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자연미 찾아간 머나먼 대지 여행
빙하, 호수, 펭귄 등 다양한 생물의 보고 글·임세웅 | 사진·이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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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츠로이산군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작은 호수. 웅장하고 날카롭게 솟은 산들이 파나라마처럼 펼쳐지며 호수에 반사돼 아름다운 물결을 만들어 냈다. |
변화무쌍한 날씨와 로맨틱한 풍경이 상존하는 파타고니아의 신비로움은 16세기 마젤란 같은 탐험가가 첫발을 내디딘 이후 여행가의 환상을 충족시켜 왔다.
파타고니아의 자연은 서로 다투듯이 현란함을 자아낸다. 은백이 인상적인 빙하, 술 취한 사람의 걸음처럼 꼬여 있는 나무들, 정으로 내려친 듯 날카로운 산, 세락과 너덜지대, 건조한 들판과 그 위에 뿌리를 내린 다양한 야생생물들, 이것이 파타고니아의 생명력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34시간 만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에제이자(Ezeiz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남미의 강렬한 햇볕과 더위는 다음 기착지가 남극에 가까운 리오가제고스라는 점을 잊게 할 정도다. 우린 두툼하게 입었던 옷을 내팽개치고 간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에제이자에선 트레킹을 위한 사전 준비로 무척 분주했다. 준비해 간 미국 달러를 페소(Peso)로 환전했고 플라타(La Plata)강변의 코스타네라(Costanera)에 위치한 국내선 전용공항인 조지 뉴베리(Aeroparque Jorge Newbery)로 가기 위해 콜택시를 예약했다. 우린 가지고 갈 식량과 개인물품을 확인한 후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 땅에서 간단한 영어 몇 마디로 해결해가며 어수선한 트레킹을 시작했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데는 잠시나마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거쳐가게 된다. 차안에서 바라보는 남미의 모습은 모든 것이 새롭다. 인도를 걷는 낯선 사람들과 주변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우리 앞에 놓인 난관들을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곳은 원체 우리나라 여행객의 수가 적은 곳이지만 국내 대형서점에서도 아르헨티나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목표로 했던 것이 세레토레(Cerro Torre) 등반이었기에 먼저 등반했던 선배들의 보고서나 여행 후기를 통해 이에 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을 뿐이다.
여행 정보가 충분하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도 좋겠지만, 여행 정보가 부족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찾는 것도 좋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점들을 몸으로 부딪치며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행이 제공하는 묘미이며 즐거움이다. 이런 두려움의 극복은 여행의 즐거움을 한 단계 높여준다.
만일 트레킹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루 묵으며 여행정보를 수집하고 나름대로 일정을 잡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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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최남단에 위치한 푸에고 섬에는 백만 마리의 펭귄이 산다는 펀토 톰바가 있다. 배로 접근이 가능한 이곳은 여행하는 데만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
다윈은 파타고니아를 ‘불모의 땅’으로 불러
공용어인 스페인어가 되지 않는다면 미국 플로리다의 대형 서점에서 영어로 된 현지 여행 가이드북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어쨌든 파타고니아는 그곳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그만큼의 보답을 해준다. 지구의 남쪽 끝에 열려 있는 파타고니아는 끝없는 전설이 전해지는 땅이며 최고로 용맹했던 탐험가들을 겸손하게 만들곤 한다.
지금까지 이곳은 인간이 살기엔 부적절하고 바람에 노출된 땅으로 묘사돼 왔으며, 다윈은 파타고니아를 ‘거칠고 쓸모없는 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황폐한 땅이 주는 깊은 감명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파타고니아는 탐험가들과 산악인, 환경론자, 열정적인 스포츠맨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찾고 있다.
우린 아르헨티나 남쪽 산타 크루즈(Santa Cruz)지역의 칼라파테(El Calafate)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칼라파테는 1937년에 지정된 빙하국립공원의 트레킹 전초기지로 1927년에 세워졌다. 아르젠티노 호수(Lago Argentino)의 남쪽 기슭에 위치하는 이 도시는 아름다운 경관과 포근한 날씨로 인해 세계의 트레커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성수기인 여름에는(12월부터 2월까지는 밤 10시까지도 해가 지지 않는다) 호텔이나 식당, 교통편을 미리 예약해두는 것이 좋다. 우린 현지에 칼라파테 국제공항이 생긴지도 모르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리오가제고스로 가서 1박한 후 다음 날 아침 버스를 이용해 5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할 수 있었다.
칼라파테의 중심 거리인 산 마틴(San Martin)에는 스포츠 웨어, 캠핑 그리고 낚시 장비, 기념품 상점 등이 밀집되어 있다. 또한 주변 여행지에 대한 패키지 상품을 운영하는 여행사들이 즐비하다.
산 마틴 거리의 중간쯤에 버스터미널 쪽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버스터미널에서는 여행사, 트레킹에 필요한 관광지별 승차 시간을 알아 낼 수 있다. 또한 관광에 필요한 안내 책자 및 지도를 얻을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빙하국립공원
남태평양 연안에서 시작한 빙하는 칠레와 안데스를 가로질러 아르헨티나까지 거의 21,700㎢에 달하는 지역을 덮고 있으며 이곳의 빙하국립공원 역시 그 중의 일부이다. 빙하국립공원은 유네스코(UNESCO)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공원 내의 페리토 모레노(Perito Moreno)빙하가 첫번째 방문지로 3만 년 전에 생성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빙하 가운데 하나다.
페리토 모레노는 칼라파테에서 8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버스로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5페소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꾸불꾸불한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이내 도로 왼편으로 반투명의 파란 얼음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폭이 3km에 이르며 높이는 60∼70m 정도이다.
빙하가 슬금슬금 밀려 내려와 좁은 수로를 이루고 그 오른편으로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수백 미터의 계단과 나무 울타리로 만들어진 전망대가 갖춰져 있어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빙하에 금이 가는 소리와 수 톤의 얼음 덩어리가 호수로 떨어지며 내는 굉음을 들을 수 있다. 가끔은 빙하가 떨어지며 발생한 물방울이 수로를 지나 관람객들에게까지 튀어 오른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아이스 쇼인 셈이다.
또 다른 빙하로 업살라(Upsala)가 있다. 남미에서 가장 커다란 이 빙하는 길이 60km에 폭은 10km에 달한다. 이 빙하는 칼라파테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진 푸에르토 반데라스(Puerto Banderas)에서 배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으며 여행에 하루가 소요된다.
이곳 국립공원에선 어디서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비행기 예약에 한 차례 고생을 했던 우린 남은 시간을 이용, 칼라파테 남서쪽의 세로 프라이스(Cerro Frias·1100m)로 트레킹을 떠나기로 했다.
우린 목장에 도착해 말로 갈아탄 후 정상 가까이 있는 오두막에 도착해 가이드가 바비큐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정상의 드넓은 호수인 아르젠티노와 그 건너의 안데스 산군을 감상했다. 칠레에 있는 파이네 타워가 남쪽으로 75km 떨어져 있으며, 북쪽 어딘가엔 우리가 등반한 세레토레와 피츠로이가 솟아 있을 것이다.
호수를 감상하고 내려와서 먹은 쇠고기 바비큐 버거와 와인 맛은 일품이었다. 이곳에선 여행사의 보증만으로 비자 없이 파이네까지 트레킹이 가능하다. 또한 제대로 장비를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트레킹 신발과 크램폰을 제공받아 아이스 트레킹을 시도할 수 있다. 좀더 넓은 지역을 둘러보고 싶다면 산악자전거를 빌려 주변의 호숫가와 빙하, 대목장 등을 여행하는 것도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한 방법이다.
칼라파테에서 북쪽으로 213km를 달리면 세레토레 등반의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찰튼(Chalten)에 닿게 된다. 1985년에 설립된 이 작은 마을은 멋있는 호수와 빙하를 감상하며 트레킹을 즐길 수 있어 많은 산악인과 트레커들이 찾는 곳이다. 이들은 세레토레와 주변을 트레킹하기 위해 브리드웰 캠프(Camp Bredwell)에서 몇 주일씩 캠핑하며 비가 그치고 바람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찰튼은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성지인 셈이다. 눈에 덮인 산봉우리는 호수에 반사되어 호수 주변의 수목과 하나가 된다. 하얀 빙하 물은 우아하게 화강암 위로 흘려 내려가 목초지를 자줏빛으로 채우고 빠른 물살을 타고 내려가 강과 수천의 크고 작은 호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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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로토레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저녁 노을 풍경. |
색다른 경험의 빙하지대 트레킹
집도 하나 없고, 자동차나 보트 등 인공적인 요소가 하나 없는 이곳이 진정 지구에 존재하는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피츠로이 아래 위치한 리오 블랑코 캠프에 들어서면 관리공단(APN : Administracion de Parques Nacionales) 사무실 입구에 적힌 안내문을 만날 수 있다. ‘Welcom to paradise(of course, it isn’t, but it sure looks like it).’
정확하다. 이곳은 그렇게 밖엔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찰튼에서 리오 블랑코 캠프까지는 3시간이 소요된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이내 피츠로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후론 줄곧 평지에 자라는 잡목들과 실개천 위로 가설된 통나무 다리 위를 걸어간다. 이곳의 빙하 물은 주변의 다른 빙하수와는 달리 맑은 편이다.
세로토레와 토레 에거, 파인센노트, 피츠로이로 이어지는 연봉이 바람을 막아주어 날씨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포근하다. 브리드웰 캠프는 세로토레의 신비스러움을 가장 잘 전망할 수 있는 곳이다. 며칠씩 모래바람과 비, 안개에 뒤덮여 있던 세레토레가 모습을 드러내면 매혹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더욱이 토레 호수(Lago Torre) 위쪽에 형성된 빙하지대 트레킹은 크레바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야 하기에 등반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더없이 모험적인 체험이 될 것이다.
우린 마지막 남은 일정을 보내기 위해 우슈아이아(Ushuaia)로 향했다.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도시로 남극점에서 불과 4,00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푸에고 섬(Tierra del Fuego)관광의 중심이 되는 도시다. 우린 발데스(Valdes)반도의 큰 고래로부터 푼토 톰바(Punto Tomba)의 백만 마리에 가까운 펭귄을 보기 위해서 쌍날개로 달리는 큰 보트를 타고 바다 위를 달렸다.
이곳에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살다 멸종된 거대한 공룡의 뼈, 화석과 물 속이나 해안에서 현존하는 다양한 종류의 생물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특별한 관광은 광대하고, 평평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사막에서 고립돼 생물의 보고가 돼버린 오아시스에 도착한 듯한 교차적인 의미를 느끼게 한다. 이것이 바로 파타고니아이며 지구 끝으로의 여행인 셈이다.
자연과 사람들의 천국 파타고니아
우슈아이아는 명암이 뚜렷한 도시이다. 암·흙색의 거친 바위산과 하얀 세락들, 검푸른 바다와 그 위를 떠다니는 배, 적갈색 도시와 도시 건너편으론 이착륙하는 비행기, 바람과 습기를 먹고 있는 구름. 이 모든 것들이 어둠에 묻히고 나면 달은 시커먼 도시 위로 은은하게 그 빛을 과시한다.
우슈아이아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푸에고 섬 국립공원(Parque Nacional Tierra del Fuego)은 작은 습지 사이를 오가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감상할 수 있으며 로카(Roca) 호수에선 남극의 상쾌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그 바람 또한 파타고니아의 일부이다.
파타고니아는 방대한 지역으로 여기에 소개한 것은 극히 일부분이며 우린 세로토레를 등반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그래서 주 내용은 등반지인 칼라파테, 찰튼 지역 위주의 트레킹에 관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물론 파타고니아의 모든 것을 다룰 수도 없겠지만, 시도조차도 할 수 없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람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착하고 친절했으며 믿을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의 자연과 더불어 원주민, 등반가, 트레커, 하이커 등 모든 사람이 쉽게 친구가 됐으며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그들을 보러 왔던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도 그곳에선 누군가가 친구를 기다리며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이 파타고니아이다.
■ 트레킹 정보
우리가 아르헨티나로 떠날 때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사정과 정치적 이유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페소화의 평가절하(1페소는 460원 정도)로 우리는 경비를 줄일 수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착하고 친절했다. 2차 산업의 부재로 공산품은 국내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현지 생산품이나 식료품은 싼 편이다. 교통비는 국내와 비슷할 것 같으며 이곳은 무분별한 개발에 나서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주변 관광지에 대한 소책자나 지도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숙박의 경우 유스호스텔(Youth Hostel)을 이용하면 싼 값에-일반적으로 침대 하나당 12페소-만족할 만한 방을 구할 수 있다. 호텔이나 유스호스텔에선 다음 기착지에 대한 교통편이나 숙박을 미리 상담, 예약하는 게 편리하다.
파타고니아 지역은 남미의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극에 접한 지역을 말하며 남부와 중부 파타고니아, 푸에고 섬 주변, 토레스 델 파이네를 중심으로 한 호수지역, 로스앤젤레스와 푸콘 등이 포함된 아라우카니아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트레킹은 성수기인 10월부터 3월까지의 여름에 이루어지며 산록과 호수 주변에 야생화가 만발해 아름답다. 남부 파타고니아의 들머리는 푼타아레나스며 세로토레로 접근하기 위해선 칼라파테를 중심지로 삼아야 한다.
국내에서 파타고니아로 가는 직항 편은 없으며 미국을 거쳐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항공편은 란칠레나 바리그 항공이 자주 운행하며 성수기의 비행기 요금은 190∼210만원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