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1부. 우리 세계를 아래위로 뒤집어 보기 1~2
1. 여정에 앞서
마음은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마음이 이런걸 묻고 답하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간단한 답은 마음이 진화하여 생각 도구들을 만들었고 그 생각 도구들 덕분에 마음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생각 도구인 말하기가 있고 나서야 읽기, 쓰기, 셈하기가 가능해졌고 또 그후에 길찾기와 지도 만들기, 도제 제도의 관행들이 가능해짐.
박테리아 자신조차도 박테리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박테리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생각 도구를 사용하며 우리는 정교한 생각 도구 상자를 갖도록 허락된 태고 이래로 유일한 종이다.
(여정 미리보기) 이 행성에서 생명은 40억 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진화해 왔는데 처음 20억년 정도는 자가 유지보수 및 에너지 획득과 번식을 위한 기초적 장치들을 최적화하는 데 소요됨. 이 시기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비교적 단순한 단세포 존재-박테리아 또는 그 사촌인 고세균류-밖에 없었는데 이들을 원핵생물이라 부름. 그러다 원핵생물들 끼리 충돌이 일어나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빨아들였으며 흡입된 개체를 파괴하여 그 부분들을 연료나 구성물질로 사용하지 않고(달리 표현하자면 먹어치우지 않고) 계속 살아 있게 한 것이다. 그 결과 홀가분한 솔로일 때보다 훨씬 더 적합해졌다.
막으로 둘러싸인 핵이 세포 내에 따로 존재하는 진핵세포는 이렇게 태어났으며 그 조상-박테리아와 같은 단순한 원핵세포-보다 작동하는 부분도 더 많아졌고 기능도 다양해졌다. 진핵세포는 모든 형태의 다세포 생물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재료다. 우리도 진핵생물이며 상어, 새, 나무, 버섯, 곤충, 벌레 그리고 모든 다른 식물과 동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최초 진핵세포의 후손이다.
5억년도 더 전에 캄프리아기 (생명) “대폭발”이 일어나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갑자기” 엄청나게 나타남. 그후 인류의 농경이 막 시작될 무렵인 1만년 전쯤에는 전세계의 사람과 가축 및 반려동물의 생물량은 지구상 척추동물 총량의 0.1% 이하였는데 지금은 98%에 달함(그중 대부분은 가축이 차지함)
(데카르트 상처) 17세기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르네 데카르트는 이원론자로서 세계를 레스 코기탄스(사유하는 실체)와 레스 엑스텐시(공간적 외연을 가진 실체, 외연) 두 가지로 나눔. 데카르트는 언제나 통용되는 가장 유용한 생각 도구중 하나를 발명한 사람으로 그가 고안한 생각 도구, 즉 “데카르트 좌표계”는 대수와 기하 간의 번역을 가능하게 했으며 미적분학의 길을 닦았고 우리가 탐구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대상을 좌표에 그릴수 있게 해줌. 데카르트의 이론을 발판 삼아 아이작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그에 대한 명백한 논박을 통해 더 나은 물리학을 고안함.
데카르트는 마음은 폐와 뇌 같은 것들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존재자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제2종의 물질, 즉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는 어떤 것들로 만들어졌다고 결론짓고 마음은 물질이 아니며 물질은 마음이 될수 없다고 생각함. 여기에 깔린 생각의 바탕엔 교회의 가르침에 힘입은 바가 큼.
DNA 공동 발견자들 중 최근에 작고한 프랜시스 크릭은 <놀라운 가설:영혼의 과학적 탐구>에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거짓이라고 즉, 마음은 그저 뇌일 뿐, 다른 생물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추가적 속성 따위는 없다고 주장함. 생명과 번식마저 물리-화학적으로 설명된다고 믿으면서 왜 유독 의식 문제에서만 우주가 극적으로 이분될 것이라 기대해야 한단 말인가?
만약 “우리가 그저 기계”라면 자유의지와 책임감은 어떻게 되는가? 만일 우리가 화학과 물리법칙을 따라 소모되는 단백질을 비롯한 분자들의 거대한 집합체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의미를 가질수 있는가?
사람들은 칼슘의 화학적 성질이나 암의 미생물학적 세부 사항에 관해서는 차분히 설득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자기 자신의 의식 경험에 관해서만큼은 자기가 특정한 개언적 권리를 가지므로 자신이 수용할 수 없는 이론은 모두 꺾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런스 디콘이 “근대 과학의 탄생기에 몸으로부터 마음을 잘라낸 데카르트의 상처”라 부른 것을 기워보려는 시도가 많은 이들에 의해 꾸준히 이루어짐. 나의 작업도 마찬가지
나는 왜 이것이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그 이유는 지난 20년간 우리가 어머어마한 과학적 진보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 옛적에는 전반적인 인상에 지나지 않았던 직감 중 많은 것이 지금은 잘 연구된 세부사항으로 대체될 수 있다. 결국 의심하던 자들로 자신의 마음에 관한 과학적이고 유물론적인 이론의 전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박테리아의 자가 수선과 올챙이의 호흡, 그리고 코끼리의 소화를 설명할 수 있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의식적 생각의 그 비밀스러운 작동 원리 역시 끊임없이 개선되고 자가 향상하는 과학적 거대 조직의 작동 원리와 동일하다는 사실만이 끝끝내 폭로되어서는 안 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데카르트 중력) 저자가 데카르트 중력이라고 이름 붙인 원래의 왜곡력은 실제로 몇가지 다른 힘을 낳는 원천이기도 한데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이미 그것들에 어떤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은유를 시작해 보자. 그녀는 행성 ‘데카르트’에 있는 자신의 집에 서서 “1인칭 시점”으로 외부 우주를 바라보며 앞에 놓인 과제에 대해 명상하는 중이다. 이때 “내부로부터의” 자기중심적 관점에 그녀을 묶어 놓은 힘은 행성 데카르트의 중력이다. “ 나 여기 있어, 의식하며 생각하는 존재, 내 마음속의 생각들을 내밀하게 알고 있는 존재가, 내 생각들은 나 자신의 것이니까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아” 여기에는 경쟁하는 두 시점이 있다. 하나는 수호자의 1인칭 시점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자의 3인칭 시점인데 이는 착시 사례인 오리-토끼와 네커 큐브를 보는 방식(63p)들과 매우 닮아 있다. 당신은 두 시점을 동시에 취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왜곡하는 그 힘들의 강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화해할 수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통찰들과 마주하게 될 때 특히 그렇다. 이는 우리가 그것들을 부정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을 부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부정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리라는 뜻이다. 작동중인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힘들 – 종 우월주의, 인간 예외주의, 성차별주의, (진영논리?) 등
2. 바흐와 박테리아, 그전에는
(왜 바흐인가?) 우리 역사에 대한 건전한 관점을 가지려면 우리는 박테리아 전으로, 어떠한 형태의 생명도 존재하기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가보아야만 한다. 생명의 시작에 요구되는 것들 중 몇몇이 오늘날의 우리 마음이 지닌 특성을 설명할 중요한 메아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동물의 기본적인 능력을 설명하긴 하지만 천재성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위대한 인류 사회들이 사회 구성원 몇몇의 창조적 탁월함에 빚지고 있다는 전통적인 견해는 회고적일 뿐이다. 인류의 문화는 그 스스로 어느 섹터의 어떤 천재 집단들보다도 더 풍부하게 찬란한 혁신들을 생성하는 주체다. 이는 문화적 진화라는 과정에 의해 성취되는데 문화적 진화야말로 우리의 가장 위대한 업적들의 저자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침투하듯 우리 뇌에 침투한 그 문화적 항목은 바로 밈meme이다.
(전 생명 세계의 탐색과 체스의 유사성) 가장 단순한 그리고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는 가장 초기의 생명체는 박테리아와 비슷한 것으로 이미 숨 막힐 정도로 복잡하고 탁월하게 설계된 자기 보존계다. 번식(재생산)하는 존재가 생기기 전까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시작될 수조차 없었다.
(잭 쇼스택 2009) 무생물에서 생물이 생겨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주도적 연구자. RNA를 이루는 리보뉴클레오타아드가 핵염기와 리보스당, 그리고 인산 세 가지 구성요소 분자들의 조합에서 나왔다는 가정에 대해 파우너와 동료들은 공통 전구체에서 당과 핵염기를 출현시키는 피리미딘 리보뉴클레오타이드 합성법을 탐구함으로써 전생물적 리보뉴클레오타이드 합성 문제에 대한 현저하게 효율적인 해법을 제시함.
이 책 전체에서 나는 역설계라는 관점을 적극 활용할 것임. 전제는 모든 생물은 비 신비적 물리 과정들의 산물이며 그 과정들은 모든 요소를 점진적으로 한데 모으며 조금씩 개선하여 마침내 우리가 관찰하는 작동체계에 이르렀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로 진보해갈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어떤 가정적 중간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생명체는 충분한 에너지와 물질들을 포획해야만 하고 자신의 충분히 좋은 복제품을 구축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자신의 파멸을 막아내야만 한다. 생물학에서 역설계 관점은 곳곳에 편재하며 생명의 기원을 탐구할 때는 필수적으로 채택된다.
팡글로스 패러다임-달리 증명되지 않는 한 유기체의 모든 부분들은 무언가에 좋은 것이라고 가정하는 방법론적 원리에 기대는 생물학의 한 브랜드-적응주의-를 비웃을 의도도 만들어진 용어. 적응주의는 유기체의 모든 부분에 수행해야 할 유용한 역할들이 있다고 가정함. 이 가정은 모든 생명체를 기능을 지닌 부분들의 효율적인 구성체로 보는 역설계 관점에 잘 들어맞음.
위험과 의무를 주지한 상태에서 수행되는 역설계는 여전히 생물학에서의 왕도이고 생명 기원의 전 생물적 세계라는 까다로운 곳에서 발견에 이르게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