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은 떨어져라
더 이상 따스함을 잃어버린 것은, 더 이상 선한 영향력을 잃어버린 것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요구의 아이러니에 빠져버린 것은. 이마의 날카로운 주름이 난 노인이다. 그러니…
노인의 말씀을 읽을 수록 점점 그의 인상이 험악하게 변하는 이유는 그의 말투가 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포근하기도, 검소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향하는 미소가 아닌 자신의 제자에게 향하는 미소이며. 따끔한 충고도, 깊은 공감도 전부 내가 아닌 제자에게 허락된다.
노인의 이상은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것이기에(4.6)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책하고 말 것이다. 그의 실천은 사소한 것이기에(3.8)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넘어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그의 이상과 실천은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어찌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겠는가? 분명 어려운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배려하고, 공경하라는 말인가? 옛날 사람이라 부를 만하다. 이 시대의 사람이란 생물은 전과는 너무 변했다.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할지 몰라도 그 근본이라 부를 수 있는 정의가 늘어났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였다. 드높은 이성과 더욱 드높은 자연, 이성의 그림자인 무의식과 그 안에 있는 성욕. 사회가 만든 자본욕과 권력욕. 자연안에 있는 인간과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생명체인지에 대한 통찰. 사람은 지구의 통치자이면서도 지구의 포로이고, 뛰어난 통찰가이면서도 어리석은 망상가이다. 어딘가 뒤엉키고 망가진 인간은 자신을 이해하기도 벅차다. 그런데 무엇이라? 이해하라는 뜻인가? 어리석은 말이다. 인간이 어찌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겠는가. 결국 나는 나고 너는 너일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개인적인 사회가 만들어 지는 것 아니겠는가? 이해를 넘어선 공경과 배려하는 것. 불가능하다. 흉내는 가능할 지도 모른다. 잠시 이해하는 척, 잠시 공경하고 배려하는 척. 이것이 노인이 말한 예의라면 모두가 군자일 것이다. 헌데 노인의 말을 들어보라 진심을 다하고 하지 않는가? 도대체 진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공경과 배려할 수 없다면 어쩌란 말인가? 그러기 위해 노인은 배움을 권하고, 밑바탕부터 잘 닦기를 권하지만 이상하다. 내가 의문을 가지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밑바탕을 닦는 과정인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인(仁)이 안된 다면.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안되는 것에 의문을 표하고 있는데 이 바탕에는 또 무엇인 있단 말인가?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절대 하지 않으셨다. 억측을 하지 않으셨고, 반드시 하겠다는 게 없으셨으며, 고집을 부리지 않으셨고, 나만 옳다고 하지도 않으셨다(9.4)” 내가 이 일을 행할까?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구나. 어떤 비천한 사람이 나에게 물어보면 텅 빈 것 같다. 나는 처음과 끝을 두드려 온 힘을 다하고자 한다(9.7)” 이 일을 행할까?
이 또한 하지 못하면 어찌할까? 뒤엉키고, 추락한 인간은 이것조차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제자에서 제외되고 천민이 되겠지. 이에 노인은 말했다. “백성은 도리를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알게 할 수는 없다(8.9)” 틀렸다. 백성은 도리를 따를 수도 없다. 능력도, 힘도, 노력도 없다. 그만큼 미천한 것이 인간이다. 노인은 그런 천민들을 향해 말도 안되는 것을 이루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노인도 그 사실을 알았겠지. 그래서 자신의 제자와 천민을 구분하여 제자에게만 자신의 가르침을 주고, 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또한 되지 않자 다른 제자들과 안회를 구분하여 이리 말하였다. “보통 이상의 사람과는 상급 수준의 것을 말할 수 있지만, 보통 이하의 자들과는 상급 수준의 것을 말할 수 없다(6.19).” 이토록 잔인한 말을 하는 저 노인은 모순된다. 누구나 인을 이룰 수 있다 하였거늘 그 급을 나누어 평가하고 갈라 친다.
천민들은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가? 노인은 말한다. “인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4.6)” 아하! 알겠다. 관계로 발전하라는 말인가? 인은 사람과의 관계이니 관계로 더욱 발전하면 될 것이다. “어허!” 노인이 말한다.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하지 말아라(9.24).” 이런! 관계로 끼리끼리 맺으라는 소리이군.
노인은 모순적이고 선의 그림자인 인간에게 군자이기를 요구한다.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예와 인을 먼저 쌓으라 요구한다.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천민과 제자를 나누어 자신의 이상을 선포한다. “불가능합니다.” 이런 미련한 제자들. 안회야 너는 내 뜻을 알겠지. “가능합니다.” 그래.
노인은 아주 높은 분들과 만나면서 천민들을 내려친다. 분명 자신도 천한 삶을 살았다 했을 것인데(9.6). 자신의 제자는 관직으로 삼아도 괜찮다고 말한다(6.6). 갈라 치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자는 소인이다 하며 채찍질하면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대상은 갈라 쳐서 나누어 버린다. 그나마 힘겹게 줄을 잡고 올라오려 하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줌과 동시에 되지 않는 자들은 끼리끼리 놀라고 줄을 끊어버린다.
후대에 올자들이 두렵다(9.22).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천민의 후대는 치지 않는다. 그에게 후대는 흙에 뭍인 과일 씨앗이지 과일 씨앗을 뭍은 흙이 아니다. 당신들은 씨앗을 위에 걷어 내져야 하는 흙이다. 당신이 상차림을 당하여 노인이 당신을 배려해준다고 해서 자신을 높이면 안된다. 배려와 연민의 대상이 이상 실현의 천국 초대장이 되지 못한다. 그 초대장은 오직 노인의 수준에 맞는 우등생뿐이다. 그러니 천민은 떨어져라. 그의 가르침대로.
노인의 이마에 주름은 온화하고 따스한 할아바이의 주름이 아닌 날카롭고 차갑게 각이 있는 교장의 주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