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돌리던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이미 서을에 산지 오래 되었지만
그 때는신문을 돌리던 사람이 많았다
주로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上京)하여
신문배달하는 곳에서 숙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신문과 그 다음에는 중앙일보를 돌렸다
반포동에서 시작하여 신사동 강남구청 그리고
강남의 아파트가 내가 배달하는 코스였다
강남8학군에 속하는 영동고등학교도
나의 배달코스였다
그 학교 앞에 서서 자라던 배나무에서
배(梨)를 따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영동중학교에서
중3학년의 연합고사는
영동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쳤다
내가 갈 수 있는 8학군 고등학교는
경기고, 휘문고, 영동고, 상문고였다
그러나 나는 경기랑 휘문도 못가고
말죽거리 잔혹사의 상문고에 갔다....
신문을 돌리면 부수로 신문 몇 부를 더 준다
그것을 팔면, 하루에 좀 더 많은 용돈을
벌 수 있었다~
나의 아버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오셨다
신문을 돌리는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以心傳心이었겠지
카페 게시글
자유로운 이야기
서울의 강남에서 신문을 돌리던 시절
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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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4 00:0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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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은 서울에서 30년 살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이제는 장소와 시간의 제약이 없다
이곳에서 귀농했는데...공부만 하는 것 같다~
지하마피아가 나의 집의 안팎에서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골촌놈의 모습을 보면...
머리가 세뇌로 썩어서 얼굴을 나타내는 것이다 ㅋㅋ
아버님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데
고향에서 매우 부유한 사과밭과수원이 있어서...
취직을 안하셨다고 한다
서울대 경제학과라서 한국은행에도 가고
정부의 장관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나의 인생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7개외국어와 자연과학하는
나에게 만족한다
die Zeitung. 전 대청중학교 출신입니다. 은마아파트 살았었어요 ㅎㅎㅎ
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을 믿습니까?
한국의 禪僧들은 윗 句節을 崇尙합니다.
윗구절이 부처님께서 說하신 말씀입니까?
부처님의 敎說의 核心과 大義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