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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행사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참석으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관심은 전승절 열병식에서 울려퍼진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일명 팔로군행진곡)'은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고, 화순 능주육영보통학교와 전주 신흥중학교를 거치며 수학하고,
1933년 항일운동에 가담한 형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 음악가 「정율성」의 작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을 만나봅니다.
【정율성(鄭律成, 1914~1976, 작곡가】중국에서 활약한 작곡가. 작품 《팔로군대합창》 중 <팔로군행진곡>이 《인민해방군가》로 정식 비준을 받았다. 한때 문화대혁명에 협력하지 않은 죄로 시련을 겪기도 했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고, 초명은 부은. 화순 능주육영보통학교와 전주 신흥중학교를 거치며 수학, 1933년 항일운동에 가담한 형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南京)·상하이(上海)에서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을 배웠다. 1938년 옌안(延安)의 루쉰(魯迅)예술학교 음악학부에 진학하였고, 1939년 《예안송》 《팔로군대합창》 등을 작곡 발표. 그 가운데 《팔로군대합창》 중의 <팔로군행진곡>은 1949년 중국 건국과 함께 《인민해방군가》로 불려 오다가 1988년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정식 군가로 비준을 받았다.
1953년 중국공산당 당원이 되었고, 한때 문화대혁명에 협력하지 않은 죄로 시련을 겪었으나 다시 작곡활동을 개시하여 가곡·가극·영화음악분야 등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출처; 두산백과>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정율성의 발자취가 서린 오웬기념각(광주 유형문화재 26호),
<출처; http://blog.naver.com/jcjkks/220265225899, 2015. 02. 06.>
이곳 오웬기념각 답사에서 음악가 정율성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오웬기념각은 광주의 첫 오페라, 첫 독창회, 첫 악단, 첫 연극, 첫 시민운동체(YMCA) 등 개화기 광주 신문화의 발상지로서 음악인 정율성을 비롯한 숱한 근대 인재들의 발자취가 서린 요람……" <출처; 오웬기념각 안내문 중에서>
아래는 정율성에 관한 뉴스검색 결과입니다.
▲ 독립운동가인자 음악가였던 정율성(오른쪽)과 부인 정설송.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한ㆍ중 관계 역사 속 우호 인물을 거론하였다. 그중에 중국 3대 혁명 음악가 정율성이 있었다.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인 '팔로군행진곡'과 중국인들의 최고의 애창곡인 '옌안송'을 작곡한 정율성.
그는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양림동의 숭일학교를 졸업하고 전주신흥학교에 입학해 광주학생운동을 성원하는 전주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 그 후 경제난으로 신흥학교를 중퇴하고 1933년 19세에 중국으로 떠나 독립운동가의 길로 나아갔다.
정율성이 중국으로 간 데에는 형제들의 영향이 컸다. 형제들이 이미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큰형 정효룡은 임시정부 요원으로, 둘째형 정충룡은 의열단원으로, 셋째형 정의은은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 모집책으로 활동하였다. 정율성은 바로 셋째형을 따라 누나 정봉은과 함께 중국으로 갔던 것이다. 정봉은은 나중에 독립운동가 박건웅의 아내가 된다.
정율성의 중국행은 항일운동을 위한 것이었다. 정율성은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후, 난징과 상하이 등지에서 항일운동을 하는 한편 음악공부를 하게 된다. 1937년 매형 박건웅이 중심이 된 조선민족해방동맹의 특사 자격으로 시안의 팔로군 판사처를 거쳐 옌안으로 이동하여, '노신예술문학원' 음악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창작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명작으로 손꼽히는 '옌안송'을 작곡하였으며, '항일군정대학' 음악지도원으로 배치되어 활동하던 정설송과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1939년에 많은 곡들을 만들었는데 그 중 '팔로군행진곡'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채택된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의 옌안 시기는 정율성이 음악적으로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1940년대 정율성은 조선의용군으로서, '화북조선혁명군정학교'의 교육장으로서 항일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해방 후 정율성은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창작활동에 전념하던 중 1976년 급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지금 정율성은 떠나고 없지만, 중국에서 그의 음악은 영원하다. 1988년 덩샤오핑이 그의 '팔로군행진곡'을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결정한 후, 국가주요행사 때마다 이 곡이 울려 퍼진다. 황행자 광주 숭일중 교사. <출처; 전남일보, 2015. 08. 18.>
《중국 전승절, 우리가 몰랐던 세가지 이야기》
"…… 중국 군악대가 연주한 곡은 '중국 현대음악의 별'로 추앙받아 온 전남 광주 출신 정율성이 작곡한 '인민해방군행진곡'이었습니다. 정율성은 열아홉 살에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에 몸담았는데요,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뒤 그해 항일 투쟁의 동지였던 중국 시인의 가사에 웅장한 멜로디를 붙인 것이 바로 이 행진곡입니다.
정율성이 항일투쟁 시절 사기를 북돋기 위해 작곡한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고, 고향 광주에서는 2005년부터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열어 그를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 " <출처; YTN뉴그, 2015. 09. 04.>
"…… '영웅'의 현지 진출은 앞선 사례들과는 다르다. 한국에서 이미 검증된 창작 뮤지컬이 중국 현지 도시의 초청을 받아 공연이 성사됐다. 무엇보다 하얼빈 내 안중근 기념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인 만큼 사회적인 의미도 컸다.
뮤지컬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지만 중국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항일을 소재로 삼아 눈길을 끌었다. 이런 점을 인식하게 된 '영웅'의 연출인 윤호진 에이콤 인터내셔날 대표는 '중국 현대음악의 대부'로 통하는 동포 작곡가 정율성(1918~1976)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중국에서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전남 광주 출신인 정율성은 항일 투쟁의 혼을 담아 중국의 아리랑으로 통하는 '연안송', 인민해방군 공식 의전곡인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다. 중국인들의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 <출처; 뉴시스, 2015. 09. 14.>
"…… 이 공연의 무대가 된 '다형다방'은 김현승 시인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무인 카페, 또 '오웬기념각'(광주시유형문화재 제26호)은 배유지 목사와 함께 전남 최초의 선교사로 들어와 광주에서 순교한 오웬 선교사를 기념하는 곳이고, '우일선 선교사사택'(광주시기념물 제15호)은 광주의 첫 크리스마스 예배가 열렸던 곳으로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 이 연극은 시대의 숙명을 짊어진 음악청년 'J'(이태진 씨)와 허세 넘치는 모던보이 'K'(이승학 씨), 그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마담 'L'(조혜수 씨)을 통해 격변의 시기였던 1930년대를 그린다. 항일투쟁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 'L'을 두고 떠나는 'J'는 광주 출신의 음악가 정율성을, 실연의 아픔을 딛고 문학적으로 각성해가는 'K'는 시인 김현승을 모티프로 삼았다. ……" <출처; 전남일보, 2015. 09. 14.>
중국 인민해방군가 작곡 정율성 '기념교실' 전남 화순군 모교 능주초등학교에 들어선다
중국 '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 정율성 선생(1914~1976)을 기리는 '기념 교실'이 모교인 화순 능주초등학교에 들어선다. 인민해방군가는 지난 5일 천안문 항일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 때 첫 번째로 울려퍼진 노래다. 화순군은 9일 "전남도교육청과 함께 정율성 선생이 다녔던 능주초등학교에 그의 어린 시절을 담은 '기념 교실'을 이달 말까지 설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화순군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 열병식에 참석한 이후 '이념 시비'가 말끔히 사라지면서 기념교실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화순군은 정율성 선생이 6년 동안 살았던 집터 등에 각종 기념사업을 준비해왔으나 일부 반대의견에 부딪혀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정율성 기념교실은 그의 흔적을 찾는 첫 기념사업이다.
이 학교 공간 한 칸에 그가 다니던 1~2학년(1922~1923) 때 교실 풍경을 꾸미는 것이다. 천장·바닥·벽 등을 목재로 재시공하고 칠판과 교탁, 풍금, 책걸상 10개씩을 놓는다. 또 교실 한 가운데 책상엔 그 시절 정율성 선생 몸집 크기의 마네킹을 설치, 함께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정율성 선생이 1939년 작곡한 '인민해방군가'는 천안문 행사 때마다 빠짐없이 연주되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 때 입장곡으로도 사용됐다. 중국의 아리랑인 '연안송(延安頌)' 등 수많은 곡을 지어 '중국 3대 현대음악가'로 통한다. <출처; 경향신문 2015. 09.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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