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NGO와 운동권에서 온 별정직 세상
이립(而立)의 나이에 멈춘 한국의 NGO
과오를 시인하거나 책임지는 일도 없는 NGO
청와대에 근무하는 동안 새 정권이 들어섰다.(김대중정부에서 노무현정부로)
같은 당의 정권계승이지만 청와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NGO출신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들은 일반직 공무원들과는 사고의 방향과 처신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일사불란한 소규모 단일팀의 혁명동지 같았다. 서로 감싸고 덮어주고 돕고 편드는 동지애가 눈물겹도록 진했다.
청와대는 완전히 NGO와 운동권에서 온 별정직 세상이 되다시피 했다.
같은 진보계열 정권이지만 DJ정부때와 사뭇 달랐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소집단 생활을 오래 유지했던 탓인지 서로의 신뢰감은 맹목적이다시피 했다.
그러나 일반공무원에 대한 신뢰감은 거의 없었고 항상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법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위법이 아닌 민주화운동의 훈장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사회를 정의롭게 하기 위한 대의의 길을 가는 길에 어쩔 수 없는 장애물에 불과한 적폐의 법규를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나름대로의 해석이고 자랑거리요 용기라고 인식하는 듯했다.
현행 법규와 제도에 따르지 않는 것이 혁신이고 진보적이라 여기는듯한 일반직 공무원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별천지 세상의 사고방식에 매몰된 듯 싶었다.
법 위반행위는 민주화운동의 훈장,시민단체
정권이 바뀌고 어수선한 사이 새로운 제도와 원칙등이 어지러이 쏟아졌다.
다면평가제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부처 내에서 고위직 인사를 할 때 직원 투표를 통하여 인사에 반영한다고 했다.
하급자에게서 눈 밖에 난 상급자는 적폐 대상이 되었다.
투표 결과는 인사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의외의 인사를 단행했다.
현직 고위 공무원이 명예 퇴임하고 전문성을 살려 산하기관으로 가는 것도 근무 중 유착관계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차단했다.
시민단체 인사가 다수인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산하기관 임원 인사 후보를 심의하도록 했다.
해당 공기업이나 산하기관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는 공무원은 상피제(相避制:고려·조선시대 일정한 범위 내의 친족간에 동일관사(同一官司)나 또는 통속관계(統屬關係)에 있는 관사(官司)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혹은 청송관(聽訟官)·시관(試官) 등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제도(制度))와 같은 이유로 퇴임 6개월이 지난 후에야 해당 기관에 취임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제도 시행 6개월 동안은 현직 공무원이 갈 수 없는 공백 기간이 생기고 대신에 NGO등 민간인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로인해 후배들 승진을 위해 자리를 내주고 산하기관으로 가려던 명퇴자가 사라지고 인사적체만 극심해졌다.(공공기관등에서 활동했던 많은 NGO,시민단체 출신들에게서 성공한 CEO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와대 시민단체출신 돕고,편들고,동지에가 뜨겁다
시민단체의 대모(代母)격이라 불리는 새로 부임한 장관(한명숙장관)은 어떤 생각으로 청와대에서 복귀하려는 사람을 굳이 소속기관(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으로 강등시켜 내치려 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특별히 잘못도,과오도 없는데 강등이나 다름없는 소속기관의 별정 1급 그것도 임기가 있어 바로 퇴임해야 하는 자리에 말이다.(노무현정부 환경부장관은 한명숙,곽결호,이재용,이치범,이규용이었다. 초기에는 NGO 출신의 한명숙,이재용,이치범장관을 등용했으나 신뢰성과 업무추진에서 비판적 시각이 흘러 환경부 내부 출신인 곽결호,이규용장관을 임명했다.)
청와대 행정관 근무 1년이 지난 후 나름 인맥과 환경부의 협력으로 환경비서관이 신설되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인사였다. 어렵사리 신설된 환경비서관을 엉뚱하게도 국회 보좌관 출신 인사(신창현: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을 역임하고 국회의원과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을 역임했었으나 매립지공사 사장 재임시에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해임되기도 했다)가 밀고 들어오는 탓에 더는 그 자리에 행정관으로 있을 수가 없어 원대 복귀하여 환경정책국장을 맡았다.
당시 정책국 소속으로 민간협력과가 있어 NGO의 파트너가 되어 민관환경협의회,종교단체환경협의회등 시민단체,환경단체와 잦은 접촉을 하면서 공감을 때로는 갈등을 빚기도 했다.(종교환경회의: 천주교창조보전연대,기독교환경운동연대,불교환경연대,원불교환경연대,천도교환울연대)
국장급으로 처음에는 행정관으로 두 번째는 비서관으로 청와대 근무를 해야 했다. 미국 연수를 포기하고 두 번째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근무 기간 중 NGO와 진보 성향의 많은 분을 접촉해야만 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탓에 경제적 마인드가 바탕인 나로서는 경제성을 도외시한 듯한 NGO의 주장은 황당해 보여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 대화를 통한 설득과 이해도 쉽지 않았다.
이들은 일단은 무조건 주장을 한다,
기억으로는 환경 NGO가 정부 측의 시책과 사업 설명에 동의하고 양보하는 사항이 없었다. 합당한 설명을 하면 대부분 외면하거나 딱히 반대 명분이 없으면 또 다른 사유로 반대 주장을 펼칠 뿐 이전 주장에 과오를 시인하거나 책임을 지는 일은 없었다. 광우병 사태, 소각장 다이옥신 투쟁,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등 NGO와의 갈등 사항을 더듬어 보니 기억에 남는 굵직한 몇 건이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녹색연합 반대투쟁), 사패산 터널(노무현대통령 해인사 방문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갈등 풀어), 천성산 터널 사업(지율스님 단식농성)등이다, 이들 사업은 요즘과 달리 정책 입안이나 계획 결정 단계에서 정보공개, 시민 의견수렴이 제한적이었다. 전문가 의견에 따라 이미 구체화 되어 한참 진행된 상황에서 갈등해결이나 사업중단, 변경이 쉽지 않았기에 새 정부에서도 계속사업으로 진행해야만 했다.
새만금사업은 이미 4대 정권에 걸쳐 진행되어온 마무리 단계 사업이고 사패산 터널은 우이령 터널을 양보한 정부의 안이었다. 천성산 관통 터널은 영향이 없다는 학계와 전문가의 주장을 묵살하고 도룡농의 생명 존중을 이유로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스님의 주장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정부 측 시책과 사업에 동의도 양보도 없는 NGO
이같은 현안 사항에 대해 NGO와의 온도 차가 컸다.
비서관 근무 중 NGO측 인사와 충돌했던 사건이 있다.
새로 부임한 장관(한명숙)과 절친으로 알려진 당시 여성단체 대모격인 한 분이다.
이 분을 환경관련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추천하겠다는 수석의 의견을 전달하면서 최대한 업무를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사단(事端)이 발생했다.
문제의 발단은 그 위원회의 직원 채용 관련 문제였다.
위원장으로 선임된 그는 잘 아는 NGO의 한 명을 별정 4급으로 채용하려는데 실무자(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안 된다고 하니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위원장의 주장은 “공무원법 임용자격기준에 의하면 외국 학위 취득,국가기술자격등 여러 자격 기준이 열거되어 있고 마지막 항에‘위와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라는 항이 있다. 본인이 잘 아는 대학 2년 중퇴자인 해당자가 마지막 항의 내용처럼 동등 자격이 있다고 인정이 되므로 임용을 하겠다”는 것이다.참 난감한 주장이다.(김대중 정부 강문규,박영숙 지속가능발전위원장/노무현정부 고철환,김상희,윤서성위원장/이명박정부 김형국,박준우,민경석위원장)
내용을 듣고 인사담당 부처인 담당국장에게 다른 대안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 건은 해당 위원회 실무자가 며칠 전 문의를 해온 건이라고 답했다.
마지막 항의 ‘위와 동등한 자격의 인정’이란 열거한 여러 항목에 상응한 외국기관이나 다른 유사기관이나 자격,경력등을 객관적으로 인정할만한 자격이 있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지 채용하려고 하는 자가 인정하는 기준이 아니라고 이미 설명을 해 주었다. 결국 채용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위원장에게 전달해 주었는데 몹시 서운해 하면서 화를 냈던 사실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조직된 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의 첫 상견례 겸 첫 회의가 있어 수석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위원장이 불평하기 시작했다. 인사를 하려고 해도 못 하게 하고 정부 예산을 쓰려고 해도 실무자가 안 된다고만 하는데 도와주지 않으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공개적으로 불평했다.
듣다 못해 “공무원이 되려면 공무원법을 따라야 하고 정부 예산을 사용하려면 예산회계법을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산 사용에 관한 반대 건’내용은 아는 바가 없어 그 내용이 무엇이냐고 해당 위원회 실무자에게 문의했더니 비목에 맞지 않은 예산을 전용 절차 없이 사용(연구용역비를 출장비나 업무추진비로 쓰겠다는 등...)하겠다고 해서 안 된다고 했더니 화를 냈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단체 등은 이처럼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절대적인 신이며 옳다고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규정과 절차는 번문욕례(繁文縟禮:儒學에서 사람구실을 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도리들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만들어 강요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일 뿐이며 이를 고치는 것이 개혁과 쇄신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반면에 공무원이 하는 일에 관해서는 전후 사정 불문하고 규정과 절차에 따르지 않았다고 맹비난하는 사례 또한 숱하게 체험했다.
이처럼 몇 차례 충돌을 겪으면서 환경단체, 시민단체로부터 개발론자이며 NGO에 비협조적인 자로 낙인 찍혔다.
이러한 지난 일들을 공개적으로 말 한번 못하고 20여년간 가슴에 품고 살다가 종심<從心: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 70세,논어(論語)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나이를 훌쩍 넘은 70대 중반이 되어서야 마음속에 묻어둔 일들을 시집 후기에 담는다,
그때의 가슴에 응어리진 원망과 아쉬움은 강산이 두 번 바뀐 세월이 흘러도 삭아 들지 않았고 어떤 때는 새록새록 가슴속에 되살아나 마음을 휘젓곤 한다,
*이 글은 박대문시인이 제 5시집 ‘꽃쟁이 여로’ 말미에 삶을 되돌아 본 글이다.
박대문시인은 행정고시22회,경제학박사,환경부 환경정책국장,청와대환경비서관,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사장,강원풍력대표,칼럼니스트,현대시문학등단,식물분류기사로 <꽃 벌판 저 너머로>등 5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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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민단체는 자유당 시절의 한국부인회를 시작으로 박정희 시절의 새마을운동 이후 산업화의 후유증으로 탄생한 것이 80년대의 공해추방운동이다.여성단체로는 소비자시민,주부클럽,소비자연맹과 기독교 사회운동인 YMCA,YWCA등이 보수적 사회운동을 해왔다면 진보적 성향으로 경제정의,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환경정의,녹색연대,녹색소비,소비자주권등 90년대를 깃점으로 다양하게 파생되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그린피스와 지구의 벗, 세계자연기금등과 같이 연속성과 신뢰성,전문성을 지닌 단체는 희박하다.
네덜란드 환경부를 방문시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시민단체에 대해 전문성이 높은 ‘그린피스’등 6개 단체를 꼽았는데 전문성과 신뢰성이 높아 공동연구활동도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급변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정권등에 밀착하여 순수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신뢰와 전문성을 지니면서도 지속적인 확산성을 지닌 시민사회단체가 지역사회에 튼실한 지지대로 형성되길 기대하며 이 글을 옮긴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환경경영학박사,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