼈대로 삼았다. 이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국력이 생길 때까지는 침묵을 지키면서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고, 전술적으로도 협력하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이후 20여년간 도광양회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대표하였다. 그러나 2002년 11월 후진타오(胡錦濤)를 중심으로 한 제4세대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도광양회는 새로운 외교 노선으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화평굴기(和平堀起), 유소작위(有所作爲), 부국강병(富國强兵) 등으로 이어지는 대외 전략이다.
사람의 생(生)은 유한(流汗)하다. 짧은 인생동안 인간은 보다 나은 명예와 부귀, 그리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한다. 어떻게 보면 도광양회는 중국인 특유의 깊이와 긴 호흡으로 목표를 위해 음험하게 뜻을 펴가는 당당하지 못한 면도 보인다. 그러나 조급하게 모든 것을 판단하고 흥분하기 쉬운 사람의 입장에서는 깊이 새길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조급하고 감정 변화가 심한 점을 단점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나의 생활 신조도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사물을 빨리 판단하고, 그 대신 움직임과 행동은 소가 걷듯이 우직하자는, 응안우보(鷹眼牛步)와 자자손손 모두가 한 소쿠리씩 대를 이어 흙을 옮기면 언젠가는 태산도 없어질 것이라는, 우공이산(愚公移山)등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천천히 묵직하게 생활하자고 다짐해 왔다. 그러나 잘 안된다. 쉽게 흥분하고 가볍게 판단하고 감정을 쉽게 드러낸다.
도광양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절치부심의 노력과 각고가 필요하다. 깎고 깎아서 더 이상은 찾을 수 없는 뼈 조각을 한탄할 정도로 노력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노력과 웅지가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힘있는 적에게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중국은 지금 도광양회의 자세로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의 발톱을 실리적인 외교활동으로 잘 피하면서 신흥 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용주의 경제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자세는 본받을 만한 자세라고 본다. 가끔은 도광양회를 생각하고 자신의 칼날을 세워간다면 지금의 생활이 보다 의미있는 시간들로 다가 올 것이다.
노자(老子)에 나오는 글이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그 존재가 선명하게 나타나며,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않은 까닭에 오히려 그 옮음이 드러나며, 스스로 뽐내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공을 이루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그 이름이 오래 기억된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韜(도)'는 숨기다, '光(광)'은 빛, '養(양)'은 기르다, '晦(회)'는 어둠이라는 뜻으로, 원래 고사의 뜻은 어둠속에서 칼을 갈때 칼 가는 빛이 드러나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혹자는 '養(양)'이 '숨긴다'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중국어에서 '養'은 '기르다, 두드러지게 하다'라는 의미로 養晦(양회)는 '어둠이 두드러지게 한다'라는 뜻이다. '재능을 숨기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隱藏才能, 不使外露)'라고만 풀이되어 있을 뿐이다.
大戴禮記, 曾子事父母:單居離問曰:事兄有道乎? 曾子曰:有。尊事之,以為己望也;兄事之,不遺其言。兄之行若中道,則兄事之;兄之行若不中道,則養之;養之內,不養於外,則是越之也;養之外,不養於內,則是疏之也;是故君子內外養之也。
원래는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조조의 식객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은밀히 힘을 기른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 남기 위해 일부러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여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었던 계책이다.
또 제갈량(諸葛亮)이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써서 유비로 하여금 촉(蜀)을 취한 다음 힘을 기르도록 하여 위(魏)·오(吳)와 균형을 꾀하게 한 전략 역시 도광양회 전략이다. 그러나 도광양회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이러한 고사 때문이 아니라, 1980년대부터 중국이 취한 대외정책 때문이다.
도광양회는 1990년대 덩샤오핑 시기 중국의 외교방침을 지칭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서 도광양회를 기미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대외정책의 뼈대로 삼았다. 이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국력이 생길 때까지는 침묵을 지키면서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고, 전술적으로도 협력하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성어로서 도광양회는 청조(清朝) 말기에 사용되었다. 이후 중국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이 중국의 외교방향을 제시한 소위 '28자 방침'에 사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먼저 '냉정한 관찰(冷静观察)'은, 중국이 어떤 입장을 내거나 행동을 취하기 전에 국제정세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변화되어 가는지를 냉정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스스로 내부의 질서와 역량을 공고히 하고(稳住阵脚), 중국의 국력과 이익을 고려해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하며(沉着应付), 밖으로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르면서(韬光养晦), 능력이 없는 듯 낮은 기조를 유지하는 데 능숙해야 하고(善于藏拙), 절대로 앞에 나서서 우두머리가 되려하지 말되(决不当头), 꼭 해야만 하는 일은 한다(有所作为)는 것이다.
'28자 방침'은 이처럼 중국의 국익이나 정체성에 심각한 손상을 가하지 않는 한, 꼭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만 할 일을 하되, 전반적으로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그 전체적인 뜻을 비교적 잘 대변하는 '도광양회'와 '유소작위'로 축약하여 언급되기도 한다.
도광양회(韬光养晦)
도광양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덩샤오핑 시기 중국의 외교방침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성어(成语)로서 도광양회는 청조(清朝) 말기에 사용되었다. 이후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이 중국의 외교방향을 제시한 소위 ‘28자 방침’에 사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톈안먼사태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중국
1978년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경제성장에 국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두 세력이 충돌하면서, 개혁개방 정책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경제성장을 위해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하는 세력과, 사회주의의 길을 고수해야 한다는 세력이 계속 충돌한 것이다. 또한 개혁개방을 정치적 민주화와 결부시키면서, 학생과 지식인을 중심으로 민주화에 대한 요구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9년 6월 톈안먼사태(天安門事態)가 발생했다. 중국공산당은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로써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요소를 받아들이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서구가 생각하는 민주화의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전 세계에 천명한 것이다.
국내적으로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더해, 국제정세도 중국에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톈안먼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중국의 자국민 학살과 민주화 거부는,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중국의 비민주성과 인권유린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은 중국에 유․무형적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중국이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위협할 것이라는 ‘중국위협론’을 제기하면서 중국에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
소련 해체로 인한 냉전 종식,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최대 위기
1989년 11월에는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동유럽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간 이념대립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그에 따른 민주주의 바람은 중국에 일종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사회주의의 길을 고집하며 자국민에 대한 유혈진압까지 불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를린장벽 붕괴는 미풍에 불과했다. 2년 후인 1991년 12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해체를 선언하며 이념대립의 산물인 냉전을 종식시킨 것이다. 중국 사회주의의 모태인 소련의 해체는, 중국에게는 정신적 충격이자 체제 정당성에 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소련의 해체로 적이 사라진 미국에게 중국이 새로운 적으로 상정될 수 있다는 두려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당시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이처럼 불리하고 엄중한 대내외적 상황에서 중국은 국력, 특히 경제건설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외적으로는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국내적으로는 개혁개방을 가속화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92년 1월 덩샤오핑은 선전, 상하이 등을 순방하면서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남순강화(南巡讲话)에 나섰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중국의 유일한 활로이며 나머지 길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대내적으로 덩샤오핑이 취한 조치가 ‘남순강화’를 통해 중국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다면, 대외적으로 제시한 중국의 길은 바로 ‘도광양회(韬光养晦)’였다.
28자 방침, 덩샤오핑이 밝힌 중국의 대외관계 지도방침
도광양회는 덩샤오핑이 밝힌 중국의 대외관계 지도방침으로, 28자로 구성되어 있는 소위 ‘28자 방침’의 일부다. 따라서 도광양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28자 방침’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冷静观察(냉정관찰), 稳住阵脚(온주진각), 沉着应付(침착응부), 韬光养晦(도광양회), 善于藏拙(선우장졸), 决不当头(결부당두), 有所作为(유소작위).
먼저 ‘냉정한 관찰(冷静观察)’은, 중국이 어떤 입장을 내거나 행동을 취하기 전에 국제정세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변화되어 가는지를 냉정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스스로 내부의 질서와 역량을 공고히 하고(稳住阵脚), 중국의 국력과 이익을 고려해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하며(沉着应付), 밖으로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르면서(韬光养晦), 능력이 없는 듯 낮은 기조를 유지하는 데 능숙해야 하고(善于藏拙), 절대로 앞에 나서서 우두머리가 되려하지 말되(决不当头), 꼭 해야만 하는 일은 한다(有所作为)는 것이다.
'28자 방침'은 이처럼 중국의 국익이나 정체성에 심각한 손상을 가하지 않는 한, 꼭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만 할 일을 하되, 전반적으로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그 전체적인 뜻을 비교적 잘 대변하는 ‘도광양회’와 ‘유소작위’로 축약하여 언급되기도 한다.
도광양회와 유소작위, 불리한 국제정세에서 중국이 나아갈 길
도광양회와 유소작위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자. 먼저, 도광양회는 ‘도광(韬光)’과 ‘양회(养晦)’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도광은 ‘감출 도(韬)’와 ‘빛 광(光)’이 결합하여 ‘빛을 감춘다’는 뜻이고, 양회는 ‘기를 양(养)’에 ‘어두울 회(晦)’로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덩샤오핑이 이런 의미의 ‘도광양회’를 언급한 이유는, 앞서 살펴본 국제정세의 변화 때문이다. 즉, 톈안먼사태로 인한 서구의 대중국 제재, 베를린장벽과 소련의 붕괴로 인한 사회주의의 퇴조 등, 당시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덩샤오핑은 중국의 활로를 찾아야만 했다. 결국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르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고, 이에 가장 적합한 표현이 바로 ‘도광양회’였던 것이다.
도광양회와 함께 최근 비교적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 유소작위(有所作为)다.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한다’는 뜻이다. ‘28자 방침’에서 유소작위는 도광양회 뒤에 나온다. 덩샤오핑이 ‘28자 방침’에 유소작위를 포함시킨 이유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비록 도광양회를 견지해야 하지만, 국제문제에 대해서 중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중국의 국력과 정체성을 고려하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유소작위는 또한 ‘28자 방침’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다. 바로 앞의 결부당두(决不当头, 절대 우두머리가 되려 하지 말라)까지는 모두 도광양회로 그 의미가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즉, ‘28자 방침’에서 유소작위는 도광양회의 기조 아래에서, 사회주의 대국으로서 중국이 국제 정치경제의 현실 속에서 해야만 할 최소한의, 혹은 소극적인 역할은 하도록 허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중국위협론이 제기되자 화평발전론 주장
‘28자 방침’에 나타난 도광양회의 의미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당시 중국이 불리한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해 낮은 자세로 실력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동력을 얻은 개혁개방이 가속화되면서,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또한 2001년 WTO 가입을 계기로 세계경제에 편입되면서, 중국의 성장은 그야말로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중국은 이렇게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의 현대화를 통해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강대국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처럼 중국이 부상하자, 미국과 일본 등 기존 강대국들은 중국위협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면서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다시 말해, 중국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는’ 도광양회의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었고, 이제 실력을 기른 중국이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의문과 불안감을 제기한 것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중국의 굴기(崛起, 우뚝 일어섬)는 평화적이라는 ‘화평굴기론’을 주장했으나, 국제사회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자 결국 ‘굴기’ 대신 ‘발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화평발전론’을 폈다. 즉, 중국은 ‘도광양회’로 기른 실력을, 기존의 국제질서를 전복하거나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강권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이다. 또한 계속 평화적으로 발전하면서 공동으로 번영하는 ‘조화로운 세계(和谐世界)’를 건설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임을 강조했다.
최근 중국의 행보를 보면, 도광양회는 희석되고 유소작위는 선명해진다
화평발전론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그동안 키워온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국제 국사회의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즉, ‘도광양회’에 대한 중국과 국제사회의 해석이 다른 것이다. 중국은 도광양회를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제사회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8자 방침’에 도광양회와 함께 유소작위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도광양회의 시기가 확실히 지났는지, 그리고 유소작위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2013년 1월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중국은 평화로운 발전(和平发展)의 길을 견지하겠지만, 결코 정당한 권익을 포기하거나 국가 핵심이익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소작위를 강조한 것이다.
또한 중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중국이 도광양회를 버리고 유소작위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광양회의 시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견해도 많지만, 지금은 유소작위의 시대라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시진핑의 위와 같은 발언과 최근 중국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군사․경제적 행보를 고려해 볼 때, ‘도광양회’는 분명 과거에 비해 희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유소작위’는 과거보다 선명해지고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韜(감출 도/활집 도)는 형성문자로 韬(도)는 간자(簡字), 弢(도)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가죽 위(韋; 가죽)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舀(요, 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韜(도)는 ①감추다 ②느슨하다 ③바르다 ④칼전대(칼을 넣어 두는 길쭉한 주머니) ⑤활팔찌(활을 쏠 때에 활 쥔 팔의 소매를 걷어 매어 두는 띠) ⑥활집(부린 활을 넣어 두는 자루) ⑦비결(祕訣)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자기의 재능이나 지위 같은 것을 숨기어 감춤을 도회(韜晦),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음을 도설(韜舌), 재능이나 장점을 숨기어 드러내지 않음을 도휘(韜輝), 빛을 감춘다는 뜻으로 학식이나 재능을 감추고 남에게 알리지 않음을 도광(韜光), 비단으로 겉을 싸서 만든 활집이나 칼집을 나도(羅韜), 쟁기를 넣어 두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물건을 뇌도(耒韜),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말을 도광양회(韜光養晦) 등에 쓰인다.
▶️ 光(빛날 광)은 ❶회의문자로 火(화; 불)와 사람 인(人=亻; 사람)部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횃불을 들고 밝게 비추고 있다는 뜻이 합(合)하여 빛을 뜻한다. 또 전(轉)하여 번영하다로 되고 가차(假借)하여 광대(廣大), 광원(廣遠)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光자는 ‘빛’이나 ‘빛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光자는 儿(어진사람 인)자와 火(불 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光자는 사람의 머리 위에 빛이 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光자를 보면 儿자 위로 火(불 화)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 주위가 매우 밝게 빛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光자는 ‘빛’이나 ‘비추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光(광)은 (1)빛 (2)화투의 스무 끗짜리 패. 모두 다섯 장임. 또는 그런 패 짝을 넷 또는 다섯을 땄을 때 상대편으로 부터 끗수를 더 받게 되는 일 (3)어른어른하게 비치고 번지르르하게 보이는 환한 윤기(潤氣). 광택(光澤)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빛, 어둠을 물리치는 빛 ②세월(歲月) ③기세(氣勢), 세력(勢力), 기운(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오관(五官)으로 느껴지는 현상) ④경치(景致), 풍경(風景) ⑤명예(名譽), 영예(榮譽) ⑥문화(文化), 문물(文物) ⑦문물의 아름다움 ⑧빛깔, 번쩍거리는 빛 ⑨어른어른하게 비치는 윤기(潤氣) ⑩영화롭다 ⑪빛나다, 비치다, 비추다 ⑫크다, 넓다 ⑬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볕 경(景), 갤 청(晴), 빛 휘(暉), 빛 경(耿), 빛 색(色), 밝힐 천(闡),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그늘 음(陰), 흐릴 담(曇), 비 우(雨)이다. 용례로는 옛일을 되찾음이나 잃었던 나라를 되찾음을 광복(光復), 벌어진 일의 형편이나 모양을 광경(光景),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빛을 광채(光彩), 빛의 반사에 의하여 물체의 표면에 어른어른하게 번쩍이는 윤기를 광택(光澤), 아름답게 번쩍이는 빛을 광휘(光輝), 밝은 빛이나 밝고 환함을 광명(光明), 아름다운 빛이나 빛나는 기운을 광화(光華), 빛의 자극에 의하여 일어나는 감각을 광각(光覺), 발광체가 내는 빛의 강한 정도를 광도(光度), 스스로 빛을 내는 물체를 광원(光源), 세상에서 인정받는 좋은 이름이나 자랑을 광명(光名), 해와 달이라는 뜻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나 세월을 광음(光陰),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명승과 풍속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관광(觀光), 경쟁에서 이기거나 남이 하지 못한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의 빛나는 영예를 영광(榮光), 사람이나 사물의 어떤 방면에서 있어서의 등장이 눈부실 만큼 찬란히 빛남을 각광(脚光), 경치나 모습을 풍광(風光), 번쩍이는 빛을 섬광(閃光), 밤 또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내는 빛을 야광(夜光), 아침의 햇빛을 신광(晨光), 등불이나 촛불의 빛을 촉광(燭光),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른 세월을 유광(流光), 빛을 감춘다는 뜻으로 학식이나 재능을 감추고 남에게 알리지 않음을 도광(韜光), 언행이 떳떳하고 정당하다는 광명정대(光明正大), 세월의 흐름은 흘러가는 물과 같이 빠르다는 광음유수(光陰流水), 비가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인품을 광풍제월(光風霽月), 어둠 속에 빛이 비친다는 뜻으로 뜻밖에 일이 잘 해결된다는 암중방광(暗中放光), 이전에도 그런 예가 없었고 앞으로도 또한 없을 것이라는 절후광전(絶後光前) 등에 쓰인다.
▶️ 養(기를 양)은 ❶형성문자로 飬(양), 餋(양)은 통자(通字), 养(양)은 간자(簡字), 羪(양)은 동자(同字)이다. 養(양)은 뜻을 나타내는 밥 식(食=飠;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羊(양)이 합(合)하여 기르다, 양육하다를 뜻한다. 羊(양)은 양의 고기로, 중국에서는 고급 요리이다. 食(식)은 식사를 하는 일이다. ❷회의문자로 養자는 '기르다'나 '먹이다', '봉양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養자는 羊(양 양)자와 食(밥 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글자의 조합으로만 보면 養자는 마치 양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養자의 갑골문을 보면 羊자와 攴(칠 복)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목축업을 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기르다나 '번식시키다'라는 뜻이 파생되자 攴자를 食자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養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養(양)은 어떤 명사(名詞) 어근(語根)에 붙어서 남의 자녀(子女)를 데려다가 길러 자기(自己)의 자녀(子女)로 할 때에 그 상호(相互) 관계를 나타내는 데 쓰는 말로 먹을 것을 주다, 양육하는 일의 뜻으로 ①(낳아서)기르다 ②(젖을)먹이다 ③(심어)가꾸다 ④수양(收養)하다(다른 사람의 자식을 맡아서 제 자식처럼 기르다) ⑤봉양(奉養)하다, 공양(供養)하다 ⑥가르치다 ⑦맡다, 관장(管掌)하다 ⑧치료하다, (질병을)다스리다 ⑨취(取)하다 ⑩숨기다, 은폐(隱蔽)하다 ⑪가렵다 ⑫즐기다 ⑬(시간적으로)길다 ⑭다스리다, 수양(修養)하다 ⑮땔나무 산지(山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를 양(奍), 기를 육(育), 기를 사(飼)이다. 용례로는 가르쳐서 유능한 사람을 길러 냄을 양성(養成), 길러 자라게 함을 양육(養育), 영양이 되는 성분을 양분(養分), 가축을 기름을 양축(養畜), 인공적으로 길러서 번식시키는 일을 양식(養殖), 닭을 기르는 일을 양계(養鷄), 양아들을 양자(養子), 누에를 기름을 양잠(養蠶), 꿀벌을 길러 꿀을 채취하는 일을 양봉(養蜂), 물고기를 기름을 양어(養魚), 부모의 뜻을 받들어 지극한 효도를 다하는 일을 양지(養志), 양 아버지를 양부(養父), 학문과 식견을 넓혀서 심성을 닦음을 함양(涵養), 식물이나 미생물 따위를 인공적으로 가꾸어 기름을 배양(培養), 휴양하면서 치료하는 것 또는 그러한 치료를 요양(療養),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없는 사람의 생활을 돌봄을 부양(扶養), 범을 길러 화근을 남긴다는 뜻으로 화근을 길러서 걱정거리를 산다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말을 양호유환(養虎遺患), 항상 부모의 뜻을 받들어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효행을 이르는 말을 양지지효(養志之孝), 도를 좇아 뜻을 기르고 시세에 따라서는 어리석은 체하며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말을 준양시회(遵養時晦), 아침 저녁으로 웃어른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말을 조석공양(朝夕供養), 부담을 가볍게 하여 백성의 힘을 펴게 한다는 말을 민력휴양(民力休養) 등에 쓰인다.
▶️ 晦(그믐 회)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날 일(日; 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每(매, 회)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晦(회)는 ①그믐 ②밤, 어둠 ③얼마 안 됨, 조금 ④(날이)어둡다 ⑤희미하다, 분명(分明)하지 않다 ⑥어둡다, 캄캄하다 ⑦어리석다 ⑧감추다, 숨기다 ⑨시들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초하루 삭(朔)이다. 용례로는 은거하여 수양함을 회양(晦養), 어둡고 으슥함을 회오(晦奧), 날이 어두컴컴하게 흐림을 회음(晦陰), 자취를 감춤을 회적(晦跡), 어둠과 밝음을 회명(晦明), 어두워 보이지 않음이나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음을 회맹(晦盲), 재주나 학식 또는 모양을 드러내지 않고 감춤을 회장(晦藏), 언어나 문장 등이 어려워 뜻이 명료하지 않음을 회삽(晦澁), 자기의 재능이나 지위 같은 것을 숨기어 감춤을 도회(韜晦), 어슴푸레하게 어두움을 몽회(濛晦), 의심쩍고 명백하지 못함을 의회(疑晦), 겸손하여 아는 체하는 티를 내지 않음을 겸회(謙晦), 가리어 어둡게 함을 연회(煙晦), 흐리고 어두움을 음회(陰晦), 스스로 감추어 나태내지 아니함을 자회(自晦), 숨어 없어짐이나 자취를 감춤을 은회(隱晦), 숨어서 남의 눈을 어둡게 함을 잠회(潛晦), 세상에 알려지는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현회(顯晦), 그믐날 앞뒤의 며칠 동안을 회간(晦間), 그믐날로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을 회일(晦日), 그믐과 초하루를 회삭(晦朔), 그믐의 하루 전날을 소회(小晦), 음력의 그믐날을 월회(月晦), 음력 초하루나 그믐을 삭회(朔晦), 달이 고리와 같이 돌며 천지를 비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회백환조(晦魄環照),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말을 도광양회(韜光養晦), 도를 좇아 뜻을 기르고 시세에 따라서는 어리석은 체하며 언행을 삼간다는 말을 준양시회(遵養時晦)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