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말씀에 의하면 애기때부터 커피를 마셨다고 하고,
지난 40여년간 매일 원두를 드립했으니, 커피 짠밥은 대한민국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茶 마신지 20년, 커피 마신지 40년이 되는셈이다.
이제 세상 모든 커피 다 마셔봤고, 웬만한 원두는 사다가 갖은 방법으로 다 끓여봤다.
그전부터 커피는 상파울로와 엘빈이 젤 잘한다고 생각해 오던 중,
종로에 있는 '가배친구(커피친구)'의 내공이 대단하다고 하여,
몸소 힘들여 행차해서 마셔보았다.
일명 킬리만자로라고 불리는 탄자니아AA는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강배전보다는 중간배전으로 커피콩을 볶아서 갈아마시는것이 좋다.
가배친구도 그래서 중간배전으로 로스트 한 것 같은데,
여기서 조금 더 배전해 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커피배전도 그 상태에 따라서 30여가지 등급으로 배전할 정도로 차이가 많다.
어쨌거나 가배친구의 탄자니아AA는 배전이 좀 약하다.
결정적인 문제는 이 집에서 정수된 수돗물을 쓴다는 것 이었다.
초의선사가 '물은 차의 몸이요, 차는 물의 정신'이라고 했는데,
커피에서도 이 말은 똑같이 적용된다.
가배 친구의 탄자니아AA를 입에 대는 순간, '아, 이거 정수기물이구나'라는 생각이 단박에 떠올랐다.
나중에 계산하다가 물어보니, 정수기물이 맞다고 한다.
수도물을 정수하게 되면, 아무리 비싸고 좋은 정수기로 정수하더라도
물의 기운이 다 빠지고 죽은 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서울시내 어떤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셔봐도,
이제는 나보다 커피 잘 끓이는 사람은 거의 없는거 같다.
거창하게 바리스타 입네, 뭐네 하고 간판 붙이고 커피집 하는 사람들,
이제는 다 나보다 한수 아래다.
(커피와 차만 그렇다...난 와인이나 회맛, 양주맛은 잘 모른다)
내가 여태 마셔본 커피중에, 가장 훌륭했던 커피는 브라질에서 마신 것 이었다.
작년(2006년) 여름, 브라질의 꾸리찌바市에 갔을때, 꾸리찌바 시장님 공관에서 접대를 받았는데,
시장 공관의 쉐프가 끓인 커피가 정말 훌륭했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체면 불구하고 연거퍼 세잔이나 마셨다.
나중에 요리사한테 원두가 뭔지, 어떤 수준으로 볶은건지 물어보았고,
그 상표를 사갖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도 그 맛이 안 나는 것이었다.
아마도 브라질의 물이 아니면, 그 맛은 낼 수가 없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쉽지만, 브라질커피의 제맛은 브라질 밖에서는 마실 수 없는것 같다.
중국 용정차는 반드시 항주 용정의 물로 끓여야만 그 맛이 나듯이 말이다.
(용정샘물로 끓이지 않은 용정차는 아주 싸구려 차맛이 난다. 용정물로 끓여야만 그 맛이 제대로 나온다)
정리하면, 커피친구의 커피는 스타벅스나 커피빈등의 체인점과 비교하면 많이 훌륭하다.
그러나 엘빈보다 두수정도 떨어지고, 지금은 없어진 상파울로보다 한수 떨어진다.
정수기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최고의 커피를 끓일 수 없는거다...
생수는 그 맛이 강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지만, 잘만 엄선하면 생수만한 차의 재료는 없다.
제대로 끓인 킬리만자로 커피를 마시면,
처음에 느껴지는 신맛 이외에, 뒷맛이 무척 오래 남는데,
그 맛은 세렝게티 평원을 달리는 마사이족 전사의 발이 대지를 울리는 진동같은 맛 이다.
세모금정도 마시면 초원 원주민의 북소리처럼 심장이 울리고,
마지막 맛은 석양이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세렝게티의 여운처럼 느낌이 남는다.
어제 커피친구에서 그 맛을 기대했는데,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