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22년 청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제일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장로교회 권사 직책을 갖고 시골 교회마다 다니면서 예배를 드려 주는 전도 부인으로 바쁘게 일을 하면서도, 본인 또한 항시 성경 책을 열심히 읽으셨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 있으면 어머니께서 이 세상 마지막 때 되어질 일을 말씀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성신이 한없이 내려 사람들은 그 은혜를 받게 된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이때를 못 볼 것이나 너는 볼 것이다.”하시며 꼭 잘 믿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눈만 말똥말똥하게 뜨고 어머니를 빤히 쳐다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6·25 전쟁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1955년 저와 남편은 딸을 데리고 서울 노량진으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서울로 이사 와서도 노량진 장로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제가 다니는 노량진교회는 산 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한강 건너 마주 보이는 산꼭대기에 전도관(이만제단)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저기 전도관은 이단이니 바라보지도 말라.”하며 전도관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관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는 것이 보이는데, 저는 한번 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하였습니다.
청주에 살 때 같은 교회에 다니던 장로님이 서울 원효로에 이사를 와서 만나러 갔는데, 그 부인인 윤 집사가 하는 말이, 전도관에서는 얼마나 은혜가 많이 내리는지 불성신이 교회 건물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 불이 난 줄 알고 소방차가 갔다가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돌아간 적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가 봤냐고 하니 아직 안 가 봤다며 저에게 같이 가 보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전도관에 대해 전서부터 의구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알아보고 가자는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번 가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막상 가려고 하면 발이 안 떨어지고 망설여졌습니다. 그때가 1957년경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청주에 있던 큰오빠가 저희 집에 찾아와 이만제단에서 집회가 10일동안 열리는데 저에게 같이 참석하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큰오빠는 몇 년 전부터 전도관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면서도 목사가 이단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나 선뜻 따라나서지 못하고 거절을 했는데, 며칠 후 오빠가 다시 집에 와서 하는 말이, 너를 인도하려고 농사일도 다 제쳐두고 왔는데 집회가 2, 3일밖에 안 남았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게 되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하나님, 어떤 길이 참길입니까?
이 미련한 것은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참길을 가르쳐 주세요.'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만제단에 도착해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오빠는 저에게 따라오라 하더니 사람들 틈을 막 헤치며 2층으로 올라가서 제 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오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차림새는 시골에서 올라온 모습들인데 한 사람 한 사람 다 어쩌면 그렇게 기도하는 태도가 겸손하게 보이고 간절한지, '저 사람들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순간 제 자신을 돌이켜 보니 그동안 장로교회를 오래도록 다녔으면서도 그 사람들처럼 그렇게 진실된 기도를 한 번도 드려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하얀 와이셔츠에 남색 바지를 입으신 하나님께서 단상에 오르시더니, 기도하신 다음 단상을 탁탁 치시며 “마음 문 여세요.”라고 외치신 후 힘 있게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박수 소리에 맞춰 우렁차게 찬송을 부르는데, 저는 기성교회에서 느릿느릿 찬송하는 것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제가 알고 있는 찬송인데도 불구하고 한 구절도 따라 하지를 못했습니다.
찬송을 한참 부르시고 나서 설교 말씀을 하시는데, 순간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백합꽃 향기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사방을 돌아보며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무슨 냄새인지 다시 그 냄새를 맡아 보려고 하였지만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있으니 또 그 향기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백합꽃 향기는 거기에 비교할 수도 없고 그 냄새를 뭐라고 표현할 수 가 없었습니다.
집회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데 앞에 가는 사람들이 “오늘 저녁에 은혜가 말도 못하게 강하게 내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은혜가 뭔가? 어떻게 강하게 내리나?' 무척 궁금하게 생각하며 계속 뒤따라가고 있는데, 앞에 가는 사람이 “오늘은 향취를 도가니로 부은 것 같았어. 그 냄새가 얼마나 진했는지 몰라." 하는 말을 듣고 제가 맡았던 향기가 바로 향취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만제단에서 나와 걸어가고 있는데, 예배시간에는 났다가 안 났다 했던 향취가 내리막길에서는 계속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버스 속에서도 나고 집 안에서도 나고 향취가 코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향취를 맡으면서 제가 계속 코를 벌름거리는 것을 본 딸이 “엄마 뭘 그렇게 마셔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일요일이 되니 딸아이가 "엄마 이번주에는 어디로 가실 거예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어디로 가긴, 이만제단에 가자.” 하고 그때부터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워낙 몸이 약했던 저는 결혼 후에 많은 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폐병 3기에 늑막염, 또 위장까지 상태가 좋지 않아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만 간신히 먹을 정도였는데, 청주에 살 때 중앙시립병원에서는 어떻게 고칠 도리가 없겠다며 얼마 남지 않은 세상 조심스럽게 살아가라고 하면서 위로의 말이지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아픈 몸으로 6·25 전쟁을 겪었고, 그 후 서울로 올라와 전도관에 다니게 될 무렵에는 제 병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침마다 까마귀가 집 문 앞에 와서 깍깍거리고 우니까 동네 사람들은 “저 집에서 사람이 죽겠구나.” 하고 소곤대는데, 어느 날 아주 심각할 정도로 아파서 누워 있게 되었을 때, 구역장과 몇몇 교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하나님께 안찰을 받으러 갔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제 눈에 손을 살짝 대셨는데, 하나님 손이 눈에 닿자마자 눈알이 쏙 빠지는 것같이 아픈것이었습니다. 그다음에 배를 살짝 치시니 창자를 몽땅 들어내는 것같이 아파 "악!" 하는 비명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르고 죄지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죄 안 짓겠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시며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제가 구해야 하는 것을 너무나 죄송하게도 하나님께서 대신 기도드려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안찰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때부터는 부축을 받지 않아도 혼자 걸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그동안에 못 먹었던 밥이 너무나 먹고 싶어 한 그릇 가득 먹고 났는데, 위가 아프다거나 하는 이상이 전혀 없고 기운이 솟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안찰 받은 그날부터 몸 아픈 데 하나 없이 완전히 다 나아 지금 현재까지도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시는 6·25 전쟁으로 한강 다리가 무너진 뒤라 임시로 만든 고무 다리로 통행을 했을 때였는데, 다리 양쪽으로는 한국 군인과 미국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또 그때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민간인들의 통행금지 시간이 있었습니다.
새벽예배 시간은 새벽 5시부터인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예배 시작하기 몇 시간 전에는 제단에 도착해야 앞자리나 중간 정도라도 앉지 그렇지 않고 예배 시간에 맞추어서 가면 현관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1시도 좋고 2시도 좋고 일어나는 대로 준비하여 집이 가까운 데에 있는 교인들 열 명 정도가 모여서 새벽예배를 드리러 같이 갔습니다. 적막한 새벽이라 조용히 걸어가도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리는데, 저희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찬송을 불러 가면서 웃고 떠들며 제단으로 갔습니다. 다리를 건널 때 우리들의 소리를 들은 보초 서는 군인들이 “누구야!”하고 고함을 지르면, 저희들은 깜짝 놀라서 새벽기도가는 사람들이라고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냥 가라고 하는 군인도 있고 옆에 세워두었다가 통행금지 시간 지나서야 가라고 보내 주는 군인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예배를 드리러 갈 때였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여러 명이 같이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며 다리를 지나는데, 군인들이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가지 말라는 소리도 안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날이 한 번도 없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군인들이 우리들의 낯이 익어 그냥 보내 주는가 보다.' 생각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새벽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단에 올라오시더니 “여러분, 오늘 다리를 건널 때 근무하는 군인들이 아무 말도 안 했죠?" 하고 물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예.”하고 대답하니, 하나님 말씀이 “내 가지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보기 너무 애처로워서 그 사람들 눈을 뜨고도 못 보게 해주었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지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 말씀 시간에 성경을 한 구절씩 풀어 주셨는데, 설교를 하시다가 시간이 다 되면 접어 두셨다가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서 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배시간에 설교를 하시는데, 새로운 사람이 많이 와서 그런지 지난주에 하신 말씀을 또다시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지난번 말씀 또 하시네.' 하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되지도 못한 게 된 척하고, 지난주 것 또 해."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단지 마음속으로만 생각한 것인데 다 보시고 바로 지적해 주시다니 참으로 두려운 하나님이셨습니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잘보고가요
신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