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육지탄 ( 脾肉之嘆)
넓적다리에 살이 붙은 것을 개탄한다. 세월은 흐르고 몸은 예전만
못한 채 뜻을 피지 못하니 이를 한탄하지 않을수 없다는 뜻의 말이다.
삼국지 (三國志) 선주전주(先主傳注)
[일화]
삼국시대 때, 세 나라가 정립되기 전 권력투쟁은 마치풍전
동화 같았다.
조조가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자 스스로 대장군이라 이름했다. 이
무렵, 유비는 조조와 협력하고 있었다. 여포를 하비에서 격파하고
조조의 주선으로 좌장군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유비는 조조의 휘하에 있는 게 싫었다. 그를 떠나 정처없이
떠돌다가 6년만에 겨우 정착할 수 있었다. 형주 땅의 유포가
유비를 받아 주었던 것이다. 이 일은 유비에게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한편 조조는 하복을 평정했고, 이 무렵 유비는 작은 성 신야(新野)를
지키며 그저 세월에 의탁하는 신세였다.
어느날 유비는 유표가 베푼 술좌석에 앉았다가 변소에 가게 되었다.
자신의 넓적다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살이 두득이 볼에 있는 걸
발견하고 탄식을 했다.
변소에서 돌아오는 유비의 표정을 보고 유포가
"안색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묻자, 유비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오늘 보니 넓적다리에 살이 가득 붙어 있었습니다. 늘 말을 타고 다닐
때는 살이 붙을 새가 없었지요. 요즘 말을 타지 않으니 이모양입니다. 제나이 벌 써 50, 몸은 늙는데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런
자신이 서글펐던 것입니다."
이 날 이후 유비는 버릇처럼 비육지탄을 들먹이며쓸쓸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 유비에게도 때가 왔다. 적벽 싸움에서 명성을 떨쳤던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 양자강 중류의 강능까지 세력을 뻗어 나갈 수 있었다.
그곳은 요충지대였다. 조조가 이 소식을 전하고 얼마나 놀랐던지 들고
있던 붓을 다 떠어뜨렸을 정도였다.
유비는 그뒤 초을 세웠다.
(강헌 선집 16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