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1일 부활 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6-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7 그러자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18 그들은 또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묻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내가 말한 것을 가지고 서로 묻고 있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6. 찬미받으소서 주간 5월 21일(목)
정직한 대화를 통한 정책 결정 과정은 투명해야 합니다
양기석 신부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장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
“모든 관계자의 숙고와 토론을 통한 정책을 수립하려면 환경에 ‘개입’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참여로 모든 사람이 다양한 측면과 여러 위험과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과학적 정치적 토론에는 정직과 진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러한 토론이 특정 계획의 법적 허용 여부에 관한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찬미받으소서」, 183항).
“결과를 얻어 내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직접적인 비용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임기 내에 뚜렷한 효과를 이끌어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국민과 시민 단체의 압력이 없다면 당국은 언제나 개입을 꺼릴 것입니다. … 정치가가 이러한 책임과 함께 그에 따르는 비용을 감내하는 … 용기를 낸다면 정치가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인간 존엄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181항).
코로나19로 세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방약도, 치료제도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세계는 큰 두려움과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삼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서로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긴밀하게 상호 의존적으로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찬미받으소서」, 164항). 코로나19는 인류의 무자비한 개발과 무한대의 소비 활동에 따른 생태계 파괴의 결과물입니다. 무한대의 소비를 부추기고 합리화하는 정책과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기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전염병과 생태계의 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전 세계적인 화두는 단연코 ‘기후 위기’입니다. 1992년 ‘리우 선언’ 이후 ‘지구온난화’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처는 의미 있는 효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지구 전체 생태계를 돌보려는 국제적인 협력과 경제적인 책임에 대해 논의하고, 생태계에 영향을 줄 사업이나 계획에서는 ‘환경 영향 평가의 의무화’, ‘온실가스 배출 제한 목표’를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실천 계획을 담은 의제와 생물 다양성 협약 등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정기적인 검사와 위반 행위의 제재를 위한 적절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국제연합을 통한 각국 정상들과 실무진들의 노력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세계 공동의 유익을 우선으로 하지 않고, 국익을 우선한다는 각국의 입장을 좁히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각국의 국익을 우선한다는 입장은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기후 위기’에 공동 대응하지 못하여 각국의 안전마저도 위협받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167항). 이후 파리 기후 협정으로 위기의식이 현실화되었지만, 여전히 각국의 현실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에서는 그 어떤 국가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의 경중에서는 차등이 있습니다. 산업화의 가장 큰 혜택을 누린 부유한 국가들이 더 커다란 책임을 져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170항). 산업화를 먼저 이룬 많은 선진국들이 난색을 표명하지만, 기후 위기로 인해 감당해야 되는 위험에 비하면 적은 비용일 뿐입니다. 이 문제는 인류의 공동선을 위한 국가와 민족들의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172항). 이러한 연대는 전 세계적인 빈곤 퇴치에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175항).
일련의 국제적인 추세에 각국이 일정한 보조를 맞춘 결과, 상당수의 국가가 기업 활동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오염을 방지하거나 통제하는 법률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개인과 사회의 생활 방식에서도 적극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창조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찬미받으소서」, 177항).
정부는 소비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두려워하기에 생태계 보존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전 세계적으로 시민들이 협동조합의 형태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국가와 지역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권력과 기업의 부패를 견제하여 공동선을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찬미받으소서」, 179항).
기업의 여러 활동과 지역과 국가에 큰 영향을 주는 사업의 환경 영향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노동의 조건, 건강권, 지역 경제의 안전, 생태계 보전 등의 문제들은, 정치 권력과 이익 주체인 기업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사업의 영향을 받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충분히 제시되어야 하고, 다양한 대안점과 해결책들을 제시하는 시민들의 의견도 제대로 반영되어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183항).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시며 ‘공동의 집’, 지구 생태계를 인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공동의 집’ 지구의 생태계가 위기에 놓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류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후가 형성된 ‘홀로세’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완전한 시대’라는 의미의 ‘홀로세’는, 인간의 오만한 삶의 방식과 착취로 위기에 놓였습니다. 마치 하느님인 양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오만이 ‘인류세’를 만들었고, 결국 인류가 가장 안전하게 살아왔던 생태계를 파괴해서 ‘인류의 멸종’을 두려워해야 하는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마태 24,45) 주님께서는 마치 제때에 양식을 내어주고 돌보는 충실한 종처럼, 주님께서 창조하신 생태계를 돌보고 보전하려는 이들이야말로 충실한 종이요, 주님께서 마련하신 참된 행복을 얻을 슬기로운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시자, 우리의 벗이신 주님께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공동의 집’ 지구 생태계를 위해 행동해야 할 때”라고 손을 내미십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행동하여야 할 때입니다.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고, 회당에서 토론을 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8,1-8
그 무렵 1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2 거기에서 그는 폰토스 출신의 아퀼라라는 어떤 유다인을 만났다.
아퀼라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다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자기 아내 프리스킬라와 함께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바오로가 그들을 찾아갔는데,
3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
4 바오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5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뒤로,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면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하였다.
6 그러나 그들이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바오로는 옷의 먼지를 털고 나서,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들에게로 갑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7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 티티우스 유스투스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는데,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다. 그 집은 바로 회당 옆에 있었다.
8 회당장 크리스포스는 온 집안과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다.
코린토 사람들 가운데에서
바오로의 설교를 들은 다른 많은 사람도 믿고 세례를 받았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