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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도 보고 아파도 본 몸 이야기 2-2
2025 가을 박현 선생님 이야기마당
(입력: 2025년 11월 11일 /녹취 서해진)
어쨌든 어제는 (음악을) 듣고 하룻밤 잠을 못 자서 지금 제가 이렇게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천천히 얘기합니다. 이렇게 네 가지가 있으면 기본 생명이 돼서 ‘거시’가 됐든, ‘무시’가 됐든 뭐가 됐든 생명이 돼요.
흙과 물 그리고 불과 바람
그 안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 불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생명 에너지, 그 다음에 우리가 움직인다는 것은 신경계가 있다는 것인데, 신경계보다는 엄밀하게 보면 이어져 있는 뭔가 흐름이 있는 거죠. 그래서 바람이 있는 거죠. 바람 불듯이 흘러가며 일렁대는, 생명 안에서 일렁대는 게 있는 거죠.
일렁대는 바람 그리고 반죽의 대상인 물과 흙 그 안에서 일어난 온기로서의 생명, 이 생명으로서의 온기가 원래 흙으로부터 멀리 이탈하면 이탈할수록 진화한 동물인 거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땅으로부터 많이 떠나간 동물인 거죠. 그들은 기본적으로 온기라는 영역에서 땅과 바로 붙어 있지 않아요.
네 가지 요소가 다 들어있는 기본 단위 세포 그의 이름은 알
그런 동물들은 어떻게 하느냐? 흙을 직접 섭취를 못하는 동물이 돼 가지고 간접적으로 흙을 섭취하는 동물로 돼 가고, 간접의 단계가 길면 길수록 편애하는 동물이 돼 가죠. 이렇게 돼 가다 보니까 흙 안에 있는 요소들이 우리 몸 안에 다 있게 되죠. 그렇게 뭉쳐진 것의 전체를 넓은 의미의 ‘살’이라고 그러는 거죠. 따라서 ‘살’은 우리 고기 덩어리를 말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간에도 살이 있고 심장에도 살이 있고 장에도 살이 있고, 곱에도 살이 있고 벨에도 살이 있죠. ‘벨’이라고 아시죠? 벨은 큰 창자를 말하죠. 그리고 창자 전체를 포함한 배의 영역을 허벌이라고 그러죠. ‘허벌나다’는 건 배가 나왔다는 얘기예요. 배가 불었다는 거죠. 그 뜻이 다르게 쓰이기도 하지만 벨이 꼬였다는 말은 대장이 꼬이는 거죠. 배를 소장으로 쓰기도 하지만 소장이든 대장이든 꼬이는 게 다 살인 거죠.
그 모든 영역에 동시에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해서 하나 하나 별도의 생명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 거죠. 우리는 현대에 와서 그걸 세포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 내지 축적된 것을 우리가 DNA라고 부르는 것이죠.
크게 보면 그런 겁니다. 섬세하게 들어가면 학문적인 설명들이 많이 필요하죠. 제가 많이 얘기를 건너뛰고 드리는 거지만 살의 최소 단위가 세포라는 거죠. 우리 현대인이 찾아낸 거죠. 세포로 구성돼 있는 모든 것에 이 네 가지가 다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포가 살아 있는 단위인 거죠. 세포라는 말도 번역하면 웃기는 얘기죠. 번역이 안 되는 말이에요. 우리는 우리 말로 그걸 뭐라고 그랬을까요? 우리도 그 말을 했거든요. 우리는 그걸 ‘알’이라고 그랬던 거예요. 우리가 ‘종아리에 알배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 세포와 같은 것을 알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관념적으로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세포와 알은 유사 개념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닭이나 비둘기가 나는 알이 아니고, 알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알알이 부서질 때 그 알이에요. 이 네 가지가 결합돼 있는 최소 단위 아까 말한 또 다른 구성 요소로 본다고 그랬잖아요.
그렇게 쪼갰을 때의 의미는 ‘알’이라는 거죠. 곡식 낟알만 알이 아니죠. 그것도 이제 알로 보는 것이 영역이 확장해서 늘어난 거죠. 아니면 낟알 같은 것에 알이 채용돼서 사용됐을 수도 있죠.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포와 가장 유사한 개념이 알이라는 거예요. 그런 한자어 들어오기 전에, 셀이라는 영어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에게 그런 개념은 있었던 거예요.
생명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모든 생명이, 이 사해(四海)가 한 동포라고 하는 이야기는 그런 네 가지로 구성된 존재 아닌 자가 없다는 것이에요. 사람이든 개든 뭐든! 지렁이든 아메바든! 다 그런 걸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사해(四海)가 동포라는 거예요.
그런 데서 나온 사해동포론(四海同胞論)인 것이지, 그냥 사람끼리 같이 어울리고 뜻을 맞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죠. 거기에 뜻이 개입되지 않아요. 어쨌든 사해동포론은 그랬는데, 그렇게 살다 보니까 점점 멀리 가요.
살의 진화로서 뼈
어떤 동물은 직접적으로 흙을 먹을 수 없어요. 직접적으로 흙이 모일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흙을 또 변화를 시켜요. 흙을 2차적으로 변화를 시켜요. 광물이 흙이 되고 흙이 살이 됐다고 간단하게 친다면 이 흙이 다시 유사 광물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제2차로 살의 진화가 이루어져요. ‘살’의 진화가 ‘뼈’예요. 뼈는 별도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살2(two)인 거예요. 뼈를 구성하고 있는 게 우리 살을 구성하는 성분과 다른 것 하나도 없어요. 살 중에 일부만 골라가지고 단단하게 뭉쳐서 광물처럼 짝대기처럼 심지어 어떤 때는 돌멩이보다 더 딴딴하기도 하죠. 살아있는 소 뼈에 맞아 보신 분 있나요?
소갈비 센 것을 갖다가 돌하고 부딪히면 웬만한 돌이 깨져요. 경도 7도 이하의 돌은 그 소 뼈를 못 이겨요. 생뼈를 이기지 못해요. 아직 물을 머금고 있거든요. 물을 머금고 있는 이상에는 에너지 자체는 이미 소멸돼 가지만 남아 있는 에너지 여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두드리면 웬만한 돌, 가령 차돌 정도가 아니면 깨지죠. 차돌이 딱 경도 7과 같잖아요.
물의 투(two)가 되는 피
그렇게 뼈가 살투(two)예요. 그러면 물투(two)가 나와요. 물투(two)는 우리는 우리 말로 ‘피’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체액이라 불리는 것을 서양어로는 그냥 플루이드(fluids)라고 그러죠. 플루이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블러드(blood)가 피는 아닙니다. 어쨌든 개념을 달리하는 초기에 반죽이 된 상태에서 운영을 위해서 별도로 물의 통로가 장만되는 거예요.
체액이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있는 생명의 기본적인 요소라면, 피는 그런 것들을 연결시키는 하나의 통로로서 별도의 물길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물 그러니까 물이 아니라 물길이 된 것을 피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물도 체액이고 피도 크게 보면 체액이죠.
그런데 앞에 있는 물이라는 것은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고 세포에서 물 빼면 다 죽겠죠. 물만 분리해서 뺄 수 있는 그런 기술이 나온다면, 세포를 급속 냉동시켜가지고 보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미래적 보존 방법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다시 물을 집어넣을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그렇죠.
세포에 대해서 그런 발상들을 안 하는 거죠. 왜 그렇게 원시적으로 생각 안 해봤으니까? 너무 현대적 지식을 가지고 그 안에서 우리가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가스라이팅도 오래 당하고 나면, 가장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이야기의 소리를 안 들으려고 해요. 그게 맞든 틀리든 들어보는 것도 필요한데 말이죠. 아무튼 피입니다.
<몸의 상중하>
걸름 기관
그 다음에 이제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은 뭘로 발생할까? 열 기관을 별도로 만드는데 물론 살이 쓰이죠. 그리고 세포들이 다 쓰이죠. 전체적으로 보면 몸에 ‘걸름’ 기관이 존재해요. 걸음 걸음이 아니고 걸러준다는 걸름 기관이 존재해요.
그런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뭘 의미하느냐? 우리 몸이 옛날에는 식물처럼 지렁이처럼 흙을 짜 먹고 그것을 짜먹으면 그 자체로서 그냥 에너지가 돼요. 그런데 ‘걸름통’이 있다는 것은 이미 살을 변화시켰고 물을 변화시킨 이상에는, 뭔가 에너지를 2차 변환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생명으로서 동물이 됐다는 거예요.
(이런 동물이 되면) 이제 들어간 흙의 에너지를 직접 못 써먹어요. 직접 먹어 갖고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저 발전소에서 10만 볼트짜리 100만 볼트짜리 전기를 일으켜도 그 전기를 가정집으로 직접 보내면 가정이 파괴되지 하나도 쓸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죠? 전기를 섬세하게 만들어야 되죠. 즉 변전해야 되는 거죠. 변전하지 않으면, 변전하지 않고 직접 송전하면 전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가 뭘 먹고 무슨 성분을 먹고 그러면 몸에 좋을 것 같아”라는 것은, 그 지렁이 때 혼무시나 청무시일 때 통하는 영양학이에요. 그게 들어가서 직접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발전을 하는 발전의 에너지는 될 수 있는데, 그 발전이 변전이 안 되면 쓰일 수 없는 동물로 우리는 이미 진화해 버렸어요.
진화한 이 동물들에게 그 에너지를 거친 에너지라고 치죠. 이제는 시원적인 흙의 에너지를 간접화 또는 쓸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기관이 필요한 거예요. 그게 ‘걸름통’이에요. 간도 걸러주는 통이고, 폐도 들어온 공기를 걸러주는 통이고, 신장도 걸러주는 통이고, 소위 말해서 오장육부라고 할 때 오장이 전부 걸름통이에요. 그런데 이 오장은 변전시키지 않은 에너지를 직접 그대로 쓰지 못하는 동물이라면 다 갖고 있어요.
물고기도 뜯으면 걸름통이 나오고 사슴도 배 가르면 걸름통이 나오고, 지렁이나 강장동물 정도 돼야 걸름통이 안 나와요. 안에 물이 차 있는, 즉 물을 먹고 물이 차 있는 것이지 그것이 곧 물관이 아니에요. 그냥 물을 유지하고 있는, 물을 담고 있는 것이지 그 별도의 기관이 필요 없어요.
물론 그걸 담고 있는 것도 들어가 있다 보면 세포와 계속 영향을 주고받으니까 일정한 변화가 와서 체액이라 부르고, 그걸 갖다가 일종의 셀(cell) 플루이드(fluid)라고 그러면 이해될 수 있어요. 그러나 엄밀하게 지렁이는 물이 보관돼 있는 거예요. 보관된 물을 뽑아버리면, 주고받을 수 있는 물이 없게 되어 세포가 말라서 죽죠.
아무튼 사람의 피 같은 경우나 동물의 피 같은 경우가 의미하는 건 뭐냐? 이미 살을 2차화시켜서 척추를 만들고 원시적으로 가시를 만들고, 이렇게 가시 정도 만들어진 동물들에겐 다 걸름통이 있어요. 심지어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식으로 발전한 동물들에게는 이미 살을 2차로 변환시킨 뼈적인 요소나 피가 있는 동물에게는 다 걸름통이 있어요.
걸름통이 생기죠. 그게 이른바 내부 기관이라고 그러죠. 인간들은 되게 가슴에 많이 몰려 있죠. 그리고 발전(發電) 기관은 배에 있죠. 변전(變電) 기관은 이렇게 가슴에 많이 있죠.
그런데 식품 영양학자들은 여기 발전기관을 중심으로 주로 얘기를 해요. 나트륨이 너무 많아요! 칼슘이 부족해요! 비타민이 어때요! 이건 여기 발전기관의 얘기예요. 여기 (변전기관)에 들어가서 한 번 걸름 과정을 거쳐야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되는 거예요. 거기에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다시 식품영양학은 재구성될 필요가 있어요. 저의 소박한 생각으론 그래요.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너무 주제가 다르지만 질문이 있어요? 괜찮아요! 좋아요.)
“야채나 과일 먹는 방법을 좀 알려주시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건강상 이유로 만 3년 전부터 생식을 했고 지금은 안 하는데, 일단은 야채나 과일을 한 번 세척 처리까지 마친 다음에 그때 먹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지나고 보니까 그게 몸에 냉(冷)을 먹는 거라고 선배 점장님이 그러셔 가지고요. 채소 먹는 법도 좀 알려줬으면 해가지고 질문 드립니다.”
구석기다이어트
지금 한국도 보면 구석기 다이어트라는 게 있어요. 진짜로 있어요. ‘팔레오 다이어트’라고 하는 구석기 다이어트라는 게 있는데, 풀만 먹고 구석기인들이 먹는 식으로 먹어요. 그런데 구석기인들의 평균 수명이 몇 년이었나요? 11년! 하루에 몇 시간씩 먹어야 되나요? 8시간!
인간들도 원숭이처럼 종류가 다양했다고 합니다. 저도 타임머신 타고 못 가봤으니까 모르지만 그랬던 것으로 화석이 나오니까. 현재 인간보다 키가 절반 만했던 인간부터, 키가 거의 저의 2배가 됐던 인간까지 다양했고, 화석을 보니까 그 중에 초식만 하는 인간도 있었고요.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복구가 많이 되잖아요.
유튜브 뒤져보면 혹시 나올지도 몰라요. 초식인간은 하루에 8시간 이상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초식하는 인간이다 보니까 어금니 같은 데로 계속 갈아야 되죠. 앞니도 거의 어금니 같은 거죠. 풀을 질근질근 씹어서 갈아야 되니까.
그런데 그 원시인을 데려다 현대적인 기술을 통해서 인간 껍데기를 입혀 놨는데, 그분이 왜 어떤 탤런트 한 분을 닮았나 모르겠는데요. 저도 그림을 책에서 봤어요. 서양 사람이 만들었는데 누가 봐도 우리 탤런트 그 분의 젊었을 때 모습 같더라고요. 그건 잘못 그린 거죠. 그림 속의 초식 동물이 제가 아무리 봐도 50대 내지 60대로 보이거든요. 그 그림에 복원된 걸로 보면 그러는데, 11살 정도를 그렸던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어느 순간부터 간접적으로 흙을 섭취하는 거예요. 간접적으로 섭취하다가 보니까 그것도 무리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적으로 섭취를 해보겠다고 생각하는데, 직접적으로 섭취하되 간접적인 섭취 이상의 효과를 누리고 싶은 거예요.
방법이 없었던 거예요. 어느 날 불이 손에 들어온 거예요. 굳이 비유하자면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갖다 준 거예요. 불을 써보니까 다른 동물이 먹었던 걸 내가 간접적으로 섭취하는 것과 유사할 정도의 원초 에너지가 변전된 에너지로 전환이 되는 거예요.
당근을 예를 들어서, 식품 영양학적으로 영양분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냥 먹었는데 그게 90% 내지 95%가 간접 에너지 즉 변전된 에너지로 전환이 안 돼요. 꽝이라는 얘기예요. 영양 성분을 내 배에 넣어준 걸로 끝이라는 얘기예요. 그런 식품영양학이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데 당근을 삶아봤어요. 폭 삶아봤더니 식품 영양제를 보면 한 70%가 파괴됐는데 이게 90% 가까이 간접 영양제로 전환이 되는 거예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 사람들이 ‘허기를 때운다’라는 것인데요. ‘허기를 때운다’는 게 뱃속에 막 집어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에너지를 채운다는 거잖아요.
건강(健康)이라고 했을 때의 강(康)을 채운다는 거잖아요. 요기(療飢)한다고 그러잖아요. 기(氣)에게 재료를 준다는 거잖아요. ‘불’이라는 방법을 얻고 나서 나중에 그냥 따먹었던 배도 익혀 먹어 보니까, 이게 배는 안 부른데 힘이 펄펄 나는 거예요. 그래 ‘배숙’을 해 먹자!
다른 것도 살짝 끓는 물에 데쳐서 먹어보니까 좋은 거예요. 옛날에 나물에다 그냥 생고기를 싸 가지고 대충 해서 먹는 정도였겠죠. 육식도 아니고 초식도 아닌 식으로 먹던 시절에 살짝 데쳐 가지고, 여기에 또 다른 걸 넣어 먹으니 너무 편한 거예요.
그런 식으로 우리가 생각했을 적에 가장 우악한 행위가 전통과 문화가 박약했던 일부 유럽 지역에서 있기는 있었죠. 그런데 먹을 줄 몰랐던 그 생과일 문화가 한국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는 거예요.
심지어 인삼 산삼을 캐 가지고 흙을 털어서, 흙도 제대로 털기나 하나요? 물에 씻는 게 아깝다고 흙 좀 묻어도 상관없죠. 그 자리에서 먹어야 약이라는 거예요. 그건 독이죠. 그 음식이 나와 만날 준비가 전혀 안 됐죠. 그 산삼이라는 요소가 배 속에 가면 훨씬 더 많은 영양 에너지 성분이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2차 에너지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될 수 있죠.
2차 에너지에 도움이 되려면, 일정한 온도에서 폭 달여 간접화시켜서 흙으로 최대한 돌아가게 해야죠. 흙의 성분으로 최대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달인 물에서 흙 냄새가 날 때까지 달여야, 그때 먹어야 비로서 산삼이죠.
옛날에 배숙을 해 먹던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생배 먹기를 좋아해요. 그렇죠? 어느 순간 익혀 먹던 감은 불에 또 안 익혀요. 옛날에 감은 또 열에 익혀요. 햇빛이나 열에 익혀요. 그러니까 햇빛에서 먼저 익히고 좀 덜 익은 부분은 어딘가 보관해서 간접 열로 익혀요. 그렇게 해서 먹어요. 그게 아니면 아예 홍시를 먹죠. 어떤 경우에는 따가지고 거꾸로 그냥 음지에서 또 말려요. 곶감처럼 만들어 간접 섭취를 하는 거예요. 생감을 따서 으적으적 먹는 것은 없을 때는 그럴 수 있죠.
제대로 먹을 수 있을 때는 곶감이나 홍시를 먹는 것이 지혜였던 거죠. 사실 옛날에 감을 따 가지고 한두 개는 맛있다고 먹어봐요. 그 중에 제대로 익은 것을 골라서 깎아서 먹어보고 나머지는 대개 그렇게 처리를 하죠. 온도 처리나 열 처리를 해서 어쨌든 진화를 시키고, 그가 흙으로 구성돼 있다면 최대한 자연과 만나서 역진화 하기를 기다리죠. 그렇게 드셔야 사실은 몸에 좋죠. 채식을 하더라도 그렇죠.
(질문) “선생님! 그러면 과일 껍질에 영양소가 많다는데 (농약이 없다는 전제에서) 껍질째 먹는 것은 위험할까요?”
예를 들어서 소고기를 드시는데 소고기 맛있게 먹으려면 소고기 밖에 있는 그 살막을 벗기고 먹어야 하죠. 이렇게 보면 앞에 막 있잖아요. 안 드신다고 보지도 않으셨나요? 양지 같은 것도 보면 앞에 하얀 막이 있잖아요. 그 막을 제거하지 않고 국을 끓이면 국에 넣은 소고기가 나중에 질기죠. 그 막 때문에 질길 뿐만 아니라 그 막을 삭히는 데 고기들이 대부분이 쓰이죠.
그럴 경우 고기들은 고기 특유의 맛을 내지 못하고, 막은 여전히 질기고 그 막에 그나마 조금 열이 가해지면 녹는데, 그건 열에 의해서 녹는 게 아니라 열이 간접적으로 그 고기 성분에 작용해서 막을 녹이는 것이죠. 고기 자체가 어문 게 되죠. 껍질을 벗겨야 하죠. 그렇게 비유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모든 과일의 껍질이 그런 게 아니고 고니가 있는, 즉 안껍질이 있는 과일의 경우에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것까지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쭉 이어갈 게요. 먹는 얘기는 아마 제가 마지막 시간쯤에 많이 할 거예요. 결국 먹자고 하는 얘기니까요.
이제 2차 동물로까지 가게 되면 걸름 기관이 있어요. 걸름! 발음이 어려운데요. 그 걸름 기관이 있고, 이제 그렇게 되다 보니까 이후에는 신경이 맺혀요. 뼈가 살2라고 했듯이, 신경 2가 생겨요. 신경이 별도의 기관으로 독립을 해요. 그게 이른바 우리가 보는 감각 기관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적으로 보고 듣고 하는, 소위 말하면 오감이 작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기는 거죠.
여기까지가 이제 8가지죠. 이것을 크게 보면 결국 ‘지, 수, 화, 풍’에 ‘지2, 수2, 화2, 풍2’가 되는 거죠. 이 8가지가 기본적으로 생명에서는, 원초적으로 철학적으로 어쩌면 과학에서도 근원적으로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되는 영역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차원에서 사람의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식으로 진화되느냐 하는 방향에서 지금 개별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드리고 있고, 종적인 특징의 몸의 역사는 제가 드리지는 못했어요. 그건 다음 시간에 해야겠죠. 사람의 경우에 한정 지어서 해야겠죠.
그러면 사람에게서는 이것(8가지)들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가? 그게 돌아가면서 이 네 가지의 2가 나타난 존재에게서 감각의 최종이란 무엇인가?
어떤 분들은 저한테 그렇게 물어봐요. 저도 답할 길은 없고 답하기도 싫어요. 답해봐야 욕만 먹어요. 오늘 칭찬했던 분이 내일 욕할 수 있거든요. 예전에 이 얘기 여기서 드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제가 감방 살다 나올 때 따라 나와 가지고 경찰하신 분이 있어요.
세상이 좋아져가지고 그분도 이제 저를 살필 이유도 없고 그래서 사복 형사가 되셨어요. 그분은 사복 형사를 하면 안 되는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너무 순하고 여리고 착했어요. 험한 사람이 안 착하다는 뜻은 아니고, 결국 그분이 위암이 걸려 버렸어요. 위암이 걸렸는데 수술을 하셔서 잘 나왔어요. 회복이 잘 됐어요. 그때 그랬어요. 직장 복귀 좀 천천히 하거나 안 하면 안 되겠냐고! 그런데 연금 같은 게 다 걸려 있는 거죠. 정년 정도는 채우고 나와야 하니까 결국 복귀를 했어요. 복귀를 했는데 다시 재발해서 돌아가셨어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얘기해요. 다음 시간에 할 얘기와 연결되는데요. ‘돌아가고 싶다!’ 아프잖아요. 그러면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말 안에 얼마나 많은 가짜가 있냐면,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원래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예요. 그 생활이 병을 만든 건데요. 그 생활을 바꾸는 게 아니에요.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에는 그때 입고 있었던 그 옷 얘기는 안 했던 거예요.
왜? 아플 때는 옷보다는 벌거벗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프기 전 그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러다 조금 덜 아파지면 원래 몸이 입었던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원래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그 순간 끝이에요. 세상에 아픈 것 못 낫는 것도 없고 낫는 것도 없어요.
초기에는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에 홀랑 속아가지고 도움도 드리려고 해봤어요. 전혀 안 해요. 원래 생활로 돌아가시는 분은 방법이 없어요. 원래 생활이 아니라 원래 몸으로 돌아가려면, 그 원래 생활의 옷은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되는 거예요. (원래 생활로 돌아가는) 그런 사람들 회복기에 가면 결국 나타나요.
아무튼 우리가 살면서, ‘내가 잘 살아야지!’ 또 뭐’ 해야 하는데!’ 라고 하는데, 그게 다 옷 입고 있는 것이어요. 제가 “빛나게 살자!”라고 말씀드렸던 얘기는 ‘옷 벗고 살자!’예요. ‘그 옷’은 벗고 살자! ‘그 옷’을 안 벗으면, ‘잘 살자!’라는 명분 하에서 그 옷의 생활을 계속하게 돼 있죠. 그 옷의 욕망을 못 놓게 돼 있죠. ‘빛나게 살아야지!’ ‘잘 살아야지!’ 하다가 어느 날 젠슨 황을 보니까 젠슨 황이 부러운 거예요. 뭐가 부러워요? 또 뭐가 안 부럽냐고 해버리면 할 말도 없어요.
어쨌든 잘 살자 해놓고 나서 돌아가요. 언제든지 옷을 다시 입을 준비가 돼 있는 게, 잘 살자라는 표현 속에 담겨 있는 또 하나의 걸망이에요. 지고 있고 걸고 있는 망이에요. 가방이에요. 그래서 그 가방도 내려놓자!
이제 그 차원에서 빛나게 살려면요. 저에게 물어보는 질문 중에 답하기도 싫고 뭐 하다고 했던 것이 “영혼이 있냐!”고 물어오는 것이어요.
제 답은 두 가지입니다. 있냐고 물어보면 있다고 그러고, 없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그럽니다. 영혼도 에너지가 필요할 거 아니어요? 영혼도 존재한다면 에너지 없이 존재하는 건 없잖아요. 에너지를 주는 자에게는 에너지가 존재할 것이고, 에너지를 안 주는 자에게는 그냥 성주 괴공하고 끝나겠죠.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영혼론은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옷이 어디까지 벗어져 있고, 그가 또한 어떤 옷을 걸치고 있고, 되돌아간다고 했을 때 몸 이상으로 되돌아갈 준비에 따라 다르겠죠. 몸의 역사 얘기를 했잖아요. 여기서 역사는 무언가 알을 감싸고 있는 테두리입니다. 막(幕)입니다. 그 막에 따라서 안에 있는 알이 달라질 수 있죠. 막이 없어 못 둘러싸고 있다면 알은 다 삐져나가고 허방이겠죠.
자기 몸의 역사가 자기 몸에서 진행되지 않고, 막이 없다는 것은 알을 감싸고 있는 막이 없다는 겁니다. 울타리가 없다는 겁니다. 울타리 없는 그 존재가 과연 번쩍이는 수많은 외물 앞에서 멀쩡할 수 있을까요? 못 있어요.
반대로 그걸 욕망이 붙들고 있어요. 심지어는 성불을 하겠다는 욕망! 그 욕망 때문에 성불을 못 하죠. 성불을 하겠다는 욕망이 있으니 어떻게 성불을 하겠어요? 그것마저 놓고 옷을 벗어야 되는데, 그런 걸망이 사실은 제일 무서운 걸망이고 가장 이기적인 걸망일 수도 있어요.
자기가 노력해서 자기가 살아야죠. 아무튼 이 얘기를 왜 이렇게 오래 했는지 모르겠네요. 다음 시간에 ‘삭다 2편’을 지금의 8가지를 이용해서 가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2회차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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