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가? 싶었습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자기 죽은 날을 기억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육체의 죽음보다는 마음의 죽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의미를 담고 있기는 합니다. 삶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니까요. 사실 나 외의 대상과의 싸움보다 어쩌면 더 치열할 수도 있습니다. 이긴다고 하여 당장 어떤 표가 나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자신과의 투쟁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버티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도 합니다. 지나고 나면 후회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스스로 대견스레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혈연관계는 깨뜨리기 어려운 틀일 수 있습니다. 좀처럼 무너지지 않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가치관을 초월하기도 합니다. 세상사를 이끄는 가장 무서운 힘이기도 하지요. 특히 부모의 자식 사랑은 때로 죽음도 불사합니다. 사명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많은 이야기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재난을 당한 속에서 발휘되는 모정이나 부정의 힘은 불가능을 뛰어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이야기를 보거나 들으면 너나할 것 없이 크게 감동을 받습니다. 그 이야기는 남녀 사랑의 이야기보다 더 가슴을 찌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에는 불륜이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혈연의 사랑마저 깨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그야말로 돈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부자지간에도 돈은 세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혈연의 의리마저 깨뜨릴 수 있는 요소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지만 세상 속에 일어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보험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부부 사이에서는 흔히 일어납니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좀 냉혹하게 말해서 돌아서면 남남, 그것이 부부입니다. 그러나 혈연 가족 속에서 일어난다면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소위 인륜을 저버리는 일이니까요.
한 소녀가 죽었습니다. 집에는 유서 비슷하게 써진 편지가 하나 놓여있고 떨어졌다는 낭떠러지에는 그 소녀 ‘세진’이의 신발이 놓여있습니다. 한창 태풍이 몰아쳤던 시기에 벌어진 사고이기에 시신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수색작업이 이루어졌지만 얼마 후 포기하였습니다. 휩쓸려 나갔다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자살로 사건 종결을 지으려 합니다. 개인적 사고로 오랜 병가를 마치고 돌아온 형사 ‘현수’에게 범죄사건 중요 증인으로써 보호관찰 대상인 이 소녀의 자살사건 마무리 작업이 맡겨집니다. 상관이 주문한 것도 크게 관여하지 않아도 되니 적당히 확인하여 사건을 종결지으라는 것입니다. 담당 변호사도 만났는데 수고비까지 건넵니다. 돈이 거저 오겠습니까?
현장으로 찾아갑니다. 외딴 섬, 관련되었던 사람들은 이미 없습니다. 부모도 없고 오빠라는 사람도 없고 보호관찰을 맡았던 담당경관도 떠나고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가 거하던 집은 빈 채로 그냥 있습니다. 사건 종결이 선포될 때까지는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사하는 기간 그 집에 머물기로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서 알아보는 작업을 합니다. 담당경관이 근무하던 파출소에서부터 그간의 상황을 듣습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을 찾아 나섭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들은 대로 아는 대로 답변을 해줍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잘 접하지 않으려는 여인을 알게 됩니다. ‘순천댁’이라고 부릅니다. 사고로 인하여 말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들을 수는 있습니다.
세진이가 거했던 집 가장 가까이 순천댁이 살고 있습니다. 동네는 좀 떨어져 있지요. 그나마 순천댁이 세진이와 가까웠으리라 짐작합니다. 세진이의 유서라는 편지의 내용은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 ‘아빠와 오빠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하는 그 죄는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무슨 죄가 한 소녀가 목숨을 걸만큼 대단했을까? 과연 세진이는 죽은 것일까? 상부에서는 수사 종결을 다그칩니다. 사건을 팔수록 오히려 이상한 일들이 떠오르는데 왜, 무엇을 위해 서둘라는 것일까? 더구나 현수 개인사까지 겹쳐서 몸은 더욱 지쳐갑니다. 오죽하면 친구가 걱정하며 따라붙습니까? 이왕 맡은 일이니 끝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상부의 바람과는 다르지요.
철학이 아니라 삶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부채를 안고 삽니다. 어쩌면 목숨 값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공짜처럼 사는 인생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드물지요. 그나마 그 목숨, 그만한 값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세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 집에 머물면서 현수는 세진이의 아픔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세진이를 찾아가며 자신의 아픔을 느끼고 보듬어줍니다. 자신을 치유하는 것이지요. 현수에게 친구 ‘민정’이가 있다면 세진이에게 순천댁이 있습니다. 알고 나서 현수는 사건을 털어버립니다. 그리고 자기 자리를 박차고 떠납니다. 세진이처럼.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복된 한 주를 빕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간, 좋은 날들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