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숙직 날 밤
내가 숙직하는 날 밤이면 왠지 도둑이 잘 들었다. 첫 발령을 받아 난생 처음 숙직하는 날 밤부터 도둑을 맞았다. 순시를 몇 차례 하긴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교실 몇 칸의 창문 유리를 몽땅 빼어 가 버렸다.
왜정 때 지은 낡은 목조 창문틀이라서, 유리를 빼기가 매우 쉬운 탓으로, 삽시간에 몇 개 교실의 유리를 빼어 가 버린 것이었다. 그때는 유리가 귀하고 값이 나갔기 때문에 유리를 빼 가는 일이 많아서, 이를 막기 위하여 유리창마다 학교 이름이나 교표를 크게 새겨서, 가져가 봐야 다른 데서 사용할 수 없도록 표시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이라 매우 당황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숙직 소홀로 인하여 물건을 도난당하면, 즉시 해임한다는 군사 정부의 엄한 지시가 연이어 내려올 때라서 더욱 곤혹스러웠다. 다행히 동료들의 도움으로 인하여 심한 징벌은 받지 않았으나, 이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상당히 커서, 그 후 숙직을 하는 날이면 늘 걱정스런 밤을 보내곤 하였다.
초임교에서 근무를 끝내고 전근을 간 학교는, 시 외곽지라서 부근에 인가도 드물었다. 부임하는 날, 숙직 근무를 같이 하는 용원에게 방범 상태에 대해서 물어 보았더니, 하도 도둑이 자주 들어서 교무실에는 벨 장치까지 해 두었다는 것이었다. 심히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느다란 철사 줄을 창문 쪽에 설치하여, 도둑이 들어올 때 이를 건드리면 숙직실에 있는 벨이 울리도록 한, 초보적인 장치를 해 두고 있었다.
근무해 보니 과연 듣던 대로 도둑이 자주 들어왔다. 특히 내가 숙직하는 날은 공교롭게도 도둑이 드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교무실에 설치한 그 방범 장치 때문에 귀중한 물건을 잃는 일은 거의 없었다.
벨소리에 잠을 깨고 일어나 교무실로 달려가면, 인기척에 놀란 도둑이 도망을 가곤 하였다.
숙직 근무를 같이하는 용원 S씨는, 6․25 참전 용사임을 자랑삼아 늘 이야기하면서, 가끔 전쟁 경험담을 반복하여 들려주는 좋은 분이었으나, 술을 좋아하여 저녁이면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면서, 메고 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에 빠지곤 하였다.
그날도 S 씨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는데, 갑자기 벨소리가 크게 울리었다.
도둑이 들어온 것이었다.
곤히 자고 있는 S씨를 깨우니, 한참이나 눈을 비빈 후에 하는 말이, ‘오늘은 도둑의 퇴로를 차단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꼭 도둑놈을 잡자.’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으니, 벽장 속에 넣어 두었던 일본도를 꺼내 들면서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칼은 말이 일본도지 녹이 슬고 부식되었기 때문에, 날이 무디어져 제 값을 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학교 사택의 마당을 고치다가 발견한 것으로, 오랫동안 흙 속에 묻혀 있던 것을 꺼내 주워다가 숙직실 벽장에 넣어 둔 것인데, 말이 칼이지 손잡이도 시원찮아서 붕대를 감아쥘 수 있도록 한, 길쭉한 쇠붙이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S 씨의 뒤를 따라가, 그가 시키는 대로 도둑이 들어온 건물 뒤쪽의 문 쪽에 숨어서, 도둑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이따금 새어 나왔다. 내 가슴은 쿵덕쿵덕 방아를 찧었다.
이윽고 시커먼 물체가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그것을 향해 세차게 발길질을 보내었다. 도둑이 저만치 꺼꾸러져 나자빠졌다.
그때였다. S 씨가 갑자기 죽여 버린다는 고함과 함께 칼을 쳐드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엉겁결에 S 씨의 팔을 잡고서 조금만 참으라고 소리쳤다. 저런 놈은 죽여 버려야 된다고 흥분해서 소리치는 S씨를 진정시키고 돌아보니, 도둑은 어둠 속에서 살려 달라는 말을 연거푸 하면서 애원하고 있었다.
화를 못 이긴 S 씨는, ‘너 여기 몇 번째 들어왔느냐?’는 등의 말을 하면서 연신 도둑에게 발길질을 해대었다. 그때마다 도둑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아무리 도둑이지만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도둑은 잡지 말고 쫓아 버리는 것이 상책이란 말이 얼른 떠올랐다. 나는 S 씨 앞을 가로막고, 도둑을 향해 ‘이번에는 용서해 줄 테니,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라.’고 하면서 큰소리를 질렀다.
엉거주춤 서 있던 S 씨에게도 보내 주자고 간곡히 양해를 구하였다. 그리해서 도둑을 어둠 속으로 돌려보내고, 불만에 찬 S 씨에게, ‘내일 한잔 하자.’는 말로 달래면서 숙직실로 돌아왔다.
그런 일이 있었던 이튿날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식사를 하려고 교무실을 막 나서려는데, 사환 아이가 어젯밤 숙직 선생님을 바꿔 달라는 전화가 왔으니 받으라는 것이었다. 괴이쩍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으니, 저쪽에서 약간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어젯밤 숙직한 분이 맞느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그는 ‘어떻게 살다 보니 엊저녁에 몹쓸 짓을 했는데 용서해 주어서 너무나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왠지 어제보다 가슴이 더 뛰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한 채로 서 있었다. 용서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생각 없이 보내 주었는데, 도둑에게 이런 인사를 받다니! 내가 좋은 일을 한 가지 했구나 하는 생각도 새삼스럽게 들었다. 용서야말로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깊이 들었다.
용서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용서란 정말 고귀한 것이다. 불교의 육바라밀 가운데 인욕(忍辱)이 으뜸인 것도 이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후 교장이 되었을 때 나는 경영하는 학교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용서는 가장 고귀한 승리이다.’라는 영국 속담을 크게 써서 걸어 두고, 학생들로 하여금 이 말을 마음 깊이 새기도록 하였다.
아무렴 그때의 그분도 개과천선하여 이 세상 어디에서 착하게 잘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또한 그렇게 되기를 이 순간도 진심으로 기원한다.