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30. 물날. 날씨: 포근한 편이다.
아침열기-누룩빵 반죽하기-배움잔치 연습1-점심-청소-원형직조, 실 직조 갈무리-5, 6학년 영어연극 소품 만들기-마침회
[과정을 즐기도록]
아침 산책으로 가까운 텃밭에 가는데 모두 깜짝 놀라는 모습이 눈앞에 있다. 작은 새끼고양이가 죽어 있는 거 아닌가. 아이들도 놀래고 선생도 놀래고, 얼른 가져온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묻어주는데 마음이 좋지 않다. 들고양이가 워낙 많기도 해서 흔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생명이 죽어있는 모습은 마음을 놀래킨다. 삽을 들고 텃밭으로 가는데 가을 김장채소가 모두 뽑힌 밭이 휑하다. "허전해요." "썰렁해요." 란 아이들 말처럼 골라낸 배춧잎이 주인처럼 자리를 잡고 있지만 겨울 텃밭 풍경은 을씨년스럽다. 한 이랑에 최명희 선생이 양파를 심어놓아 겨울 생명이 자라고 있다. 죽음과 생명이 공존하는 현장이 바로 텃밭이다.
"내년에 땅 뒤집고 심으면 또 잘 자라겠죠."
"내년에는 너희들이 없잖아."
"그건 그거구요."
학교로 들어오는데 마당에서 최명희 선생이 홀테를 놓고 수수를 털고 있다. 겨울 갈무리할 계획 가운데 하나로 수수털기를 어제 아이들과 이야기했는데 누군가 하고 있으니 반갑다. 덕분에 잠깐 수수털기를 하고, 숲 속 작은집에 걸어넣은 무청과 곶감을 살펴보고 우리가 먹기 위해 벌이는 수고로움을 확인한다. 하나 둘 갈무리하는 흐름 속에 아이들이 자라 곧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교실로 들어와 산책하며 나눈 아침열기 흐름을 이어 합주 연습을 했다. 아침 나절 배움잔치 첫 번째 연습과 낮 갈무리할 것들을 살피니 금세 9시 40분이다. 강당으로 내려오니 5학년이 맛있는 귤쨈을 만들고, 귤을 잘라 말리고 있고, 2학년이 잘라놓은 호박도 보인다.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바로 아침 일찍 꺼내놓은 누룩빵 반죽을 꺼내 2차 발효를 준비했다. 일은 잠깐이지만 시간을 확인하는 게 수고로움이 들어간다.
모두가 모여 배움잔치 첫 연습을 한다. 일 년 동안 배운 공부들을 무대 위에서 펼쳐보이는 배움잔치가 모두 한 해 공부 갈무리 과정이다. 모둠마다 익힌 악기 공연을 처음으로 모두 다 함께 보는데 서로 새롭다. 멋진 공연도 있고, 아직 더 연습을 더 갈무리할 것도 있지만 그 과정이 모두 배움이 되도록 조금씩 챙겨야 한다. 어제 왼쪽 손가락이 다친 본준이가 해금과 피리 대신 쉐이커를 잡아서 어색해하는데 사물놀이 징을 아주 잘 쳐준다. 벌써 열 번째 배움잔치답게 풍성하고 해마다 아이들이 뿜는 기운이 늘 달라 익숙한 배움잔치가 늘 새롭다. 첫 해 배움잔치 풍경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멋진 공연과 작품들에 맑은샘 역사가 그대로 녹아있다. 과정을 즐기는 배움잔치가 되도록 배움잔치를 하는 까닭과 뜻을 다시 살펴야겠다.
점심 때부터 굽기 시작한 누룩빵 냄새가 좋다. 이번에도 부풀기는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두 번째보다는 나으니 됐다. 발효종에 더 정성을 들여야 한다. 낮에 다시 아이들과 반죽을 해서 1차 발효를 들어가니 내일도 빵을 굽겠다. 여름에 만든 누룩으로 막걸리술빵을 만들어 먹고, 이제는 줄곧 누룩빵을 구우니 미생물의 발효 세계가 우리 삶 속에 점점 익숙해간다. 먹고 입고 만드는 생활기술을 익혀가며 재고 셈하고 정리하고 일과 놀이 교육과정을 살찌우며 교과통합을 생각한다. 할 게 많아지니 좋다.
낮 공부는 본디 맑은샘회의인데 모둠마다 갈무리할 것들을 더 하기로 했다. 봄학기 시작한 원형직조와 가을학기 시작한 실직조를 갈무리하고, 누룩빵 반죽을 한 번 더 하고, 5,6학년 영어 연극에 쓸 그림을 그렸다. 어제 학교살이를 한 5학년들이 있어 일찍 마치고 가라고 했더니 마무리 짓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늦었다고 그만 가라는 선생 말에도 거의 다 끝났다며 손이 다친 본준이를 끝까지 도와 그림을 그려주는 성범이를 보니 고맙기만 하다. 어느새 훌쩍 자라 형 노릇을 하는구나. 마음이 따듯해진다. 입학면접과 모둠모임, 자료 준비가 남아있는 선생들은 저녁을 먹으러 간 뒤 배움잔치에 쓸 영어 발표자료를 완성하고 학교를 나서는데 하루가 휙 가는 것 같다. 정말 올해도 이제 한 달 남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