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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중국의 지방색 (地方色)
우리는 조그만 한반도에 살면서도 각 지방마다 다른 지방색 (地方色) 을 느끼며 살고 있는데, 각 지방의 자연이나 풍속, 인정 따위에 의해 고유하게 갖는 특색인 지방색 (地方色) 을 굳이 영어로 표현한다면 Local color 혹은 Localism 으로 표기하겠는데, 이것이 좋은 뜻보다는 나쁜 뜻으로 더 많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고, 땅 덩어리가 큰 중국에서는 얼마나 다를 것인가 ? 는 쉽게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사람들의 기질만이 아니라 지방의 향토색 (鄕土色), 즉 지역의 역사적인 사실들이 풍물에 담겨 있는 고유한 정서나 특색을 일컫는 것으로, 어찌 보면 무심코 지나서 잘 느낄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의 지방색 [地方色])
북경 (北京) 은 우리의 서울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북경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데, 어쨌든 북경 (北京) 사람들이 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배타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예전에는 변방의 소수 민족이 북경에 오면 조그만 아이들도 외지에서 온 큰 애들을 골목에다 잡아 놓고, 이유 없이 쥐어 박으면서 텃세를 해도 꼼짝도 못했다는 것으로, 북경이 권력 중심으로 북경 사람들의 권위가 하늘을 찔렀는데, 지금은 개혁 개방으로 권위 의식이 많이 완화가 되고 있는 형편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필요하다는 꽌시 (关系, guān xi) 문화가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고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은 말한다.
(중국에서 필수인 꽌시 [關係])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은 `북경에 와서는 절대 감투 자랑을 하지 마라 !’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북경 (北京) 에서는 장관도 별로 높은 감투가 아니라서 웬만한 지방 수령들도 그들의 지방에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어깨에 힘을 주고 거들거리지만, 북경 (北京) 에 오면 꼬리를 내리고, 머리를 다소곳이 조아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 정설로, 역대 총리, 부 총리, 군부, 권력 기관의 우두머리 등. 고위 계층들이 운집해 있어서, 웬만한 감투로는 기를 못 편다는 곳이 바로 북경이어서 북경 (北京) 에서는 사돈에 팔촌 중에 한 사람만 건너면 장관급 인사들과 줄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고 할 지경이라고 해서, 큰 사업을 하려면 북경 (北京) 에 있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라도 반드시 연줄이 있어야 한다고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은 말한다.
(중국의 꽌시 [関系] 문화)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은 일반적으로 산동 사람이라고 하면 아웃 사이더로 취급하여서 별로 대접을 하지 않는데, 역사적 문헌으로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 산동 지역에 살던 우리 선조 (岱夷, 淮夷) 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바다의 제왕 (海神) 장 보고가 넓은 땅을 장악하고 신라의 무역 기지를 설치하여 한참을 살던 곳으로, 산동 사람들은 음식뿐만이 아니라 그 기질이 한국 사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서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이 따돌림을 주는 지도 모른다.
(산동 지역의 동이족 [東夷族])
산동 지역은 예로부터 공자님이 태어나신 고향으로, 유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데도, 중국 사람들에게는 우리와 다른 정서가 있는 것 같아서, 중국 역사에서 산동 사람들은 `연 (燕) 나라의 무사 (燕國之仕)' 라 하여, 용감 무쌍한 용사 (勇士) 의 대명사로 되어 있고, 또한 일반적으로 성격이 호탕하고 직선적이며 일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어서, 팔을 걷어 붙이고 일을 하면 어느 지역 사람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일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어, 중국 사람들이 완곡하고 간접적인데 반하여, 산동 사람들은 직선적이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이 싫어하고 따돌림을 주는 것 같으며, 중국에서는 산동 사람을 `산뚱 빵쯔 (山東棒子)’ 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행동에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한 사람들에게 붙여지는 별명’ 이라고 하는데, 동북 3 성으로 이주한 산동 사람을 심하게 욕하는 말로 `재수없는 놈’ 이라는 숨은 뜻도 갖고 있다고 한다.
(충성스런 연 [燕] 나라 무사들 [燕國之仕])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은 `만주 (滿洲)’ 라는 말이 문수 보살을 의미하는 범어 (梵語) 인 `만주사리 (曼珠師利, Man chu shih li)’ 혹은 만주스리 (Man ju sri) 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유력한 것은 건주 여진족 (建州 女眞族) 의 가장 존귀한 칭호였던 `만주 (滿住)’ 를 부족을 통일한 `누르하치’ 가 계승해서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청태종 (淸太宗) 이 그 존칭을 `만주 (滿洲)’ 로 바꾸어서, 부족 이름으로 사용한 데에서 비롯된 말이 결국 주거 지역 명칭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만주 지역)
만주 (滿洲) 지역의 북방 고토 (故土) 지역은 한민족 (韓民族) 이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통치한 지역이고, 심, 요 지역은 금 (金) 나라가 한족 (漢族) 의 출입을 금지한 지역이며, 간도 (間島) 지역은 북간도 (北間島), 서간도 (西間島), 동간도 (東間島) 지역으로 한민족 (韓民族) 이 살던 지역이며, 연해주 지역은 서기 1860 년 10 월 18 일, 청나라가 제 2 차 아편 전쟁을 치르고 러시아에게 북경 조약으로 넘겨준 지역이다.
(만주 지역의 역사성)
한민족 (韓民族) 이 살던 지역인 북간도 (北間島), 서간도 (西間島), 동간도 (東間島) 지역을 포함한 간도 (間島) 지역은 서기 1712 년 숙종 38 년 청나라와 백두산을 답사하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경계를 정하였으나, 서 (西) 로는 압록강, 동 (東) 으로는 토문강 (土門江) 의 분수령에 경계비를 세우는 것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 의 해석이 두만강의 상류라는 것이 청국측 입장이었던 반면, 조선측은 만주 내륙의 송화강 (松花江) 상류라고 하여 서로 상이한 해석의 문제가 있다.
(백두산 정계비)
(백두산 정계비 위치)
(백두산 정계비 비문)
(백두산 정계비 비문 전문)
북간도 (北間島), 서간도 (西間島), 동간도 (東間島) 지역을 포함한 간도 (間島) 지역의 귀속권은 나중에 따진다고 하더라도, 그 지역에는 지금도 한민족 (韓民族) 이 많이 살고 있어서, 북간도 (北間島) 지역에는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구로 지정되어 있다.
(북간도 연변 조선족 자치구)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의 주장처럼 만주 (滿洲) 지역의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서기 1924 년에 발행된 바티칸 교황청이 발행한 한국 교구에 관련한 지도가 있으며, 서기 1831 년 로마 바티칸 교황 그레고리오 16 세는 조선 교구의 제정을 허락하고, 서기 1911 년 조선 교구를 경성과 대구의 두 개의 교구로 분할했고, 서기 1920 년에는 경성 교구에서 함경도와 간도 지역 (북간도와 동간도) 을 분할하여 원산 교구를 설립했으며, 일본의 간도 협약은 서기 1965 년 일본이 한국을 대신하여 맺은 모든 조약은 무효가 되면서 효력이 소멸된다.
(1924 년 로마 바티칸 교황청 발행한 교구 지도)
청 (淸) 나라 시기에는 만주가 지역 명칭으로 사용되면서 그 적용 범주가 초기에는 요서 (遼西) 와 요동 (遼東) 지방만을 지칭했으나, 오늘날의 랴오닝성 (遼寧省), 지린성 (吉林省), 헤이룽장성 (黑龍江省) 으로 이루어져 있는 동북 3 성에서 흑룡강성을 제외한 길림성과 요령성을 포함한 지역을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은 만주 (滿洲) 라고 한다.
(중국 동북 3 성)
역사적으로 보면, 만주 (滿洲) 에는 사람이 적어 산동성에서 사람을 강제로 이주 시켰다고 하며, 그래서 많은 만주 사람들의 조상이 사실은 산동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구려의 기질이 강하므로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신체 조건이 좋은 산동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켰는지 모르겠으나, 만주 (滿洲) 사람들은 산동 사람과 달리 성격이 급하고, 성격이 포악하다는 것이다.
(청 [淸] 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한 만주족)
만주 (滿洲) 사람들은 원래 기골이 장대하여 몸집이 왜소한 사람들이 보면 엄청 겁이 날지도 모르며, 거기에다 술도 잘 먹어서 대낮에도 큰 맥주 컵에다 백알 (빼갈) – 빠이주 (白酒), 빠이깔 (白干儿 [乾兒]) 을 가득 따라 놓고, 반주 (飯酒) 로 몇 잔을 할 정도이니, 술도 잘 먹지 않고, 몸집도 왜소한 남방 사람들이 볼 때에는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고, 더욱이 만주 (滿洲) 사람들은 술자리를 같이하게 될 경우, 한 번 술을 권하면 절대로 거절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술을 잘 못 먹는 사람에게는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는 것이다.
(반주 [飯酒] 로 먹는 빼갈 [白干儿])
만주 (滿洲) 사람들은 신체 조건이 우수하여 대표 운동 선수들이 많은데, 매번 올림픽이 개최될 때, 중국에서 따는 금메달 중에 상당 부분은 만주 (滿洲) 사람들이 따오는 것이고, 이처럼 운동도 잘하고, 술도 잘 먹고, 성격이 화끈해서 자기 표현을 너무 강하게 하기 때문에 성격이 포악하다고까지 표현하는 것 같으며,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이 고구려의 기질에 대항하려고 산동 사람들을 이주시켰으나, 역사적으로 토착화된 고구려의 기질이 그대로 계승되어서, 오히려 원래의 고구려 기질이 그들에게서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고구려 고분 벽화 수렵도)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이 만주 (滿洲) 에서 제외한 헤이룽장성 (黑龍江省) 은 넓은 땅에 흑룡강 (黑龍江 - 아무르강) 의 대자연이 펼쳐져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도 넓고, 씀씀이도 넉넉할 것 같으나, 그렇지 못하고,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도 `흑룡강성 사람들은 마음이 시커멓다 (黑龍江省的人黑)’ 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이며, 헤이룽장성 (黑龍江省) 에 거주하는 조선족 (朝鮮族) 들 중에는 자기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은 한국 사람의 등을 쳐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대부분의 조선족 (朝鮮族) 들은 중국에서도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만주(滿洲) 에서 자랐고,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적어서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며, 간과해서는 안될 사항이 중국의 조선족 (朝鮮族) 들은 중국에서 태어나서 중국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의식이나 생활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조선족 (朝鮮族) 을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의 조선족 (朝鮮族), 특히 젊은 사람들은 자기들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중국 사람 (中國人) 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만 한국 사람들과는 같은 민족 (韓民族) 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 사람들이 혼돈하여,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지폐 속의 조선족 처녀)
중국 화북 (華北) 지역 내몽고 자치구 (内蒙古自治区, Nèi Měng gǔ Zìzhìqū), 약칭 내몽골 (内蒙古, Öbür Mong gol [외뷔르 몽골]) 은 징기스칸의 고향으로 일부를 만주 (滿洲) 에 포함하기도 하는데, 내몽고에는 손님들이 오면 극진히 대접하는 전통이 있어서, 손님이 자기 집을 찾아 오면 그 집의 딸들이 모두 나와서 `하다’ 라는 흰색 천을 손님의 목에 걸어준 후, 환영주 (馬乳酒) 를 손님에게 권한 후, 손님이 술을 다 마실 때까지 곁에 서서 노래를 부르며, 대단히 반가워하고 손님을 극진히 맞이하여 인정 (人情) 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주는데, 내몽고 사람들은 대초원의 청정 지역에서 자유롭게 살아서 매우 순박하고 의리가 있다.
(내몽고 자치구)
(흰색 `하다’ 와 환영주 [馬乳酒])
(환영 마유주 [馬乳酒])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은 중국 영도자로 선택된 강 택민 (江澤民) 때문에 `상해방 (上海幇)’ 이란 이름으로 중국의 권력을 잡고, 화동 지구의 중심으로 `중국의 뉴욕’ 으로 불릴 만큼 경제가 발달하고, 예전에는 거두어들인 세수가 국가 재정의 20 % 를 충당할 만큼 중국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이었던 상해 (上海) 지만, 기원전 춘추시대 때 초 (楚) 나라 춘신군 (春申君) 의 봉읍지이며, 진 (晋) 나라 시대에는 상하이를 `고기 잡는 도구’ 라는 뜻의 `후 (扈)’ 와 `도랑’ 이라는 뜻의 `두 (瀆)’ 를 합쳐 `후두 (扈瀆)’ 라고 부르는 이름없는 변방의 어촌에 불과했으며, 지금도 상하이의 약칭을 `호 (沪)’ 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변해서 된 것으로 13 세기까지만 해도 상하이는 작은 어촌 마을로 빛을 보지 못한 채 그늘에 가려져 있었으나, 오늘날 외지 사람들이 말하는 상해 사람들에 대한 비평은, 상해 사람들이 너무 타산적이고, 작은 이익을 잘 따지며, 돈 되는 일이라면 우정도, 의리도 헌신짝처럼 저버린다 라고하여 `먼란징 (門檻精)’ 이라고 하여 장사에서는 `고단수인 꾀보’ 라고 부른다.
(상해 해물 뷔페 [自助餐] – 상은수산 [上隱水産])
(찐 상해 따쟈시에 [大闸蟹 - 대갑게])
화동 (華東) 지구의 상해 상인들이 중국 내에서는 영악하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상해 바로 아래에 있어서 상해와는 지척간에 있는 영파 (寧波) 사람들이 상해의 주요 상권을 거의 쥐고 있어서 상해 사람들은 영파 사람들 앞에 가면 고양이 앞의 쥐 격이 된다는 것이며, `영파 (寧波) 사람이 없으면 시장이 서지 않는다’ 하여 `無寧不盛市’ 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며, 영파 (寧波) 속담은 `天下之主, 不如買主’ 라 하여, `천하의 왕이라도, 손님만 못하다’ 즉 `손님이 왕이다’ 라고 할 정도이다.
(천하 저장 [浙江] 닝보방 [寧波幇] 상단)
(세계 닝보방 [寧波幇] 상단 [商團] 대회)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은 빵집이 잘되면 바로 옆집에 음료수 가게를 내어 같이 번창하지만, 한국 사람은 옆에 똑 같은 빵집을 내어 같이 망한다는 유머가 있듯이, 중국 사람 특히 절강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사고 방식을 갖고 있고, 경제가 급속히 발달하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 상도덕이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아 악명을 펼치는 곳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곳이 온주 (溫州, Wen chou) 이며, 원조우 (溫州)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못 한다. 못 배워서 못 한다’ 라는 말은 통하지 않고, `없으니까 돈 벌어야 하고, 못 배웠으니 돈 벌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유대인이나 원조우 (溫州) 상인에게는 역시 자신들의 제약된 환경이 오히려 자신들을 견고하게 하고 일찍부터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었고, 자신들만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자신들을 극한 상황에서 성공시키는 좋은 스승이 되었다는 점에 공통점을 갖고 있어, 속담에 `见人说人话, 见鬼说鬼话’ 라고 하여 `사람을 만나면 사람 말을 하고, 귀신을 만나면 귀신 말을 한다’ 라고 할 정도로 장사 상황에 잘 적응하는 원조우 (溫州) 상인을 말하고 있다.
(저장성 [浙江省] 원조우 [溫州])
양자강 (揚子江 - 長江) 하류에는 이 태백 (李太白) 이 달 따러 갔다가 빠져 죽은 호수인 동정호 (洞庭湖 [둥팅호]) 를 사이에 두고, 호북성과 호남성으로 구분하는데, 일반적으로 후베이성 (湖北省, Húběi Shěng) 사람들은 자기 일이거나, 남의 일이거나 상관없이 관여를 잘하고, 시비를 잘 거는 사람들로 소문이 나 있어서, 일반적으로 큰 일을 작게 만들고, 작은 일은 없는 것으로 만들어 웬만하면 덮어 두려는 경향이 있는데, 호북성 (湖北省)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묻혀져 가는 일을 끄집어 내고, 사소한 일은 크게 확대하여 결국에는 문제 거리로 만드는 기질이 있다고 하여, 어떠한 문제도 대충 대충 지나치지 않고 쫀쫀하게 따지는 성격이므로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이 태백의 동정호 [洞庭湖 - 둥팅호])
이 태백 (李太白) 의 달을 읊은 시, 파주문월 (把酒問月) 을 읽어 본다.
靑天有月來幾時 (청천유월래기시)
하늘의 저 달은 언제부터 떠 있는가 ?
我今停杯一問之 (아금정배일문지)
나는 지금 술잔을 멈추고 물어본다.
人攀明月不可得 (인반명월부가득)
사람이 달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는 없지만,
月行却與人相隨 (월행각여인상수)
달은 떠서 사람을 따라 서로 곁에 지내나니.
皎如飛鏡臨丹闕 (교여비경임단궐)
달이 거울처럼 밝아 선궁 (仙宮) 에 비치니,
綠烟滅盡淸輝發 (록연멸진청휘발)
뿌연 아지랑이 걷히고 달빛이 쏟아지네.
但見宵從海上來 (단견소종해상래)
다만, 밤마다 바다 위에 떠오르는 것은 보지만,
寧知曉向雲間沒 (영지효향운간몰)
어찌 새벽에 구름 속에서 져 가는 것을 알 것인가 ?
白兎搗藥秋復春 (백토도약추부춘)
옥토끼 약을 찧면서 봄 가을 지내고,
姮娥孤柶與誰隣 (항아고사여수린)
선녀 (달의 여신 - 항아) 외로이 살아가니 누구와 이웃할까 ?
今人不見古時月 (금인부견고시월)
지금 사람 옛 달을 보지 못하겠으나,
今月曾經照古人 (금월증경조고인)
지금 달 일찍이 옛사람을 비추어 왔네.
古人今人若流水 (고인금인약유수)
고인, 금인 (사람의 삶) 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共看明月皆如此 (공간명월개여차)
밝은 달 보는 것도 이와 같았지.
惟願當歌對酒時 (유원당가대주시)
바라건대 노래하고 술 마실 때에,
月光長照金樽裏 (월광장조김준리)
달빛이여, 이 술잔을 길이 비추어 다오 !
(이 태백의 취혼도 [醉魂圖])
동정호 (洞庭湖) 남쪽의 후난성 (湖南省, Húnán Shěng)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한번 했다 하면 끝장을 보는 승부 기질이 강하고, 한편으로는 보스 기질이 강하다고도 할 수 있어서 예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는 곳으로, 옛말에 `인재 (人才) 는 초나라 (楚 - 옛날 호남, 호북 지방에 세운 나라) 에 있고, 군인 (軍人) 은 상 (商, 호남의 별칭) 에서 난다’ 는 말이 있고, 실제 최근 중국을 이끈 모 택동 (毛澤東) 이 바로 호남성 출신이고, 중국 개혁의 기수였던 주 룽지 (朱鎔基) 총리도 역시 호남성 출신으로 최근에도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적지 않다.
(웨이양루 [岳阳樓] 에서 내려다 본 둥팅호 [洞庭湖])
쓰촨성 (四川省, Sìchuān Shěng) 사람들은 대개 체구가 조그마한데, 등 소평 (鄧小平, Teng Hsiao p'ing) 도 사천성 사람으로, 외국의 지도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키가 굉장히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사천 (四川) 사람들은 체구는 작아도 싸움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어서, 실전에 돌입하면, 어느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탁월한 전투력을 발휘한다는데, 그것은 사천 (四川) 지방에 산악이 많아 평소 단련된 몸들이라서 어떠한 극한 사항에서도 이를 참고 견디며, 극복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며, 1960 년 중국과 인도가 국경 분쟁이 일어나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전쟁을 선포한지 하루 만에 인도 국방 장관이 중국군에 의해 포로로 잡히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때 이 혁혁한 전과를 올린 군대가 바로 사천성 (四川省) 출신의 군대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등 소평 (鄧小平) 시절에는 중국과 베트남간에 관계가 악화되어 중국이 베트남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군대를 파견하였는데, 이때도 사천성 (四川省) 출신의 군대가 파견되었고, 문제는 오랜 전투로 단련된 베트남군을 중국이 마음 먹은 대로 쉽게 버릇을 고쳐 주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지만, 어쨌든 중국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날쌘돌이 선수들을 뽑는다면, 중국 아이들 (中國兒 - 짱꼴라) 은 단연 사천성 (四川省) 사람들을 꼽을 것이다.
(사천성 유비 [劉備] 의 촉 [蜀] 나라)
계속홥니다, 보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