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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말' 확인도 않고 전한 사람과 보도한 기자
‘메이요 강연’은 의사면허제도 아예 폐지하자는 것
운전면허도 없애야 한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논법
경제학자 아닌 ‘광신적 시장주의’ 선동가에 가까워
'한 권만 읽은 대통령' 바로 잡지 못하는 현실 위험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처우가 나빠지는 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해보자. 프리드먼이 1978년 미국 미네소타주 ‘메이요 클리닉’에서 한 강연을 참고해 봐라. 당시 미국의 상황과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흡사한 점이 많다. 프리드먼 강의를 보면 의사들도 의대 증원이 결코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만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10월 18일자 안정훈 기자의 단독 기사. 네이버 갈무리
대통령 귀한 말씀, 전한 사람이나 보도한 기자나 확인은 해 봤나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인데, 공개 발언은 아니다. 「매일경제」 안정훈 기자의 10월 18일 <단독> 보도에서 추렸다. 기사에 따르면 대통령은 내부 회의에서 여러 번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안 기자가 ‘대통령실 고위관계자’한테 듣고 썼다 하고, 대통령실이 내놓고 부인하지 않았으니 사실이라 믿어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의료대란과 관련한 대통령의 이런 귀한 말씀을 받아쓴 언론사가 거의 없었다. 놀라운 일이다. 안 기자의 기사는 여전히 <단독>이라는 모자를 쓰고 있다. 대통령의 정책 관련 발언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 어떤 이유로 대통령실이 추가 보도를 막았거나 너무 터무니없는 말이라 다른 기자들이 모두 못 본 척했다면 모를까.
어쨌든 그 기사의 <단독> 타이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해졌다. ‘나만 들었다’는 뜻이다. 그게 전부다. 윤석열의 발언을 기자에게 전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직무 수행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들은 말을 옮긴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는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 모두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문제의 ‘메이요 강연’을 보았고 내용을 이해했다면 엉뚱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의 말을 기자에게 흘려보냈을 리 없다. 기자도 강연 동영상을 확인했다면 그런 기사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어떤 대통령실 관계자가 후속보도를 막았다면, 그 사람은 대통령 참모로서 일할 최소한의 능력과 자세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언론사의 어떤 기자가 안 기자의 <단독> 기사가 함량 미달이라고 판단해서 받아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기자로 일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안 기자의 <단독> 보도를 무시한 건 잘한 일이 아니다.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말은 뉴스 가치가 있다. 정부의 결정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의료대란처럼 중대한 현안에 대한 말은 특별히 정밀하게 분석 평가해 지지하거나 비판해야 한다. 그게 저널리스트의 임무다. 그런데 어느 기자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나라도 해야겠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의료대란으로 인해 전국 응급실 운영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1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의료진 인력부족 관련 안내문이 띄워져 있다.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이달 9∼10일 협의회에 참여하는 전국 수련병원 중 53곳의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급실 의사가 42% 급감했으며 이에 따라 병원 7곳은 부분 폐쇄를 고려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2024. 09.12 연합뉴스
의사 면허제도를 아예 폐지하라 했던 ‘메이요 강연’
밀턴 프리드먼의 ‘메이요 강연’ 핵심은 의사 면허제도를 폐지하라는 것이다. 논리의 뼈대를 추리면 이렇게 된다. “의사 면허제도는 의료서비스의 품질을 보장하지 않는다. 의료사고를 막지도 못한다. 의사협회라는 ‘사익 카르텔’이 의대 입학정원을 통제함으로써 의료서비스 가격을 높이는 도구로 쓰일 뿐이다. 의사 면허제도는 득보다 실이 크다.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마, 대통령이 그런 주장에 동조했다고? 잘못 요약한 거 아냐? 그런 의심이 든다면 유튜브에서 문제의 동영상을 검색하기 바란다. 우리말 자막을 붙인 것도 있다.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한 냉소와 ‘메이요 클리닉’에 대한 립 서비스는 무시해도 된다. 프리드먼이 윤석열의 ‘인생 책’이라는 『선택할 자유』 제7장에서 같은 논리로 식품의약품안전청(FDA)과 소비재안전위원회도 없애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동영상을 보시기 바란다.
프리드먼은 강연에서 만인이 인정하는 사실을 여럿 지적했다. 의사협회는 ‘사익 카르텔’ 맞다. 의사들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만든 협회니까 당연하다. 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늘리는 것을 결사반대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료서비스 가격을 높게 유지하려 한다는 것은 의사들 자신도 부정하지 않는다. 인구 증가와 소득 향상과 사회 고령화는 의료서비스 수요 증가를 유발한다. 그래서 적절한 수준에서 의대 입학정원을 조정해야 한다. 의대 입학정원을 지나칠 정도로 늘리지 않으면 의사들의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 대통령은 프리드먼의 이런 견해를 참고하라고 한 것이리라.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프리드먼만 한 게 아니다. 보건의료 전문가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걸 몰라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고 의대생들이 휴학을 한 게 아니다.
의대 증원 갈등 언제까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운전면허도 없애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프리드먼의 논법
프리드먼은 모든 문제에 대해 같은 논법을 구사했다.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에서 누구도 찬성하기 어려운 결론을 끌어내는 신묘한 논법이었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불완전하고 부작용이 있는 제도는 폐지가 정답이다,” 그는 국가의 모든 정책과 제도를 그런 방식으로 공격했다. ‘메이요 강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프리드먼이 말한 대로, 의사면허 제도를 실시해도 실력이 부족한 의사는 있기 마련이다. 의사면허는 원래 최소한의 능력을 보증할 뿐 탁월함을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실력 좋은 의사도 종종 실수를 한다. 그래서 의료사고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프리드먼은 그런 사실을 이유로 들어 의사면허 제도를 없애라고 했다.
프리드먼의 논리를 받아들일 경우 운전면허 제도 또한 폐지하는 게 옳다. 운전면허는 자동차를 운전해도 된다는 자격증이지 운전을 잘한다는 보증서가 아니다. 면허 있는 운전자라고 다 운전을 잘하는 건 아니며,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운전자도 판단착오를 하고 실수를 저지른다. 그래서 교통사고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면허 제도는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가가 관리하는 자격제도나 면허제도 가운데 프리드먼의 논법을 돌파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 세상에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아무 부작용도 없는 사회제도는 없다. 국민건강보험과 고용보험을 비롯한 각종 사회보험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사회복지제도 역시 크고 작은 구조적 결함이 있고 오남용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정부는 제도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교정하고 보완하고 개선한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제도를 다 없앤다면 국가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중동 사태에 따른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4.10.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광신적 시장주의’ 이념 선동가에 가까웠던 프리드먼
프리드먼은 바로 그런 세상을 원했다. 그는 단순히 감세와 작은 정부를 주장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그가 펼친 감세론과 작은정부론의 최종 목표는 사회보험과 복지제도의 완전한 해체였다. 그런 점에서 경제이론가라기보다는 ‘광신적 시장주의’를 설파한 이념 선동가에 가까웠다. 칼럼과 강연에서 데이터를 인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선택할 자유』에서는 경제학자들조차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신학자와 철학자들을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했다. 노벨위원회가 경제학상을 준 것은 주류 경제이론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는 점에서 한 번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뿐, 현실의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이론을 창안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윤석열의 말과 달리, 1978년 미국 상황과 2024년 한국 상황은 흡사한 점이 거의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에는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없다.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하는 ‘당연지정제’도 없다. 정부가 의료서비스와 약품 가격을 통제하지도 않는다. 민간보험회사와 병원과 의사들의 역학관계가 의료서비스 시장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국민건강과 관련한 모든 지표가 1인당 국민소득과 의료비 지출 비중 등 객관적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나쁘다. 프리드먼은 1970년대 미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없는 정책을 주장했다. 그의 견해 중에서 2024년의 대한민국 정부가 보건의료 정책에 반영할 가치가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빠른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해 지금 시점에서 의대 입학정원을 조금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미 문제가 된 공공의료와 필수 의료 분야 의사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 문제는 시장이 사회의 필요(need)가 아니라 구매력을 가진 수요(demand)에만 응답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서 정부가 다양한 미시적 보완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방 의사,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할 의사, 군의관, 검시관, 외과와 응급의학과를 비롯한 필수과목 전문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가 있는 특별한 정책과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오늘 비평의 초점은 프리드먼의 강연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평가하는 것이라, 어떤 미시적 보완책을 쓸 수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그때 말해도 되리라 생각한다.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표지. 교보문고 홈페이지 갈무리.
한 권만 읽은 대통령, 바로잡아 주지 않는 대통령실 사람들, 위험하다!
윤석열은 독서에 관한 우스개가 단순한 우스개가 아님을 증명해 보이는 중이다. 책을 전혀 읽지 않은 사람보다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우스개 말이다. 안정훈 기자의 <단독> 보도는 대통령이 내부 회의에서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되풀이해도 대통령실에는 바로잡아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과, 터무니없는 대통령의 말을 기자한테 흘려주는 정신 나간 참모가 허다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대통령 임기가 아직도 절반 넘게 남았는데, 우리나라 정말 큰일 났다.
출처 :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