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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채워주시는 개혁자들과 거룩하신 성경진리
나는 우리 목회하는 형제들에게,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고 매우 감사한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마음속에 진리의 보석을, 저장하는 일을 크게 등한시 해왔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기를 열심히 기도함으로, 성경을 연구하도록 우리의 정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손실을 당하고 있는가! 우리형제들이 발전이 있을 것과, 셋째천사의 기별과 보조를 같이하기 위하여, 더욱 열렬한 노력이 있을 것을 믿어 마지않는다.(1SM 362.2-3)
[위대한 종교개혁자로 ‘독일’의 ‘비텐베르크대학’ 교수]‘마르틴 루터’는 여전히 [출교와 핍박과 죽음의 압박에도 결코]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로마’[적그리스도의 본체]는 그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그가 죽임을 당하든지, 항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능력으로 정죄(定罪:형벌)의 선고(宣告:종교재판의 판결서]를 ‘로마’로 돌려보내고, ’로마교‘[가톨릭]에서 영원히 떠나겠다는 결심을 공중 앞에서 표명(表明:공식발표)하였다.
학생들과 [그 시대의 종교연구의] 박사들, 각 계급의 시민들로 이루어진 군중 앞에서, ’루터‘는 교회의 법규들과 훈령(訓令:하급기관에 보내는 명령서)들과 법왕권[교황을 세상의 종교지배권자로 인정하는 권력)을 지지하는 특별한 저서[출판물]들과 함께, 법왕의 교서(敎書:교황이 절대적 권한으로 발표한 공식문서)를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원수들은 나의 저서들[성경진리 그대로의 말씀]을 불태움으로, 일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진리의 사업을 손상시키고, 그들의 영혼을 파멸시켰다. 그러므로 나는 거기에 따라, 그들의 책들[사단의 계략에 의한 인간적 우상숭배의 저서들]을 불태웠다. 바야흐로 엄숙한 투쟁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법왕으로 더불어 경기(競技:성경말씀의 진리증거를 바르게 증거)를 한 데 불과했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사업을 착수하였다. 그러므로 그 사업은 내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쳐질 것이다”(GC 142.2)
그는 엄격한 극기의 생애를 계속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신앙의 근거가 아니고 결과였으며, 성결의 기초가 아니고 열매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기초이며, 그 은혜는 순종으로 나타날 것이다.
‘존 웨슬리’[영국의 신학자로 감리교 창시자]의 생애는 그가 받은 위대한 진리, 곧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새롭게 하는 능력,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생애에 이루어지는, 열매 등에 관한 진리를 전하는 일에 바쳤다.(GC 256.3)
나는 다시,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하도록 일으키신 ‘마르틴 루터’를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진리의 지식은, 그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던가! 그의 마음은,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가 되시고 하늘이 그의 본향이 된다는 소망을, 분명하고 굳게 해줄 무엇인가를 찾기에 갈급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에게 알려진, 새롭고 귀중한 빛은 무한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가지고 나가면, [성령께서 죄와 진리의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깨우칠 수 있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타락한 교회[로마교회]의 분노에 대항하여 굳게 서고, 그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된 풍성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루터’는 ‘법왕교회’에서 위선의 옷을 벗겨 버리고, 그 교회의 타락상을 폭로하기 위한 하나님의 택한 도구였다.
그는 열렬하게 자신의 음성을 높이고, 성령의 능력으로 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 있는 죄를 지적하고 규탄했다. 그를 발견하면 어느 곳에서든지 죽이라는 포고가 내렸다. 그는‘로마교회’의 머리에게 순종하는, 미신적인 사람들의 자비에 맡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루터’는 어느 곳에서나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떨지 않았다. 그가 발견하고 받아들인 빛은 그에게 생명이었고,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세상의 보화[헛되고 헛된 명예와 부귀영화]가 사라질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이해력을 열어주고 그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풍성한 진리는, 살아 있을 것이고 순종하는 조건으로 그를 불멸로 이끌어 줄 것이었다.(1T 372.1)
‘윌리엄 밀러’[미국 침례교의 재림교리 설교자]는, 사람을 광신[성경진리외의 사단숭배와 인간이 만든 것]으로 이끄는, 그런 세력에 조금도 동조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루터’와 같이 모든 영(靈)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밀러’는 말하였다. “마귀는 오늘날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가진 영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대답한다....
세상에는 많은 영들이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들을, 시험해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세상에서 우리를 참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주지 않는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다. 나는 사단이 이런 난폭한 운동을 통하여,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 중에는 완전히 성화(聖化) 된 듯이 보이면서도 사람의 유전[비 진리의 전통과 로마교의 우상숭배와 교황]을 따르고, 그런 모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진리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이 많다”(S.Bliss, Memoirs of Wm.Miller, pp.236, 237).
“오류(誤謬:가톨릭을 이용한 사단의 궤계)의 영[악령]은 우리를 진리에서 떠나게 하고, 하나님의 영[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말하리라. 사람이 오류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기는 진리를 가진 줄로 생각할 수 있으리라고. 그런 경우에는 어찌 될까?
우리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은, 일치된다고 대답하는 바이다. 사람이 만일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검토해 보고, 그 모든 말씀과 완전히 부합될 것 같으면, 그는 그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만일 그를 인도하는 영이 하나님의 율법과 성경의 주제와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성 있게 걸어가야 한다.”[The Advent Herald and Signs of the Times Reporter, vol.8, No.23 (Jan.15, 1845)].
“나는 가끔 그리스도교계의 요란한 소리에서보다도 빛나는 눈, 눈물에 젖은 볼, 목메어 말을 이루지 못하는[감사와 회계의 자복하는] 음성에서, 사람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경건의 증거를 본다.”(Bliss, p.282).(GC 396.2)
그리스도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1:9)이시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는 것처럼 모든 심령이, 하늘의 거룩한 진리의 빛을 받는 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각 사람의 마음속에는 지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영적인 능력, 곧 옳은 것에 대한 분별력과 선에 대한 갈망[양심과 영원(창조주의 영광)을 사모하는 종교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지선(至善:최고의 창조주사랑)의 원칙들에 대항하는 힘[사단마귀의 대적]이 우리 [마음과 정신]속에 있다.
이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가, 모든 사람의 일상경험 가운데서 나타나는 성악 (性惡:천성적인 악행의 성정)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에는 악을 행하려는 성향 곧, 인간이 자신으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내제(內在:영육간의 마음과 육체에 악을 향하는 기초가)되어 있다. 인간이 이러한 힘에 대항하여 싸우며, 진심으로 유일한 가치(價値: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이상(理想:영생복락의 영광과 경배)에 도달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힘으로부터이다.
그 힘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이 힘[창조주의 은혜의 사랑의 무한하신 능력]과 함께 협력[창조주의 믿음과 조건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모든 교육적인 노력에 있어서 이러한 협력이, 최고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Ed 29.1)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곧 그들을 사로잡을 강력한 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께 불순종으로 배척함으로써] 실망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활동하고 스스로 사업[거룩하신 구속의 경륜사업]을 붙들고, 그들 스스로를 진정으로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열렬하게 부르짖어야[자복하고 회개하여 주의 피로 사함을 받아야만] 한다. 우리 앞에 지나가는 장면들은 우리를 각성시켜, 진리를 듣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진리를 새기도록, 강요하기에 충분할 만큼 중요한 것들이다. 세상의 곡식은 거의 익어[의인의 인침이 임박해]있다.(1T 261.1) 사람의 마음속에 사단에 대한 [의분의]증오심을 일으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혼 속에 주입시키시는 은혜이다.
이와 같이 회개케 하는 은혜와 새롭게 하는 능력이 없었으면, 인류는 계속적으로 사단에게 사로잡혀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언제나 대기하고 있는 종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령에 있는 새로운 원칙[양심]이, 지금껏 평화롭던 곳에 투쟁을 일으킨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찬탈자요 폭군인 사단을 거절할 수 있게 된다. 누구든지 죄를 사랑하는 대신에 미워하고,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정욕을 정복한 증거를 나타내면, 전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주신 성령의 힘] 온 원칙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GC 506.2)
[초기의 믿음 때]주님을 찾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제단 앞에서 머리를 숙일 때, 나의 마음에서는 이런 말만 흘러나왔다. “예수님, 저를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게 됩니다. 저의 기도가 들으신바 되고 죄를 용서받기 전에는, 간구하는 일을 결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경험이] 전(前:이전)에 없이 자신의 가련(可憐:매우 애처롭고 불쌍)하고 속절[헛되고 기댈 곳이 전혀]없는 상태를 느꼈다.
그리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자, 갑자기 나의 [무거운 먹구름의] 짐이 떠나가고 마음은 밝아졌다. 처음에는 두려운 느낌이 엄습(掩襲:불시에 마음을 지배)했다. 그래서 나는 고통의 짐을 다시 지고자 노력했다. 나에게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 매우 가까이 계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분께서 지상에 계실 때 구원을 받기 위하여, 불쌍한 자들이 그분께 왔던 것처럼, 모든 슬픔과 불행과 시련을 가지고 그분께 갈 수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분께서 나의 특별한 시련(試鍊:시험과 연단)을 이해하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셨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생겼다. 나는 예수님의 눈에 그처럼 무가치(無價値:아무쓸모 없고 불쌍)한 자에게 나타내신, 그분의 동정어린 긍휼에 대한, 이처럼 귀중한 보증(保證:은혜의 자비와 긍휼의 사랑의 약속)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숙인 그 짧은 시간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에 관하여 배웠다.(1T 17.2)
나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공의(公義:품행의 결과로 선과 악의 공평한 심판의 은혜)가,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가려버렸다. 나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을 믿도록 가르침을 받아 왔다. 그리고 나의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과, 내가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이 언제나 내 앞에 있었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 관하여 들은 무서운 이야기[심판으로 죄인이 영원히 불탄다는 지옥얘기]는,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 당시] 강단에 선 목사들은 [천국을]잃어버린 자의 상태에 관하여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 외에는, 아무도 구원하고자 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우리에게 머물러있고, 모든 죄는 기록되고 그 죄에 합당한 벌[심판의 형벌]을 받게 되어있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무한한 지혜로 정확하게 책에 기록하고 계시므로, 우리가 범한 모든 죄는 성실하게 기록되었다[죄의 책 기록].(1T 23.4)
진정으로 예수님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은, 그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십자가[악한 시련과 고통의 죽음까지)를 [주와같이 십자가를] 지는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올바르게 되고자 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들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바라게 될 것이다. 선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기쁜 마음으로 도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뜻해진 사람들은 사소한 일로,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성령]께서, 마음속에 역사하신 일을 기탄(忌憚:거리낌)없이 이야기할 것이다. 그들은 그 일을 찬미하고 기도할 것이다. 젊은이들을 뒤로 물러가게 하는 것은 신앙의 결핍(缺乏:부족함)이요, 거룩한 생애[믿음과 순종]의 결핍이다. 그들의 생애[범법한 죄의 생애]가 그들을 정죄(定罪:심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서나 교회 앞에서 자신이 없다.(1T 154.2)
나는 그대들이 다 같이, 큰 갈등 속에 놓여 있음을 보았다. 그대들은 마음속에서, 세상을 버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싸워야 할 것이다. 그대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들에게 주어진 큰 연구과제는, 어떻게 예수님과 그분의 사업을 세상보다, 더 사랑할 것인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대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사업을 가장 사랑할 것 같으면, 그대들의 행동이 그 사실을 또한 입증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대들을 주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대들의 내리막길을 기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대들의 향상을 즐거워할 것이다. 사단과 악한천사들은 그대들에게 이 세상나라의 영광을 제시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그를 섬기고 세상 재물을 섬길 것 같으면, 그는 그것을 모든 면에서 매력 있게 보이게 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유도할 것이다.(1T 168.3) 영감 받은 사도는“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한다. 다음에“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라고 덧붙여 경고한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젊은이들의 마음에, 두드러져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결정적으로 [분별없이 욕망과 분위기에 따라] 사랑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속에 거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그들의 쾌락을 발견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그분의 영[성령]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의 생애를 특징짓고 있는 경솔과 유행, 경박하고 헛된 이야기와 웃음 등으로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신다.
‘바울’은 젊은이들에게 근신(謹愼:생각의 말과 행동에 조심)하도록 권면(勸勉:타일러 고치도록)한다.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凡事:모든 행실)에 네 자신으로 선한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을 하게하라. 이는 대적[악한마귀의 미혹]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2: 6-8).(1T 499.1) 말과 행동은,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분명하게 증거[평소의 성품으로 나타나게] 한다.
허영과 교만, 자아에 대한 사랑과 의복에 대한 사랑이 마음을 채우고 있으면, 대화는 유행과 의복과 외모에 관한 것이 되고,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에 관한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기하는 감정이 마음속에 있으면, 그것이 말과 행동을 통하여 나타날 것이다.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잘못을 핑계로 더 높은 표준을 세우지 않는 자들은, [진리의 믿음이 없는 경건의 모양인] 껍질을 먹고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 자신의 헌신하지 못한 감정에 사로잡힘으로써, 사단마귀에게 만족을 주는 한 영적난장이로 머물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마치 세속적인 것들이 생애의 큰 목적이요, 가장 높은 목표인 것인 양 마음가득 품은 데서 흘러나온다. 이런 사람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잊어버린다.(1T 500.1)
나는 한 백성으로서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변화와 휴식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지나치게, 고되게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 휴양(休養:편안히 쉬면서 건강과 여유를 다듬음)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자들에게 필요하며, 주로 정신노동[성경말씀연구와 선교사업의 운영 등)을 하는 자들에게는 더한층 필요하다. 심지어 신앙에 관계된 문제라 할지라도, 정신을 끊임없이 과도(過度:너무 힘들게 할 정도로)하게 활동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필수적(必須的: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무도, 카드놀이, 장기, 바둑 등과 같은 오락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찬성할 수 없다. 하늘이 그것들을 정죄(定罪:죄악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오락들은 큰 죄악을 향하여 문을 열게 한다. 그것들은 그들의 성향에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흥분시키는 영향을 주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속에 도박과 유흥으로 이끌어 가는, 이 놀이들에 대한 욕망을 일으켜 준다. 이 모든 놀이들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정죄되고, 전혀 손해를 주지 않는 어떤 것으로 대치(代置:즉시 대체)되어야 한다.(1T 514.1)
성경이 마땅히 연구되어야 할 만큼, 연구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대는 성경에 박식(博識:깊이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철저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 경박(輕薄:흔하고 천박)한 독서는 정신을 매료(魅了:매혹)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데 흥미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대는 그대가 성경에 정통해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믿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대의 정신이 쓰레기[세상 죄의 지식]에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생각과 경건한 탐구(探究:성령의 도우심과 깊은 연구)를 요구한다.
그것은 표면을 대충 훑어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떤 성경 절들은 너무 분명해서 오해될 수가 없지만, 어떤 것들은 너무도 난해(難解:해석의 어려움이 있으므로)해서 주의 깊고 꾸준한 연구를 요구한다. 언덕과 산 속에 숨겨져 있는 귀중한 금속처럼, 그 진리의 보석들은 발견되어 장래의 용도를 위하여 마음속에 저장[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깨달아서]되어야 한다. 아, 모든 사람이 없어질 금을 찾는 것처럼 하늘의 금을 찾는 일에, 끊임없이 그들의 정신을 활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4T 498.3)
우리의 말과 행동들은 우리가 맺는 열매를 구성한다. 헌신적인 생애는 매일의 산[살아있는 품성의] 설교이다. 그러나 내적인 경건과 진실한 헌신이, 신속히[세상의 흐름에 미혹되어] 외적인 형식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 우리의 교회에 크게 필요하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접근하는, 개인적인 사업으로 삼아야 한다. 아무도 대리(代理:자신외의 어느 누구)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모든 남녀는 두렵고 떨림으로, 그들 스스로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사단은 진리를 고백하는 어떤 사람들을 능가하는 힘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대신에 자아[창조주의 절대적 권위보다도 자신의 짧고 배워서 익힌 세상지식을 우선하고 통속적인 세상기류]가 마음속에서 통치한다. 고집과 이기주의와 질투와 교만이 하나님의 임재(臨齋:성령지도)를 차단시킨다.(4T 609.4) 하나님의 사랑이 심령을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허영과 교만, 권력에 대한 애착이나 이득에, 탐닉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그대가 이렇게 할 힘을 가지고 있고 그대가 이 방법으로, 학대하는 자들이 그대를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안달하고 비난하고 불평하는 것은 이기주의의 최악의 상태이다. 가정과 교회에 불화를 일으키는 것은 이기심이다. 비 그리스도인적인 마음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큰 잘못을 식별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작은 것들이, 크게 확대되어 나타날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대단히 크게 보이는 이런 작은 것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하도록 맡기셨다.
그런 불행한 물목(物目:문제의 목록)들이 교회 안에서 쓴 뿌리가 되어 많은 사람이, 그것 때문에 더렵혀질 때까지 남겨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계시게 되면 마음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부드러워지고 누그러져 안달하고 결점을 찾고, 다투고 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 소유자에게 지배하고자 애쓰고 있는, 열정들을 완전히 정복하게 해 줄 것이다.(4T 610.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잠1:7)다. 성경의 한 문장은 사람의 일만(一萬:수많은)사상과 이론보다 더 가치가 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마침내, “나를 떠나가라”는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에 순종하면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지도하시고, 우리의 입술을 보증[자복하며 회개하는 심령을 허락하신 성령]으로 채우신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강한 능력 안에서 강해질 수 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므로 우리는 능력으로 옷을 입는다. 내주하시는 구주께서는 그분의 능력을 우리의 재산으로 만드신다. 진리는 사업에 있어서 우리의 주식(柱式:근본적인 규정)이 된다. 불의는 생애에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할 수 있다.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임재[항상 주님과의 교제]는 생명력을 주시는 힘이 되어, 전체로서의 인간[전인인간]을 강하게 한다.(7T 71.1)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겔36:26). 마치 피가 육체 속에서 하나의 생명력으로서 순환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들의 마음속에 거하셔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가 아무리 서둘러도, 지나칠 수는 없다. 진리가 우리의 갑옷이 되어야 하는 한편, 우리의 확신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특징지었던 산 동정(動靜:삶의 일상적인 모든 행동)으로, 강해질 필요가 있다.
만일 진리, 산 진리가 품성을 통하여 예시(例示:성결한 모습으로 나타나게)되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설 수가 없다. 우리를 확고하게 세워 주고 그렇게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恩惠:도저히 은총받을 자격이 없는 멸망의 죄인들에게 무한이 베풀어 주심)이다. 하여튼 이미 비틀거리고 있는 상태에 놓인 자는, [불행하게도 일어날 수 없는 멸망적인] 넘어질 준비가 된 것이다.(7T 189.2)
[성령의 세미하게 미리 보여주시는 경고와 인도하심에 경각심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고 깨어 기도하고 주를 바라보아야만 더 이상 넘어지지 않고, 구속의 경륜에 함께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만 바로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