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왔지만
글쓴이: 김병호 베드로
울면서 왔지만
웃으면서 갈 것입니다.
모르고 왔지만
알고서 갈 것입니다.
어둠에서 왔지만
빛으로 갈 것입니다.
그 날 밤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이 가끔 절그렁거리고 집 앞 계곡물 소리가 조금은 커져서
깊은 밤에 사분거리며 내리는 봄비소리와 어우러져 사방은 고즈넉하였습니다.
새벽을 향해 숨을 고르는 밤의 심연 속에 오감마저 묻어버린 채,
묵상으로 그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여명으로 어둠이 엷어지고 있을 때, 제 영혼은 하느님께로 가까이 다가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저의 깨어있는 감성으로가 아닌, 거룩한 령의 속삭임을 듣고,
그것을 받아 적은 잠언입니다.
1. 태어남의 이야기.
<울면서 왔지만 웃으면서 갈 것입니다.>
저도 울면서 왔습니다.
태어날 때는 모두 울면서 옵니다.
한 인간의 생명 존재의 시작인 잉태는 하느님의 태초로부터의 계획이었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에 나온 직후, 간의 조직과 같이 치밀하던 폐장이
팝콘처럼 터져 최초의 호흡이 시작 되는 것은 신생아의 첫 울음으로 부터라고 합니다.
인생은 왜 울면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세상이 고통의 바다란 것을 알고 두려워서 우는 것인지,
세상에 나온 그 감격에 복받쳐 울음을 터트리는 것인지,
죄 중에 생겨난 자신에 대한 눈물의 통회인지,
세상에 나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가인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제 생애의 출발점인 세상과의 만남은 울면서 시작되었지만,
생애의 종점인 세상과의 이별만은 웃으면서 갔으면 좋겠습니다.
시골 작은 성당의 연령회 일을 맡아보면서 신부님 모시고 봉성체에 따라다니며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어르신들과 중한 병으로 고통 받는 젊은이들도 만나보고,
그리 자주는 아니지만,
돌아가시는 분의 임종과 운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지켜본 대부분의 임종은 곤한 잠에 빠진 듯이 조용하고 편안하였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임종 시의 모습은 그 분들의
생전의 신앙생활의 열성이나 신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분들 앞에서 임종 경을 바칠 때는, 그 기도가 저 자신을 위한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제가 세상 떠나는 때에도,
제 영혼 사탄의 손에 끌려가며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되지 않게 하여주시고,
거룩한 천사의 품안에 안겨 잠자듯이 편안하고,
좋은 꿈을 꾸는 듯이 미소 지으며 천상낙원으로 들어가게 하여 주소서.’
2. 살아감의 이야기
<모르고 왔지만 알고서 갈 것입니다.>
제게는 하느님을 알지 못 하고 살았던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하느님이 저를 부르시는 소리를 미풍의 억새소리 만큼이나
나지막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제 나이 오십 중반,
아내 베로니카가 악성 피부암인 멜라노마에 걸려 수술을 하고,
요양을 하고 결국은 재발하여 죽음을 준비하던 1년여의 이별연습을 할 때였습니다.
그 때 까지는 제게는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현존을 느껴 본적도 없었습니다.
인생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만 믿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나와 나의 생각, 나의 것만 존재 했지요.
내 자신의 지식과 능력과 노력으로 대기업의 임원까지 승진도 하였고
자식들도 나의 양육으로 큰 속 썩이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고
아내도 내 배려로 혼자서 성당 다니며 가정과 나를 잘 지켜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평범한 삶에 만족하여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마음으로 더는 욕심내지 않고,
죄짓지 않고 착하고 바르게 살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 믿고 살았습니다.
아내가 첫 수술을 받던 날,
수술실로 실려 들어가는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며
“당신의 하느님께 기도 할 게”하고 약속했고 아내가 13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는 동안, 수술실 앞 대기실과 병원 옥상을 수없이 오가며
아내의 핸드백을 뒤져 찾아낸 손가락만한 성모상을 옥상 난간에 올려놓고
“하느님, 제 아내를 살려주세요. 제가 잘 못했습니다.
제 아내만 살려만 주시면 죽을 때 까지 하느님 믿겠습니다.”하고 기도하였을 때,
그때 생전 처음으로 ‘하느님’을 제 입으로 불러보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중에 하느님과 처음 만났습니다.
하느님이 오래 전부터 저를 부르고 계셨다는 것도 몰랐고,
하느님이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보호하셨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나와 아내와 내 자식들의 생명을 주신분도 하느님이시고
생명을 거두어 가시실 분도 당신이란 것도 몰랐습니다.
아내는 내가 지켜주면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있을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아내가 죽기 넉 달 전,
성탄 일주일 전에 아내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외출로 저의 영세를 지켜보며
기뻐하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가 1차 수술 후 퇴원한 5월부터, 예비자 교리를 받기 시작하여 12월까지
7개월간에 무지각 무결석으로 새벽 교리반을 마치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영적 감동과 은총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좀 더 일찍 세례를 받고 아내와 함께 손잡고 성당을 다녔더라면
나의 개종을 그토록 기다렸던 아내가 얼마나 좋아 했을까 하는
때늦은 회한이 눈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는 일...다음해, 개나리가 화창한 4월에,
장성한 두 아들 중 어느 한 놈 장가가는 것도 못보고,
나와 함께 손잡고 성당도 못 다녀 보고,
불쌍한 베로니카는 53세의 한창 재미있을 나이에 영영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저에게 하느님을 알려주고, 아니, 저를 하느님께 마껴 놓고 떠나갔습니다.
3. 떠나감의 이야기.
<어둠에서 왔지만 빛으로 갈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으로 나올 때,
태아는 어머니 배 밖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출산 때 태중의 아기는 어머니 뱃속에
그대로 머무르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랑하는 엄마 아빠, 밝은 빛과 아름다운 세상...
그런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열 달 동안 머물며 탯줄로 영양 받아 자라던 어머니 태중의 어둠과 따듯함과
편안함 속에 그대로 머물고 싶어 세상으로 안 나가려고 애써 보지만,
알 수 없는 거대한 힘,
하느님의 섭리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좁은 문,
산도(産道)를 통과하여 세상으로 밀려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중에서 세상으로 밀려나온 인간은, 일생을 이 세상에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먹고 놀고 자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웃고 울고 지지고 볶고 삽니다.
그러다가 이 세상에서의 인연이 다하는 때가 되면,
인간은 또 다시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떠밀려 나가게 됩니다.
알 수없는 거대한 힘,
하느님의 섭리로 마치 태중에서 이 세상으로 떠밀려 나왔듯이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떠밀려 나갑니다.
이 세상 밖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사람들은 죽음이라고 부르지만,
다음 세상에서 보면 또 한 번의 새로운 탄생인 것입니다.
다음 세상에서 기다리시는 하느님,
하느님 사랑, 영원한 생명, 부활의 구원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이고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좁은 문,
천도(天道)로 밀려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후의 다음세상은 저 역시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가보지 않았으니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고, 그리 믿으라하니 그리 믿을 따름입니다.
생각으로는 믿지만 마음에선 확신이 안 됩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자가 복되다 하셨건만...
많은 구경꾼들이 줄타기 곡예사의 탁월한 능력을 믿고 그의 재간에 박수를 보내지만,
막상 “내 등에 업혀 줄 위를 건너 갈 사람은 앞으로 나오시오”하면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는 것 같이,
많은 신앙인들이 일상에서는 하느님을 굳게 믿고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하느님이 부르시면 그때에는 “예”하고 선뜻 나서지 못하고
천국을 의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위령회장이랍시고 연도도 열심히 하고,
쁘레시디움 단장으로 묵주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가대에서 성가도 열심히 부르고,
구역 반모임 서기 일도 열심히 하고,
전례 독서직으로 미사 때 성경봉독도 하고,
꾸리실리스따로서 본당 봉사도 열심히 하려고 애쓰지만,
막상 가톨릭의 가장 핵심 신앙인 ‘육신의 부활’과 ‘천국 영생’에 대해서는
아직도 가끔씩 의문을 가지는 혓바닥 발바닥 신자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도합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믿습니다.
하느님의 나라, 천국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주실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믿습니다.
어둠에서 왔지만 빛으로 갈 것을 믿습니다. 아멘“
베로니카를 불러 가시며 저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외롭고 나약한 저에게
새로운 동반자를 보내주신 하느님 아버지,
여생의 도반인 사랑하는 아내, 글라라와 함께
기도하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다가 하느님 부르시는 날,
천사의 품에 안겨 빛의 세계, 하느님의 나라,
천국을 향해 웃으면서 훨훨 날아가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 때에, 어두운 이 세상에 작은 빛이라도 남기고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소서. (2010. 9. 23)
- 출처 : 몸, 영혼의 거울 (가톨릭문인 신앙 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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