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산에서 내려다 본 임자도의 명물 대광해수욕장. 폭 300m, 길이 4㎞에 달하는 하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신안 임자도는 2000여 개에 달하는 전남의 섬 가운데 몇 안되는 풍요로운 섬이다.
40㎢에 달하는 넓은 땅에서는 철마다 대파며 쌀이며 농작물이 풍성하게 나오고 바다 또한 우리나라 새우젓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만큼 새우가 많이 잡히기 때문.
여기에 병어와 숭어, 돔 등 온갖 물고기가 철따라 찾아오고 최근에는 어느 지역보다 품질이 뛰어난 명품 천일염까지 생산돼 풍요의 섬을 더욱 살찌운다.
임자도의 시작은 진리선착장. 지난 20일 찾은 선착장은 전날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그대로 쌓여 한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겼지만 대파 주산지 답게 파랗게 들판을 채우고 있는 대파밭이 머나먼 남국의 섬을 찾아온 듯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곧바로 전장포로 향했다. 전장포는 한때 우리나라 새우젓의 60%를 생산했다는 서해안 어업기지로 서의 임자도의 면모를 보여주는 곳. 그래선지 전장포에는 지금도 온통 '젓 냄새'뿐이다. 마을 앞에는 김장철을 맞아 생새우를 잡기 위한 '젓 그물'이 가득하고 올 여름 잡아서 커다란 드럼통에 숙성시켰던 새우젓을 포장하는 손길도 분주하다.
선창 앞에서 만난 전장포 주민 조보현 씨는 "전장포(앞장골ㆍ장불)는 한때 전국 새우젓의 60% 이상이 생산되던 곳이었고, 섬타리ㆍ뭍타리 일대는 해방 뒤까지도 대규모 파시가 형성되던 곳이었다"며 "6ㆍ25로 그때의 파시가 재원도로 옮겨갔고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재원도 앞바다는 고깃배로 가득 들어차 배를 딛고 다른 섬까지 건너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갯바위 낚시터로 유명한 임자 재원도.
그러나 임자도의 이런 명성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퇴색해 버렸다.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 유명세를 떨쳤던 새우젓을 찾아오는 사람보다 광활한 해수욕장과 기암괴석을 찾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것.
실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12㎞ 백사장을 자랑하는 대광해수욕장은 그 규모만으로도 육지 사람들을 압도한다. 물빠진 백사장은 그 너비만도 300여 미터. 바다를 향해 내달리면 기분좋게 숨이 찰 정도의 거리다.
길이가 12㎞나 되다 보니,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가자면 3~4시간은 족히 걸린다. 민박집들이 몰려있는 남서쪽 해변에서 보면 둥글게 돌아난 모래사장의 북쪽 끝이 아련하다. 드넓은 해변 군데군데 주민들이 숭어ㆍ밴댕이ㆍ게 따위를 잡기 위해 쳐놓은 지주식 그물인 덤장(막장식 그물)과 삼마이(일자형 그물), 그물 주변에 몰려든 갈매기도 바닷가 풍경을 돋보이게 한다.
이곳 대광해수욕장은 주변에 있는 대기리와 광산리의 앞 글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디 베틀을 닮았다는 한틀마을(대기리) 뒷쪽의 해변이란 뜻의 '뒷불'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을 일제가 바꿨고, 이를 뒤섞어 엉뚱한 지명이 만들어진 셈이다.
신안 임자도를 감싼 기름진 갯벌. 늦가을인데도 칠게와 농게가 지천에 널려있다.
드넓은 백사장에 큰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이라면 근처 어머리해수욕장에서 호젓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이곳 어머리는 용이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용난굴이 자랑거리. 이무기가 바위를 깨고 나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이 굴은 높이 5m, 길이 50m의 자연동굴로 그 자체가 장관이다. 굴의 입구는 웅장한데,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모습이다. 바닥에 물이 고인, 높이 7~8m, 폭 1m 안팎의 비좁고 축축하고 주름 많은 굴을 따라 들어가면, 그 끝에서 눈부시게 열리는 새로운 바다를 만나게 된다.
또 대광리 백사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벙산 중턱에도 열두문턱굴(무장굴)이라는 굴이 있다. 열두 번 바위턱을 지나면 굴은 낭떠러지로 바뀌어, 그 이상 들어가본 이가 없다고 한다. 뭍타리 앞바다 용둠벙과 연결돼 있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임자도의 진짜 자랑은 무인도인 허사도(許沙島).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허사도는 평범한 임자도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 임자도에 가면 꼭 들러볼 만한 섬이다. 임자도 하우리항에서 낚싯배를 빌리거나 어선을 빌려타고 1시간 남짓 가야 하는데, 가는 뱃길에는 재원도, 대노록도, 소노록도, 대허사도, 소허사도, 갈도, 부남도 등 부남군도(扶南群島)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비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전체 해안이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소허사도는 인간의 접근을 꺼리는 것처럼 뾰족하고 길쭉한 바위들이 담처럼 둘러싼 모습이 비경을 연출하고 인근 갯바위는 누구나 앉아 낚시만 던지면 씨알 굵은 감성돔과 우럭 등이 잡혀나오는 천혜의 낚시터로도 이름이 높다.
신안 지도읍 점암선착장에서 12㎞가량 떨어진 전형적인 모래섬. 오랜 세월, 조류와 파도에 밀려왔거나 바람에 흩날려 쌓인 모래로 육지는 물론이고 해발 300m가 넘는 산등성이에도 온통 모래뿐이다. 신안군의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동쪽으로 신안 지도, 남쪽에는 자은도, 북쪽에는 바다 건너 영광 낙월도가 이웃이다.
특히 아름다운 경관이 일품인 대광해수욕장은 지난 90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돼 샤워장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완벽하게 갖췄고 임자도의 북쪽 끝 동네, 전장포는 우리나라 새우젓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지금도 전장포 마을 뒤 솔개산 기슭에는 길이 102m, 높이 2.4m, 넓이 3.5m의 말굽모양 토굴 네 개가 남아 당시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낚시터로서 명성도 자자하다. 대광해수욕장 앞에 떠있는 대태이도와 혈도, 어유미도, 바람막이도, 고깔섬, 육타리도, 오유미도 등 이름도 아름다운 수많은 크고작은 유ㆍ무인도에서는 지금도 농어와 돔, 장어, 민어 등이 수시로 올라와 낚시꾼들에게 짜릿한 손 맛을 전해주고 해변에 친 그물에는 하루 두번 썰물 때마다 그물 가득 고기가 들어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임자도는 또 젓갈로 유명한 섬. 실제 이곳에서 잡히는 생선 대부분은 젓갈용으로 전국에 팔려나간다. 요즘은 김장용 새우와 밴댕이, 황새기(황석어)가 많이 나온다.
가는 길은 서해안고속도로 무안IC에서 빠져나와 무안 현경과 해제를 지나면 지도의 점암선착장이 나온다. 여기서 임자도까지는 배로 20분 정도. 매시간 배가 뜬다. 승용차를 배에 실으면 왕복요금이 1만8000원. 허사도는 임자도 하우리선착장에서 배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현재까지는 여객선이 없어 고기잡이 배를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