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
오랜 후(메타 데 포륀 크로논) - 여기서도 종말적 심판의 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 표현은 5절과 24:48의 '더디 오다'(크로니조)라는 표현과 같은 맥락에서 쓰여졌다. 물론 이같은 '오랜 후'라는 시간적 감각은 순전히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실로 천년이 하루같으신 그 분께는 영원한 경륜의 한 부분일 뿐이다. 주인이 들어와 - 이 말은 '너희 주가 임하다, '인자가 오다' '주인이 오다'라는 표현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는 것이다. 저희와 회계할새 - 18:23에서와 같이 종말적 심판을 상업적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상업적 용어는 종의 지상에서의 사역을 장사로 비유하였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실로 심판과 재림의 주께서는 종말의 심판 때에 지상에 거하는 모든 종들의 사역 결과를 놓고 회계하실 것이다. 주여 내게...주셨는데 -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가 활용하여 두배의 소득을 올린 그 소유의 출처가 주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그가 자기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주인을 항상 의식하며 성실히 일해 왔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소유의 어느 하나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겸손한 고백이기도 하다.
보소서 내가...남겼나이다 -이는 '내가라는 말이 강조되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단지 주인의 맡긴 바 임무를 성실히 감당한 종이 자신의 성실성을 인정해 줄 주인에게 그 이윤을 펼쳐 놓으면서 외친 기쁨의 탄성일 뿐이다
[마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주여 내게...주셨는데 -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가 활용하여 두배의 소득을 올린 그 소유의 출저가 주인인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그가 자기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주인을 항상 의식하며 성실히 일해 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소유의 어느 하나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겸손한 고백이기도 하다. 보소서 내가...남겼나이다 - 이는 '내가라는 말이 강조되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단지 주인의 맡긴 바 임무를 성실히 감당한 종이 자신의 성실성을 인정해 줄 주인에게 그 이윤을 펼쳐 놓으면서 외친 기쁨의 탄성일 뿐이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더 이상의 칭찬을 기대할수 없을 정도로 극진한 주인의 칭송이다. 특별히 '잘 하였도다'는 뜻의 헬라어 부사 '유'는 종의 지난 노력에 대한 주인의 다함없는 만족과 인정의 표시였다.
그리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26절의 '악하고 게으른 종'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그 종의 온 인격이 무흠하거나 완전하다는 뜻이기 보다 그 주인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특히 '착하다'(아가도스)는 기능적 측면에서의 올바름을, '충성되다는 윤리적 측면에서의 신실성을 강조한 칭찬들이다.
정녕 선(선)과 충성은 주인의 시험을 감당할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었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 이 구절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불리움을 받은 이후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말은 역시 주인의 관심,즉 회계(會計)의 내용이 투자에 대한 이윤이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
오히려 작은 일에도 성실하게 충성하는 자세임을 말해 주고 있다. 물론 주인이 맡긴 5달란트는 상당히 많은 액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주인의 관점에서는 아주 미미한 것이었다. 여하튼 종말적 심판의 때에 성도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일을 했고,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에 있지않고, 순간순간 매사에 얼마나 성실했는지에 있어야 한다.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 이 구절은 작은 일에 충성한 종에게 돌아가는 보상 내용이다. 물론 이 보상은 주인의 회계 이후에 주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현세적이기 보다는 내세적인 것이 분명하며, 또 그 보상이 돈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이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가 더욱 신뢰감으로 깊어졌다는 것이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텐 카란투 퀴리우). 여기서 주인의 '즐거움'은
(1)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10절) 주인이 와서 벌이는 천국 잔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견해를 따르자면 우선 그 종이 천국 또는 영생에 들어가는 것과 그 주인의 초대를 받을 만큼의 영화로운 신분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천국은 잔치와 같은 축제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2) 또 '즐거움'은 주의 영광스런 현현이제공하는 넘치는 기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충성된 자로 인정된 사람은 주의 영광에 참예하여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뜻이다
[마 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참예할지어다 - 셈어의 특징인 반복 기법을 사용하여 20, 21절의 내용과 거의 흡사한 칭찬과 약속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동일 내용의 보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심판주의 회계 기준은 은사와 능력의 크기에 있지 않고
그 맡은 바에 대한 성실성과 충성도에 있다는 점이다. 한편 주인은 두 종에게 모두 '많은 것'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두 종이 똑같은 양의 '많은 것'을 맡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로 천국은 획일적인 평등주의의 실현장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능력과 충성이 모두 인정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