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북경으로 가야 합니다.
10월 5일에 돌아올 예정이니 산둥에서 쓰는 편지도 9월달 편지는 오늘이 마지막이겠네요.
9월 가을 들녁 끝자락을 보고 싶어서 무작정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의 컨셉은 걷고 싶을 때까지 걷자 였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안가지고 똑딱이 하나만 달랑
길을 거다 보면 이렇게 울창한 침엽수림에 둘러싸인 호수도 있더군요.
길에는 여러가지 길이 있죠.
사람들이 가는 길과 가지 않은 길
저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 지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결국 모든 길의 끝은 하나일텐데 말입니다.
물은 말이 없죠.
말 없는 물에 나무가 자기 몸을 뉘었네요.
이렇게 거울처럼 맑은 냇물이 흘러요.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어요.
마치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 나오던 두그루 은행 나무를 연상케 하더군요.
서로 지켜보면서 그리워 하지만 다가갈 수 없어 애틋했던 그 은행나무가 생각났어요.
이렇게 옥수수를 말려요.
지금이 옥수수를 말리는 계절인가봐요.
길은 걷다 만난 어느 마을
제가 마을에 들어서자 모든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더군요.
취푸에서도 1시간을 들어와야 하고 그 곳에서도 1시간 떨어져 있는 마을 쓰핑(泗平)
버스도 안 다니는 이 깊은 산골에 갑자기 나타난 저를 모두 쳐다봐서 민망했어요.
그동안 여행 다니면서 제가 오히려 관광객이 아닌 구경거리가 되었던 적은 많았는데
오랫만에 다시 느껴보는 그런 감정
어찌나 저를 쳐다보시던지
제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그 마을이 소위 손을 탔나 안탔나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저 공산당복과 모자예요
과거 문화혁명의 잔재들
마을에 저렇게 공산당복을 입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만나면 그 마을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았다고 보면 되요.
예쁘지도 않는 데 왜 사진을 찍나면 수줍은 미소를 띄우시는 할머니
제게 사과를 먹으라고 사과를 쓱쓱 옷에 문질러서 주시더라구요.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를 캐시고 계셨어요.
제가 고구마가 크다고 하니까 더 큰 고구마도 많은 데 뭐 그런 것 가지고 신기해하나 하시더라구요.
동네 귀여운 꼬마 녀석도 한장 찍어주고요.
할머니 신발
흙 묻은 신발
그 동안 살아온 세월이 그대로 묻어있는 것 같았어요.
내일부터 집을 비우지 않았으면 사고 싶었던 신선한 고구마들
앞으로 고구마 사러 장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여기서 사가야지
제가 고구마를 구경하니까 고구마를 그냥 주실려고 했어요.
고마운 마음에 받고 싶었지만 집에 놔 둘 수 없어서 그냥 왔어요.
아쉬어라
할머니가 직접 밭에서 캐서 까 준 땅콩
축축한 땅콩 드셔보셨나요. 저도 땅콩을 볶은 것만 먹어봤지 그렇게 축축한 땅콩은 처음 먹어봐요.
근데 맛있어요.
제 주머니에 한가득 땅콩을 채워주셨어요.
처음 보는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사람에 대한 따듯함이겠죠.
오늘은 걷고 싶을 때까지 길을 걸어보았답니다.
9월도 이제 숫자 몇 개로 남아있어요.
다음 주는 정신이 없을 것 같구요.
시간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는 데
저는 어느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아주 많이 천천히 생각 할 수 있었던 행복한 산책이었습니다.
2008년 9월 25일 목요일
어두어지는 방안에서
향기가..
첫댓글 향기님! 파이팅!
삶이란/ 길 위에서/ 길을 가며/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지요...소백산 기슭에서 자란 저에게는 익숙한 풍경들입니다...^^*
가을의 향기가 묻어나는 소박한 산책길의 여정에 향기님의 성숙된 마음이 엿보입니다,,늘 건강하시길,,,,
길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사람의 길은 가끔은 혼돈에서 헤매지만 계절의 길은 어깁없이 가을에 다다랐네요. 건강하세요^^
한 편의 그림 수필을 보는 듯 합니다
원래 세상에는 길은 없었다, 사람이 다니는 그곳에 길이 생기듯 "맑은향기님"이 지나는 길마다 기쁨과 감사 함께하시기를...
젖은 땅콩을 먹어 보지 않고는 연천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생땅콩의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지요. 생땅콩을 뿌리채 뽑아서 그냥 햇볕에 말려서 까 먹으면 많이 먹어도 설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 (볶거나 삶은 것과는 달리)
항상 그리운 나라 중국, 너무나 사랑했던 나라 중국, 그리고 그리운 중국사람들. 중국의 도로변에는 옥수수도 말리지만 호박을 편으로 길게 썰어 지붕위에 널어놓고 말리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죠. 좋군요. 현실의 굴레를 벗지못해 상심해하지 않으려고 그동안 관심을 끊고 살았는데 역시 좋군요. "사랑하였음으로 행복하였네라" 싯귀에 마음을 담아봅니다.
ㅎㅎ 수고 많으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