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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과 달단(韃靼)
[달단(韃靼) : 색목인(色目人), 중아(中亞) 및 구라파(歐羅巴) 종족(種族)]
2022년 08월 05일
○ 달단(韃靼)【타타르(Tatar)】에 대한 여러 편(篇)의 글을, 많은 원전(原典)을 근거(根據), 논거(論據)로 하여 게재(揭載), 설명(說明)한 바 있다.
오늘의 게재(揭載) 글 역시(亦是) 이와 같은 유형(類型)으로,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영토(領土)는 한반도(韓半島)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카페(Cafe)의 〈22.07.26 “요(遼)나라의 북계[北界 : 북쪽 지경] 땅은?〉”과 연결(連結)되는 내용(內容)이다.
○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의 역사해설(歷史解說)에 따르면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한반도(韓半島) 땅에 있었다.”는 것이고,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여진(女眞)과 달단(韃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원(元) 순제(順帝) 때, 주원장(朱元璋)에게 패배(敗北)를 당한 후, 막북(漠北)으로 도주한 ‘원(元)’을 ‘북원(北元)’이라고 호칭(呼稱)했는데,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문집(文集)등에 의하면 고려왕조(高麗王朝)에서는 ‘시시때대로’ 북원(北元)을 왕래(往來)했다고 전해진다. 그 거리(距離)를 따져보면, 당시(當時)의 고려인(高麗人)들은 축지법(縮地法)의 대가(大家)였다. 1 만리(萬里)를 무슨 재주로 시시때때로 오고 갈 수 있겠는가?
이건 『당시(當時)에 북원(北元) 땅과 고려(高麗) 땅이 접경(接境) 즉 경계(境界)가 서로 맞닿아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게 합리적(合理的)인 사고(思考)다.』
옛 몽고족(古 蒙古族)은, 색목인(色目人)이다.
○ “옛 몽고족(蒙古族)은, 색목인(色目人)이다”라는 것을 모르거나, 또는 의심(疑心)하거나, 잊어버리거나, 생각지 않는다면 : “조선사(朝鮮史)를 공부(工夫), 연구(硏究)하는데 100% 오류(誤謬)가 발생(發生)할 수밖에 없다.” 지리적(地理的) 구도(構圖) 또는 인종(人種) 분포(分包) 역시(亦是) 마찬가지다.
옛 “몽고족(蒙古族)【달단(韃靼)을 포함(包含)한다】” 은 사서(史書)에 따르면 : 글란(契丹)의 여러 부락(部落) 중의 한 부락(部落)으로 ‘글란(契丹)에 부역(賦役)했다’고 전해지는데, “달단(韃靼)”은, 옛 몽고족(蒙古族)의 한 종류(種類)이며, 몽고족(蒙古族)은 색목인(色目人)이며, 달단계(韃靼系) 역시(亦是) 색목인(色目人)들이다.
본시(本是) 몽고족(蒙古族)은, “색목인(色目人)”이다. 이러함에도 “20세기(世紀) 이후(以後)의 실증사학자(實證史學者)” 들이 ‘몽고족(蒙古族)’을 조선족(朝鮮族)과 같은 황인종(黃人種)으로 만들어 놓으니, “조선사(朝鮮史)가 함정(陷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➀ 熱河日記 朴趾源 / 蒙古人 :《蒙古人의 特徵 : 蒙古 : 皆 鼻 高 目 深 : 몽고인(蒙古人)의 특징(特徵) : 모두 코는 높고, 눈은 깊다.》
➁ 燕行記事【吏曹判書 李坤】 聞見雜記 雜記 下 : 蒙古族 : 《其爲人與淸人自別.兩顴高.眼碧髥紫.皆悍惡麤健.不思室居. : 몽고족(蒙古族) : 몽고인(蒙古人)들은 청(淸)나라 사람들과는 구별되는데,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그리고 모두 사납고 거칠며 집에서 살지 않는다.》
➂ 오손(烏孫)과 같은 종족들이다 : 注 : 烏孫於西域諸戎其形最異.今之胡人,青眼赤髭鬢,狀類彌猴者,本其種也. : 《오손(烏孫)은 서역(西域)의 여러 융[戎 : 오랑캐. 되]중에서 그 형상이 가장 기이(奇異)하다. 지금의 호인[오랑캐 사람. 되놈]이다. 청안(靑眼 : 푸른 눈동자)과 콧수염(髭)과 구레나룻(鬢)이 붉은색이며, 형상(용모)이 원숭이(獼猴 : 미후) 종류와 같은데, 본시 그런 종족이다.》라고 하였는데,
➤ 옛 몽고족[古 蒙古族]은, 위의 글 “➀+➁+➂”에서 말하는 종족(種族)으로, 원사(元史) 또는 신원사(新元史)에서도 회색(灰色) 눈동자, 몽고비사(蒙古祕史)에서도 철목진(鐵木眞)의 조상(祖上) 또한 색목인(色目人)이라고 하였으며, 달단인(韃靼人)들 역시(亦是) 전형적(典型的)인 색목인(色目人) 종족(種族)들이다.
오늘날의 “몽골공화국” 국민(國民)들을 보면 : 옛 ‘몽고족(蒙古族)’이 될 수 없다. 이들은 바로 조선족(朝鮮族)과 같은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백성(百姓)들이었다. 이걸 착각(錯覺)하지 말자.
➤ 21세기(世紀) 오늘날 : 지구(地球)라는 행성(行星)내에서 한국인(韓國人)과 가장 가까운 종족(種族)은, 『현(現) 몽골인, 인도(印度) 동북방(東北方) 일부부족(一部部族), 대륙(大陸) 황하(黃河) 남북안(南北岸)의 19세기(世紀) 이전(以前)의 백성(百姓)들,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일부 소수민족(少數民族)들이다.』 이들은 그 풍속(風俗)까지도 흡사(恰似)할 정도(程度)라고 전해진다.
1.조선왕조(朝鮮王朝)의 실록(實錄)을 일례(一例)로 보자.
➀ 太祖實錄 1 : 《後遷葬于咸興府之義興部 韃靼洞, 卽德陵。: 후일에 함흥부(咸興府)의 의흥부(義興府) 달단동(韃靼洞)에 옮겨 장사하였으니, 곧 덕릉(德陵)이다.》라고 하였다.
➁ 太祖實錄 1 : 《北界與女眞、達達、遼 瀋之境相連, 實爲國家要害之地。: 북계(北界)는 여진(女眞)과 달단(韃靼)과 요동(遼東)ㆍ심양(瀋陽)의 경계와 서로 연해 있으므로 실로 국가의 요해지(要害地)다.》라고 하였다
➂ 太宗實錄 11, 太宗 6년 4월24일[1406년] : 《韃靼禾尺宰殺牛馬之禁。: 달단(韃靼) 화척(禾尺)에게 소와 말을 잡는 것을 금하도록 거듭 밝혔다.》고 하였다
➃ 世宗實錄 24, 세종 6년 4월26일[1424년] : 《平安道兵馬都節制使據江界兵馬節制使呈馳報: "今四月十七日, 小甫里口子對望越邊兀良哈 沈指揮率軍人十三名, 將牛馬幷十三頭匹來說: ‘吾等在前, 於建州衛 奉州古城內居住二十餘年, 因韃靼軍去二月十七日入侵, 中略 : 평안도 병마 도절제사가 강계 병마 절제사의 정고(呈告)한 것에 의거하여 치보(馳報)하기를 : 이번 4월 17일에 소보리 구자(小甫里口子) 건너편에 올량합 심지휘(沈指揮)가 군인 13명과 소·말 아울러 13마리를 끌고 와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건주위(建州衛) 봉주(奉州) 고성(古城) 안에서 20여 년을 거주하였는데, 지난 2월 17일에 달단군(韃靼軍)이 침략해 들어왔다. 중략(中略).》고 하였다.
위의 예(例)로 든 땅(地)은, 오늘날의 역사해설(歷史解說)에서 모두가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를 지칭(指稱)하고 있다.” 누구도 이에 반론(反論)이나 이의(異意)를 제기(提起)하지 않는다. 묵인(默認)하고 있는 것이다.
즉(卽)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고조선(古朝鮮)으로부터 반만년(半萬年)을 한반도(韓半島) 땅에서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했다.”는 것이다. 이게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은 없었다.』고 단언(斷言)할 수 있다.
➤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평화(平和)만을 추구(追求)했던 웃기는 민족(民族)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영토(領土) 개척(開拓)을 위해 엄청난 피를 흘렸고, 때로는 약탈(掠奪)하며, 토벌(討伐)하고, 평정(平定)하며, 점령지(占領地) 백성(百姓)들을 회유(懷柔)하며, 땅을 개척(開拓)하는데 혼심(魂心)의 힘을 기울였다. 이런 결과(結果)로 인하여 옛 조선영토(朝鮮領土)에는 주류(主流)인 황인종(黃人種)과 비주류(非主流) 색목인(色目人)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었던 토양(土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선왕조(朝鮮王朝)를 “한반도(韓半島)”라는 구석진 모퉁이 땅에 처박아 놓은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의 주장(主張)을 결코 수용(受容)할 수 없다.』
사라져버린 종족(種族)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
2. 21세기(世紀)의 오늘날, 종족(種族), 부족(部族)들을 살펴보면, 옛 고전(古典)에서 말하고 있는 ‘주요(主要) 종족(種族)과 부족(部族)’들 중에서 특히
➊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동구라파(東歐羅巴)” 일부(一部)를 손에 넣고, 구라파(歐羅巴)·페르시아[Peria]·인도(印度) 등지를 침공(侵攻)하고, 한때 전성기(全盛期)를 누렸던 훈족[Hun]·아바르[Avar]족·에프탈[嚈噠=挹怛=엽달=염달Ephthal]등의 민족(民族)!
➋ ‘요(遼)’나라를 건설(建設)하고,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와 구라파(歐羅巴) 땅에 걸터앉아 있었던 ‘아보기(阿保機)’의 글란족(契丹族 : 거란)!
➌ 금(金)과 청(淸)나라를 이뤘던 여진족(女眞族)!
➍ 유라시아[Eurasia]를 뒤흔들고, 공포(恐怖)에 떨게 했다던 옛 몽고족(蒙古族)!
이들을 살펴보면, 이들의 시원지(始源地)나 거점(據點), 인종(人種), 종족(種族)등에 대한 원전(原典)의 기록(記錄)은 생생(生生)하게 살아있으나,
오늘날 이들의 “민족(民族) 즉(卽) 종족(種族)=부족(部族)=인종(人種)”과 거점지(據點地)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그 후예(後裔)나 후손(後孫)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그 흔적(痕迹)조차 찾을 수 없으며, 일부(一部)는 극소수민족(極少數民族)이 되어버렸다.
➤ 과연(果然) 그럴까? 필자(筆者)의 주장(主張)은,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의 설명(說明)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 종족(種族)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20세기(世紀)의 실증사학(實證史學)이라는 명목(名目)하에, 실증사학자(實證史學者)들에 의해 강제(强制)로 매몰(埋沒)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즉(卽)
실제(實際) 『위에서 언급(言及)한 ‘➊+➋+➌+➍’에 해당(該當)하는 종족(種族)들은, 종족(種族)의 이름을 바꿔버렸다. 즉(卽) 20세기(世紀) 실증사학(實證史學)에 매몰(埋沒)되어 왜곡(歪曲)되고, 조작(造作)되어 “전혀 다른 종족(種族)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實際) 지금도 그들 ‘민족(民族)=종족(種族)’들은, 본시(本是)의 땅(地)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 쉽게 말해 『“훈족[Hun]·아바르[Avar]족·에프탈[嚈噠=挹怛=엽달=염달Ephthal]+글란(契丹:거란)+여진(女眞)+몽고족(蒙古族)”들은, 그 땅에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으나, 전혀 다른 이름(異名)으로 바뀌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 예(例) : 몽고족(蒙古族) : 오늘날 ‘몽골’ 땅에 살고 있는 몽고족(蒙古族)이라는 사람들은 약 ‘3백만(百萬) 명’쯤이 되는데, 본시 “몽골공화국”이 만들어질 때는 겨우 2십만(二十萬) 명(名)이었다는 것이고, 고전(古典)에서 말하기를, “몽고족(蒙古族)은 색목인(色目人)”이라고 하였으나, 오늘날의 “몽골인”들은 우리 국민(國民)들과 똑같은 무리들이며, 특히 ‘몽골반점(斑點)’이라고 해서, 이 반점(斑點)은, 색목인(色目人)들에게는 없다.
➎ “철목진(鐵木眞)으로 대표(代表)되는 옛 몽고족(蒙古族)”은, “색목인(色目人)으로서 그들의 본거지(本據地)였던 오늘날의 우랄산맥[Ural 山脈] 서(西)쪽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건 팩트[Fact]다.
➏ 『AD 1,924년 소련(蘇聯)에 의해 만들어진 “몽골공화국”은, 옛 조선(朝鮮) 백성(百姓)들 2십(二十) 여만(餘萬) 명(名)으로 건국(建國)되었다.』 “이들은 색목인(色目人)들이 아니다. 조선족(朝鮮族)과 똑같은 종족(種族)”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따르면 : 조선(朝鮮) 태왕(太王)의 어명(御命)으로,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군대(軍隊)는, ‘사막(沙漠)과 막북(漠北)의 땅을 여러 차례에 걸쳐 평정(平定)하였다’고 했기 때문에, 이곳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영토(領土)일 수밖에 없다.”
◆ 또한 興復哈密國王記[作者:馬文升 明]를 보면 : 합밀(哈密)의 동(東)쪽으로는 조선(朝鮮)이 있었다고 하였다. 【報興復哈密國王記[作者:馬文升 明 : “至, 朝野頗驚. (「朝野頗驚」,「野」原作「鮮」,據明朱當㴐國朝典故本改)”】 즉(卽),
《報 至, 朝 野 頗 驚. :[朝 野 頗 驚],“野” 原 作 “鮮”,據明朱當㴐國朝典故本改. : 보고에 이르자, 조야(朝野)가 놀라 두려워하였다. : [朝野頗驚 중의 글자 중에서 “야(野)”는 원작(原作)에는 “선(鮮)”으로 되어 있으나, ‘국조전’의 고본(故本)에 의거 고쳤다.》라고 하였다.
본래(本來) 원문(原文)에는 : 〈報 至, 朝 鮮 頗 驚 : 보고에 이르자, 조선(朝鮮)은 놀라 두려워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야(朝野)’ : ‘조정(朝廷)과 민간(民間)’을 뜻하는 말이고, ‘조선(朝鮮)’ : 나라 이름(國名)을 뜻하는 것이므로, 곧 ‘조선(朝鮮)’을 뜻하는 말이 되며, 당시(當時) ‘합밀(哈密)의 동(東)’쪽에는 “명(明)”나라가 아닌 “조선(朝鮮)”이 있었다는 것이다.
○ 이런 많은 기록(記錄)을 뒤집을 수 있을까? 명(明)의 마문승(馬文升)【AD 1426-1510】은, 무엇 때문에 이런 기록(記錄)을 남겨 놓았을까! 마문승(馬文升)은, 당시(當時)에 있는 그대로를 기록(記錄)해 놓았을 뿐이다.
달단(韃靼)은, 곧(卽) 몽고족(蒙古族)의 일파(一派)다.
3. 조선사(朝鮮史)에 등장(登場)하는 〈양수척(揚水尺)·화척(禾尺)·재인(才人)·백정(白丁)〉 등에 대해 “삼국(三國)과 고려(高麗)” 때 유입(流入)된 된 “달단(韃靼)·말갈(靺鞨)·글란(契丹)”계통(系統)의 북방유목민족(北方遊牧民族)”으로부터 기원(起源)한다고 보며, 특히 ‘달단화척(韃靼禾尺)’이란 말까지 있는 것을 보면, “달단(韃靼)”기원설(起源說)이 유력하다.
이들은 유목민족(遊牧民族)으로 가축(家畜)을 기르며 가축(家畜)과 살아가는 종족(種族)으로 그들은 가축(家畜)을 도살(屠殺)하는 것에는, ‘타(他)의 추종(追從)을 불허(不許)하는 자(者)’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가리켜 조선왕조(朝鮮王朝)에서는 백정(白丁)이라고 한 것이다.
【백정(白丁)에 대해서 많은 설(說)이 있다. 수서(隋書)를 인용(引用)하기도 하는데, 필자(筆者)의 생각은 다르다. 즉(卽) “백(白)자가 없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흰 백(白)”으로 쓰여, “흰 얼굴을 가진 장정(壯丁)”이란 뜻으로 “달단(韃靼) 사내를 뜻하며, 이들이 가축(家畜)을 도살(屠殺)하는 것을 업(業)으로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보는 것이다.】
그만큼 “달단(韃靼)이나 말갈(靺鞨) 또는 글란(契丹)”족과 조선(朝鮮)은, 가까이에서 근접(近接)하여 생활(生活)하며, 때로는 의탁(依託)하고, 예속(隸屬)되기도 했고, 독립(獨立)하여 조선(朝鮮)을 침략(侵略)하기도 했던 종족(種族)들이다.
➤ 太祖實錄 1, 총서 [辛禑九年癸亥八月] : 《太祖因獻安邊之策曰: "北界與女眞、達達、遼 瀋之境相連, 實爲國家要害之地.“ : 태조가 이로 인하여 변방을 편안하게 할 계책을 올렸는데, 이르기를 : "북계(北界) 는 여진(女眞)과 달단(韃靼)과 요동(遼東)·심양(瀋陽)의 경계와 서로 연해 있으므로 실로 국가의 요해지(要害地)가 됩니다.》하였는데,
그 주석(註釋)을 보면 : 《[註 039] 북계(北界) : 함길도》라고 하였다. 이게 한반도(韓半島) 지세(地勢)로 보면 웃기는 역사해설(歷史解說)이 될 수밖에 없다. 개성(開城)이든 한양(漢陽)이든 어느 곳에서 보든지, 『”북계(北界)“라면 특히 평안도(平安道)가 해당(該當)되고, ”동북계(東北界)“는 함경도(咸境道) 지방이 해당(該當)되는 지세(地勢)다.』
그런데 뭔가? 주석(註釋)에서는, ”북계(北界)는 함경도(咸境道)다“ 라고 했다. 참 웃기는 ‘역사(歷史) 무지렁이들’의 해설(解說)이다. 그럼 평안도(平安道)는, 북(北)쪽이 아니라 서(西)쪽이냐?
‘북계(北界)’는 : ‘함경도(咸境道)+평안도(平安道)’가 될 수밖에 없는 지세(地勢)다.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달단(韃靼)과 여진(女眞)과 글란(契丹)“에 대해서 그 흔적(痕迹)조차 찾을 수가 없으며, 사가(史家)들의 입에서만이 ”극소수민족(極少數民族)“으로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어디에 있으면서 ‘조선왕조(朝鮮王朝)’와 함께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일까?
“달단(韃靼)【타타르(Tatar)】이란 종족(種族)”은, 조선사(朝鮮史)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關係)에 있다고 설명(說明)한 바 있다. 이들의 본거지(本據地)에 대해서 주로 설명(說明)하기로 하자.
달단(韃靼)의 고향(故鄕)은, 東歐羅巴와 中央亞世亞 땅
4. 달단(韃靼)【타타르(Tatar)】이란 종족(種族), 부족(部族)은 황인종(黃人種)이 아닌 색목인(色目人)으로 이민족(異民族)이다. 또한 이들 종족(種族), 부족(部族)은 몽고계(蒙古系)로 ‘옛 몽고(蒙古)’를 이루고 있던 여러 종족(種族) 중의 하나였을 뿐으로, 원(元)나라 이전(以前)의 이들 종족(種族)은, 글란(契丹)의 한 부락(部落)으로 글란(契丹)의 노예(奴隸)였으며, 때로는 글란(契丹)과 함께 고구려(高駒驪)에 의탁(依託)하고, 복속(服屬)되기도 했었다.
‘해국도지(海國圖志)’ 속에서는 달단(韃靼)의 활동무대(活動舞臺)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및 동구라파(東歐羅巴)’였으나, 후대(後代)에 밀려나, 오늘날에는 달단(韃靼)【타타르(Tatar)】은, 그 종족(種族), 부족(部族)이 분산(分散)되어, 일부국가(一部國家)에 소수민족(少數民族)으로 있기도 하고, 주(主) 세력(勢力)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에서 돌궐(突厥)【투르크 Turk】계에 밀려나, 「우랄 산맥(Ural-山脈)의 서(西)쪽, 카스피(Caspi) 해(海)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 나라(國)를 건설했으나, 러시아(Russia)에 예속(隸屬)되어 자치공화국(自治共和國)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1) 海國圖志/卷031/西南洋(沿革)北印度西北鄰部附錄
…《地理備考曰:達爾給斯丹國,即南懷仁圖所謂韃而靼也,斯丹乃西域國王之稱,亦名哈薩克國,在亞細亞州西北,中略. : 지리비고(地理備考)에서 이르기를 : 달이합사단국(達爾給斯丹國)은, 곧 남회인(南懷仁) 도(圖)에서 말하는 소위 달단(韃靼)인데, 사단(斯丹)은 서역(西域)의 국왕(國王)을 일컫는데, 또한 이름이 합살극국(哈薩克國)이며, 아세아(亞細亞)주 서북(西北)에 있다. 중략(中略).》
…《外國史略曰:西域哈薩克,遊牧國也。蔥嶺東西皆有其地,西人稱之曰達達裏,亦曰達爾靼,亦曰達爾給。中略, : 외국사략(外國史略)에서 이르기를, 서역(西域) 합살극(哈薩克)은, 유목국(遊牧國)이다, 총령(葱嶺)의 동쪽과 서쪽에 모두 그 땅이다. 서인(西人)들은 부르기를 달달리(達達里)라고 하는데, 또한 달단(達靼)이라고도 하며, 또한 달이급(達爾給)이라고도 한다.》
달리강아박(達裏岡阿泊) : 海國圖志圖 17권 : 달리강아박(達裏岡阿泊)은, 아모하(阿母河)가 유입(流入)되는 곳으로 ‘아랄해(Aral 海)’이다. 「達裏岡阿泊卽鹹海」라고 표기(表記)되어 있다.
리해(裏海) : 海國圖志圖 17권 : 리해(裏海)는, 아랄해[Aral 海) 서(西)쪽에 ‘리해(裏海)’가 그려져 있다. 곧 ‘카스피해[Caspi海]’이다.
➤ 위에서 말하는 ”달단(韃靼)“은, 오늘날의 카자흐스탄[Kazakhstan]과 그 주변(周邊) 나라들의 땅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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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韃靼 /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관심부분(關心部分) 발췌(拔萃)】
21세기(世紀) 오늘날 대륙(大陸)에서 보는 달단족(韃靼族)의 정체(正體)를 살펴보자. 이들은 조선(朝鮮)의 ‘북변(北邊), 서북변(西北邊)’을 노략(擄掠)질했던 자(者)들이다. 【중국어판 위키백과】
➀ 韃靼可能指:狹義是蒙古語族中一個部落的名稱演化。即:塔塔爾部落。: 협의(狹義)로 보면, 몽고어(蒙古語)를 하는 종족(種族) 중 하나의 부락 명칭이다. 즉 탑탑이(塔塔爾)부락이다.
➁ 韃靼人,中國古代文獻對中國北方游牧民族及中亞、北亞、東歐蒙古族群的統稱。:달단인(韃靼人)은, 고대(古代) 문헌(文獻)으로 볼 때 북방(北方) 유목민족(遊牧民族)으로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북(北) 아세아(亞細亞), 동구라파(東歐羅巴)의 옛 종족무리들을 통칭(統稱)한다.
➂ 韃靼族,源於蒙古語族塔塔爾部落的族稱。: 달단(韃靼)족의 시원(始源)은 몽고어를 하는 족(族)으로 탑탑이(塔塔爾)부락(部落)을 말한다.
➃ 俄羅斯聯邦的韃靼斯坦共和國: 아라사(俄羅斯)연방에 달단사탄공화국(韃靼斯坦共和國)이 있다.
➄ 黑韃靼,又稱生韃靼,宋、遼﹑金時代對漠北的蒙古諸部的稱呼。: 흑(黑)달단(韃靼)은, 도 생(生)달단(韃靼)이라고 하는데, 송(宋), 요(遼), 금(金) 시대에 막북(漠北)에 있었던 몽고(蒙古) 여러 부(部)를 호칭한다.
➅ 汪古部,又稱白韃靼或熟韃靼。 : 왕고부(汪古部)는, 또 백달단(白韃靼) 혹은 숙달단(熟韃靼)이라고 부른다.
➆ 韃靼 (地域)(Tartary)中世紀到20世紀歐洲部分地區的稱呼,大約位於裏海北部和中部到烏拉爾山脈。: 달단(韃靼) 지역(地域), (Tartary), 중세기(中世紀)에서 20세기(世紀)에 ‘구주(歐洲)=구라파(歐羅巴)’의 부분지구(部分地區)의 칭호(稱呼)로, 대약(大約)의 위치(位置)는 ‘리해(裏海)=카스피해(Caspi 海)’ 북부(北部)와 중부(中部)의 오랍이산맥【烏拉爾山脈 : Ural 山脈】에 이른다.
※ 오랍이산맥(烏拉爾山脈) :【우랄산맥[Ural 山脈]】亞洲和歐洲的分界線 / 烏拉山脈(俄語:Ура́льские го́ры,簡稱Ура́л)是俄羅斯境內大約南北走向的一座山脈,它位於俄羅斯的中西部。烏拉山脈和烏拉河是亞洲和歐洲的分界線。它們將歐亞大陸分成了兩個大小不等的洲。烏拉山的森林區也是烏拉語系民族發源地.
➤ 위에서 말하는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는 :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북방지대(北方地帶)로 우랄산맥[Ural : 오랍이산맥(烏拉爾山脈)]의 동서(東西) 일대(一帶)를 지칭(指稱)하고 있다. 이건 21세기(世紀) ”중국어판 위키백과“의 설명(說明)이다.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얼씬도 하지 않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은 자(者)들이다. 헌데 이러한 종족(種族) 즉(卽) 색목인(色目人)들이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에 의탁(依託)하고, 귀화(歸化), 유랑(流浪)하며 조선(朝鮮)의 땅에서 살아가기도 했다는 것은, 당시(當時)의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달단(韃靼)들과 국경(國境)을 맞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명확(明確)한 국경선(國境線)은 없었을지라도 서로가 접경(接境)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즉 당시(當時)의 조선왕조(朝鮮王朝) 땅은, ”동구라파(東歐羅巴)∼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중원(中原) 대륙(大陸)을 아울렀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치 않고서야 어떻게 그 ‘달단(韃靼)’들이 조선(朝鮮) 땅에서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곧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동구라파(東歐羅巴)∼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신강성(新疆省)·중원대륙(中原大陸) 땅에 오만(傲慢)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즉(卽), 그 형세(形勢)가 이러했다는 것이다. 원전(原典)의 기록(記錄)과 지리적(地理的)인 측면(側面)을 고려(考慮)한 것이다. 여기서 ‘블랙코메디’ 하나를 이야기하겠다.
○ 기막힌 현장(現場)의 한 예(例)를 살펴보기로 하자.
➊ 通典邊防典 邊防 九 西戎 五 : 《奄蔡,漢時通焉.西與大秦接,東南二千里與康居接,去陽關八千餘里.中略. : 엄채(奄蔡)는 한(漢) 나라 때 통하였는데, 서(西)쪽으로는 대진(大秦)과 접(接)하고, 동남(東南) 2천 리에는 강거(康居)와 접하였는데, 양관(陽關)은 8천 여리를 가야 한다.》고 하였는데, 『엄채(奄蔡)는 곧 아래 ➋의 “아속(阿速)”이다.』 즉(卽),
➋ 阿速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奄蔡:又譯作「阿宿, 阿思, 阿速惕」。為伊朗人種,原居於高加索山,後遷徙至伏爾加河流域,建立阿蘭王國.阿蘇特:又譯作阿速特. 中略. : 아속(阿速) : 엄채(奄蔡)는, 또 역(譯)으로 “아숙(阿宿), 아사(阿闍), 아속척(阿速惕)”이다. 이랑【伊朗 : 이란[Iran]】인종이다. 원래(原來) 살던 곳은 고가색산【高加索山(Caucasus Mountains) / 코카서스산맥(Caucasus 山脈)】인데, 뒤에 복이가하【伏爾加河 : 伏爾加河 / 窩瓦河(俄語:Волга,又譯伏爾加河),位於俄羅斯西南部,全長3,692公里,是歐洲最長的河流,也是世界最長的內流河,流入裏海。Volga[볼가강]】 유역(流域)으로 옮겨 이동하여(遷徙), 아란왕국(阿蘭王國)을 건립(建立)하였다. 烏蘇里江:遼朝、金朝稱之為阿速江。阿克蘇市:元朝、明朝稱之為阿速城。: 오소리강(烏蘇哩江)은, 요(遼)와 금(金)나라 때의 아속강(阿速江)이다. 아극소시(阿克蘇市)는, 원(元)과 명(明) 때의 아속성(阿速城)이다.》라고 하였는데,
➌ 즉(卽), 위의 이야기는 옛 ‘엄채(奄蔡) 즉 아속(阿速)’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캅카스산맥[Caucasus 山脈] 일대와 볼가강[Volga 江] 유역(流域)”을 말하고 있다.
이곳 주변(周邊) 일대에 “오소리강(烏蘇哩江)”이 있었는데, ‘요(遼)와 금(金)’나라 때 “아속강(阿速江)”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하천(河川) 길림성(吉林省)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 21세기(世紀) 역사해설(歷史解說)은, 『캅카스산맥[Caucasus 山脈]과 볼가강[Volga 江] 유역일대(流域一帶)에 있었던 오소리강(烏蘇哩江)이 축지법(縮地法)을 이용(利用)해 수만리(數萬里)를 뛰어넘어,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 길림성(吉林省) 동해(東海) 가(濱)에서 발원(發源)한다.』고 설명(說明)하는 것이다.
길림성(吉林省) 땅에 캅카스산맥[Caucasus 山脈]과 볼가강[Volga 江] 이 있고, 이곳 인종(人種)이 전형적(典型的)인 색목인(色目人)들이란 말일까? 이건 ‘머저리’들의 ‘머저리 역사해설(歷史解說)’이다.
➍ ‘아극소시(阿克蘇市)’는, 오늘날에도 이동(移動)되지 않고, 신강성(新疆省) 서부(西部)의 탑리목(塔里木)분지의 서북(西北)변에 있는데, 성시(城市)는 아극소하[阿克蘇河]의 이름에서 득한 것이다. 아극소(阿克蘇)를 직역(直譯)하면 “백수(白水)”라고 하였다. 【塔里木盆地的西北邊緣。城市以阿克蘇河得名。「阿克蘇」直譯為「白水」】
➤ 이 얼마나 “머저리”같은 역사해설(歷史解說)인가? 본시(本是)의 요(遼)나라와 금(金)나라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와 동구라파(東歐羅巴)를 영토(領土)로 했었다는 것을 증거(證據)해 주는 것이다.
○ 위에서도 설명(說明)한 바와 같이 “요(遼)…금(金)…몽고(蒙古)”등의 나라들 거점(據點)은, “동구라파(東歐羅巴)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동(東)쪽 즉(卽) ‘동방(東方)’ 땅에는 누가 있었을까? 바로 『옛 조선왕조(朝鮮王朝)가 동서(東西) 2만리(萬里) 땅에 오만(傲慢)하게 걸터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게 핵심(核心)이다.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구라파(歐羅巴)’로부터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와 ‘중원대륙(中原大陸)’의 땅 모두를 아우르며, 활동活動)했다.』라는 것을 하나하나 논거(論據)와 함께 설명(說明)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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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가색인종(高加索人種)’이란 바로 ‘구라파(歐羅巴) 색목인종(色目人種)’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자(者)들이 총령(葱嶺)의 동(東)쪽 땅인 “동방(東方)에 살았다.”는 근거(根據)가 없다. “이(夷)란 동방지인(東方之人)”이라고 하였다.
달단(韃靼)은, 즉(卽) 몽고족(蒙古族)이며, 전형적(典型的)인 색목인(色目人) 종족(種族)이다. 이들이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있었다는 역사해설(歷史解說)은, 20세기(世紀) 이후(以後) 소위(所謂) 실증사학자(實證史學者)들에 의해 주도(主導)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소위(所謂) 『한반도(韓半島) 조선왕조(朝鮮王朝)라는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역사관(歷史觀)』은, 실증사학(實證史學)을 내세우는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에 의해, 19세기(世紀) 말부터, 특히 일제(日帝)시대부터 일본인(日本人) 학자(學者)들에 의해 주도(主導)된 것이다.
《“시라도리(白鳥庫吉)·이케우치(池內宏)·이마니시류(今西龍)”등이 대표적(代表的)인 학자들이다. 이들의 활동은 1920년대까지도 활발하였다. 1930년대부터는 한국인 학자들이 등장해 실증사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게 되었다. 이병도(李丙燾)·김상기(金庠基)·이상백(李相佰)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들의 연구활동은 해방 뒤 1950년대까지 이어졌다.1960년대 이후가 되면 실증사학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세대 학자들의 실제 연구에서 실증사학의 영향이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다.
실증사학(實證史學)의 특징(特徵)은 연구(硏究) 방법(方法)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실증(實證)을 중시했다는 점에 있다. 실증이란 실제적인 증거라는 뜻이고 실증적인 방법이란 그러한 증거를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설명한다는 의미이다.그런데 실증사학자들이 가장 중시한 증거는 정확한 문헌자료였다. 문헌자료라고 해도 이들이 추구한 것은 정확한 사료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실증사학(實證史學))] 》
그래서 《‘일제(日帝)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과 그들과 야합(野合)한 부역(附逆) 매국노(賣國奴)들은, 수많은 사서(史書), 개인(個人)의 문집(文集)까지도 몽땅 왜곡(歪曲), 조작(造作)하여 재판(再版)한 것이다. 더불어 그 숫자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많은 고서(古書)들을 반출(搬出)하여 열도(列島)로 빼돌리고, 또 ‘수십 만(數十 萬)권’의 고서(古書)를 불태워 없애버렸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게 ‘실증사학(實證史學)의 실체(實體)’다.
○ 『우리 윤석열 정권(政權)은 지금 무슨 짓을 하나?』 『친일(親日)! 무슨 말라 비뚤어진 친일(親日)이며, 무슨 얼어 죽을 친일(親日)이란 말일까?』
“친일(親日)이 아닌 극일(克日)이어야 올바른 말이다.” 왜구(倭寇)=왜구(矮軀)들을 압도(壓倒)할 수 있는 국력(國力)을 키우는 것이 바로 극일(克日)이다.
생각해보라!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99엔을 송금(送金)해 왔다.”고 전해진다. 이게 ‘왜구(倭寇)=왜구(矮軀)’ 일본(日本)의 실체(實體)다.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얼마나 깔봤으면, 99엔을 보냈을까?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장관은 뭐 할 말 없나?” 이런… …뭐 뭐뭐!
○ 오늘의 “윤석열” 정권(政權)은, ‘왜구(倭寇)=왜구(矮軀)’들에게, 친일(親日)을 외치며, 애걸복걸(哀乞伏乞)하고 있으나, ‘극일(克日)’을 위해 ‘5,200만 국민(國民)들에게 애걸복걸(哀乞伏乞)해야 정상(正常)적인 정권(政權)이 아닐까?’
‘기시다’가 무엇 때문에 목에 힘주며, “니네들이 답을 가져 와라”하면서 큰소리 빵방치는 걸까? ‘윤석열 정권’은, 태생(胎生)적으로 ‘친일정권(親日政權)’임을 너무도 빠삭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워낙 지지도(支持度)가 낮기 때문에 답(答)을 가지고 와도 그게 최종적(最終的)결과(結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시다’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우습게 보면서 깔보는 것과 ‘윤석열 정권’을 웃기게 보면서 비하(卑下)하는 것, 이 모두는, 대한민국(大韓民國) 국민(國民)들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누굴 탓하고 원망(怨望)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안 아무개”는,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국민(國民)들에게 큰소리치며 공언(公言)했다. 실천(實踐)했는가? 결국(結局) 국민(國民)들에게 “뻥을 친 것이다” 그러고도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며, 과학방역(科學防疫)이니 뭐니 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보통 철면피(鐵面皮)가 아니다. 도대체 뭐가 과학방역(科學防疫)이냐?
그래서 항상(恒常) 하는 말이 “선택(選擇)은 자유(自由)다. 그러나 그 자유(自由)에 대한 책임(責任)은 선택(選擇)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卽) 당사자(當事者)들의 책임(責任)이라는 뜻이다. 2022년 08월 05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선생님 감사합니다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더위에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대진"님!
정말 덮습니다. 열대야까지......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무더운 날씨에, 코로나에, 정국불안에, 고물가에, 고환율에......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때입니다.
더구나 요즘 어린이들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사망한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여름철 건강에 최선을 다해야 될 것 같습니다.
댁내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