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초암사에서 고시 공부하는 학생이 저녁예불 시간에 범종을 치고 있다. 은은한 종소리가 산사 가득 퍼진다. | |
경북 영주로 가기 전 책장에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꺼내들었다. 먼지 소복이 쌓인 책에서 부석사를 소개한 페이지를 넘겨보니 예전에 느꼈던 감흥이 다시 인다. 너무나 유명해져 그때의 호젓한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몇 번이고 다시 가보고 싶은 부석사.
영주 부석사 가는 길은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면 3시간 안팎에 도착할 수 있다. 가을 부석사도 아름답지만 봄꽃 만발한 봄 부석사도 놓치기 아까운 절경이다. 인근 선비촌 한옥에서 하루 묵고 소백산 자락의 작은 절 초암사에도 들르면 뿌듯한 여행이 될 것이다.
# 보고 또 보고 싶은 절 부석사
10여년 전만 해도 부석사는 지금처럼 이름난 절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유명세를 타게 돼 지금은 흔하디 흔한 관광코스 중 한 곳으로 의미가 바랜듯 하다. 평일에 도착해도 새로 만든 주차장엔 관광버스가 한가득이다. 수학여행 학생 세 팀만 와도 관광객 수는 1000명을 훌쩍 뛰어 넘는다. 경주 불국사처럼 유명 관광지가 돼버린 부석사를 보니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석사의 가치가 어디 변할까.
부석사 오르는 길가 과수원에는 이제 막 사과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사과나무를 보고 답사기에서는 용틀임하는 형상이라 말했지만 소박한 꽃을 이제 막 피우기 시작한 사과나무는 새색시 마냥 부끄러워하며 뺨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듯하다.
잘 닦인 오르막 흙길을 오르다 보면 아담한 청밀밭이 펼쳐진다. 장사하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인삼 농사 때 거름으로 쓰려고 빈 땅에 심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 넓지는 않아도 바람결에 살랑이는 녹색 물결은 장관이다.
봉황산 기슭에 자리잡은 부석사는 10여 개의 석단으로 나뉘어 지어졌다. 각 석단의 높이와 간격이 저마다 달라 높은 단을 오른 뒤엔 낮은 단이 나타나고 다시 높은 단이 나타난다. 발걸음을 적당히 조절하면 꽤 긴 길을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범종각 안양루를 거치면 무량수전이 한눈에 펼쳐진다. 오랜 세월에 색이 바랜 지붕이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로 치솟을 듯하다.
총무 스님인 도선 스님은 기자에게 녹차 한 잔을 건네며 얼마 전 프랑스 젊은이가 부석사에 와서 한국 불교를 공부하고 갔다고 자랑한다. 르노삼성차에 근무하다 한국에 대해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이 프랑스인은 지금도 스님에게 서툰 한국어와 영어로 메일을 보내고 있다. "참 잘 생겼지." 스님은 그와 같이 찍은 기념사진과 그동안 받은 편지를 보여주며 싱긋 웃는다.
부석사에서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스님은 다음엔 취재 말고 마음 수련하러 오라고 당부한다. 스님 말씀을 듣고 다시 무량수전에 오르니 만개한 배꽃이 바람에 살랑인다. 바람이 조금씩 선선해질 무렵 관광객들도 조금씩 빠져나간다.
부석사를 나서는 길에 조용히 산사로 올라 오는 수녀 두 분을 만났다. 기자에게 미소지으며 산사로 향하는 두 사람의 뒷 모습이 부석사 은행나무 길과 그림처럼 포개진다. (054)633-3464
# 사과꽃 따러 가는 길
부석 뜬바우골사과 작목반 이재식 총무. | |
이 총무는 11년 전 귀농을 했다. 도시의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70만 원을 달랑 든 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제 "저기 과수원도 내 땅"이라며 흐뭇해하는 신세대 농사꾼으로 당당히 성공했다. 농약 사용을 절반으로 줄이고 화학비료 대신 유산균과 한방영양제를 써서 수확한 뜬바우골 사과는 당도가 높아 인기가 높다. 인터넷(www.clickapple.com)으로도 판매하는 데 이미 재고가 바닥났다. 8월 이후에나 판매가 가능하다.
사과꽃 따기 행사는 끝났지만 작목반 사무실이나 이 총무에게 연락하면 근처 과수원에서 꽃따기를 체험해볼 수 있다. 과수원 소개와 사과 설명도 알차게 들어볼 수 있다. 다만 농사철이라 미리 연락을 해야 한다. (054)638-1794, 017-502-3693
가을에는 사과따기 체험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당 5000원으로 덤이 많아 따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과꽃에 흠뻑 취한 뒤에는 선비촌에서 하루 묵어도 좋다. 숙박비는 2만~5만 원 정도로 전통 한옥과 초가집을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다. 주말엔 별보기 체험, 천연 염색 등 각종 행사가 마련돼 있다. 흥주 농악 공연도 펼쳐진다. 전화 예약만 가능하며 5월 중순까지는 이미 대부분 방이 예약 완료된 상태다.
바로 옆 소수서원 돌담길을 거닐거나 유교 문화재로 가득한 소수박물관도 둘러 보길. 선비촌에 입장하면 나머지는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054)638-7114
# 아담한 산사 초암사
선비촌과 소수서원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순흥 시내가 보인다. 이 곳에서 순흥저수지를 지나 배점리 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절이 초암사다. 순흥저수지를 타고 달리는 길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운치있는 드라이브 코스.
소백산 국망봉 자락에 위치한 초암사는 신라 의상 대사가 부석사 세울 곳을 찾기 위해 초막을 짓고 잠시 머물던 곳에 지은 절이다. 한국전쟁 때 건물이 불타 현재의 절은 새로 지었다.
초암사 가는 길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차로 오르기 보다 걸어가기를 권한다. 차는 입구 주차장에 댈 수 있다. 약 1시간 정도 걸으면 절에 도착하는데 오른쪽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왼쪽 길가 과수원에는 진분홍 복사꽃이 만발했다. 이 아름다운 길을 차로 지난다고 생각하니 죄스럽기까지 하다. 등산객들과 자전거로 오르는 이들도 꽤 많다.
마침 기자가 초암사에 도착했을 때 은은한 범종소리가 산사 가득 퍼지고 있었다. 고시 공부 중이라는 학생이 연로한 스님 대신 저녁예불 범종을 치고 있다. 주지 스님을 기다렸지만 언제 올지 모른다는 말에 해지기 전에 발길을 돌렸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은은한 풍경 소리에 하염없이 빠져들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초암사에서는 도 유형문화재인 통일신라 양식 3층 석탑을 볼 수 있다. 문의 영주시청 관광과 (054)639-6062
초암사 가는 길가 과수원에 복사꽃이 만발했다. 사진 왼쪽은 부석사 무량수전. 배꽃이 활짝 피었다. | |
# 가는 길& 맛집
풍기 횡재한우먹거리 식당의 한우 갈빗살 구이. | |
영주는 한우로 유명하다. 한우 음식점 중 풍기읍내 오거리에 위치한 횡재먹거리한우 식당(054-636-1033)은 질좋은 고기 덕분에 특히 입소문이 난 곳이다. 주말에는 외지 손님들이 가득해 빈자리가 없을 정도. 이 집 인기 메뉴는 갈빗살. 강원도 참숯에 살짝 구워먹으면 한우의 참맛을 느껴볼 수 있다. 1인분에 2만 원. 아무리 고기가 좋아도 찌개가 맛 없으면 방금 먹은 고기맛도 잊혀지는 법. 찌개는 영주 무수촌 마을에서 만든 청국장만을 쓴다. 100% 국산콩으로 가격은 비싸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구수해서 특별한 양념 없이 깊은 맛이 절로 난다. 미역냉채 국물에 국수를 만 미역냉채국수도 '강추'. 고기 먹고 난 뒤의 텁텁함을 깔끔하게 씻어준다.
이 집은 얼마전 영주 한우를 부위별로 저렴하게 파는 2호점(054-638-0094)도 냈다. 풍기인삼수삼센터 내에 위치, 반찬값만 내면 숯불도 제공해 구입한 고기를 그 자리에서 직접 구워먹을 수 있다.
순흥면에 위치한 숙흥묵집(054-634-4614)도 들러볼 만 하다. 이미 방송 신문 안 나온 데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집이라 주차장이 관광버스로 가득하다. 채 썬 메밀묵에 조밥을 말아먹으면 든든하다. 반찬으로 나오는 산나물도 상큼하다.
묵집 바로 앞에서 순흥 명물인 기지떡을 판매한다. 반 되에 7000원인데 4인 가족이 먹으면 넉넉한 양이다. 선물용으로도 좋다. (054)631-2929
숙소로 선비촌 예약이 힘들면 풍기인삼관광호텔(054-637-8800)을 추천한다. 풍기읍내에 위치, 사우나와 스카이라운지 등을 구비했다.
피로 풀기에 적당한 소백산 풍기온천(054-639-6911~2)도 들러볼만 하다. 인삼의 고장답게 인삼사우나가 가장 인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