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빌로멜리움에 있는 교회에게 서머나에 있는 교회가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의 순교장면이 아주 세밀하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편지는 기독교 순교사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명백히 그 순교의 순간을 목격한 사람에 의해 기록되고 보내어진 것이다. 폴리갑(Polycarp)은 주님의 제자들의 뒤를 바로 잇는 사도라는 면에서 "속사도 교부"(Apostolic Father)라고 불려지는데, 그는 2세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교자였다. 86세에 체포되어 처형된 폴리갑이 순교한 연도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만 그는 155-160년이나(트라얀 황제의 통치기) 161-180년(우리에게 "명상록"으로 잘 알려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기) 중의 어느 해, 2월 22/23일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장한 병사들이 한 노예 소년을 앞세우고 폴리갑을 체포하러 왔을 때, 폴리갑은 그들이 먹고 마실 식탁을 준비하게 하였다. 순교의 제물을 앞에 두고 그들이 먹고 마시는 동안 폴리갑은 한 시간의 기도시간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거의 두 시간을 향해 가고 있는 그의 기도는 아무도 제지하지 못했다. 이윽고, 기도를 마치자 압송되어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관중석에 숨어 지켜보던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늘로부터 울려오는 큰 소리를 들었다. "폴리갑아! 강건하여라. 그리고 남자답게 행동하여라" 폴리갑의 명성과 고령을 생각한 지방총독이 말하였다. "맹세하라. 그러면 내가 너를 석방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욕하라" 죽음을 벗어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폴리갑의 입이 열렸다. "86년 동안 나는 그의 종이었습니다. 그 동안 그분은 나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를 구원하신 왕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의 신(神), 가이사에게 맹세할 것을 요구하는 추상같은 명령 앞에서 폴리갑의 무릎은 결코 굽혀지지 않았다. 총독의 협박이 이어졌다. "나는 야수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너를 그들에게 던질 것이다." 콜롯세움의 주린 맹수들의 포효가 채 끝나기도 전에 폴리갑의 입이 열렸다. "야수들을 부르십시오! 회개에 있어서 좋은 것으로부터 나쁜 것으로 변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변화입니다. 그러나 악한 것으로부터 의로 바뀌는 것은 고귀한 것입니다." 피에 굶주린 잔혹한 로마인들의 고함이 경기장을 들끓는 때에 총독의 마지막 심문이 이어졌다.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네가 야수들을 무시하므로, 나는 너를 불태울 것이다." 그러나 폴리갑은 대답하였다. "당신은 오직 짧게 태우고 잠시 후에 소멸되는 불을 가지고 위협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악한 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다가오는 심판과 영원한 처벌의 불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당신은 지체하고 있습니까? 오십시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십시오"
병사들이 장작더미 위에 선 폴리갑을 못박으려 할 때 폴리갑은 이를 만류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불을 견딜 수 있게 하실 분이 역시 내가 움직이지 않고 장작더미 위에 남아있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기둥에 묶인 폴리갑은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기도했다.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당신은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성령의 불멸 안에서 영과 육의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그리스도의 잔 안에서 순교자들의 숫자에 포함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속이지 않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신 당신이 미리 예비하셨고 계시하셨으며, 이제 성취하신 대로, 부요하고 받으실 만한 제물로 오늘 당신 앞에 순교자들 가운데 나를 받아주옵소서"
폴리갑의 기도가 끝났을 때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사람들은 기적을 보았다. 기둥에 묶인 폴리갑은 불에 상하지 않았고 불은 오히려 폴리갑의 주위를 아취형태로 감싸 노구(老軀)의 순교자를 지키는 듯하였고 콜롯세움은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차게 되었다. 결코 불로는 폴리갑을 처형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형집행인은 칼로 그를 난자하였으며 흐르는 폴리갑의 피는 맹렬히 타오르던 불길을 잠재워버렸다.
최근 두만강 접경에서 탈북한 이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그 신앙을 전하기 위해 북으로 되돌아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그들에게서 온 한 편지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한끼 식량을 얻으러 왔다가 우리는 예수를알고 영생을 얻어 돌아갑니다 ... 지금까지는 먹을 것이 가장 소중한 줄로만 알았었는데 그보다는 하나님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이것들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갑니다. 내가 등에 지고 가는 쌀과 옷은 빼앗길지라도 내 영혼 속에 모신 주 예수를 어찌 빼앗길 수 있겠습니까? ... 이제 저는 다시 저 어두운 북조선 땅으로 돌아갑니다. 나를 맞이하는 것은 안전부 요원들의 날카로운 채찍이겠지요. 그래도 부양해야할 처자가 있으니 얼마간의 양식과옷가지를 얻어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가족에게 내 형제에게 예수를 전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 배고픔도, 안전부의 심문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기쁨만이 넘칩니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
지난 2월 말에 중국에서 선교하는 한 선교사를 통하여 주님의교회로 또 한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것은 리영희라는 37세 북한 여성의 순교 소식을 전하는 편지였는데 그녀는 2000년 2월10일 12시 정각 함경북도 무산시 장마당에서 순교하였다. 이 편지에는 리영희 성도가 복음을 전하다 처형당하는 장면을 같은 동료 전도 인이 옆에서 지켜보고 생생하게 전한 보고를 싣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장마당의 상점들을 모두 문을 닫게 하고 전 주민이 다 나와서 목격하도록 미리 알려진 가운데 처형당하는 이유를 남녀 당원 두 사람이 나와서 연극 식으로 해설하고 당과 조국을 배신하면 이렇게 처형당한다고 인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는 처형이 진행되었는데, 하반신은 고문으로 이미 일어설 수가 없이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말뚝에 목과 가슴 그리고 허리를 묶고, 눈은 헝겊으로 가려졌다. 부서진 다리로 상체를 버틸 수조차 없어 주저앉은 이 앞에서 조준을 명하는 장교의 "발사준비!" 명령이 내려졌다. 그 때 처형을 기다리던 리영희 성도는 "예수를 믿으시오!" "주여!" 하고 크게 외쳤으며 그 순간 "발사!" 하는 소리에 더 이상 리영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저격수의 총성만이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3명의 저격수가 머리에 4발 가슴에 4발 배에 4발을 쏘아서 온몸에 살점이 터지고 심장에서 터진 피는 구경꾼들에게까지 튀었고 땅은 순교자의 피로 검붉게 물들었다. 시체는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되었는데, 일반사범에게는 세발씩을 쏘지만 순교의 제물 리 영희에게는 빗발같은 총알이 날아들었다.
얼마 전 미국에서 들려온 총기 난사 사건에서 있었던 캐시 버넷 양의 순교 이야기가 물건너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회적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결코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목사로서 이 편지들을 읽는 동안 가슴이 터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 소중한 것을 잃은 오늘의 교회, 아니 명예와 안락함에 누워 날마다 눈물없는 빵에 감사하던 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서 돋아난 인류 구원의 생명나무이다. 수많은 세기동안, 수많은 장소에서 신앙의 지조는 죽음을 불사하고 영원한 생명을 지켜내었고 이들의 장엄한 순교의 보고를 통해 오늘 우리의 신앙은 정제(淨濟)되고 또한 새로워지고 있다. 폴리갑의 순교사화를 읽으며, 또 내 동포, 리영희 성도의 순교 소식을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아직도 순교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