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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옛길 백두대간 <하늘재> 트래킹 후기 2012. 10. 16 하나산악회원을 태운 버스는 문경읍 관음리(觀音里)에 위치한 <하늘재> 정상을 향하여 달린다. 힘에 부치는지 묵직한 굉음을 낸다. 도로 양쪽에 펼쳐져있는 크고 작은 밭에는 이곳이 사과의 고장임을 말해주는 것같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사과이다. 그리고 문경(聞慶)의 찻사발의 고장답게 곳곳에 요(窯)가 보인다. 드디어 <하늘재> 정상부에 도착했다. 이 곳 정상부 즉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彌勒里)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한강수계(漢江水系)와 낙동강수계(洛東江水系)의 분수령(分水嶺)이 되는 소백산맥(小白山脈) 줄기는 영남지방(嶺南地方) 사람들과 충청도 지방 사람들이 왕래하는데 장애(障碍)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소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수천 년간 역사와 문화, 생활양식이 각각 다르게 영위되었던 것이다. 풍기와 단양 쪽의 죽령(竹嶺), 문경과 충주 쪽의 새재와 <하늘재>는 소백산맥을 넘나들며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오늘 우리 하나산악회원들이 트레킹 하려고 하는 <하늘재>는 영남과 충청을 이어주는 역사상 최초의 고개로 알려져 있다. 약 2천년 동안 한반도의 중심 교통로였던 <하늘재>는 문경과 충주로 나뉘어지는 경계에 있는 고개다. 문경새재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과것길,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면 <하늘재>는 죽령과 함께 군사 이동로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므로 <하늘재>는 역사와 문화가 쌓이고 스며든 풍부한 문화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다함께 기념 스냅핑 ‘<하늘재>길’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觀音里)로 시작해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彌勒里)로 연결되는 길이다. 자료에 따르면, 신라 아달라 이사금 3년(156년)에 “여름 4월에 계립령(鷄立嶺 :하늘재의 옛 이름) 길을 열었다”라는 <삼국사기> 제2권 ‘신라본기’에 최초의 기록이 있어서 문헌상 가장 오래된 옛길로 알려져 있다.
울창한 송림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걷기 좋은 하늘재 길 수림들이 향일성 경쟁때문에 곧게 자라고 있다 햇빛이 잘 들어갈 수가 없어서 어둡다 가장 오래된 옛길로 알려진 <하늘재>의 얽힌 역사적 사실(史實)을 살펴보면 고구려(高句麗) 온달(溫達) 장군이 “계립령(鷄立嶺)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돌아가지 않겠다” 라며 출사표(出師表)를 던질 정도로 삼국의 요충지(要衝地)였던 곳이다. 뒤에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을 피해 몽진(蒙塵)할 때도,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간 마의태자(麻衣太子)와 덕주공주(德周公主)도 이 길을 밟았다. 이렇듯 <하늘재>는 기나긴 세월을 겪으며 수많은 사연(事緣)과 삶의 흔적(痕迹)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한 참을 걸어오니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체조선수 김연아를 닮은 소나무 낙엽송과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미륵리를 향하여 해발 525m의 <하늘재>는 가족끼리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길이다. 3.2㎞ 정도로 난 완만한 오솔길을 따라 양옆으로 낙엽송·소나무·굴참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는데, 2000년 묵은 숲길의 향기가 느껴진다. 이 길로 우리의 조상들이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걸었을 것을 생각하니 오늘은 과거의 족적(足跡)이 고스란히 새겨져있는 길을 나도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을 하니 감회(感懷)가 남다르다. 이 고갯길을 왜 <하늘재>라고 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 높지도 않은 고개인데 말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총림(叢林)은 주변을 어두컴컴하게 한다. 파란 하늘도 볼 수가 없다. 어쩌다가 빠꼼히 파란 하늘 한 점이 보이곤 할 뿐이다. 이곳은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잘 관리 되어 있어서, 숲에 관한 산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생태 탐방로를 의도적으로 조성ㆍ개설하여 학생들의 생태학습장으로 잘 이용 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보기 좋다. 생태학습장을 하나하나 확인 하며 내려오니 미륵리에에 위치한 미륵대원터(彌勒大院址)가 나오고 고려 초기 유적(遺跡)으로 추정되는 북향 절터인 중원 미륵사지(彌勒寺址)가 보인다.
이런 길은 아무리 걸어도 싫증이 나지않는다 삼삼오오 짝을지어.... 숲길이 터널 같다 미륵리가 가까와지고....
아름다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잘 관리된 국립공원답다
생태탐방로에 설치된 목교
미륵대원터
미륵사지에는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 입상(忠州 彌勒里 石造如來 立像)>ㆍ<미륵리 석등(彌勒里 石燈)>ㆍ<충주 미륵리 오층석탑(忠州 彌勒里 五層石塔)> 같은 많은 유적이 남아 있어서 번영했던 중원 문화를 다시 한 번 가늠케 해준다.
충주 미륵사지 귀부 해체된 당간지주 미륵사지 전경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 입상(忠州 彌勒里 石造如來 立像)은 높이 10.6m로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거불(巨佛)의 하나로 화강암 5매를 연결하여 거대한 불상을 조성하고 머리에 팔각형의 판석 1매를 올려놓아 팔공산 갓 바위 부처와 유사하게 갓으로 삼고 있다. 어깨가 좁고 입체감이 없는 원통형을 유지하고 있다. 팔 또한 겨우 형체만 나타내었는데 가늘고 짧은 팔에 비해 가슴에 대고 있는 손이 비교적 커서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이 불상이 석굴사원에 봉안되었던 주존불(主尊佛)이라는 것이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 입상(忠州 彌勒里 石造如來 立像) 1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 입상(忠州 彌勒里 石造如來 立像) 2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 입상(忠州 彌勒里 石造如來 立像) 3
중원 미륵리사지 석조보살의상
미륵리 석등(彌勒里 石燈)은 8각으로 지대석(地帶石)만 4각 구조인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우수한 작품이다. 4각형의 지대석과 연화대석(蓮花臺石)은 1석(石)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연판(蓮板)은 단엽(單葉) 팔판복련(八板複蓮)이며 간주석(間柱石)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팔각석주(八角石柱)이다.
미륵리 석등(彌勒里 石燈) 1 미륵리 석등(彌勒里 石燈) 2 미륵리 석등(彌勒里 石燈) 3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忠州 彌勒里 五層石塔)>은 높이가 6m로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웠으며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 찰주(刹柱)가 남아있다. 기단은 자연석에 가까운 큼직한 4각형 돌로 우주(隅柱), 탱주(撑柱)의 표현은 없다. 갑석(甲石)은 매우 좁은 2매의 판석으로 되어있고 갑석 하면에는 형식적인 부연(附椽)이 있으며 윗면은 경사가 뚜렷한데 중앙에 역시 형식적인 괴임이 모각(模刻)되어 있다. 이탑은 신라시대 석탑형식을 따른 것이지만 조형감각이 고르지 못하다.
미륵사지 전경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忠州 彌勒里 五層石塔) 1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忠州 彌勒里 五層石塔) 2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忠州 彌勒里 五層石塔)과 미륵리 석등(彌勒里 石燈) 중원 미륵사지(彌勒寺址)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간다. 옛길이 품고 있는 시간을 천천히 더듬으며 정상에 올랐다. 눈앞에 월악산의 수려(秀麗)한 풍광(風光)과 새파란 하늘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비로소 해발 525m에 불과한 <하늘재>가 왜 ‘하늘’이란 이름을 당당히 꿰찼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200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숱한 만남과 헤어짐, 기다림을 겪어왔을 이 아름다운 옛길의 정취에 흠뻑 취해보며, 이 가을 하늘과 맞닿은 <하늘재> 표지석 아래서 주변의 경관(景觀)을 완상(玩賞)하며 남다른 <하늘재>의 즐거움을 만끽해 본다.
하늘재 표지석
하늘재 정상에 새워진 표지석에서 바라본 포암산(布巖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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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국환 회원님! 감사합니다.
귀하가 아니었으면 <하늘재> 트레킹을 했겠나!
자네 덕분에 우리나라에 있는 제일 오래된 옛길을 걷게 되어서
감사함을 느끼네.
안국환 회원님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자네의 기행문을 읽으니 하늘재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내 그려. 수고했네.
스물 셋(사진에서..) 안사11회 건아들 하늘재 등정과 미륵사지 탐방, 보기 좋습니다.
재직 시 보이스카웃과 걸스카웃 여름 캠프장으로 수안보 및 월악산 일원을 거의 매년 갔는데
지금 거슬러 추억을 더듬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감상 잘 하였습니다. 건강한 모습이 부럽습니다.
또한 멋진 글과 글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전문 사진기자님의 정성이 오늘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이 집에서 한번더 공부가 되었네요....역시 여행 후기는 전문 기자 답단 말이여.....수고하셨네.....
그 숲 속 그길을 걸을때 보다 사진 찍은 거 보는 재미는 최근 역사를 되돌아 보는듯 해서 좋다. 윤중 김기현은 역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언론의 선봉장이다.
고맙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